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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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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 한양도성 보수 복원
    사건
    1970년대 한양도성 보수 복원
    1975년부터 1982년까지 진행된 한양도성 복원공사이다. 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개발의 미명아래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1960년대에 부분적인 보수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복원이 진행된 것은 이 사업이 처음이었다. 보수 복원은 성북지구, 삼선지구, 광희지구 등 8개 지구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이때 성북구에 걸쳐 있는 구간인 성북지구(숙정문~혜화문)는 성곽 1,429m가 복원되었고, 삼선지구(혜화문~낙산 정상)는 성곽 1,037m 및 여장 1,033m가 복원되었다. 이 보수 복원은 한양도성이 더 훼손되는 것을 막고 당시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문화재 가치 보존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진행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고증 없이 단기간에 진행되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 안암동-미아동간 도로 개통
    사건
    안암동-미아동간 도로 개통
    성북구 안암동과 강북구 미아동 사이의 도로가 개통된 사건이다. 서울시의 권역이 계속 팽창하고 성북구를 비롯한 북쪽 지역의 인구와 주택이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도로망의 확충이 필요해졌다. 당시 미아리 지역도 인구가 급속히 늘고, 서울 도심과 연결하는 도로가 필요했기 때문에 1962년에 안암동과 미아동을 잇는 도로를 포장·개통하였다. 개통 당시에는 안암동과 미아동이 서울의 외곽이었기 때문에 '안암동-미아동간 외곽순환도로 개통'이라는 제목으로 신문 기사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 도로의 개통으로 서울 도심과 미아동 인구주택 밀집지역간 이동시간이 단축되었고, 안암동은 두 지역을 잇는 중간지점이 되었다.
  • 찾아가는 마을학교
    사건
    찾아가는 마을학교
    2012년부터 시행된 성북구청의 마을만들기 지원 사업 중 하나이다. ‘마을만들기’란 일상을 나누며 살아가는 마을에서 주민 스스로 마을의 주거 환경과 생활여건을 개선하고, 지역고유의 정서와 공동체를 회복해 나가는 활동이다. 그런데 마을만들기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궁금해 하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마을 또는 주민 모임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 ‘찾아가는 마을학교’이다. 성북구 마을만들기 지원센터가 주관하여 사례 검토, 현장답사, 마을진단, 계획 수립(주민참여 워크숍) 등을 중심으로 강좌를 구성하여 지원하였는데, 2012-2013년 길음동의 소리마을이 선정되어 2회에 걸쳐 14강이 진행되었다.
  • 지하철 6호선 개통
    사건
    지하철 6호선 개통
    2000년 12월에 성북구를 관통하는 지하철 6호선이 개통한 일이다. 6호선이 개통되기 전까지 성북구에는 지하철역이 4호선 3개역 밖에 없어서 상대적으로 지하철 이용이 수월하지 않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성북구의 남쪽에서 동북쪽으로 관통하는 지하철 6호선이 개통되면서 보문~안암~고려대~월곡~상월곡~돌곶이~석계역이 새롭게 들어섰고, 대형병원과 학교로 접근하기 위해 버스나 마을버스를 갈아타야만 했던 이 지역의 교통환경이 크게 개선되었다.
  • 전차 돈암동노선 개통
    사건
    전차 돈암동노선 개통
    1941년 현재의 성북구 돈암동까지 전차의 노선이 확장된 일이다. 서울에 전차가 처음 개통된 것은 1899년 5월 17일이었다. 처음 서대문-종로-청량리와 종로-남대문-용산까지 운행한 노선은 점차 늘어나 1930년대에는 도심 지역에 망을 형성하고, 왕십리, 의주로, 한강인도교 등까지 확장되었다. 동소문(혜화문) 밖의 성북구 지역은 1930년대 도심인구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정비 개발하면서 서울권으로 편입되었고, 돈암동 지역도 시가지계획 하에 택지가 조성되었다. 그에 따른 교통수요 증가로 시내버스 노선의 확대와 전차 노선의 연장이 이루어졌는데, 1941년 7월 12일에는 돈암동(지금의 성신여대 태극당 부근)까지 전차가 다니게 되었다. 노선의 출발지는 을지로4가이다.
  • 장수마을 주거환경관리 사업
    사건
    장수마을 주거환경관리 사업
    2013년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의 기반시설과 공용시설을 정비한 사업이다. ‘주거환경관리사업’이란 단독 주택과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지역에 정비 기반 시설과 공동 이용 시설을 확충하여 환경개선을 통한 주거 복지를 지원하는 사업을 말한다. 성북구의 경우 2013년 서울시와 성북구청의 지원으로 삼선동의 장수마을과 정릉동의 정든마을이 대상으로 선정되어 정비되었다. 장수마을은 6월에 선정되어 12월에 완료되었는데, 기반시설(도시가스, 하수관거, 골목길) 정비, 안전시설(CCTV, 보안등, 소화전, 제설함) 설치, 주민공동시설(마을박물관, 주민사랑방, 도성마당 등) 설치 등이 이루어졌다. 또한 계단의 정비와 난간의 설치로 노령인구가 많은 주민들의 이동이 한결 수월해졌다.
  • 성북동에 놀러와~
    사건
    성북동에 놀러와~
    2012년 성북구 성북동의 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역사문화탐방 프로그램이다. 2012년 성북동 주민들은 성북동의 역사, 문화, 지역적 특성을 살려 성북동을 명소화하고, 성북동 학부모들을 재교육하여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성북동을 돌며 유익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성북동에 놀러와~’라는 이름의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협동조합 형태의 ‘성아들(성북동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구성하고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 성과로 성북동 역사문화해설가 양성과정을 통해 잠자고 있는 아줌마들을 깨웠고, 성북동 역사문화탐방을 통해 아이들에게 마을을 설명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성북구 시내버스 운행
    사건
    성북구 시내버스 운행
    1930년대 성북 지역에 처음으로 시내버스가 운행한 사건이다. 일제강점기 서울에 시내버스가 등장한 것은 1928년 4월이었고 10대의 차량이 시내 중심부를 30분 간격 정도로 운행하였다. 점차 차량수가 늘어나면서 동소문, 삼각지 등으로 노선이 연장되었지만, 1930년대 전반까지 성북 지역까지 노선이 확장되지 않았다. 시내버스가 돈암동까지, 안암동을 거쳐 종암동까지 들어간 것은 1935년 전후 무렵이었는데, 성북 지역으로 봐서는 실로 하나의 공간혁명이었다. 1930년대 초 서울 전체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자, 시 외곽이었던 성북구 지역도 행정구역 확장과 시가지계획에 따라 1936년에 서울로 편입되었다. 자연히 교통 수요가 늘어나면서 버스노선이 만들어지고 1941년 전차노선이 혜화동에서 돈암동까지 연장되었다.
  • 삼태기마을 마을만들기 사업
    사건
    삼태기마을 마을만들기 사업
    2012년부터 추진해온 성북구 화랑로18길(상월곡동) 일대 삼태기마을의 주거 환경 안정과 복지를 위한 마을공동체 사업이다. 삼태기마을은 성북구 상월곡동과 석관동에 걸쳐 있는 천장산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모양이 삼태기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12년 서울시 건강친화마을만들기 시범사업지로 선정되었고, 2013년 10월 서울시 주민참여형 주거재생사업지로 선정되었다. 성북구청의 지원과 삼태기 마을주민협의체와 활동가들의 헌신으로 고령화되고 쇠락해가는 마을을 보다 살기 좋고 건강한 마을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북정마을 재개발 사업
    사건
    북정마을 재개발 사업
    성북동 북정마을에 대한 서울시의 재개발 사업이다. 서울시는 2019년 3월 14일, 성북2구역과 신월곡1구역의 재개발 결합개발을 발표했는데, 떨어져 있는 두 지역의 결합개발을 통해 고밀개발구역인 신월곡1구역과 저밀관리구역인 성북2구역을 특성에 맞게 개발·정비하는 방식이다. '북정마을'로도 불리는 성북2구역은 성곽마을로 한양도성과 구릉지형에 앉혀진 저층 주택들이 마을 경관을 이루며, 매년 월월축제를 진행하는 등 지역공동체 활동이 활발한 마을이다. 따라서 북정마을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향을 모색한 결과이며, 신월곡1구역에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개발이익을 북정마을 정비사업 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주민들의 반대도 많은 상황이다.
  • 미아리정착지사업
    사건
    미아리정착지사업
    1958-1959년에 계획되고 시행된 미아리 일대의 주거지 정착사업이었다. 서울 지역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급격히 증가한 인구로 인해 주거난은 심각해졌고 도심 곳곳에 빈민들의 열악한 달동네가 형성되었다. 이를 타개하고자 도시 외곽에 정착지 사업을 계획했는데, 미아리도 그중 하나였다. 미아리 공동묘지를 옮긴 후 그 자리에 120만 평의 대지에 3년간 연차계획을 세워 대대적인 택지를 조성하고 문화촌을 건설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1959년에 착수하여 3만 평의 택지에 2,934가구를 이주시키는데 그쳤다. 이 계획의 진행 중에 4·19혁명, 과도정부, 제2공화국 등 행정의 공백기가 있었고, 이에 따라 주변 일대에 걷잡을 수 없이 새로운 무허가 판자집이 난립하여 공사를 진척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 1960년대 미아로 확장공사
    사건
    1960년대 미아로 확장공사
    현재의 혜화동로터리부터 미아리고개를 넘어 돈암동과 길음동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정비하고 확장한 사건이다. 1963년 행정구역개편이 이루어져, 그동안 경기도 양주군에 속했던 창동, 월계동, 쌍문동, 공덕동, 하계동, 중계동, 상계동 도봉동이 성북구로 편입되면서 서울 동북부를 관할하는 거대한 구가 탄생하게 되었다. 게다가 수유지구토지구획정리사업에 의한 신시가지 개발이 확정되자, 동북부의 관문인 미아로 확장공사가 시급해졌다. 1950년대 후반부터 추진된 미아로 확장공사는 예산배정문제로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1964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때의 공사로 미아로(현 동소문로) 도로의 폭은 8m에서 구간에 따라 23~35m로 확장되었고, 미아리고개의 경사도 10m이상 낮아졌다.
  • 마을만들기 공모사업
    사건
    마을만들기 공모사업
    2012년부터 성북구청에서 공모하여 지원하고 있는 마을공동체 활동 지원 사업이다. 성북구청에서는 성북구의 지역공동체 복원을 위해 마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주민들이 중심이 되는 다양한 분야의 마을만들기 사업을 2012년부터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다. 마을만들기 공모사업은 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통하고 공감하는 과정 속에서 마을이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의 의미를 넘어 행복한 삶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주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작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업에는 성북구에 거주하거나 생활권(직장, 학교 등)을 영유하고 있는 3인 이상 주민모임 또는 비영리단체(법인)가 지원할 수 있다.
  • 동소문 철거
    사건
    동소문 철거
    일제가 1928년 동소문의 문루(門樓)를, 1939년 남아있던 동소문의 석문(石門)을 철거한 사건이다. 동소문은 혜화문이라고도 부르는데, 도성 4대문의 사이사이에 배치된 4개의 소문 중 하나이다. 혜화문은 원래 석문만 있었다가 영조 때에 문루를 올렸는데, 일제강점기 동안에는 전혀 관리되지 않아 낡았고, 1928년 문루가 낡았다는 이유로 문루를 헐어 버렸다. 이후 경성(서울)의 확대에 따른 돈암지구 구획정리사업을 추진하면서 돈암동까지 전철을 놓게 되었는데, 그 길이 동소문을 지나게 되자 남아있던 석문마저 헐어 버렸다. 동소문은 1994년에 지금의 위치(성북동 1가 1-1)로 복원하였는데 원래 위치는 이미 도로가 되어 있어서 조금 옆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 돌봄, 배움, 소통을 위한 정릉 마을카페 만들기
    사건
    돌봄, 배움, 소통을 위한 정릉 마을카페 만들기
    2012년 ‘성북구 마을만들기 공모사업’을 통해 정릉동 주민들이 지역공동체 사업으로 카페를 만들었던 일이다. 정릉동의 주민들이 마을 내에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만날 수 있는 사랑방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동네 사람들의 소모임과 문화생활을 엮는 커뮤니티 카페를 구상하였고, 구청의 도움을 받아 ‘행복한 정릉 카페’를 열었다. 처음 발의한 사람들은 정릉동에 살면서 아이를 키우던 5명의 엄마들이었기에 아이 돌봄, 육아와 재교육 관련 배움의 공간, 정보 교류를 위한 소통 공간의 필요성이 컸기에 부담없이 들러서 만날 수 있는 카페라는 형태의 공간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현재 정릉카페는 운영되고 있지 않으며, 2014년 폐점된 것으로 추정된다.
  • 돌곶이 문화지도 그리기 프로젝트
    사건
    돌곶이 문화지도 그리기 프로젝트
    2013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돌곶이 생태문화 연구팀이 진행한 석관동 활성화를 위한 예술마을 기획 프로젝트이다. 돌곶이는 석관(石串)의 순우리말이다. 성북구 석관동 내에서도 조선시대 왕릉인 의릉이 있어 개발에 제한을 받고 있는 한예종 주변 지역은 어찌보면 서울에서 가장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는 곳일 지도 모른다. 이 지역이 좀더 활기찬 마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예종의 이동원 교수를 필두로 여러 교수와 학생들이 발벗고 나섰다. 그 첫 단추가 이 지역을 예술마을로 재탄생시키는 구상을 하고, 현황파악과 밑그림을 그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그것이 ‘돌곶이 문화지도 그리기’였다. 이 작업을 통해서 돌곶이마을과 문화적 맥락이 결합된 내용들을 쉽게 정리한 자료집이 만들어졌다.
  • 경성시가지계획 돈암지구 구획정리사업
    사건
    경성시가지계획 돈암지구 구획정리사업
    1936년부터 1941년 사이에 시행된 서울시 최초의 토지구획 정리사업으로, 현재의 성북구 돈암동, 동선동, 삼선동, 안암동, 보문동 일대를 새로운 시가지로 조성하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경성(서울)의 인구 증가에 따라 도시의 확장이 필요해졌고, 총독부는 1936년 ‘경성시가지계획’을 수립하여 구획정리를 시행하였다. 사업 대상 지역의 토지를 매입하고, 이미 거주하던 빈민들을 몰아내고, 택지를 분양하고 교통망을 설치하였다. 돈암지구의 정비는 1937년 시작하여 1940년 12월 사업이 종료되었다. 1960년대 돈암지구 지도를 보면 1930년대 후반에 제작된 토지구획정리계획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당시 토지구획정리 사업이 이후 시가지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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