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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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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암교회
    장소
    안암교회
    안암교회는 1948년 1월 22일에 교회설립을 목적으로 첫 예배를 드리고, 같은해 2월 1일 안암동5가 134에서 창립예배를 시작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6.25전쟁을 거치고 1954년 9월 1일에 안암동5가 134-2에 128평 규모의 대지를 구입하고 교회를 신축했다. 이후 1980년 8월 3일 보문동 신축부지에서 기공예배를 드리고, 다음해인 1981년 4월 2일 지금의 자리인 보문로98(보문동4가 4)로 이전하였다. 건물은 전체 4층으로 되어있고, 건물의 1층에는 NH농협은행 보문동지점과 안암교회 부설유치원 동선유아학교가 들어서 있다. 안암교회는 개신교 분파인 장로교로 그중에서도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소속된 교회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한국 개신교 분파 중 대한성공회와 함께 진보성향의 교단으로 평가받으며, 지금도 인원, 노동, 통일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 신암교회
    장소
    신암교회
    신암교회는 1935년 김영식 목사 사택을 기도소로 쓰면서 다수의 신도들과 함께 교회설립을 계획하였다. 1936년 현재(보문로 27길 15)의 교회 대지의 건물을 임시 예배처로 정하고 정식교회로 발족하였다. 6.25전쟁 동안 부산의 기독교서회 사무실을 임시 예배처로 삼았다가 1953년 돌아온 기간을 제외하면 줄곡 지금의 위치에서 종교활동을 해왔다. 또한 신암교회는 1954년 분립되어 보문동1가에 세워진 성암교회의 모체이기도 하다. 2017년에는 교회설립 8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 보문제일교회
    장소
    보문제일교회
    보문제일교회는 1916년 경기도 고양군 신설리150번지(현 종로구 숭인공 710)에서 첫모임을 시작하였다. 1919년에 기도처를 신설리150-3으로 이전하였는데 당시 신도는 40명 정도였다. 당시 동대문 지역에는 북감리회 동대문교회의 기도처 용두동교회와 왕십리교회가 있었고, 남감리회는 광희문교회의 기도처 신설리교회와 수철리교회가 있었다. 이중 보문제일교회는 신설리교회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67년 현 보문동6가 337번지에 132평을 매입하고 신축을 결의하였다. 이후 1968년 교회를 준공하고 이전하였다. 한때 감리회는 교회분열이 일어났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통합되어 '하나된 감리교회'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문제일교회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세워진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중 하나이다.
  • 보문동 성당
    장소
    보문동 성당
    보문동성당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소속되어있는 232개 성당 중 하나이다. 서울대교구는 중서울지역, 동서울지역, 서서울지역으로 구분되어있으며, 보문동성당은 중서울지역에 속해있다. 중서울지역은 다시 6개의 관할로 이루어져있고 여기에는 총 85개의 성당이 속해있다. 보문동성당은 제4 성북지구의 11개 성당중 하나이다. 성당은 보문로 17길 11(보문동5가 249)에 있으며, 가까운 거리에 천주교 노동사목회관도 위치하고 있다. 2010년 8월 5일 설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노동사목회관
    장소
    노동사목회관
    노동사목회관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의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공간이다. 노동사목회관의 설립은 서울대교구가 1987년 6월 구로본동 성당 노동문제상담소를 개소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1971년 3월에 12명의 사제로 도시산업사목연구회 설립이 시초이며, 이후 노동문제 세미나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온 것이 회관 설립과 관련이 있다. 2001년 5월 종로에서 지금의 보문동 95(보문동5가 14)로 이전하였고, 전체 6층 건물로 이주노동자상담실, 다문화가족 지원센터 등 다양한 사무실이 있다. 현재 노동계와 노동관련 시민, 사회단체, 타 종교의 노동관련 부서들과 교류 및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노동자의 인간 존엄성과 노동의 신성함을 깨우쳐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고 카톨릭 정신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 영암교회
    장소
    영암교회
    성북구 안암로7길 66(안암동3가 130-9)에 위치한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 종교시설이다. 1954년 11월 14일 첫 예배를 시작하였다. 같은 해 12월 현재의 예배당 바로 옆인 안암3가 13으로 이전하여 대한예수교 장로회 영암교회(靈岩敎會)로 명명하였다. 1955년 4월 19평 규모의 가건물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이후 인접 대지를 매입하여 1979년 대지 448.8평 건평 718.3평의 교회당을 신축하였다.
  • 동암교회
    장소
    동암교회
    성북구 고려대로 17가길 12(안암동 2가 96-4)에 위치한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 종교시설이다. 1955년 현 소재지에서 성광교회 창립 예배를 시작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1957년 69회 경기노회에서 교회 가입 허가를 받고 교회 명칭을 동암교회로 변경하였다. 1960년 4월 안암동 2가 96의 약 250평 대지 위에 30평 교회를 건축하였다. 1981년 10월 교회당을 신축하고, 1983년 4월 증축하였다. 2001년 교육관, 2002년 현재의 교회당을 신축하였다.
  • 성모의 집 공부방 지역아동센터
    장소
    성모의 집 공부방 지역아동센터
    보국문로29가길 24에 위치한 지역아동센터이다.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1990년 12월부터 지역사회 아동들에게 공부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시작되었다. 공부방의 위치는 북한산 자락 밑, 정릉골로 정릉3동과 4동 지역의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학습능력의 증진, 올바른 청소년기 성장, 아이들 생활환경의 자발적 개선에 이바지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처음에는 60여명의 아동들이 함께 하였으나 2006년, 지역아동센터로 정식 등록이 되면서 정원 19명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한부모가정, 조손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다자녀가정, 맞벌이가정 등 돌봄이 필요한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자원봉사자와 외부강사들이 학습지도 및 문화체험을 지원한다. [성모의 집 공부방 지역아동센터 홈페이지 참고]
  • 정각사
    장소
    정각사
    성북구 삼선교로8길 57-16(삼선동1가 277-6)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1956년 승려 광우가 "바르게 믿고 바르게 행하여 참사람 되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창건하였다. 2023년 현재 매월 두번째 일요일 가족법회, 매월 음력 1일 초하루 법회 등을 통해 도심포교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문화재자료 정각사 석가불도(正覺寺 釋迦佛圖), 서울시 유형문화재 정각사 목 아미타불좌상(正覺寺 木 阿彌陀佛坐像) 등이 소장되어 있다.
  • 성일교회
    장소
    성일교회
    성북구 동소문로 24가길 9-8(동선동1가 85-9)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이며 성일교회는 1958년 창립예배를 드리고 경기노회(제71회)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았다. 현대식 새 건물은 1970년 8월 준공하여 입당하였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며 추가적인 교회 부지 확보를 위해 건물들을 구입(동선동1가 85-7, 85-8, 85-42, 85-43, 85-116)하여 2013년에 새 건물을 준공하였다.
  • 광성교회
    장소
    광성교회
    성북구 동소문로 15길 54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으로 1956년 3월 성북구 돈암2동 산 606에 있는 '광옥'이라는 자의 집에서 4인이 모여 첫 예배를 드린 것이 교회의 시작이었다. 같은 해 5월, 당시 국유지였던 돈암2동 616-79에 천막교회를 세웠다. 1960년 9월 20평 규모의 교회당을 건축하고, 1968년에 2차로 30평 규모의 교회 건물을 건축하였다. 이후 1979년 동소문동 6가 216 소재의 건물로 23년 만에 교회당을 이전하였다. 교회 인접대지 추가 매입을 통해 2008년 새 건물을 준공하였다.
  • 삼선불학승가대학원
    장소
    삼선불학승가대학원
    성북구 동소문로26마길 40에 있는 종교시설이자 교육기관이다. 승려 지광이 서울에서 통학하던 학인을 위해 의정부에 있던 강원을 서울 삼선교 사거리로 옮겨 1979년 3월 1일 강원(삼선승가대학)과 함께 삼선포교원을 함께 개원하였다.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고, 매년 1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94년에는 종단개혁 당시 비구니 개혁모임인 ‘정혜도량’이 삼선포교원에서 출범하였다. 삼선승가대학은 여승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였으나 2014년 졸업생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이 과정에서 졸업 동문들이 삼선승가대학의 학맥을 잇고 도심 속 교육도량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힘썼고, 같은 해 3월 조계종교육원으로 인가받아 개방형 전문교육기관인 삼선불학승가대학원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 만해평화센터
    장소
    만해평화센터
    성북구 정릉로52길 51(돈암동 2-48)에 위치한 대한불교청년회 회관이다. 대한불교청년회의 만해기림사업, 학술·연구사업, 인재육성사업, 교육사업, 문화보존사업, 국제연대사업 등을 진행할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2021년 6월 20일 건립되었다. 1층은 연구실, 강의실, 사무 공간으로 사용되며 2층은 법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 길음동/종교시설
    장소
    길음동/종교시설
    길음동의 종교 시설에 관한 내용이다. 길음동에는 현재 다양한 계통의 개신교 교회와 길음동성당, 성모칠고 성당, 성가소비녀회 등의 천주교회가 있으며 법성사 등의 불교 사찰이 있다. 개신 교회는 길음뉴타운 사업으로 조성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 내에 많이 분포해있다. 무속 신당은 길음1동 역세권 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는데, 뉴타운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그 주변 지역에 있던 신당 대부분이 역세권 지역으로 옮겨 왔기 때문이다.
  • 종암동성당
    장소
    종암동성당
    성북구 종암로 82(종암동 10-28)에 위치한 종교 시설이다. 종암동성당은 2002년 3월 월곡동성당으로부터 약 1,700명의 신자가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처음 성당이 설립되었을 때에는 기존에 상가건물을 그대로 활용하였으나 꾸준한 환경 개선작업을 통해 같은해 12월 단장을 마치고 성탄미사를 진행하였다. 2017년 2월 부터 최재용 신부가 주임신부를 맡고 있다. 미사는 주 13회 이루어지고 있다. 봉성체, 성시간, 성모신심미사, 유아세례, 고해성사, 혼배면담, 예비자교리로 나뉘어 실시되고 있다.
  • 정릉 굿당
    장소
    정릉 굿당
    무당이 굿을 하는 곳이다. 보통 신령과 소통이 잘되는 자리에 세웠으며, 정릉동은 북한산의 기가 세서 굿당이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국민대학교와 북악터널 근방에 다섯 개의 굿당이 있으며, 오래된 암자를 개조하여 사용하는 곳도 있다. 정릉의 굿당들은 도시 재개발을 피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서울의 민간 종교시설이다. 서울에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수십 개의 굿당이 있었지만, 미신으로 치부되어 대부분 사라졌다. 굿당에는 굿의 전후처리를 도와주는 사람과 음식 및 부엌일 하는 공양주가 고용되어 있으며 이들은 대개 굿당에서 함께 생활한다. 굿을 의뢰받은 무속인이 제가집으로부터 비용을 받으면 일부를 굿당의 방값으로 낸다. 굿당 주인은 당의 임대료만을 받고 공양주와 나머지 사람에게 나가는 돈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 여래사
    장소
    여래사
    성북구 정릉로 57-57(정릉동 산87-1)에 위치한 사찰이다. 1958년 2월 5일 창건되었다. 여래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투쟁을 한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신 호국사찰이자 현충사찰이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여래사는 1963년부터 해마다 불교의식에 따라 정초(설날), 백중(음력 7월 15일), 현충일, 추석 등에 신도들과 후손들이 순국선열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 보현사
    장소
    보현사
    성북구 동소문로15길 49(동소문동6가 28-1)에 위치한 사찰이다. 1950년에 승려 자현이 청신녀 보명행으로부터 초막을 인수해 창건하였으며, 1959년 극락전과 요사를 건립하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1979년 3월부터 12월까지 보현사에서 현대적 승려교육이 진행된 것을 계기로 승려전문교육기관인 중앙승가대학교가 세워졌다. 중앙승가대학교는 1981년 3월 개운사로 이전했다가 2001년에 김포시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보현사에는 미륵당을 지으며 봉안한 미륵존상과 승려 자현의 사리가 담긴 석종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 돈암동성당
    장소
    돈암동성당
    성북구 고려대로7길 120(동선동2가 1-2)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돈암동 성당은 1955년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분가해 탄생했다. 설립 당시 돈암동 성당은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삼선동, 안암동, 보문동과 돈암동 일대를 관할구역으로 인계받았다. 예배당은 1950년대의 석조 성당을 대표하는 건물로, 6.25전쟁 이후 건축물의 견고성에 더욱 역점을 두어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화강암을 외벽에 붙였다. 건물의 디자인은 준고딕양식으로 석조건물에 성곽과 같은 높은 종탑을 세우고 아치형의 문이 안과 밖을 연결하게 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새로운 성당 건물은 2000년에 준공된 것이다. 2013년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되었다.
  • 성라암
    장소
    성라암
    성북구 성북로31길 27(성북동 285)에 위치한 사찰이다. 성라암은 창건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이 곳이 유명해진 것은 일제강점기 윤심덕, 나혜석과 함께 신여성 3인방으로 불리던 김일엽이 자전 소설 『청춘을 불사르고』를 쓴 곳이기 때문이다. 김일엽의 아들인 승려 일당(김태신, 1922~2014)도 성라암에 주석하다 입적했다. 또한, 성라암은 다양한 봉사활동을 벌이는 사회복지법인 성라원의 본산으로도 유명하다. 성라원을 만든 법성스님은 노인복지를 위하여 1990년 복지법인을 설립한 후 이듬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사찰 건물과 대지·임야 등 약 30억 원의 사재를 성라원에 기증하였다.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
    장소, 유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
    성북로24길 3(성북동 89)에 위치한 수도회 건물이다. 한국 가톨릭 최초의 내국인 수도자를 위한 남자 수도회인 ‘한국 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본원 건물로, 1955년 방유룡 신부의 설계로 건립되었다. 제단 상부 돔 역시 반원형이 아닌 타원형 반구로 조성되는 등 다른 성당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2015년 12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에서 눈여겨봐야 할 곳은 건물 외벽의 순교자상이다. 한국의 순교복자 김대건 신부, 정하상(바오로), 조신철(가롤로), 유진길(아우구스티노) 등 12명의 순교자상이 외벽에 설치되었다가 지금은 보존을 위해 수도회에서 별도로 수장하고 있다. 본을 떠 새로 제작한 성상 10개가 대신 설치되어 있다. ‘최초로 조각된 한국 순교자상’으로 알려진 이 조각상들의 종교적, 문화재적 가치 또한 상당하다.
  • 보문사
    장소, 유물
    보문사
    성북구 보문사길 20(보문동 3가 168)에 위치한 사찰이다. 보문사는 고려 때 승려 담진(혜조국사)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그 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옛 건물로는 영조 때 건축된 대웅전이 있다. 이 절은 원래 조계종 소속이었으나, 1972년 세계 유일의 비구니종단인 대한불교 보문종(普門宗)을 창시하여 그 본산이 되었다. 이 절의 대웅전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보문사 석가불도>, <보문사 대웅전 신중도>, <보문사 지장보살도> 등 문화재로 지정된 불화들이 있다. 한편 석굴암 앞 팔각 9층 석탑은 1978년에 오대산 월정사의 탑을 본떠 조성하고,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내부에 봉안했다. 보문사 스님의 범패(梵唄)는 잘 알려진 무형자산이다.
  • 미타사
    장소, 유물
    미타사
    성북구 보문사길 6-16(보문동 3가 3-51)에 위치한 사찰이다. 미타사는 여승을 지칭하는 비구니의 수양 도량인데, 고려 초 혜거국사(惠居國師)가 창건하고 미타사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승된다. 이후 몇 차례의 중수 사실이 전해지지만 의미있는 것은 1457년(세조 3)에 단종비였던 정순왕후 송씨에 의해 중수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미타사 서쪽, 숭인동의 정업원·동망봉·자지동천(紫芝洞泉·자줏빛 물이 흘러나오던 샘) 등에 정순왕후와 관련된 사실이 있음으로 보아 이 절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곳 보문동 일대는 ‘탑골’이라 불리고, 이 절은 ‘탑골승방’이라 불리는데, 미타사 대웅전 뒤 단하각(丹霞閣) 왼쪽 언덕 위에 있는 석탑으로 인해 그렇게 불리게 된 듯하다.
  • 길상사
    장소
    길상사
    성북구 선잠로 5길 68(성북동 321-3)에 위치한 사찰이다. 길상사는 군사정권 시절 삼청각 등과 함께 최고급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졌다. 대원각의 소유주였던 김영한이 1987년 법정스님께 대원각을 불교 도량으로 만들어 주기를 청하였다. 1995년 법정스님이 그 뜻을 받아들여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을 하였다. 그 후 2년여 동안 예전 음식점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 단장하여 1997년 '맑고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등록하고 같은 해 창건법회를 열었다. 이듬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선방 ‘길상선원’을 개원하였고, 불도 체험, 수련회 등의 프로그램과 어린이 미술대회, 대중가수의 콘서트까지 개최하는 등 도심 속 문화공간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 경국사
    장소
    경국사
    성북구 보국문로 113-10(정릉3동 753)에 자리한 사찰이다. 고려 충숙왕 12년(1325) 율사 정자(淨慈)가 청암사(靑巖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고, 공민왕 때에 지공(指空)선사가 머물면서 고승대덕의 수도처로 알려졌다. 17세기 초 조선 현종 때에 이름이 경국사로 바뀌고, 몇 차례의 보수와 증축을 거쳐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다(16세기 중반 문정왕후의 이름을 바꾸었다는 설도 있다). 1921년 승려 보경(寶鏡)이 주지로 부임하였는데, 현재의 봉안된 탱화, 벽화 등의 대부분이 이 보경의 작품이다. 한편 경국사 주변은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휴식처로서 예로부터 사대부들이 많이 찾던 곳이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자주 방문했었고, 1953년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닉슨이 방문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개운사
    장소, 유물
    개운사
    성북구 개운사길 73(안암동 5가 157)에 자리한 사찰이다. 1396년(태조 5)에 무학대사가 현재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부근에 절을 짓고 영도사(永導寺)라고 이름 지었다. 그 후 정조의 후궁 원빈 홍씨의 묘인 인명원(仁明園)이 절 옆에 세워지자, 영도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절의 이름을 개운사(開運寺)로 바꾼 시기는 절을 옮긴 시점일 가능성이 크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절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불교 교육의 중심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1926년부터 근대 불교의 대표적인 석학이었던 승려 박한영이 이 곳에서 많은 제자를 키워냈고, 선사 탄허가 개운사의 암자인 대원암에서 불경 번역에 힘썼다. 현재 개운사에는 국가에서 지정한 보물 1점과 서울특별시에서 지정한 유형문화재 5점이 보관되어 있다.
  • 흥천사
    장소, 유물
    흥천사
    성북구 흥천사길29(돈암동595)에 있는 사찰이다. 1397년(태조 6) 신덕왕후 강씨의 능침사찰로서 중구 정동에 창건되었다. 1409년(태종 9) 정릉이 이전되고, 조선왕조의 억불정책과 몇 번의 화재 등을 겪으면서 폐사되었다. 1669년(현종 10) 함취정(含翠亭) 자리에 이건하여 중창하고 신흥사(新興寺)로 이름을 고쳤다. 1794년(정조 18) 현재 자리에 중창하였고,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의 지원을 받아 다시 흥천사라고 불리면서 왕실원당의 기능을 담당했다. 흥천사는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6.25전쟁 때 피난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의 첫 번째 왕후였던 신덕왕후의 원찰(願刹)에서 조선(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의 피난생활까지 조선왕실의 역사와 함께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 태고사
    장소
    태고사
    성북구 성북로 28길 60(성북동 292-1)에 있는 사찰이다. 태고사의 원래 이름은 미륵당이었는데, 미륵당 안에 1700년대에 왕실에서 봉안한 석조미륵불좌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즈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며 주인이 몇 번 바뀌었고, 1987년 운산스님이 서울 봉원사에 있던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을 유치하면서 태고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 청사는 종립기관인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의 학사로 이용되고 있다. 원래 미륵당 자리는 현대식 동방대학원 건물이 들어서있고, 법당에 석조미륵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 청룡암
    장소
    청룡암
    성북구 동소문로3길 22(동소문동1가 45-1)에 위치한 사찰이다. 청룡암의 원래 위치는 성북구 대사관로 3(성북동 330-115)의 삼청각이 있는 자리였고, 조선후기 세도가였던 김좌근이 철종 4년(1853)에 창건하였는데, 미륵석상이 노천에 있어서 미륵당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청룡암이 널리 알려진 것은 일제강점기에 많은 예술가들과 인연을 맺었고 그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국어학자 이윤재는 청룡암을 묘사한 기사를 남겼고, 이광수는 방을 얻어 글을 쓰곤 하였다. 또한 이태준의 소설 「딸 삼형제」에 등장하기도 하였고, 김용준과 이태준 등 성북동에 살았던 예술가들은 이곳을 자주 다녔다. 1969년 산지개발계획에 밀려 토지를 매각하고 동소문동 현재 위치로 도량을 옮겼다.
  • 정법사
    장소
    정법사
    성북구 대사관로13길 44(성북동 330)에 위치한 사찰이다. 현재 위치에 절이 처음 창건된 것은 조선 후기 채정선사에 의해서였는데, 원래 이름은 복천암(福泉庵)으로 국운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원찰이었다. 이후 1960년 가회동에 있던 건봉사의 포교당인 정법원을 이곳으로 옮겨서 중창하고 정법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웅전은 정법사를 이전할 때 당시 서대문 신학대학에 있던 황태자궁을 이전해 온 것인데, 내부에는 1918년에 그려진 열반도, 후불탱화 등이 있다.
  • 적조사
    장소, 유물
    적조사
    성북구 흥천사길 49-23번에 위치하는 정릉의 원찰인 흥천사의 사내 암자이다. 특히 근대 한국현대불교의 정신적 지주였던 경산스님의 수행처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후기 헌종 때에 지어진 흥천사의 부속암자로 혜암 성혜스님이 창건하였다. 초기에 독립된 사찰로 세워진 것이 아니어서 규모는 크지 않으며 전통적인 암자의 틀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관음전, 동국선원, 법당 등의 건물이 있으며, 한국 불교사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경산스님(조계종 총무원장, 동국대학교 재단 이사장 역임)의 마지막 수행 장소로서 사리탑과 비석이 세워져 있다. 2019년 2월 14일 적조사 신중도가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영취사
    장소
    영취사
    성북구 정릉동 북한산에 있는 사찰이다. 영취사는 정릉계곡을 따라 보현봉 방향으로 북한산을 오르다보면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자그마한 사찰이다. 창건 등의 연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대웅전 계단 아래 마당에 5층 석탑이 있는데, 고려말~조선 전반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작은 크기이지만 서울지역에 별로 많지 않은 석탑 가운데 하나이며, 석탑의 부재가 비교적 잘 남아 있어 2007년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되었다.
  • 안암사
    장소
    안암사
    조선 초기 현재의 성북구 안암동에 있었던 사찰이다. 안암사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파악하기 어렵다. 조선 초에 다시 세워졌지만 억불정책에 따라 성종 1년(1470)에 철거되었다. 그리고 성종 15년(1484)에 인수대비와 귀인 권씨가 중창을 추진하여 조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지만, 결국 비빈들의 원찰(願刹)로서 다시 세워졌다. 하지만 연산군 10년(1504) 절은 폐사되고 말았다. 절의 비구니들은 모두 한치형의 빈집으로 옮겨 살게 하였고, 이후 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지금은 정확한 위치조차 전해지지 않고 있다.
  • 심곡암
    장소
    심곡암
    성북구 정릉동 북한산에 있는 사찰이다. 정릉골 초입에서 비밀스런 관문을 통과하듯 길을 오르면, 이름 그대로 깊은(深) 골짜기(谷) 속의 암자(庵)에 다다른다. 북한산 형제봉 아래 제1사찰로 개창한지 100여 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 깊은 산 속에 위치하여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경내에는 기도처인 관음굴, 너럭바위, 굴참나무, 관음바위 등이 있다. 관음바위는 원래 ‘물개바위’라고 불렸으나 정릉 ‘김 참판댁’이 이 바위에서 관세음보살을 보고 대를 잇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면서 관음바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심곡암에서는 너럭바위 주변을 산사음악회와 같은 각종 문화행사 장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템플스테이도 운영중이다.
  • 성북동성당
    장소
    성북동성당
    성북구 선잠로 28(성북동 39)에 위치한 천주교 성당이다. 성북동 성당은 1975년 혜화동 성당에서 분리·설립되었다. 성북동에 대사관저가 많은 지역적 특성으로, 외국인 가톨릭 신자도 많이 찾아 외국어 미사도 진행하고 있다. 지역 봉사활동에는 특별함이 있는데, 가톨릭, 불교, 개신교가 함께하는 종교연합 바자회를 길상사, 덕수교회와 함께 매년 진행하고 있다. 성북초등학교에서 바자회를 열고, 이익금으로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성당은 항상 개방하여 누구든지 들어와 볼 수 있다.
  • 북악당
    장소
    북악당
    성북구 아리랑로19다길 16(정릉동 506-109)에 위치한 민속신앙 관련 종교시설이다. 북악당은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8호인 ‘서울맹인독경’을 주관하는 곳으로, 1978년 미아리 고개에 있던 당을 팔아 교수단지 내의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맹인들의 독경(讀經)은 옥추경 등과 같은 여러 경문(經文)을 읽으며 복을 빌거나 질병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신앙 의례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맹인들의 독경의례는 20세기 초반까지 전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급격히 줄어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독경에 종사하는 일부 태사(太師, 맹인세계에서 독경하는 사람을 지칭)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2017년 1월 5일에 채수옥이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보유단체는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 서울지부(북악당)이다.
  • 봉국사
    장소
    봉국사
    정릉로 202-27(정릉동637)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 원찰로, 고려말 공민왕 3년(1354) 나옹대사가 주도하여 창건했다고 하는 설이 있으나, 조선 태조 4년(1395)에 당시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주도하여 세운 사찰로, 창건 당시 법당에 약사여래를 봉안하여 약사사라고 불렀다. 조선 현종 10년(1669)에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을 단장하고 태묘에 제사를 드리게 되면서 이 절을 원찰로 삼고 나라를 받든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봉국사로 고쳤다. 임오군란(1882) 때 불에 탔으나 이듬해 한계·덕운 등이 중건하였고, 이후 몇 차례 더 중건되었다. 1979년 10월에는 절 입구에 일음루를 건립하고, 1994년에는 안심당을 지어 스님들의 수행정진과 신도들의 신행처로 사용하고 있다.
  • 미륵당
    장소
    미륵당
    성북구 성북로 28길 60(성북동 292-1)에 있었던 사찰이다. 미륵당은 작은 절이었는데, 그 옆에는 정자가 있었고, 정자 옆에는 폭포와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었다. 미륵당 안에는 1700년대에 왕실에서 봉안한 석조미륵불좌상이 있었다. 독립운동가이자 문인인 임규가 말년에 10년간 거주하면서 『북산산고』를 탈고하였다. 미륵당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며 이곳의 주인이 몇 번 바뀌었는데, 1987년 운산스님이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을 유치하면서 태고사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현재는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과 종립기관인 동방대학원이 들어와 있으며, 미륵당 자리에는 현대식 동방대학원 건물이 들어서 있고, 법당에 석조미륵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 동망봉 산신각
    장소, 유물
    동망봉 산신각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산신각이다. 동망봉은 보문동과 숭인동에 걸쳐 있는데, 조선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단종이 유배가서 죽은 동쪽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기 때문에 동망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신각은 산신을 제사하기 위해 지은 사당으로, 언제, 누가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15세기경 호랑이가 출몰하여 인명과 가축의 피해가 심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당을 짓고 산제(山祭)를 지내기 위해 건립했다고 전한다. 그 일대에 아파트를 신축하면서 숭인공원으로 이전·복원하였는데 소나무로 엮은 가로 2칸, 세로 1칸으로 구성되었으며, 안에는 동망봉 산신령과 정순왕후 송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지금도 매년 10월 산신제를 열고 이곳에서 마을의 재앙을 예방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고 있다.
  • 돈암동 산신당
    장소
    돈암동 산신당
    성북구 돈암동 606-56에 있었던 산신당이었는데, 현재는 재개발로 사라졌다. 전통사회에서는 산을 끼고 있는 마을에 대부분 산신당과 같은 민속신앙의 장소들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유래는 오래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다만 없어지기 전에 조사·보고된 기록들은 산신당 건물이 벽돌로 쌓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덮었다고 하니, 해방 이후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생활의 편의를 위한 정비·개발, 그리고 그러한 흐름과 공존하지 못하고 사라져간 전통 문화의 한 모습이다.
  • 덕수교회
    장소
    덕수교회
    성북구 성북로 127(성북동 243-5)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덕수교회는 1946년 고 최거덕 목사와 안동교회 교인 7세대가 모여 정동에서 출발하였다. 1984년에는 성북동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이때 만들어진 본당 건물은 1984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본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현재 교회 건물로 사용중인 일관정(성북동 이종석 별장)은 서울시 민속자료 제10호로 지정되었는데, 개화기의 개량 한옥으로 넘어가는 건축양식이 독특하고 주변의 경관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덕수교회는 오랫동안 성북동에 터를 잡고, 교역자와 교인들이 화목한 신앙공동체 형성에 힘쓰며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 대원암
    장소, 유물
    대원암
    성북구 개운사길 60-46(안암동 5가 8)에 위치한 사찰이다. 대원암은 개운사에 딸린 암자인데, 1845년(헌종 11)에 우기(祐祈, 호는 지봉)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는 근대 불교계의 석학인 박한영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불교전문강원을 개설하여 많은 석학을 배출하였다. 당시에는 출가 제자 뿐만 아니라 신석정, 서정주, 홍명희, 이광수, 최남선, 정인보 등 당대 대표적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다. 1970년대에는 탄허스님이 이곳에서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의 역경사업에 힘썼다.
  • 내원사
    장소
    내원사
    성북구 보국문로 262-151(정릉4동 산 1-1)에 위치한 사찰이다. 내원사라는 명칭은 1969년 이재현 스님이 폐사지였던 곳에 새로 절을 만들며 대웅전을 건립할 때 이전 건물에서 내원사라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 창건된 연혁은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조선 후기 김정호의 한양 지도인 “수선전도”와 “백의대사불도(白衣大士佛圖)”라는 목판에는 같은 위치에 내원암(內院庵)이라는 표기가 있어 늦어도 19세기 중엽에는 절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언제 폐사되었는지 등 상세한 내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 정릉동성당
    장소
    정릉동성당
    성북구 정릉로 175(정릉동 677-1)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정릉성당은 1968년 미아리본당(현 길음동성당)에서 정릉동에 대지를 마련하고(정릉동 378-6번지) 천막으로 임시 성당을 운영하던 중 정식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성당 건물의 신축 낙성식이 행해졌다. 2001년에는 정릉 4동 성당을 분가시키기도 하였다.
  • 월곡동성당
    장소
    월곡동성당
    성북구 종암로 36길 44(하월곡동 90-1450)에 위치한 종교 시설이다. 월곡동성당은 1968년 9월 설립되었다. 월곡동 본당은 처음 대지가 마련되지 않아 하월곡동 82번지 소재의 가옥을 전세내어 생활하다가 현 위치의 대지를 마련하였다. 현재 월곡1동 전체와 월곡2동 일부, 길음2동 일부, 강북구 송중동 일부를 관할하고 있다.
  • 원불교 안암교당
    장소
    원불교 안암교당
    성북구 안암로 27-7(안암동4가 41-21)에 위치한 종교 시설이다. 원불교 안암교당은 건축가 김인철의 작업으로, 지상 2층, 지하 1층, 100평(339㎡)의 대지에 연면적 177평(583㎡) 규모이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적벽돌로 마감되어 가로면에서도 눈에 띄는 건축물이다. 남북 도로에 면한 동쪽에서 진입하면 만나는 로비 부분과, 외부 기둥과 원통형 천장으로 싸인 1층 실내와 2층 법당 공간이 두 개의 매스로 나누어져 변화를 주고 있다. 현재 담장은 황토 기와 담장으로 바뀌었다. 이 지역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축물로 자리하고 있다.
  • 영불사
    장소
    영불사
    성북구 보국문로 225-35(정릉동 산1-1)에 위치한 사찰이다. 국민대학교 매표소에서 형제봉으로 오르는 능선 좌측에 있다. 태화산 마곡사에서 출가하고 인왕산에서 수도한 묘전 스님이 깜빡 잠이 들었는데, 동쪽으로 가면 석굴이 있다는 계시를 받아 1959년 창건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총화종 소속이다.
  • 성심교회
    장소
    성심교회
    성북구 아리랑로19나길 29(정릉동 510-2)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성심교회는 자그마한 배의 형태로 아주 작은 교회이다. 서울에서 가장 작은 교회라고 한다. 대한예수장로회 소속이다.
  • 성북동교회
    장소
    성북동교회
    일제강점기 성북동에 있었던 종교시설이다. 성북정은 일제강점기 성북동, 성북리로 칭해지다가 1936년 4월 경성부 관할구역의 확장에 따라 바뀐 명칭이다. 광복 이후 1946년 10월, 성북정은 성북동이 되었다. 성북정교회는 일제강점기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YMCA전국연합회), 여자기독교청년학생연합회(조선YWCA연합회) 모임의 장소였으며, 초기 감리교 목사이자, 3.1운동 독립선언서 서명자 33명 중 한 명인 김창준(金昌俊, 1890~1959)이 강연했던 역사적 장소였다.
  • 석관동성당
    장소
    석관동성당
    성북구 돌곶이로18길 3-6(석관동 202-8)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석관동 지역에 새로운 본당의 설립 필요성을 인식하였고, 이문동성당은 1977년 부지를 매입하여 미사봉헌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78년 3월 이문동성당과 장위동성당을 모본당으로 하여 석관동성당이 설립되고 박노헌(요한금구) 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임명되었다. 인구증가와 교세확장으로 1992년에는 월계동성당을 분할하였으며, 일반적인 종교활동 외에도 봉사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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