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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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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신방
    장소
    숭신방
    조선시대 초기부터 성 밖에 있던 한성부 동부 12방 중의 하나로, 현재의 성북구 돈암·동선·삼선·성북·안암·정릉·종암동 일대가 이에 속하였다. 한성부의 영역은 도성과 성저십리(城底十里)로 이루어졌는데 그 범위가 매우 넓어 이에 해당하는 영역을 한성부가 단독으로 통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기에 1396년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누었는데 방은 공식적으로 조선 전기 한성부의 가장 하위 행정 조직이었으며, 이때부터 5부 중 동부(東部)에 숭신방(崇信坊)이 확인된다. 이 명칭은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숭신방이 숭신면(崇信面)으로 변경될 때까지 사용되었으며 숭신면은 3년 뒤인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崇仁面)에 편입된다.
  • 앙부일구(2022-3)
    유물
    앙부일구(2022-3)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유하고 있는 조선시대 해시계이다.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앙부일영(仰釜日影)'이라고도 하며, 솥이 하늘을 바라보는 듯 한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앙부일구는 약 10점이 알려져 있으며 성신여대 박물관 소장 앙부일구는 그 중 1점이다. 이는 1970년 구입한 것으로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본과 재질, 규격, 형태 등이 거의 유사해 동일인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앙부일구 시반에는 남북[午子] 방향으로 북극으로 향한 영침(影針)이 달려 있고,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세로 눈금인 시각선이 15분 간격으로, 계절을 알려주는 24절기의 가로 눈금으로 13개의 절기선이 은상감으로 새겨져 있다. 받침대는 네 개의 다리와 열십자[十]의 다리받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네 개의 다리에는 각기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모습을 새겼으며 용 좌우에 구름 문양을 표현하였다. 열십자[十]의 다리받침은 단을 둔 형태로 끝부분에는 거북이 머리를 새겼으며 정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있다.
  • 김용우
    인물, 유물
    김용우
    국가무형문화재 단청장(丹靑匠) 명예보유자이다. 단청장이란 목조건물에 광물성 안료인 진채(眞彩)로 채색을 올리는 장인을 의미한다. 단청문양보존연구회 설립자이자 초대 기능보유자인 흥천사 월주 원덕문스님을 사사하였다. 1988년 8월 1일 단청장 전수교육조교로, 2020년 7월 27일 명예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단청문양보존연구회(정릉동 소재) 이사장을 지내며, 불교미술의 맥을 잇고 있다.
  • 신상웅
    인물
    신상웅
    소설가이다. 1938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경북 의성에서 성장하였다. 중앙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1968년 《세대》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히포크라테스 흉상」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시대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사실주의 소설을 썼다. 서울의 주택난과 투기를 목적으로 한 다주택 소유자들을 꼬집은 「도시의 자전」을 비롯하여 그의 전 작품이 2003년 총 10권의 전집으로 재출간되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및 예술대학원 원장을 지냈으며, 제6회 한국창작문학상(1973)을 수상하였다.
  • 김대성
    인물
    김대성
    시인이다.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나 60년 이상 돈암동, 정릉동, 장위동 등 성북구에 거주하고 있다. 2010년 문예지 《시사사》에 「뜨개질」 외 2편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그동안 돈암동을 배경으로 쓴 시들을 묶어 2018년 첫 번째 시집 『돈암동 엘레지』를 펴냈다.
  • 최일남
    인물
    최일남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다. 1932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국문과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53년 《문예》에 「쑥 이야기」, 1956년 《현대문학》에 「파양」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만국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에서 문화부장을 지낸 그는 언론인 다운 예리한 시각으로 현실을 비판하되, 그것을 해학과 풍자의 언어로 풀어낸 소설을 다수 발표하였다. 개인주의화된 서울의 세태를 짚은 「돈암동」(2004)을 비롯하여 『만년필과 파피루스』, 「서울의 초상」, 「흐르는 북」 등의 작품이 있다. 월탄문학상, 한국창작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01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 조해경
    인물
    조해경
    정치학자, 철학자, 작가, 사회운동가이다. 대학 졸업 후 동아일보사, 현대종합상사를 거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현대사회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정책개발연구소 소장, 성균관대 대학원 초빙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돈암동 전차종점 사람들』, 『철학광시곡』,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마작 하는 공자 옆에 스타 하는 플라톤』 등 30여권의 저서 및 역서를 집필하였다. 『돈암동 전차종점 사람들』은 혜화동에 있는 동성중학교에 재학 시절 돈암동 산동네에서 경험한 일들을 토대로 각색한 단편 소설이다. 현재는 안양대 도시행정학과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 최정례
    인물
    최정례
    시인이다. 1955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0년 《현대시학》에 「번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했다. 미아리고개 배경의 시 등이 수록된 첫 번째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에서부터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햇빛 속에 호랑이』(1998), 『붉은 밭』(2001), 『개천은 용의 홈타운』(2015), 『빛그물』(2020) 등 총 7편의 시집을 펴냈다. 서사 구조를 갖춘 현실적인 언어로 산문시의 새로운 경지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는다. 제10회 김달진문학상(1999), 제52회 현대문학상(2007), 제14회 백석문학상(2012), 제8회 오장환문학상(2015), 제15회 미당문학상(2015) 등을 수상하였다.
  • 돈암동 전차종점 사람들
    작품
    돈암동 전차종점 사람들
    2014년 1월에 발간된 단편소설이다. 1963년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자가 돈암동 산동네에서 보고 겪은 기억들을 허구적 요소와 결합하여 회고의 방식으로 엮어낸 소설이다. 『돈암동 전차종점 사람들』에서 저자는 직접 화자가 되어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서술하고 있는데, 준호형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1960년대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또한 『돈암동 전차종점 사람들』은 돈암동 전차종점, 고명상업학교, 미아리 고개 등 구체적인 지명을 통해 작품의 배경이 표현되어 있어 이를 통해 당시 성북구의 모습과 분위기 등을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다.
  • 박영준
    인물
    박영준
    평안남도 강서 출생으로 호는 만우(晩牛)이며 박영준(朴映逡)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소설가, 교육자이다.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들어가 1934년 졸업하였다. 같은 해에 장편 「1년(一年)」이 『신동아』 현상모집에 당선되고, 단편 「모범경작생(模範耕作生)」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와 콩트 「새우젓」이 『신동아』에 동시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다. 1938년 만주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여 1962년부터 연세대학교 교수로 근속하였다. 광복 전까지 주로 농촌의 가난을 소재로 하는 농촌소설을 많이 썼다. 이후 소설의 무대를 도시로 옮겨 소시민의 생활을 중심으로 인간고독과 윤리문제를 추구하였다. 동연출판사에서 2006년에 단편집 전6권, 중장편집 전7권의 <박영준 전집>을 간행하였다.
  • 적조사 신중도
    유물
    적조사 신중도
    적조사가 보유하고 있는 불화이다. 신중도(神衆圖)는 여러 신의 모습을 함께 그린 그림으로, 적조사 신중도는 위태천(韋駄天)을 중심으로 각 2위의 신장, 천녀, 천동이 그려져 있다. 전체 크기는 105×90.3(㎝)이고, 그림의 크기는 95.2×80.4(㎝)이다. 투구와 갑옷, 갑주 등에 금박처리 및 복식의 필선과 각종 문양 등이 섬세하고 명료하여 화승의 우수한 기량을 보여준다. 화기를 통해 흥천사 경내 암자인 적조암 칠성각에 봉안하기 위해 1890년(광서 16년)에 조성되었으며, 긍조(亘照)가 책임화승을 맡고 혜산축연(惠山竺衍)과 경은(敬恩)이 참여한 내용이 확인되었다. 19세기 서울과 경기지방 불화의 화풍을 지니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불화로 2019년 2월 14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돈암동의 봄
    작품
    돈암동의 봄
    김대성 시인의 시집 『돈암동 엘레지』(한국문연, 2018)에 수록되었다. 시인이 60여 년 동안 살아온 성북구 돈암동을 배경으로 재개발의 광풍 속에서 소외된 주민들, 그리고 그 속에서도 하루하루 꾸려나가는 소박한 일상을 담은 시집이다. 「돈암동의 봄」은 표제시인 「돈암동 엘레지」와 서사적으로 연결하여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생존권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한 끝에 드디어 '봄'을 맞이한 돈암동 산동네의 모습이 서정적 시어로 재창조되었다.
  • 이근복
    유물, 인물
    이근복
    국가무형문화재 번와장(翻瓦匠) 기능보유자이다. '번와장'이란 지붕의 기와를 잇는 장인을 말한다. 195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을 따라 어려서부터 어깨너머로 현장에서 건축 일을 익혔다. 스무 살 무렵 상경하여 돈암동의 건재상에서 근무하며 기선길 등 고건축 대가들로부터 본격적으로 기와 잇는 기술을 배웠다. 숭례문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경복궁 수정전, 창덕궁 돈화문, 법주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등 국보급 문화재 수백여 건의 기와 보수공사에 참여했다. 2008년 10월 21일 번와장 최초의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2021년 현재도 유일하다.
  • 돈암동 엘레지
    작품
    돈암동 엘레지
    김대성 시인의 시집 『돈암동 엘레지』(한국문연, 2018)에 수록되었다. 시인이 60여 년 동안 살아온 성북구 돈암동을 배경으로 재개발의 광풍 속에서 소외된 주민들, 그리고 그 속에서도 하루하루 꾸려나가는 소박한 일상을 담은 시집이다. 특히 표제시인 이 시는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했던 실제 사건을 언급함으로써 구체적인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돈암동을 그리고 있다.
  • 도시의 자전
    작품
    도시의 자전
    『한국문학』 1978년 5월 호에 발표한 이후, 신상웅 소설집 『돌아온 우리의 친구』(창작과비평사, 1980), 『신상웅 전집 4: 쓰지 않은 이야기』(동서문화사, 2003)에도 수록되었다. 1970년대 서울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주택난은 도시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소설의 주인공 정기오는 서울에 사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6개월에 한번 꼴로 셋방을 옮겨 다니는 형편 탓에 자녀 계획도 미룬 채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다. 새로 이사할 집의 은행 대출이 꼬이면서 정기오는 이사를 딱 하루 연기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루 종일 돈암동을 비롯 수유리, 갈현동, 흑석동, 상도동 등 서울의 이 동네 저 동네를 뛰어다니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셋방살이의 애환을 우화적으로 그렸다.
  • 형관
    작품
    형관
    형관(荊冠)은 만우(晩牛) 박영준(朴榮濬, 1911-1976)이 『동아일보』에 1955년 10월 26일부터 1956년 3월 26일까지 연재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박영준 전집 9권(동연출판사, 2006)에 포함되어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남자 주인공 '현주'가 우연히 알게 된 3명의 여성인 '종아', '혜련', '경옥'과 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현주는 돈암동에 거주하며, 사건은 성북구 내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다. 박영준은 광복 전까지 주로 농촌소설을 많이 썼지만, 이후 도시 소시민의 생활을 중심으로 인간고독과 윤리문제를 추구하였다. 그의 문학적 특성을 살펴보면, 인간적인 성실성과 정직을 통한 '선량한 인간상의 추구'로 일관하는데, 형관의 주인공 현주를 통해서 그 같은 주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 김성환, <6.25 스케치>
    작품
    김성환, <6.25 스케치>
    만화가이자 화가인 김성환 화백이 한국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105점의 연작이다. 1949년 18세의 나이에 만화가로 데뷔한 김성환은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크로키, 동양화, 만화풍 등 다양한 기법으로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작품은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말부터 그 해 9월 말 서울 수복까지와 그 이후 군에 복무하면서 종군화가로서 남긴 그림, 이렇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전자는 그가 살던 정릉동을 비롯하여 돈암동, 월곡동, 미아리고개 등을 그림으로써 전쟁 초기 성북구 일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시각적 자료이다. 스케치의 모서리에 적어놓은 날짜와 장소는 이 작품의 기록성을 강화한다.
  • 김영기
    인물
    김영기
    화가이다. 1911년 서울에서 서화가인 해강 김규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중국 화단의 거장 제백석(齊白石)을 사사하고 북경 보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여 등단한 이래, 문인화적 필치에 현대적인 기법을 더하여 한국적 수묵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 특히 ‘동양화’ 대신 '한국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며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조선미술사』(1948), 『동양미술사』(1971), 『동양미술론』(1980) 등을 저술하여 미술이론가로도 활동했으며, 이화여대 홍익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돈암동 전차종점 인근 주택에 거주한 바 있으며 기와집이 어우러지는 돈암동 풍경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 노인, 최신 영화를 보러 가다
    작품
    노인, 최신 영화를 보러 가다
    소설가 박완서는 월간 『현대문학』에 2008년 2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에세이를 연재하였다. 본 작품은 연재에세이 4회에 해당하며, 2010년 펴낸 박완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도 수록되었다. 여고시절부터 노인이 된 2008년 현재까지 경험한 극장에 얽힌 기억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담담한 어투로 담아냈다.
  • 장위고개
    작품
    장위고개
    1983년 발행된 소설집 『장위고개』에 수록된 소설이다. 염인수는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으로 대전의 문학운동을 주도했으나 한국전쟁 발발이후 사상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대전형무소에 체포되었다. 그 이후 염인수는 대전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며, 도시의 임금노동자로 살게 된다. 이 작품은 작가 염인수가 장위동 공사현장에서 노동을 했던 5년여의 기간 중 1968년 한 해를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날씨, 기온, 수입, 집안 대소사 등 당시 작가가 겪은 일상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당시 가난한 도시 노동자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일기 중간중간에 장위 공사장을 가기위해 장위고개를 오가며 느끼는 감정을 시로 표현하였다.
  • 돈암동
    작품
    돈암동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최일남이 월간 『현대문학』 (2004. 01월 호)에 발표한 작품으로, 같은 해 펴낸 그의 열세 번째 소설집 『석류』에도 수록되었다. 서울에서 수십 년간 타지 생활을 하고 있는 화자가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도시화와 산업화를 경험한 기성세대로서 느낀 서울의 변화, 특히 '우리'보다는 '나'를 중시하는 개인주의로의 변모를 비판하면서도 포용하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울러,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지역 갈등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언론인 출신으로서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문학인 다운 푸근하고 개성적인 문체가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 미아리 고개 2
    작품
    미아리 고개 2
    「미아리 고개 1」과 더불어 1994년 민음사에서 펴낸 최정례 시인의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에 수록되었다. 6·25 전쟁과 냉전 시대를 거친 미아리 고개를 둘러싼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거시적 접근이 아닌 한 가정에 닥친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다.
  • 미아리 고개 1
    작품
    미아리 고개 1
    「미아리 고개 2」와 더불어 1994년 민음사에서 펴낸 최정례 시인의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에 수록되었다. 본격적인 현대화와 개발이 진행되기 전, 1980년대 미아리고개 인근에 사는 빈민들의 고난이 화자의 친구 '원화'의 삶을 통해 느껴진다. 이 시는 2012년 개봉한 영화 <가시>(감독_김중현)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 오장환
    인물
    오장환
    일제강점기 돈암동에 거주한 시인이다. 휘문고보 재학 시절, 당시 교사로 부임한 정지용으로부터 시를 배웠고 1933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38년 일본 유학 중 귀국하여 관훈동에 '남만서방(南蠻書房)'이라는 서점 겸 출판사를 경영하였는데 이때 자신의 두 번째 시집 『헌사』와 김광균의 첫 시집 『와사등』을 출간했다. 돈암동에 거주하며 김광균, 김기림, 임화 등 문인을 비롯해 작곡가 김순남, 화가 이쾌대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교유하였다. 조선일보 팔등잡문에 연재한 내용 중 정릉리(현 정릉동), 돈암정(현 돈암동 일대)에 관해 쓴 내용이 나온다.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였고 이후 월북하였다. 시집으로는 『성벽』, 『헌사』, 『병든 서울』 등이 있다.
  • 시대문구사
    장소
    시대문구사
    성북구 정릉로44길 7(돈암동 624)에 위치한 문구사이다. 1960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시대문구사는 개업 당시 길음시장 남측 출입구 부근에 위치했으나 재개발로 인해 지난 2008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게 되었다. 2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곳으로, 현재 사장님은 1988년부터 아버님의 뒤를 이어 운영을 맡고 있다. 아버님이 영업을 하셨을 당시에는 도매업 위주로, 미아리고개 너머 의정부 가기 전까지 성북구, 도봉구, 강북구, 노원구 등의 지역까지 배달을 해주었고 학교 앞 문구점에도 물건을 공급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팬시 문구들이 나오면서 정리를 하고 지금은 소매 위주로 운영을 하고 있다.
  • 정원인테리어
    장소
    정원인테리어
    성북구 성북로4길 52(돈암동 609-1)에 위치한 인테리어 전문점이다. 사장님은 생계를 위해 타일 기술을 배웠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정릉동에 6평짜리 공간에서 영업을 시작하였으며 고객들이 인테리어 실물을 직접 확인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돈암동에도 가게를 열게 되었다. 돈암점은 인테리어 전시장과 상담을 위한 목적으로 꾸민 공간이기 때문에 주방, 화장실, 거실 인테리어 등을 실물로 전시해 놓았다. 영업 초기에는 주로 누수 탐지와 설비 위주였으나 점차 인테리어를 겸하게 되었고 일이 바빠져 현재는 가족 및 여러 직원들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 해오름스포츠센터
    장소
    해오름스포츠센터
    성북구 성북로4길 52(돈암동 609-1)에 위치한 공공체육시설이다. 돈암동 일대 대단위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하며 지하1층과 지상1층의 실내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1층에 무산소 기구들이, 지상 1층에 유산소 기구들이 중점적으로 배치되어있어 주민들이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헬스 시설 이외에도 요가, 줌바, 다이어트 댄스 등의 프로그램이 휘트니스룸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 시설은 현재 성북구 도시관리공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 돈암119안전센터
    장소
    돈암119안전센터
    성북구 보문로 192(삼선동4가 349-1)에 위치한 성북소방서 산하의 소방 행정기관이다. 시민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소방행정 서비스 제공을 위해 2008년 1월 준공됐다. 관할 구역은 돈암2동·삼선동·성북동·보문동·동선동·동소문동으로 이 지역의 화재 예방·진압·구급 등 소방 업무를 일차적으로 처리한다.
  • 서승효 집터
    장소
    서승효 집터
    독립운동가 서승효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서승효의 거주지는 '서울 성북 돈암 산 48'이었다. 현재 집터 추정 장소에는 1965년에 준공된 돈암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 임광세 집터
    장소
    임광세 집터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임광세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서울 동대문(東大門) 돈암(敦岩) 29-55'였다. 길음교사거리 가까이에 위치한 임광세의 집터는 현재 동소문로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미아리고개를 넘어서 길음교사거리를 바라보며 촬영하였다.
  • 차미리사 집터
    장소
    차미리사 집터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차미리사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차미리사는 돈암동 117-1번지에 거주하였다. 현재는 행정구역이 변경되어 해당 번지의 장소를 찾을 수 없었고 추정 지역을 선정하여 촬영하였다. 차미리사는 근화여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추정 지역 내에 마침 무궁화꽃(근화)이 피어있는 장소가 있어 해당 장소를 촬영하였다.
  • 차미리사
    인물
    차미리사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차미리사는 조국의 자주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교육 구국운동이 시급하며, 특히 여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실천한 근대 민족교육운동가이다. 1900년대 초 외국 유학을 떠난 신여성으로, 미국에서 대동교육회, 대동보국회 활동을 하였다. 1917년 선교사로 귀국한 후 배화학교 사감으로 있었다. 3.1운동 이후에는 여성 교육과 생활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여자교육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근화여학교를 설립, 교장에 취임하였다. 1950년에는 덕성여자초급대학(현 덕성여자대학교)을 설립하였다.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를 통해 '돈암동 117-1'번지에 거주하였음을 확인하였다.
  • 조병옥 집터
    장소
    조병옥 집터
    돈암동(현 동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조병옥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 경무부장으로 있던 조병옥은 돈암동 한옥에서 거주했다. 1950년 5.30총선 때 성북구에서 출마하였는데, 당시 조병옥의 주소는 돈암동89-7번지였다. 해당 주소지는 지도에서 찾을 수 없었으나, 돈암동 전차 종점 근처 태극당제과 옆의 골목에 조병옥 가옥이 있었다는 증언을 토대로 장소를 추정하였다.
  • 김재황 집터
    장소
    김재황 집터
    돈암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 김재황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그는 연희전문학교 재학때부터 동교생과 함께 항일결사 조선학생동지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에 노력하였다. 당시 거주지는 돈암정 458-349번지이다. 추정 위치는 성북천이 한성대입구역쪽으로 접어들면서 꺽이는 위치이다. 지금은 많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 강천룡 집터
    장소
    강천룡 집터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강천룡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당시 강천룡은 돈암정 299-41번지(현 동소문로11길 13)에 거주하고 있었다. 성북천과 매우 가까운 거리로 거주지 뒤편으로 낮은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터다. 지금은 빌라와 주택이 건립되었고 산은 주택지로 개발되어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 안재홍 집터
    장소
    안재홍 집터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안재홍의 집터이다. 안재홍은 비밀결사인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임시정부의 연통부 역할을 수행하였다. 귀국하고 약 10년동안 언론인 생활을 했으며, 해방 후 돈암동 산11-152번지에서 거주하였다. 6.25전쟁 때 납북되었지만 남은 그의 가족들은 한동안 돈암동에서 생활하였다. 현재 그의 집터는 동선동 주민센터와 성신여자고등학교 사이로 추정된다.
  • 3월 27일 돈암리 부근 산 위 약 50명 규모의 만세시위
    사건
    3월 27일 돈암리 부근 산 위 약 50명 규모의 만세시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산 위에서 발생한 독립만세운동이다. 1919년 3월 27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감천, 돈암리 산 위 등에서 독립운동이 발생하여, 주모자가 체포되고 해산되었다. 돈암리 산 위에서 발생한 만세운동에는 약 50명이 참여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지칭하는 돈암리 산은 현재 개운산으로 추정된다.
  • 역사 앞에서 :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역사학도의 일기
    작품
    역사 앞에서 :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역사학도의 일기
    역사학자 김성칠[1913-1951]이 1945년 11월부터 1951년 4월까지 쓴 일기이다. 저자의 부인인 국어학자 이남덕이 일기를 보관해오다가 아들 김기협에 전달하였고, 일기는 1993년에 책으로 엮여 창비에서 초판이 출판되었다. 초판과 2009년 개정판은 『역사 앞에서 : 한 사학자의 6·25일기』라는 제목이었다. 2018년에 이전 판본에서 제외되었던 일기 일부를 추가하여 『역사 앞에서 :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역사학도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다. 김성칠은 1946년 돈암동에 집을 마련하였다. 1947년 봄 정릉리 아랫마을로 이사를 갔고, 1948년 다시 정릉리 윗마을 손가장으로 이사하여 이곳에서 전쟁을 맞았다. 이 책에는 당시 마을의 생활상과 6.25전쟁 중의 마을 모습이 일기에 담겨있다.
  • 임광세
    인물
    임광세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재학 중 조선민족해방협동당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조선 독립의 가능성을 의식하면서 영국, 미국에 종속되는 독립을 할 바에는 조선인 스스로 독립운동을 하여 조선인의 실력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들은 무장투쟁을 위해 경기도 포천의 깊은 산속에 본거지를 두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는 한편, 미국으로 하여금 B-29폭격기를 통해 무기를 산속으로 공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임광세는 1944년 10월 포천의 아지트로 입산하려던 도중 체포되어 1945년 6월 기소유예로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서울 동대문(東大門) 돈암(敦岩) 29-55(현 돈암동 29-1)였다.
  • 오기열
    인물
    오기열
    돈암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전라북도 진안군 출신으로 1919년 진안 마령면 평지리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독려하는 격문 3통을 작성하여 게시판에 붙이고, 시위군중을 인솔하며 선두에서 시위를 전개했다. 이때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복역하였다. 해방 후 초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남 진안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에 위촉되었다. 같은 해 12월 조소앙 등과 함께 사회당 발기인대회에 참여했다. 1950년 8월, 전주를 점령한 조선인민군에 의해 전주형무소에서 피살되었다. 1977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따르면 돈암1동에서 거주하였는데, 상세 지번은 확인할 수 없다.
  • 안석응
    인물
    안석응
    돈암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유여대 등과 함께 의주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 3월 1일 오후 2시 읍내 교회에 8백여 명의 교인을 중심으로 한 시위군중이 모이자, 대형 태극기 2개를 교회에 세워놓고 종이로 만든 백여 개의 작은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주었다. 유여대의 독립선언서 낭독이 끝나자, 시위군중과 함께 만세삼창을 외치고 행진을 했다. 그는 일제의 검속 때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렀다. 그는 출옥 후 의주에서 상해임시정부의 군자금모집을 위해 활동하였고, 1928년부터 1929년까지 신간회 진천(鎭川)지부장으로 활약하며 독립사상 고취에 노력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서승효
    인물
    서승효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서울에서 이우식 등 지인들에게 조선어학회에 출자하도록 권유하다 체포되어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당시 '성북 돈암 산48'(현 동소문로 179-42)에 거주하였다. 현재 집터 추정 장소에는 1965년에 준공된 돈암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 민영숙
    인물
    민영숙
    돈암동(현 안암동1가 48)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27년 두 오빠와 함께 상해로 건너가 인성학교 등을 다녔다. 1942년 2월 중국 사천성 충칭[重慶]에서 임시정부의 법무부 직원에 임명되어 근무하였으며, 1944년 4월부터는 임시정부 법무부 총무과에서 근무하였다. 같은 해 6월에는 임시정부 외무부의 정보과원에 전보되어 근무하였고, 1944년 7월부터 회계검사원 조리원(助理員)을 맡아 일하면서 대적 방송에 종사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김동수
    인물
    김동수
    돈암동(현 삼선교로 76)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23년 부친을 따라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소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중국군관학교 뤄양분교에 입학하여 훈련을 받았다. 1937년 임시정부에 합류한 뒤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조직하여 부대장이 되었으며, 1941년 공작대원들이 중심이 되어 광복군 제5지대를 조직하였다. 그는 제5지대에서 시안(西安)을 중심으로 장병을 훈련시키는 동시에 선전·정보활동을 하였다. 1945년 4월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서 제3대 대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1946년에는 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동북특파원으로 중국 당국과 교섭하여 교포 귀국의 편의를 도모하다가 1948년 6월에 귀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이승만
    인물
    이승만
    동소문동(당시 돈암동)에서 거주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독립협회에 참가해 활동했고, 고종 폐위 음모에 휘말려 약 6년간 옥고를 치렀다. 미국에 유학하여 5년만에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의 대통령이 되었고, 1925년 탄핵 면직되었다. 광복 후 귀국하여 반탁반공노선을 견지하였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 불가피론을 주창했다. 1948년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부산정치파동, 사사오입개헌, 3.15부정선거 속에서 세 차례 더 대통령에 선출되지만, 4.19혁명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환국 이후 돈암동의 돈암장에서 약 2년간 거주하였다. 돈암장의 구조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승만은 아래채를 썼고, 위채는 비서와 살림 맡은 사람들, 바깥채는 경비원들이 사용했다.
  • 3월 23일 경기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100-200명 규모의 만세시위
    사건
    3월 23일 경기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100-200명 규모의 만세시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현 성북구 돈암동, 동선동, 삼선동 일대)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이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8시경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를 비롯한, 동묘리, 청량리, 왕십리 등 경성시외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모두 다음날 24일 오전 1시에는 진정되었다고 한다. 돈암리 시위의 규모는 기록물에 따라 100-200명이 참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시위의 주체는 보통사람들이었으며,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병한 군대는 없었고, 18명이 검거되었다고 한다.
  • 맥
    개인/단체 발간물
    1938년 간행된 시 전문 잡지이다. 1938년 6월 창간된 잡지로 편집 겸 발행인은 김정기이고, 경성부 돈암정(현 성북구 돈암동, 동선동, 삼선동 일대)에 있던 맥사(貘社)에서 발행되었다. 총판을 한성도서주식회사에 두었으며, 간도와 연길 등에도 각각 지사를 두었다. 1집은 김신제, 함윤수 등 15명이 참여하였고, 2집은 민태원, 장만영 등 19명, 3집에는 이상, 임화 등 32명, 4집에는 허월파, 강시환 등 29명, 5집에는 장응두 등 15명이 참여하였다. 원래는 1939년 4월 5집을 마지막으로 종간되었다고 알려졌으나 2014년 소장자에 의해 6집이 공개되었다. 6집에는 김북원,이석 등 12명의 시인이 참여했고, 1~4집에는 없었던 동인들의 편집 후기가 실려 있어 이 잡지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 김성칠
    인물
    김성칠
    역사학자이다. 1913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났다. 1928년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독서회사건으로 검거되어 1년간 복역했다. 1932년 동아일보 농촌구제책 현상모집에 당선됐고 1934 규슈 토요쿠니[豊國]중학을 졸업했다. 1937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 후, 1941년까지 조선금융조합연합회에서 근무했다. 1942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했으나 강제 징용됐다. 1946년 경성대학을 졸업하고 1947년 서울대 사학과 전임강사로 부임했다. 1951년 영천 고향집에서 괴한의 저격으로 사망했다. 저서로 『조선역사』(1946) 『국사통론』(1951) 『동양사 개설』(공저, 1950) 등과 역서로 펄 벅의 『대지』, 강용흘의 『초당(草堂)』, 박지원의 『열하일기』(전5권), 『용비어천가』(상 하) 등이 있다. 김성칠은 해방 이후 성북구에서 거주하였다. 1946년 3월 경성대학교(서울대학교) 사학과 조수(助手)로 임용된 직후인 4월 7일 돈암동으로 이사하였다. 그리고 1947년 국립서울대학교 사학과 전임강사로 부임하였고, 같은 해 봄 정릉리 아랫마을로 이사했다. 1948년에는 정릉리 윗마을 손가장(정릉리 362번지)에서 거주하였다. 그가 남긴 일기 자료(『역사 앞에서』)에는 정릉에서의 전쟁 경험이 드러난다.
  • 돈암2동 주민센터
    장소
    돈암2동 주민센터
    성북구 흥천사길 7(돈암동 600)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돈암동이라는 동명은 되너미고개, 즉 돈암현이란 고개이름에서 유래되었다. 1949년 8월 15일 성북구에 속하면서 그 지역이 넓었으므로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으로 분동되었고, 현재 아리랑고개와 미아리고개에 걸친 산록의 대부분 지역만 돈암동이 되었다. 이 지역은 원래 정화동사무소의 담당구역이었으나 1970년 법정동과 동사무소의 명칭을 일치시키면서 돈암제2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현재 돈암동 중 동선동장, 돈암제1동장 관할 구역을 제외한 전역을 관할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관할 구역의 면적은 0.48㎢이고, 인구는 2만 4천여 명, 세대수는 8,619세대이다.
  • 돈암1동 주민센터
    장소
    돈암1동 주민센터
    성북구 정릉로 394(돈암동 1-1)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돈암동이라는 동명은 되너미고개, 즉 돈암현이란 고개이름에서 유래되었다. 1949년 8월 15일 성북구에 속하면서 그 지역이 넓었으므로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으로 분동되었고, 현재 아리랑고개와 미아리고개에 걸친 산록의 대부분 지역만 돈암동이 되었다. 돈암1동은 1955년 동제를 실시할 때 북선동사무소의 담당구역이었으나 1970년 법정동과 동사무소 명칭을 일치시키면서 북선동사무소 돈암제1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돈암1동 주민센터는 돈암동 중 개운산길 이북지역을 따라서 서쪽으로 매원초등학교를 포함하고 북으로는 정릉천 이남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관할 면적은 0.49㎢이고 인구는 1만 5천여 명, 세대수는 6,259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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