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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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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중 평화의 소녀상
    장소
    한중 평화의 소녀상
    성북천 분수마루 광장에 있는 조각상이다. 한·중 소녀상 프로젝트는 2014년 미국 글렌데일에 세워진 한국인 '위안부' 소녀상을 본 칭화대학교[淸華大學校] 교수 판위친과 영화제작자 레오스융이 원제작자 김운성·김서경 작가 부부에게 연락하면서 성사되었다. 한·중 소녀상은 2015년 동소문동 가로공원 앞에 설치되었는데 한·중 소녀상을 함께 제막한 것은 성북구가 처음이었다. 한국인 소녀상 뒤에는 '위안부' 할머니의 그림자가 있고, 중국인 소녀상 뒤엔 중국 '위안부' 할머니의 발자국을 재현해 놓았다. 또한, 빈자리는 다른 아시아 국가의 희생자를 위한 자리로 남겨두었다. 2020년 3월 가로공원 부지에 창작연극지원센터 건립공사가 진행되자 철거하여 따로 보관하다가 2021년 2월 성북천 분수마루 광장으로 이전설치되었다.
  • 쌀바위
    장소
    쌀바위
    성북동에 있었던 관련 전설이 있는 바위이다. 도성의 북문인 숙정문 밖에 바위 하나가 있었는데, 이 바위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세 차례에 걸쳐 꼭 한 되씩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이를 발견한 나무꾼이 매일 여기에서 쌀을 가져가 걱정 없이 지냈지만, 욕심이 생겨 매일 지키면서 쌀자루에 쌀을 가득 채워서 집으로 내려오곤 했다. 이렇게 한 달을 하자 쌀이 나오던 바위틈에서는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고, 대신 끈적끈적한 물이 흘러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바위를 쌀바위, 즉 미암(米岩)이라 했다고 한다. 17세기 실학자 이수광(1563-1628)은 『지봉유설』에 “숙정문 밖 한 바위틈에서 액체가 흘러나오는데 맑을 때는 마치 막걸리같고 진할 때는 떡과 같아서 사람들이 다투어 먹는다”라고 기록하였다.
  • 취선대
    장소
    취선대
    성북구 아리랑로19길 116에 위치한 정릉 안에 있는 약수터이다. 취선대는 정릉의 마지막 능참봉이었던 서재국 참봉과 조선시대 최후의 화원화가 출신인 조석진의 외손(外孫)이자 근대 전통화단의 실경산수화 대가였던 변관식 화백이 함께 만든 약수터로, 정릉 능침 뒤편의 언덕 정상부에 있다. 정릉 주위에 조성된 산책로는 2.5㎞ 정도의 길이로 주위에 백록담, 정심약수 등 8곳의 옹달샘과 쉼터가 있는데, 취선대도 그 중의 하나이다.
  • 교수단지 어수정
    장소
    교수단지 어수정
    성북구 정릉동 교수단지에 있는 마을의 우물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개인사유지 안에 위치해 직접 보기도 어렵지만, 1970년대 초까지 우물을 이용했다고 한다. 건넛마을에서도 길어다 먹을 정도로 물맛이 좋아 왕에게 진상하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름도 왕이 마시는 물을 긷는 우물이라는 의미의 ‘어수정(御水井)’으로 불렀다고 한다.
  • 윤동주 시비
    장소
    윤동주 시비
    성북구 종암동 산 2-199, 개운산 근린공원 내에 있는 시가 적힌 비이다. 개운산 근린공원 쉼터에는 윤동주의 ‘서시’ 시비가 있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의 저항시인으로, 많은 사람들이 외우고 있을 만큼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쉼터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뿐만 아니라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박목월 시인의 ‘청노루’, 박재삼 시인의 ‘자연’ 등 여러 개의 시비도 함께 있어, 주민들에게 정서적인 감흥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 송보살터 거북바위
    장소
    송보살터 거북바위
    북한산 정릉지구에 있는 거북 모양의 바위이다. 거북바위에 얽힌 전설은 북한산과 도봉산이 생기고 난 후, 큰 거북이가 황해에서 한강을 타고 와 한양을 기어다녀 사람들이 놀라니, 군사들이 동원되어 쫓아내려 하였으나 거북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산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를 본 인왕산, 삼각산, 북한산, 도봉산 네 신령은 거북이와 격심한 싸움을 벌였고, 결국 하늘님에 의해 거북이는 커다란 바위로, 신령들은 단풍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가을이 되면 거북바위는 단풍 속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게 되었고 하늘의 산신들이 내려와 이 바위 위에서 장기를 두는 등 놀이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 박재삼 시비
    장소
    박재삼 시비
    성북구 개운산 공원에 있는 박재삼의 시가 적힌 비석이다. 박재삼(1933~1997)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 등단하여 『햇빛 속에서』, 『천년의 바람』 등의 시집을 남겼다. 김소월에게서 발원해 김영랑·서정주로 이어지는 한국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은 시인이라는 평가가 따를 정도로 서정적인 시를 많이 남겼다. 1967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에는 정릉에서 건강을 회복하면서 「정릉 살면서」라는 작품을 남겼다. 개운산의 시비에는 「자연」이 새겨져 있다.
  • 박목월 시비
    장소
    박목월 시비
    성북구 개운산 공원에 있는 박목월의 시가 적힌 비석이다. 박목월(1915~1978)은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였는데,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이른바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정적인 시를 많이 썼으며, 『청록집』, 『나그네』 등 주옥같은 시집을 남겼다.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하였는데, 돈암동에 있던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의 교수로 있기도 하였다. 개운산의 시비에는 「청노루」가 새겨져 있다.
  •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비
    장소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비
    성북구 돈암동 51번지 일대에 있는 미아리고개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노래비이다. 미아리고개는 조선시대 오랑캐(여진족)가 들어오던 길이라 하여 되너미고개 혹은 적유현이라 불리기도 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인 공동묘지가 들어서기도 하였다. 해방 후 6.25전쟁 당시에는 북한군이 서울로 들어온 길이어서 치열한 교전이 펼쳐졌고, 북한군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갔던 길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역사와 아픔을 기억하고자 1996년에 미아리고개공원을 조성되었다. 공원에는 특히 6.25전쟁과 관련한 기념비가 2개 있는데, 전쟁의 아픔을 형상화한 사적비와 강제 납북의 안타까움을 노래한 ‘단장의 미아리고개’(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의 가사를 적어놓은 노래비가 있다.
  • 김소월 시비
    장소
    김소월 시비
    성북구 개운산 쉼터에 있는 김소월의 시가 적힌 비석이다. 김소월(1902~1934)은 한국 근대시 형성기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가 주로 활동했던 1920년대는 자유시를 비롯한 근대시가 태동하던 시기로, 서구 문학의 소개와 전래가 봇물을 이루었고, 전통적인 형식과 정서에 바탕을 둔 민요조의 서정시 창작도 활발했다. 김억과 교류하며 영향을 받았고, 민요시와 상징시의 큰 족적을 남겼으며 후기에는 민족주의적인 색채도 부각되었다. 개운산 근린공원 쉼터에 있는 시비에는 「진달래꽃」이 새겨져 있다.
  • 정릉동 구 보호수자리
    장소
    정릉동 구 보호수자리
    성북구 정릉동 506-13(아리랑로19길 129)과 정릉동 506-14(아리랑로19길 137) 사이에 오래된 나무가 있던 곳이다. 마을을 지키고 있던 오래된 나무로 정릉 내에 위치한 보호수와 함께 성북구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문화자산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시기에 관계기관에서의 관리소홀로 인해 고사했다. 보호수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했으나 안타깝게도 회생하지 못했다. 현재는 보호수를 베어내고 마을공원으로 조성했다.
  • 삼형제우물
    장소
    삼형제우물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위쪽에 있던 마을 명소이다. 대원각(현 길상사) 위 구준봉 아래 위치에 있었으며, 세 곳의 바위 바닥에서 물이 솟아 나와 삼형제우물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이 샘물은 물맛이 달고 위장병에 좋다고 알려져 유명했으나 차츰 주택이 들어서면서 수질이 변해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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