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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깃거리 검색결과 총 1,92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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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미동(거리의미술동아리)
    인물
    거미동(거리의미술동아리)
    성북구의 벽화봉사단체이다. 1997년 12월 창립되었으며, 부산 경남 거미동, 대구 경북 거미동, 대전 충청 거미동 등 전국적으로 지부를 두고 있다. 성북의 거미동은 서울과 경기 지역을 대상으로 벽화그리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회원들을 대상으로 벽화 그리기에 대해 교육하는 벽화제작학교도 진행하고 있다.
  • 석관상공인회
    인물
    석관상공인회
    성북구의 집수리 봉사단체이다. 2005년 1월 천석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2014년 1월 석관상공인회로 단체명을 변경하였다. 관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집수리봉사를 하고 있다.
  • 종암동청년회
    인물
    종암동청년회
    성북구의 집수리 봉사단체이다. 1994년, 종암동에 살던 20대~30대가 만든 친목 모임으로 시작하였다. 이왕이면 좋은 일을 하자고 하여 집수리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관내 저소득계층을 대상으로 현재까지 200곳이 넘는 집을 수리해왔다.
  • 성북금우집수리봉사단
    인물
    성북금우집수리봉사단
    성북구의 집수리 봉사단체이다. 금우는 '금요일 우정을 나누는 모임'의 줄임말로 초창기에는 친목모임에 가까웠으나 이왕 모이는 김에 다 함께 잘사는 동네를 만들어보자고 하여 집수리 봉사를 하게되었다. 관내 저소득계층을 대상으로 집수리 봉사를 하고 있으며 월 1회를 주기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에는 '2020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행정안전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 성북동 잊혀져 가는 우리동네 옛 이야기를 찾아서 3
    개인/단체 발간물
    성북동 잊혀져 가는 우리동네 옛 이야기를 찾아서 3
    총 3권으로 구성된 ‘잊혀져 가는 우리동네 옛이야기를 찾아서’ 중 제3권이다.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주관하고 성북구청 문화체육과에서 발행하였다. 2011년 4월 12월 27일에 발행한 제3권에서는 성북동의 역사, 별장, 변화, 마을과 생활, 시설, 과거 성북동에 대한 거주민들의 구술 자료, 문화유산을 담고 있다. 성북동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퍼냈으며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문헌과 신문자료에 기록된 성북동과 주민들의 인터뷰를 기재했다. 부록으로는 여러 문화유산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와 본문 수록 인물 목록, 문화유산 목록을 담아두었다.

기록물 철 검색결과 총 4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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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한성대학교 서비스러닝 사회봉사활동
    시청각류, 문서류
    2023 한성대학교 서비스러닝 사회봉사활동
    2023년 2학기 한성대학교 서비스러닝 사회봉사활동의 결과물이다. 주제는 '마을 풍경을 구성하는 모든 것'으로 학생들이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을의 다양한 요소들을 촬영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아카이빙과 지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고, 총 17명의 학생이 과제물을 제출하였다. 촬영지역은 369마을·북정마을·돈암시장·정릉시장이다. 주요 촬영 대상은 마을의 경우 우편함·집 앞 물건·홍모물과 경고문·문과 창문·낙서와 벽화이고, 시장의 경우 간판·가판대·입간판·홍보문과 현수막이다.
  • 2023 성북구 관내 도로 촬영
    시청각류
    2023 성북구 관내 도로 촬영
    2023년 4월 24일부터 6월 13일까지 성북구 관내 도로 일대를 촬영하여 모아둔 것이다. 도로의 모습과 함께 근처에 위치한 주택, 건물, 골목, 계단 등 주변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 2022 한성대학교 서비스러닝 사회봉사활동
    시청각류, 문서류
    2022 한성대학교 서비스러닝 사회봉사활동
    2022년 2학기 한성대학교 서비스러닝 사회봉사활동의 결과물이다. 프로젝트 주제는 성북천 골목형 상점가의 상인 인터뷰를 통한 상권 분석이다. 활동과정에서 학생들의 전공을 활용하고, 인터뷰와 자료 수집을 과정에서 아카이빙을 체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활동에는 총 16명의 학생이 참여하였고, 사진, 녹음파일, 녹취록, 활동보고서 등의 기록물이 생산되었다. 아래는 각 조의 세부 활동 주제와 참여 학생 명단이다. 1조: 민속음식점(김동수, 박승민, 이돈경, 이준범) 2조: 가구/인테리어점(박준서, 안해찬, 표효경) 3조: 요식업체(문준영, 이계진, 임승빈) 4조: 성북천 골목형 상인회의 현 위치(남상윤, 박지원, 안정현) 5조: 노포와 신생 점포(김남운, 이영주, 최필규)
  • 돈암육교(미아리고개)
    시청각류
    돈암육교(미아리고개)
    2022년 7월 26일 오전 10시~오후 12시경 돈암동 돈암육교 위에서 촬영한 미아리고개 일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 월곡역 육교
    시청각류
    월곡역 육교
    2022년 7월 13일 오후 2시~4시경 종암동 월곡역 육교 위에서 찍은 월곡역 일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기록물 건 검색결과 총 12,85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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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회 의릉문화축제 행사 영상
    시청각류
    제5회 의릉문화축제 행사 영상
    2023년 10월 21일 석관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된 '제5회 의릉문화축제' 행사 영상이다.
  • 제5회 의릉문화축제 포스터
    문서류
    제5회 의릉문화축제 포스터
    2023년 10월 21일 의릉과 석관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된 '제5회 의릉문화축제' 홍보 포스터이다.
  • 제5회 의릉문화축제_어가행렬(10)
    시청각류
    제5회 의릉문화축제_어가행렬(10)
    2023년 10월 21일 석관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된 '제5회 의릉문화축제' 행사 사진이다. 의릉에서 출발하여 석관초등학교에 도착한 어가행렬 모습이다.
  • 제5회 의릉문화축제_어가행렬(9)
    시청각류
    제5회 의릉문화축제_어가행렬(9)
    2023년 10월 21일 석관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된 '제5회 의릉문화축제' 행사 사진이다. 의릉에서 출발하여 석관초등학교에 도착한 어가행렬 모습이다.
  • 제5회 의릉문화축제_어가행렬(8)
    시청각류
    제5회 의릉문화축제_어가행렬(8)
    2023년 10월 21일 석관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된 '제5회 의릉문화축제' 행사 사진이다. 의릉에서 출발하여 석관초등학교에 도착한 어가행렬 모습이다.

성북학 연구자료 검색결과 총 25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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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자료
    장소성 기반의 도시재생 건축 설계 방법에 대한 연구 : 서울시 정릉동 정릉10길 일대 적용을 중심으로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라는 공간은 건축과 공간의 집합일 뿐만 아니라 그 공간을 공유하고 사용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정신적, 인문적, 사회적 요소들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세계적으로 도시개발과 국제주의 건축을 표방하여 무분별한 건축을 반목하였고 이는 자생적인 건축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우리나라의 건축 또한 지역과 장소성의 부재로 이어졌고, 이것은 건축이 물질의 논리와 상업적인 시각으로 만들어지는 콘크리트 도시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최근 도시의 패러다임은 더 나은 도시 환경을 위하여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개선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시도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각 지자체에서는 낙후되거나 정체된 지역들을 대상으로 도시의 정체성 확립과 공동체구축, 일자리 창출 등을 목적으로 활성화를 위한 개념들을 적용하여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내의 도시재생 사업 진행 시 장소성은 도시 정체성 확립 및 도시의 차별성 구축 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사항이지만 개별적인 특색이 드러나지 못하고 국·내외의 성공적 사례들을 단순히 답습하였으며 각각의 장소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데 있어 명확한 방법에 대한 제시가 없는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도시에서의 장소성의 개념과 구성요소에 대하여 알아보고 또한 도시 정체성과 장소성, 도시재생과 장소성의 상호관계성을 고찰한다. 또한, 현재 국내 도시재생의 일환인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들을 통하여 문제점과 장소성의 연관성을 도출하고 이를 중심으로 국 · 내외의 우수 도시재생 사례분석을 통하여 낙후된 지역의 도시재생에 있어 장소성이 어떤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도출한다. 도출된 지표로 대상지인 정릉3동 배밭골 일대 지역 활성화를 위한 장소성의 요소들에 대해 알아보고, 대상지에 맞는 활성화 계획을 제안하기 위한 기초자료와 새로운 계획안 및 마스터플랜을 제안하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한다. 도시에서의 도시 정체성과 그에 따른 장소성은 필연적으로 생겨나며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요소이다. 서울형 도시재생은 도시재생이라는 명목하에 각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에 소극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장소성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도시에서의 장소성의 구성요소 4가지를 모두 충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국·내외의 우수 도시재생 사례를 분석하여 보았을 때 도시에서의 장소성의 요소 4가지와 장소성의 구성요소인 물리적 요소, 행태적 요소, 의미적 요소가 고려되어야 하며 이는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장소성이라는 개념은 변화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연구와 고찰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도시재생의 개념 안에서 장소성의 관점 인식의 필요성과 도시재생 및 마스터플랜 계획 시 고려되어야 할 장소성의 요소에 대한 건축 설계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학술자료
    흥천사 扁額(편액)·懸板(현판) 연구
    본 논문은 서울 성북구(城北區)에 위치한 흥천사(興天寺)에 소장된 편액과 현판의 전반적인 현황을 검토하고 편액 글씨의 서예사적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우선 서울의 전통사찰 가운데 가장 많은 편액·현판을 보유한 흥천사는 기존 궁궐 건축의 편액 위계 상, 모든 전각의 편액이 형식상 가장 높은 위계를 표시하는 사변형 현판으로 조성되어 왕실 원찰로서의 사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흥천사가 신덕왕후(神德王后) 정릉(貞陵)의 능사로서 현재의 위치에서 중창한 이후에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같은 왕실인사와 세도가들의 원찰(願刹)로서 위상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편액 사례 중에서도 드문 세로로 긴 붉은 색 복판에 테두리 끝에 용두형(龍頭形) 봉으로 장식한 명부전(冥府殿) 편액은 유교식 장례에서 사용하는 명정(銘旌)의 형식을 차용한 사례로 보았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인근 봉국사(奉國寺) 명부전 편액도 붉은 색의 세로형 복판에 유사한 형식으로 조성되어 당시 이 지역에서 유행한 형식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흥천사 명부전 편액의 용두형 봉 장식이 시왕(十王)의 어좌 장식과 유사한 도상과 방향으로 조성되어 있는 사실에 착안하여, 조선 후기 사변형 편액의 봉 장식 기원에 대해 규명하였다. 즉 고려부터 조선 전기의 편액이 중국 현판의 형식적 특징을 그대로 수용하여 조성된 반면, 조선 후기의 편액은 판재형 테두리 끝에 목각 봉 장식을 붙인 간소화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후기 편액 형식의 기원으로는 임란 이후 소실된 궁궐과 주요 건축을 대규모로 중건하는 과정에 많은 물량의 편액을 조성하면서 어좌(御座)나 교의(交椅) 같은 의자의 권두형 장식을 차용하여 간소화하였다고 추정하였다. 마지막으로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모연(募捐)하여 1869년 조성된 흥천사 대방(大房)에 그가 쓴 예서 편액이 게시된 사실에 주목하였다.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집권 이전부터 불교의 원력에 의지하였던 그가 집권 이후에도 흥천사를 비롯, 화계사(華溪寺), 운수암(雲水庵), 흥국사(興國寺) 등 근기(近畿) 지역 사찰에 중창을 주도하면서 대방 건축을 조성하고 스승인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영향을 받은 고예체(古隷體) 편액을 게시한 사실은 스승과의 서예적 사승(師承)을 뚜렷이 하고 자신의 집권을 알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보았다.
  • 학술자료
    개경과 한양의 사찰 – 도성사찰의 역할과 의미
    이 논문은 고려시대 개경과 조선시대 한양에서의 사찰 조성 계기와 변화 그리고 위상을 살펴보고 비교해 봄으로써 조선초 신왕조의 도읍인 한양에서의 사찰 건립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고려시대 개경의 사찰은 919년 개경 건립과 함께 조성되어 신앙의 구심점이자 궁궐, 관청 등과 함께 공적인 공간으로서 왕도 개경을 장엄하며 고려 문화와 사상의 중추가 되었고,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공간이었다. 개경의 사찰운영에는 불교가 국가를 운영하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던 고려사회의 관념이 반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비해 조선시대에는 1394년 한양 천도가 결정된 이후 궁궐, 성곽, 종묘 등 주요 시설과 함께 한양 도성 안에 사찰을 세우거나 혹은 사찰 건립에 대해 고려했던 모습은 확인되지 않는다. 불교를 비판하며 건국한 신왕조의 도성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1396년 정릉(貞陵)과 함께 그 능침사로 태조가 흥천사(興天寺)를 지으면서 한양 도성 안에 처음으로 절이 들어섰다. 흥천사는 애초 도성 계획에는 없었던 것으로 고려말 이래의 왕릉 제도의 영향을 받아 정릉의 부속시설로 조성된 것이었지만 이후 태조가 도성안에 사찰을 짓는 계기가 되었고, 조선전기 국왕이 세운 사찰이 도성에 운영되던 시발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과도기적 현상이자 구시대의 유습이었다.
  • 학술자료
    도시지역 장소성의 물리적 요소에 대한 연구 -서울시 정릉동 정릉10길 일대 활성화를 중심으로
    (연구배경 및 목적) 오늘날의 도시는 빠르게 변화하며 ‘장소’라는 개념이 점점 약화되어가고 있다. 또한,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3동 정릉 10길 배밭골 일대는 주변 대학의 유동인구와 문화자원을 지니고 있음에도 이러한 장소적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정릉3동 배밭골 일대 지역 활성화를 위한 장소성의 물리적 요소들에 대해 알아보고, 대상지에 맞는 활성화 계획을 제안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구축하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한다. (연구방법)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이론적 고찰로써 장소성의 개념들과 선행연구들을 분석한 후, 국 ·내외의 사례들을 선정하여 지역 활성화를 위한 장소성의 물리적 요소들의 특성을 도출한다. 그리고 대상지의 선정과 분석을 진행하고 도출한 특성들을 대상지에 적용 가능한 요소들과 방향성을 제시한다. (결과) 이에 본연구에서는 사례분석을 통하여 지역 활성화를 위한 물리적 요소들을 도출할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대상지에 적용할 수 있는 요소들과 방향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도로체계의 정비와 경사를 고려한 합리적인 교통체계를 확립하여야 하며 대상지 주변의 대학자원, 자연자원 활용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구릉지를 고려한 보행환경 조성과 입체 보행로와 경사 극복을 위한 레벨 계획이 필요하다. 셋째, 블록의 구획과 건물들의 배치는 정비가 필요하며 주변환경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다양한 용도의 프로그램이 배치되어야 한다. 넷째, 구릉지에 적합한 주거단지 계획이 필요하다. 또한, 기존의 골목의 활용방안과 포켓 공원 또는 인공지반을 통한 데크공원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 본 연구는 활성화되지 못했던 지역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에 대하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도시지역의 장소성의 물리적 요소에 관하여 마스터플랜 조성 시 필요한 요소의 선정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또한, 성북구 정릉3동 정릉 10길 일대의 지역 활성화에 필요한 요소들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정릉동 배밭골에 한정하여 모든 대상지에 객관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추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대상지에 적용 가능한 실질적인 마스터플랜과 건축계획에 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 학술자료
    전차 개설에 의한 한양도성 문루 주변지역의 도시 변화에 관한 연구
    본 연구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변화 과정에서 과거 물리적 경계였던 한양도성이 근대화의 동인 중 하나인 전차로 인해 어떠한 변동의 과정을 겪었는지, 또한 그러한 변동의 과정에서 도시의 조직과 공간, 체계들이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본 것이다. 조선 건국 이후 약 500년 동안 한양도성은 도시의 구조와 영역을 구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그 형상이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 한양도성은 도시의 근대화에 있어서 성곽은 골칫거리로 전락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교통기관의 도입은 전통도시 한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500여 년간 성곽도시였던 한양이 전차의 도입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은 사라졌으나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서 1960년대까지 시민의 발이었던 전차는 도로에 궤도를 설치하고 그 위를 운행하는 노면전차로써, 전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궤도의 부설이 선행되어야 했으며, 궤도가 뻗어나가는 범위가 도시화 규모를 결정짓는 요소가 되었다. 전차는 대한제국이 선포된 다음 해인 1898년 설립되었으며, 1899년 개통식 이후 본격적으로 운행하였다. 처음으로 도입된 전차의 노선은 돈의문부터 종로와 흥인지문을 지나 청량리를 연결하였으며, 두 번째 노선은 종로에서 용산에 이르는 것이었다. 세 번째 노선은 철도역과의 연결에 주안점을 맞추어 서대문 정거장과 남대문 정거장을 연결한 의주로선이 개통되었으나 부설 후 2~3년이 지나면서 운행이 중단되었고, 네 번째 노선은 마포로 이어졌다. 전차의 등장은 한양에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처음 전차가 개통되었을 때만 해도 한양도성은 훼철되지 않았지만, 전차가 등장하였을 때만 해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한양도성이 점차 훼손되기 시작하였으며, 대한제국시기에 성문을 통해 도성 안과 밖을 연결하던 전차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훼철을 통해 절개한 한양도성 사이로 신설된 도로로 노선을 이전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한양도성의 경계로서의 기능이 변화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대한제국기의 도시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경계로서 여전히 그 기능을 유지하던 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에 들어 변동이 일어났다. 경성시구개수사업으로 인해 한양의 전통적인 가로체계를 무시하고 동서와 남북 방향으로 뻗은 직선의 도로가 주를 이루는 가로망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주요 거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격자형 도시에 대한 제안은 기존의 한양도성과 한양도성의 성문이 가지고 있던 도시 구조 형성의 역할이 사라지게 되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간선도로의 계획과 함께 도성 내 전차 노선의 확장과 전차의 운행 방식은 당시 도성 내 시가지화가 진행되었던 지역이 어느 곳에 집중되어 있는 가를 잘 보여준다. 대한제국기에 신설된 전차노선은 모두 조선인 주거지를 지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일 병합 이후에는 경성부의 간선도로 계획과 맞물리면서 노선의 성격이 바뀌게 된다. 이러한 발전 형태는 시구개수사업에서 공사가 진행된 순서와 비슷한 양상인데, 당시 전차노선이 이미 개설된 도로 위에 철로를 놓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폭원의 정비가 이루어진 도로가 우선적인 노선 확장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차 교통의 확장 과정을 통해 기존의 한양이 가지고 있던 도시 구조와는 다른 경성이라는 도시의 구조로 변해가는 배경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양도성과 전차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는 연구의 과정 속에서 한양도성이라는 도시의 물리적 경계가 전차라는 도시 변화의 동인을 만나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한양도성의 문루 주변지역에서 나타나는 도시적 변화에 대해 궤도와 지형, 도시조직의 세 가지 시각으로 분석하였다. 세 가지 분석의 시각은 모두 시간과 장소의 개념을 통합하여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의 변화에 대한 해석을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돈의문은 정동 일대의 시구개수사업으로 인한 계획도로의 개설 및 확장으로 인해 훼철되었다. 전차의 개통과 정비된 도로로 인해 돈의문 일대는 교통의 중심지로 전환되었으며, 교통의 발전을 기반으로 하여 1920년대 이후부터 신시가의 창설 및 기성시가가 확장되어 돈의문 밖으로 도심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돈의문 주변지역의 한양도성의 변동을 궤도와 지형, 필지를 통해 살펴보는 과정에서 궤도 혹은 도로의 형성이 권력의 주체에 따라 새로운 도시구조로 이뤄지는 과정과 함께 궤도와 도로의 확장을 통해 한양도성이 가지던 경계로써의 기능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궤도의 확장의 과정에서 지역이 가지고 있던 지형이 변하기도 하였으며, 경계가 사라지면서 필지의 이용행태가 변하여 성 안팎이 하나의 도시 영역으로 확장되어 지역의 경관이 변하게 되었다. 광희문은 1913년 왕십리선을 부설하는 과정에 성벽이 훼철되었으며, 1921년 장충동 일대에 문화주택지 개발을 위해 일대가 철거되었다. 경성 시내의 인구 과밀화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성의 동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광희문 주변지역의 성곽이 훼철된 것이다. 장충단까지의 도로 개통, 전차노선의 연장, 새로운 대중교통수단의 등장과 경성시가지계획에 의한 경성의 확장과 맞물리면서 광희문 주변지역이 도심에 근접한 새로운 주거지로 개발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주택지의 조성을 위해 도시의 중심과 연결되는 간선도로와 주택지에 접근하는 도로를 형성하기 위해 성곽을 훼철했고, 이 과정에서 차량 통행이 가능한 도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성곽을 절단하고 지형의 변화가 일어났다. 광희문 주변지역은 도시 변화의 과정에서 도로의 개설과 새로운 주택지를 형성하는 과정에 지형적 변화가 크게 동반되었으며, 원래 가지고 있던 지형적인 특성이 모두 사라졌다. 광희문 주변지역은 새로운 필지 형성을 위해 선결되어야 하는 궤도의 형성과 지형의 변화를 수반하고 있는 지역이다. 혜화문 일대의 성곽의 훼철은 도로의 개설로 인하여 일어났는데, 1915년에 형성된 도로로 인해 한양도성의 일부가 절단되었고, 1939년에는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의 전찻길을 내면서 혜화문 역시 훼철되었다. 혜화문 주변지역은 혜화동까지의 전차 운행으로 필지의 분화 등이 변화를 보이긴 하였지만, 도성 바깥까지 그 영향이 전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돈암정까지 연결되는 교통여건이 개선되고 1940년대 돈암지구가 주거지역으로 형성되면서 이 지역을 통하는 버스와 전차의 노선의 영향으로 자연적으로 도심과 돈암지구를 연결하는 혜화문 주변지역에도 필지의 분화를 통해 도시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혜화문 주변지역은 도로의 형성이나 지형의 변화의 영향으로 지역의 성격이 변했다고 하기 보다는 돈암지구의 형성을 통해 도성 외부 지역의 필지부터 도성의 방향으로 변해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돈의문과 광희문, 혜화문의 도시 변화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전차라는 요인이 도시의 변화에 작용하는 과정들을 살펴보았지만, 세 지역에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돈의문 주변지역의 경우에는 전차가 운행하면서 한양도성의 경계로써의 기능이 흐려져 도시의 영역이 외부로 확장되어 갔고, 그에 따라 필지와 지형의 변화가 수반되었다. 광희문 주변지역은 새로운 주택지라는 도시구조의 변화를 위해 지형과 도로가 선결되어야 하는 요소로 작용하였으며, 혜화문 주변 지역의 경우에는 도로의 형성이나 지형의 변화의 영향으로 지역의 성격이 변한 것이 아니라 도성 외부 지역의 변화로부터 도성 쪽으로 그 변화가 확장되어 왔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같은 변동의 요인인 궤도의 형성, 지형의 변화, 도시 경관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본 돈의문, 광희문, 혜화문 주변 지역들의 분석 과정 속에서도 그 중심이 되는 요인과 배경이 되는 요인이 있으며, 전과 후, 원인과 결과로 이뤄지는 요인들이 있었다. 또한, 문루 주변지역의 변화는 이전 시대의 흔적을 바탕으로 진행된다는 점 역시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도시를 이해하는데 있어 단편적인 시각으로는 한계를 가질 수 있으며, 사료들의 나열을 통해 단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통합적으로 적용하여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연속성 속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이 연구를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를 이해하고, 도시를 인식하는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데 본 연구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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