서울 동북부에 위치한 미아리는 공동묘지, 정착촌과 달동네, 그리고 무엇보다 성매매 집결지로 대표되는 소외와 배제의 공간이다. 그러나 1950-1960년대에 미아리에서는 당시 한국이 경험하던 초기 산업화에 조응하며 다양한 제조업이 성장하고 있었다. 당시 미아리 공업의 성장 속도는 다른 지역보다 더빨랐고, 업종 구성의 변화도 급격하였다. 미아리를 대표하는 공업으로 피혁산업과 섬유산업이 두드러졌다. 미아리 공업 중 특화 수준이 가장 높았던 피혁업은 대부분이 제혁업이었으며, 서울 제혁업체의 1/3이 미아리에 입지할 정도로높은 밀집도를 보였다. 미아리의 조광피혁은 1960년대에 양적, 질적으로 빠르게 성장하여 한국 피혁산업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기업이 되었다.
한편 미아리 공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섬유산업에서는 직물제조업, 편직업, 그리고 표백 ․ 염색업이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표백 ․ 염색업은 한국 전체 사업체와 종사자의 8-9%가 미아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염색업에 종사하였다. 제혁업과 염색업 모두 정릉천과 월곡천으로 둘러쌓인 하월곡동 88번지 인근에 밀집하였다. 이곳은 뒷날 성매매 집결지가 자리를 잡는장소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미아리 제조업의 존재는 그간 부정적으로 기억되어온 미아리가 산업화 초기에 한국 제혁업과 염색업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서한국의 성공적인 산업화를 다른 지역과 함께 경험한 지역임을 보여 주며, 소외지역에 대한 재인식의 가능성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