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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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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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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영환
    인물
    손영환
    시인이자 서예가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다. 미주문학을 통해 2018년에 등단하였고 현재 미주문학협회 회원이자 미주 서예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시조 「정릉마을」 등 한국을 향한 그리움과 추억을 담아 2020년 시문집 『달아 쉬어가자』를 출간하였다.
  • 황인숙
    인물
    황인숙
    시인이자 서예가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조선문학』 신인작품 시 부문에 입선하여 등단하였다. 「정릉천」 등이 수록된 시집 『자귀 꽃 위에 나비가 되어』(조선문학사, 2010)에서 소박한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였다. (사)대한민국미술협회 서예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 정환섭
    인물
    정환섭
    서예가이다. 소전 손재형의 제자로, 추상에 가까운 파격적 서체를 선보여 전통서예의 현대화를 모색한 서예가로 평가받는다. 1956년 한국미술가협회전에서 글씨와 그림이 어우러진 작품을 시도하여 주목받았고, 이후 서예를 그림의 한 요소로 작품에 표현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1978년 국정교과서 『중학서예』를 발간하여 서예교육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서예를 대중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고, 성북구 주최 성북장학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성북동 집에서 작고하였다.
  • 유치웅
    인물
    유치웅
    서예가이다. 한용운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의 편액을 썼다. 한국 근대기의 대표적인 서예가로 초서(草書)에 독보적인 경지를 이뤘다는 평을 들었다. 1972년 부인과 사별한 이래 서울성곽과 맞닿은 성북동 집에서 여생을 보냈는데, 위창 오세창 선생이 써준 재호(齋號) 일쾌헌(一快軒)이 걸려 있었다. 그의 집은 성북동에서 가장 편지가 많이 오던 집으로, 성재 김태석, 위창 오세창, 위당 정인보, 백범 김구, 운석 장면, 혜곡 최순우 뿐만 아니라 중국의 명필가 우우임(于右任), 화가 제백석(齊白石) 등 많은 명가들과 교분을 나누었다.
  • 오세창
    인물
    오세창
    독립운동가, 서예가, 언론인이다. 『만세보』, 『대한민보』 사장을 역임하며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고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활약하였다. 전각과 서예에도 뛰어났으며 1918년에는 서화협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의 사적과 평전을 수록한 사전인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1928)을 편찬하였다. 성북동 128번지는 그가 서화류를 보관하기 위한 가옥인데, 이곳에서 골동품의 수집·감정이 이루어졌고, 간송미술관과 최순우 옛집을 오가는 사람들의 접대 혹은 객사의 공간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김충현
    인물
    김충현
    서예가이다. 『훈민정음』, 『용비어천가』와 같은 옛 글씨체를 참고하여 한글서체인 ‘훈민정음체’를 만들었다. 1938년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에서 서예부문 최고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1956년에는 서예에 대한 연구와 신예를 발굴하기 위해 김응현, 김용진, 노수현, 민태식과 동방연서회를 창립하였다. 독립기념관 현판, 유관순열사비 비문 등을 썼다. 반듯한 해서체를 토대로 한 ‘일중체’를 만들었다. 1978년 동선동에 집을 짓고 뜰에 사군자와 나무를 가꾸며 지냈다.
  • 윤용구
    인물
    윤용구
    조선시대 문신이자 서화가이다. 덕온공주와 윤의선 사이에 후사가 없어 양자로 들어왔다. 고종 8년(1871) 직장(直長)으로서 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이 예조·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로 법부·탁지부·내부 등의 대신으로 10여 회 임명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장위산 밑에 은거하며 ‘장위산인(獐位山人)’이라 자호하였다. 일제가 남작 작위를 수여했으나 거절하고, 두문불출 세사를 멀리하였다. 글씨는 해서·행서를 많이 썼으며 그림은 난과 대를 잘 그렸다. 성북구 장위동의 농토는 대부분이 윤씨 일가의 소유였는데 1960년경부터 윤씨 일가에서 매도하고 또 개척되어 현재는 주택가로 밀집되었다. 그가 살았던 ‘장위동 김진흥 가옥’은 1977년 3월 17일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5호에 지정되었다.
  • 배정국
    인물
    배정국
    출판인이자 장정가이다. 장정(裝幀)이란 책의 겉장이나 면지(面紙), 도안, 색채, 싸개 따위의 겉모양을 꾸미는 것을 말한다. 종로에서 백양당 서점을 운영하던 그는 『상허문학독본』(이태준, 1946), 『가람시조집』(이병기, 1947) 등의 장정을 맡았다. 그의 성북동 자택인 승설암은 해방 직후 문예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으며, 박태원, 이태준, 임화, 서예가 손재형 등 당대 주요 문예인들과 활발하게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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