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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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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경궁로
    장소
    창경궁로
    퇴계로4가교차로에서 한성대입구역까지 이르는 도로이다. 1966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1093호로 혜화동로터리부터 창경궁, 주교동, 동국대 앞까지 이르는 구간이 창경로로 제정되었다가,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로 종로4가를 기준으로 창경로가 창경궁로와 배오개길로 구분되었다. 이후 2012년에 2개 이상 자치구에 걸쳐 있는 광역도로 19개에 대한 도로명이 통일되면서 퇴계로에서 한성대입구까지의 도로 구간의 명칭이 창경궁로로 통일되었다.
  • 한성대학교 캠퍼스타운 사업
    사건
    한성대학교 캠퍼스타운 사업
    한성대학교가 서울시의 지원을 받고 진행하는 도시재생사업이다. 캠퍼스타운 조성사업은 서울시가 대학과 지역 협력을 통한 지역 공동체 구축을 목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으로 사업 규모와 지원 기간 등에 따라 종합형과 단위형으로 구분된다. 한성대학교는 2017년부터 단위형 캠퍼스타운 조성 사업을 진행해왔다. 2017~2019년 진행된 캠퍼스타운 사업은 성곽마을의 역사문화예술자원 발굴 및 활용과 성곽마을 주민의 경제활동 기회 증대와 사회적 자본 축적 지원을 목적으로 진행되었고, 2020~2022년에 진행된 사업은 "한성 아트 스타트업 밸리"조성을 목적으로 예술, 문화, 기술을 융합한 스타트업 육성 밸리 조성, 지역상생 네트워크 등을 구축을 진행하였다. 2022년 '2023 캠퍼스타운 단위형 사업'에도 선정되어 2025년까지 사업을 지속할 전망이다.
  • 숭신방
    장소
    숭신방
    조선시대 초기부터 성 밖에 있던 한성부 동부 12방 중의 하나로, 현재의 성북구 돈암·동선·삼선·성북·안암·정릉·종암동 일대가 이에 속하였다. 한성부의 영역은 도성과 성저십리(城底十里)로 이루어졌는데 그 범위가 매우 넓어 이에 해당하는 영역을 한성부가 단독으로 통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기에 1396년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누었는데 방은 공식적으로 조선 전기 한성부의 가장 하위 행정 조직이었으며, 이때부터 5부 중 동부(東部)에 숭신방(崇信坊)이 확인된다. 이 명칭은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숭신방이 숭신면(崇信面)으로 변경될 때까지 사용되었으며 숭신면은 3년 뒤인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崇仁面)에 편입된다.
  • 1111 지선버스
    장소
    1111 지선버스
    성북구 일대에서 운행되는 지선버스이다. 성원여객과 한성운수에서 공동배차로 운영하며, 강북구 번동에 위치한 한성운수에서 시작하여 장위동, 월곡동, 종암동, 안암동, 보문동, 삼선동 등 성북구 일대를 지나 성북동에 위치한 심우장 부근까지 도달한 후 회차한다. 구 417번 지역순환버스가 그 전신이며, 2004년 7월 1일 서울시 버스 체계 개편 때 번호가 1111로 변경되었다. 배차간격은 8~12분, 운행시간은 첫차가 오전 4시 20분, 막차가 밤 11시 20분이다. 타 지역에서 성북동으로 이동 시 유용한 노선이다.
  • 극단 날으는 자동차
    인물
    극단 날으는 자동차
    삼선동에서 활동하는 시민 뮤지컬 극단이다. 2005년 1월 8일 '즐거운 하루를 선사하자'라는 모토 아래 창단되었으며 서울 뿐만 아니라 분당과 일산에서도 극단을 운영하며 공연을 하고 있다. 본 극단의 주요 사업은 시민 뮤지컬 극단으로 어린이·청소년·대학생·성인극단 등이 있으며,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뮤지컬 교육 및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연극놀이와 간단한 뮤지컬 교육을 통해 참여자들이 직접 작품을 제작하는 '새터민 여명학교',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매예방 프로젝트인 '실버 극단',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예술교육을 진행하는 '자유시간' 극단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2022년 현재 약 150여 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보문로22길 28(안암동3가 86)에 있다가 현재의 주소인 보문로 152(삼선동5가 334)로 이전하였다.
  • 정각사
    장소
    정각사
    성북구 삼선교로8길 57-16(삼선동1가 277-6)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1956년 승려 광우가 "바르게 믿고 바르게 행하여 참사람 되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창건하였다. 2023년 현재 매월 두번째 일요일 가족법회, 매월 음력 1일 초하루 법회 등을 통해 도심포교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문화재자료 정각사 석가불도(正覺寺 釋迦佛圖), 서울시 유형문화재 정각사 목 아미타불좌상(正覺寺 木 阿彌陀佛坐像) 등이 소장되어 있다.
  • 권혁웅
    인물
    권혁웅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다. 1967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성북구 삼선동에서 자랐다.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과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1970-80년대의 문화적 향수와 삼선동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쓴 시를 모아 시집 『마징가 계보학』(2005)을 펴냈다. 그 외에도 『황금나무 아래서』,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등의 시집, 실험적 경향의 시에 주목한 비평집 『미래파』등을 출간했고, 이론서로는 『한국 현대시의 시작 방법 연구』, 『시론』 등이 있다. 고려대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11년부터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박영준
    인물
    박영준
    평안남도 강서 출생으로 호는 만우(晩牛)이며 박영준(朴映逡)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소설가, 교육자이다.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들어가 1934년 졸업하였다. 같은 해에 장편 「1년(一年)」이 『신동아』 현상모집에 당선되고, 단편 「모범경작생(模範耕作生)」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와 콩트 「새우젓」이 『신동아』에 동시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다. 1938년 만주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여 1962년부터 연세대학교 교수로 근속하였다. 광복 전까지 주로 농촌의 가난을 소재로 하는 농촌소설을 많이 썼다. 이후 소설의 무대를 도시로 옮겨 소시민의 생활을 중심으로 인간고독과 윤리문제를 추구하였다. 동연출판사에서 2006년에 단편집 전6권, 중장편집 전7권의 <박영준 전집>을 간행하였다.
  • 동수현
    인물
    동수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였으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산업정보시스템공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기술경영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한산업공학회지』, 『경영과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하였다.
  • 방광에 고인 그리움
    작품
    방광에 고인 그리움
    권혁웅 시인의 시집 『마징가 계보학』(창비, 2005)에 수록되었다. 1967년에 태어나 성북구 삼선동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삼선동 산동네의 흔적과 기억을 시에 담았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을 인체의 내장에 비유한 이 시는 가난하고 남루했던 과거 풍경에 재치와 해학을 더하였다. 작가는 지난날 겪었던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거나 회피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는 어린 시절을 함께한 산동네에서의 삶을 자신의 근본이라 여기고 시를 통해 보통 사람들의 '소문자 역사'를 기록하였다.
  • 세상의 끝
    작품
    세상의 끝
    권혁웅 시인의 시집 『마징가 계보학』(창비, 2005)에 수록되었다. 1967년에 태어나 성북구 삼선동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1970-80년대의 문화적 향수와 삼선동의 장소성을 바탕으로 시를 썼다. "동도극장을 아십니까?"로 시작되는 이 시는 1948년부터 1981년까지 삼선동(동소문동 3가)에 있었던 동도극장을 떠올리며 독재 정치와 가난, 소외로 기억되는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 형관
    작품
    형관
    형관(荊冠)은 만우(晩牛) 박영준(朴榮濬, 1911-1976)이 『동아일보』에 1955년 10월 26일부터 1956년 3월 26일까지 연재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박영준 전집 9권(동연출판사, 2006)에 포함되어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남자 주인공 '현주'가 우연히 알게 된 3명의 여성인 '종아', '혜련', '경옥'과 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현주는 돈암동에 거주하며, 사건은 성북구 내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다. 박영준은 광복 전까지 주로 농촌소설을 많이 썼지만, 이후 도시 소시민의 생활을 중심으로 인간고독과 윤리문제를 추구하였다. 그의 문학적 특성을 살펴보면, 인간적인 성실성과 정직을 통한 '선량한 인간상의 추구'로 일관하는데, 형관의 주인공 현주를 통해서 그 같은 주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 나폴레옹 이야기
    작품
    나폴레옹 이야기
    권혁웅 시인의 시집 『마징가 계보학』(창비, 2005)에 수록되었다. 1967년에 태어나 성북구 삼선동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1970-80년대의 문화적 향수와 삼선동의 장소성을 바탕으로 시를 썼다. 「나폴레옹 이야기」는 시인이 학창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일상 속에서 만났던 다양한 '나폴레옹'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작품에서 나폴레옹은 거대한 세계사 속 위인이 아닌, 평범한 개인들이 경험하는 그 시대의 문화 코드라고 할 수 있다.
  • 369마을
    장소
    369마을
    성북구 삼선교로2,4,6길 일대(삼선동1가 11-53번지 일대)의 한양도성 성곽마을이다.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2013년 이후 주택 재개발 정비 구역에서 해제되어 2014년에는 주거 환경 관리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었다. 이후 해당 행정구역인 삼선6구에서 착안된 369마을이라는 이름이 주민 회의에서 탄생하였다. 또한 369마을은 '마을의 정체성과 문화를 바탕으로 주민이 주도하고 화합하는 세가지 가치를 지닌 언덕 마을(三育丘)'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마을 내 앵커시설로 마을 주민 회의나 문화 프로그램 등이 열리는 369사랑방, 카페 369마실, 전시 및 공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 가능한 가변 공간인 369예술터, 지역 예술가와 청년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369예술공방 등이 마련되어 있다.
  • 김성환, <6.25 스케치>
    작품
    김성환, <6.25 스케치>
    만화가이자 화가인 김성환 화백이 한국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105점의 연작이다. 1949년 18세의 나이에 만화가로 데뷔한 김성환은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크로키, 동양화, 만화풍 등 다양한 기법으로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작품은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말부터 그 해 9월 말 서울 수복까지와 그 이후 군에 복무하면서 종군화가로서 남긴 그림, 이렇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전자는 그가 살던 정릉동을 비롯하여 돈암동, 월곡동, 미아리고개 등을 그림으로써 전쟁 초기 성북구 일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시각적 자료이다. 스케치의 모서리에 적어놓은 날짜와 장소는 이 작품의 기록성을 강화한다.
  • 노인, 최신 영화를 보러 가다
    작품
    노인, 최신 영화를 보러 가다
    소설가 박완서는 월간 『현대문학』에 2008년 2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에세이를 연재하였다. 본 작품은 연재에세이 4회에 해당하며, 2010년 펴낸 박완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도 수록되었다. 여고시절부터 노인이 된 2008년 현재까지 경험한 극장에 얽힌 기억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담담한 어투로 담아냈다.
  • 1970년대 한양도성 보수 복원
    사건
    1970년대 한양도성 보수 복원
    1975년부터 1982년까지 진행된 한양도성 복원공사이다. 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개발의 미명아래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1960년대에 부분적인 보수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복원이 진행된 것은 이 사업이 처음이었다. 보수 복원은 성북지구, 삼선지구, 광희지구 등 8개 지구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이때 성북구에 걸쳐 있는 구간인 성북지구(숙정문~혜화문)는 성곽 1,429m가 복원되었고, 삼선지구(혜화문~낙산 정상)는 성곽 1,037m 및 여장 1,033m가 복원되었다. 이 보수 복원은 한양도성이 더 훼손되는 것을 막고 당시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문화재 가치 보존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진행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고증 없이 단기간에 진행되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 블론디 사진실
    장소
    블론디 사진실
    성북구 보문로 150(삼선동5가 340)에 위치한 사진관이다. 'Since 1964'라고 쓰여있는 간판에서 알 수 있듯이 개업한 지 50년이 넘은 곳이다. 원래 건물 1층 출입구 왼편에 위치한 공간이 사진관의 사무실로 이용되었고 통유리창을 통해 밖에서도 내부에 진열된 사진을 볼 수 있었으나 현재는 이곳에 음식점이 들어오고 사진관의 사무실은 음식점 뒤편으로 옮겼다. 처음 개업을 하신 사장님께서 지금까지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 김영기 집터
    장소
    김영기 집터
    삼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김영기의 집터이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기술된 주소지 '서울 성북(城北) 삼선(三仙)1 247-1'을 토대로 현재의 위치를 추정한 것으로, 삼선동 재개발 진행 구역에 인접한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다. 현재 그 자리에는 빌라 건물이 새로 건축되었다.
  • 김영재 집터
    장소
    김영재 집터
    동소문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김영재의 집터이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김영재의 거주지는 '서울 성북(城北) 동소문(東小門) 3가(街) 77'이었다. 한성대입구역과 성신여대입구역 사이의 대로변에 위치한 해당 장소의 건물에는 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건물 뒤쪽은 성북천과 접해있다.
  • 김동수 집터
    장소
    김동수 집터
    삼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김동수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김동수는 '서울 돈암(敦岩) 200-16'에서 거주하였다. 옛지도를 통해 집터 추정 장소를 정하였다. 집터 추정 장소에는 현재 빌라 건물이 들어서 있다.
  • 윤하진 집터
    장소
    윤하진 집터
    삼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윤하진의 집터 추정 장소이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따르면 윤하진의 거주지는 삼선동3가 50번지였다. 삼선초등학교 바로 앞에 위치한 윤하진의 집터 추정 장소에는 현재 한성대학교 글로벌빌리지라는 건물이 들어서 있다.
  • 강영준 집터
    장소
    강영준 집터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강영준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그는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으며, 당시 돈암정 499-11번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거주지 일대는 아파트단지와 빌라가 들어섰다. 현재의 성북세무서 지역으로 추정된다.
  • 낙산수영장
    장소
    낙산수영장
    성북구 삼선교로16길 116(당시 주소 삼선동2가 389)에 있던 수영장이다. 한성여고 옛 교내(현 한성대학교 자리)에 있던 수영장이다. 50m × 25m 규모의 정규 규격 수영장과 어린이용 보조 수영장이 있었다. 이 수영장은 방학중에만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으며, 접근성이 높아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1986년 한성대학교가 한성여중, 한성여고 자리로 이전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수영장 부지에는 현재 한성대학교 공학관과 상상빌리지가 들어서 있다.
  • 윤하진
    인물
    윤하진
    삼선동3가(현 보문로29길 103)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단체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하여 재무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에는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에서 오동진과 함께 사령부 제2영에 소속되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이후에는 국내진공작전을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압록강 연안에 설립된 광복군총영에서 활동했다. 평안남도 경찰국과 선천경찰서 폭탄투척에 성공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1926년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44년에는 잔칫집에서 일본의 패전을 강조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김영기
    인물
    김영기
    삼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32년부터 대구사범학교에서 한문·조선어 교사로 근무하며 학생들에게 민족적 긍지를 심어주면서 학생들의 황도교육비판·민족정신을 함양시켰다.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문예부 등 비밀결사의 조직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그의 실질적 지도아래 이루어졌다. 1941년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간행물인 『반딧물』이 일본 경찰의 손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나 체포되었고, 6개월간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광복 후 대구사범학교 교장, 경북 교육회장, 서울시 교육위원 문화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의하면 서울 성북 삼선1 247-1에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 3월 23일 경기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100-200명 규모의 만세시위
    사건
    3월 23일 경기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100-200명 규모의 만세시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현 성북구 돈암동, 동선동, 삼선동 일대)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이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8시경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를 비롯한, 동묘리, 청량리, 왕십리 등 경성시외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모두 다음날 24일 오전 1시에는 진정되었다고 한다. 돈암리 시위의 규모는 기록물에 따라 100-200명이 참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시위의 주체는 보통사람들이었으며,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병한 군대는 없었고, 18명이 검거되었다고 한다.
  • 한중 평화의 소녀상
    장소
    한중 평화의 소녀상
    성북천 분수마루 광장에 있는 조각상이다. 한·중 소녀상 프로젝트는 2014년 미국 글렌데일에 세워진 한국인 '위안부' 소녀상을 본 칭화대학교[淸華大學校] 교수 판위친과 영화제작자 레오스융이 원제작자 김운성·김서경 작가 부부에게 연락하면서 성사되었다. 한·중 소녀상은 2015년 동소문동 가로공원 앞에 설치되었는데 한·중 소녀상을 함께 제막한 것은 성북구가 처음이었다. 한국인 소녀상 뒤에는 '위안부' 할머니의 그림자가 있고, 중국인 소녀상 뒤엔 중국 '위안부' 할머니의 발자국을 재현해 놓았다. 또한, 빈자리는 다른 아시아 국가의 희생자를 위한 자리로 남겨두었다. 2020년 3월 가로공원 부지에 창작연극지원센터 건립공사가 진행되자 철거하여 따로 보관하다가 2021년 2월 성북천 분수마루 광장으로 이전설치되었다.
  • 조영숙
    유물, 인물
    조영숙
    성북구에 거주하는 전통연희 공연가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예능보유자이다. 발탈은 인간 배우와 발과 손을 이용하여 조종하는 인형 배우가 함께 등장하여 재담을 중심으로 연행하는 전통예술이다. 조영숙은 함경도 출신으로 판소리 명창인 조몽실의 딸로 태어났다. 1951년부터 임춘앵 여성국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했으며, 임춘앵의 대역을 할 정도로 인정받은 여성국극인이었다. 1980년대 중반 이동안[1906-1995] 발탈 보유자를 만나 2000년 10월 18일에 전수교육조교, 2012년 2월 2일에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전수조교 시절 성북구청 옆에 전수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 고령 나이지만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전통을 지키고 있다.
  • 삼선동 선녀축제
    사건
    삼선동 선녀축제
    매년 10월 삼선동에서 개최되는 마을 축제이다. 삼선동이라는 동명은 ‘삼선평’에서 따온 것인데, 이 ‘삼선평’이라는 지명에 대해 옥녀봉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세 신선이 옥녀(선녀)와 놀았다는 설화가 내려져 오고 있다. 삼선동 선녀축제는 이 같은 마을의 유래를 재현하여 마을전통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 축제의 백미는 한양도성 장수마을 구간에서 시작되는 퍼레이드로, 행렬은 한양도성~돈암시장~삼선교 분수마루로 이어지며, 삼선동 직능·자생단체원, 한성대 재학생, 자원봉사자, 자치회관 수강생 등이 참여한다. 퍼레이드 행렬이 삼선교 분수마루에 도착하면 주민장기자랑과 공연, 다양한 체험부스 등이 진행된다.
  • 삼선동 주민센터
    장소
    삼선동 주민센터
    성북구 보문로 190(삼선동4가 349-1)에 있는 행정기관이다. 조선시대 혜화문 밖의 동소문동, 동선동 일대의 평평한 들판을 삼선평이라고 칭한데서 동이름이 유래되었다. 1949년 5월 13일 삼선동 1~5가로 신설 분리되었다. 삼선동 1, 2가는 삼선1동의 담당이었고, 삼선2동은 1동의 경계도로 서쪽, 산54, 467-11, 산48의 동쪽지역을 담당했고, 삼선3동은 돈암동 산 54에서 산 48에 이르는 도로 서쪽, 동소문 성벽 이동, 삼선교 아래 성북천 이남 지역을 담당하였다. 이후 1980년 삼선2동과 3동이 통폐합되었고, 2007년 12월 삼선동으로 통합되었다. 현재 삼선동 1~5가와 동소문동 2가, 3가, 5가를 담당하고 있으며, 담당 지역의 면적은 0.92㎢이고 1만 2천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 서울삼선초등학교
    장소, 인물
    서울삼선초등학교
    성북구 보문로 29길 106(삼선 3가 30-4)에 위치한 공립초등학교이다. 1949년 9월 1일 개교하였다. 1950년 2월 신축 교사를 준공하였고, 1966년과 1967년에는 별관을 준공하였다. 1976년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83년 본관 목조건물을 철거하고 이듬해 본관 교사를 개축하고 동관을 신축하였다. 2017년 장애인식개선 백일장대회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고, 2018년 12월 청렴 우수학교 교육장 표창을 받았다. 교훈은 ‘건강한 몸으로 바르게 자라며 슬기롭게 배우자’이다. 2019년 2월 제66회 졸업식을 진행하고 누적졸업생 28,121명을 배출하였다.
  • 삼선동/인구
    장소
    삼선동/인구
    성북구 삼선동 인구변화와 관련된 내용이다. 혜화문 밖 드넓은 들판을 일컫던 삼선평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43년 서울에 구제(區制)가 실시되면서 동대문구에 속하였다가 1949년 성북구가 신설되면서 돈암동에서 분동되었다. 삼선동이 처음 신설된 당시 1·2·3동이 있었으나 1980년 삼선2동과 삼선3동이 통합되었고, 2007년 삼선1동과 삼선2동이 통합되었다. 삼선1동의 인구는 1947년 13,144명, 1953년 4,992명, 1970년 10,011명, 1990년 15,082명이었고, 1980년 삼선2동의 인구는 12,092명, 삼선3동의 인구는 9,367명이었다. 2018년 기준으로 삼선동의 인구는 26,971명, 세대수는 12,672세대이다.
  • 장수마을 할머니쉼터
    장소
    장수마을 할머니쉼터
    성북구 삼선동1가 291-16에 위치한 주민쉼터이다. 장수마을(삼선교로4라길 23-28)과 삼선공원(삼선동1가 303)이 축대를 사이에 두고 맞닿은 곳에 만들어졌다. ‘할머니쉼터’라는 팻말이 붙어 있으며 장수마을에서 삼군부 총무당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다. 겨울에는 찬 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 천막이 덧씌워져 있다. 쉼터 안에는 의자와 탁자가 놓여있으며, 장수마을 어르신들의 쉼터이자 커뮤니티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 성북이음도서관
    장소
    성북이음도서관
    성북구 보문로 168(삼선동5가 411)에 위치한 도서관이다. 2018년 7월 27일 성북구청 12층에서 개관하였다. 성북구의 열두 번째 구립도서관으로 지역의 자원과 정보를 연결하고 공유하는 도서관을 지향한다. 열람실과 세미나실, 카페 등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2019년 12월 기준으로 3천 9백여 권의 도서와 5종의 연속간행물을 소장하고 있다.
  • 최동호
    인물
    최동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교수로 1988년부터 2014년까지 재직하였다. 1948년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하여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지방 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고등학생 시절 동급생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암송하는 것을 듣고 시를 쓰는 문학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976년에 첫 시집 『황사 바람』을 발간한 후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본격적인 문학평론 활동은 1979년 『중앙일보』 신촌문예에 「꽃, 그 시적 형상의 구조와 미학」이 당선되면서 시작한다. 1985년 첫 시론집 『현대시의 정신사』를 간행한 후 다수의 시집과 평론집을 출간했다. 문예지 『서정시학』과 『미래서정』을 창간했다.
  • 옛 돈암동
    장소
    옛 돈암동
    현재의 성북구 돈암동, 동선동, 삼선동 일대를 말한다. 혜화문부터 미아리고개에 이르는 지역은 1894년 갑오개혁 때 '한성부 동서 숭신방 동문외계 돈암리'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숭신면 돈암리가 되었다가 고양군 숭인면에 속한 '돈암정'이 되기도 했다. 해방과 함께 동대문구 '돈암동'이 되었다가, 1949년에 동대문구에서 분리하여 성북구를 신설하면서 성북구 돈암동으로 될 때 돈암동의 지역이 넓은 관계로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동으로 분리하였다. 옛 돈암동 지역은 성북구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 삼선상가아파트
    장소
    삼선상가아파트
    성북천을 복개하면서 성북구 동소문로2길 일대에 건축된 상가아파트였다. 1967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70년대 초반까지 대규모 상가아파트가 순차적으로 준공되고 개업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설의 노후와 성북천의 복원이 결정되면서 철거가 시작되어 역시 순차적으로 삼선상가아파트의 철거와 성북천의 복원이 시행되었다. 현재는 모든 사업이 완료되어 과거 상가아파트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그 자리엔 복원된 성북천을 따라 조성된 야외공연장과 산책로, 그리고 주변의 음식점들이 성행하고 있다.
  • 목마른 계절
    작품
    목마른 계절
    1972년 『여성동아』에 ‘한발기(旱魃期)‘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장편소설로, 1978년 수문서관(修文書館)에서 ‘목마른 계절‘로 제목을 바꿔 출판하면서 4월 부분이 수정되고 연재 당시에는 없었던 5월 부분이 첨가되었다. 1950년 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의 서울을 무대로 평범한 개인이 온몸으로 경험한 6.25전쟁을 시간 순으로 서술하였다.
  • 성북천 하늘다리
    장소
    성북천 하늘다리
    성북천에 놓인 다리이다. 박완서 소설에는 양회다리가 자주 등장하는데 성북천이 복개되면서 사라졌다. 성북천 하늘다리는 성북천이 복원되면서 양회다리가 있던 비슷한 위치에 새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양회다리는 석회로 만든 다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박완서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집에서 성북경찰서까지는 골목을 나가서 신안탕 앞에서 꺾여서 천변을 끼고 2백 미터쯤 가다가 널찍한 양회다리만 건너면 곧이었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양회다리는 돈암동에 사는 주인공의 집 위치를 알려주는 지표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신안탕이 있던 자리인 마을버스차고지에서 하늘다리까지 실제 거리는 약 150m이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삼선동과 동선동의 경계에 위치한다.
  • 삼선동 풍경
    작품
    삼선동 풍경
    근현대의 조각가 김종영[1915-1982]의 작품이다. 그는 한국 조각의 1세대로 근대조각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그는 삼선동에서 20년 살면서 자신이 사는 삼선동을 그림의 소재로 자주 다루었다. 1976년에 완성한 이 그림은 채도가 낮아 차분한 느낌을 준다. 현재 김종영미술관에서 소장중이다.
  • 삼선동 풍경
    작품
    삼선동 풍경
    근현대의 조각가 김종영[1915-1982]의 작품이다. 김종영은 한국 1세대 조각가로 근대조각의 선구적 작가이자 교육자로 평가된다. 그는 삼선동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삼선동의 풍경을 드로잉 소재로 자주 다루었다. 1973년에 완성한 이 그림은 커다란 전신주 뒤로 경사지대에 주택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당시 삼선동의 풍경을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현재 김종영미술관에서 소장중이다.
  • 성북구 성북동
    작품
    성북구 성북동
    1982년 2월, 『한국문학』 10권 2호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성북구 성북동에 어렸을 때부터 오랜기간 거주한 주인공이 1인칭 시점으로 성북동의 옛모습을 회상하고 변해버린 80년대 현재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쟁, 산업화를 거쳐 80년대까지 성북동의 변화상을 자연환경, 도로 교통, 주거, 직업, 유흥 등 다방면에 걸쳐 묘사하고 있어 성북동의 역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작품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자전적 소설로 1995년 웅진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앞서 출간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6.25전쟁 당시 1951년 1월 4일에 국군이 다시 후퇴를 하게 되었고(1.4후퇴) 총상을 입은 오빠를 데리고 멀리 피난갈 수 없어 현저동으로 거짓피난을 가 있는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민군 치하를 살아내던 화자의 가족은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또 한 번 북쪽 교하로 거짓피난을 갔다가 그 해 4월 4일에 국군이 서울을 재탈환하자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살던 집으로 돌아간다. 무분별한 ‘빨갱이 색출‘에 힘없는 보통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절절히 그려내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개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전시 및 전후 사람들의 생존을 향한 몸부림과 생활 풍경 등이 세밀하고 생생하게 담겨 있다.
  • 정각사 석가불도
    유물
    정각사 석가불도
    정각사가 보유하고 있는 불화이다. 1897년에 조성된 것으로 화폭은 세로 117㎝, 가로 91㎝로 작은 편인데, 일부 채색이 박락되긴 하였지만 전체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채색은 적색이 주조를 이루고 녹색과 청색, 흰색, 황색 등을 함께 사용하였으며, 필선은 철선묘의 곧고 강한 묘선이 사용되었다. 화기에 의하면 이 불화는 영운 봉수와 동호 진철, 소현, 편수인 봉화, 상조, 긍엽 등이 함께 조성하였다. 이 불화는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조성연대가 확실하며, 조선 말기 서울 지역의 대표적 화승인 영운 봉수와 동호 진철이 중심이 되어 조성한 불화이므로 역사적 가치가 깊다. 2007년 5월 10일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었다.
  • 정각사 목 아미타불좌상
    유물
    정각사 목 아미타불좌상
    정각사가 보유하고 있는 불상이다. 이 불상은 높이 29.2㎝의 작은 불상으로 개금 원문(改金 願文)에 의하여 아미타불상으로 밝혀진 불상이다. 갸름하게 보이는 얼굴, 약간 긴 상체, 짧은 하체의 결가부좌 자세 등 18세기 초의 목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목불상이 근래에 개금된 것은 1916년 4월 19일이며 최근에도 다시 한번 개금되었다. 이 아미타불상은 양식상 18세기 초기의 목불상으로는 보기 드물게 단아하고 우아한 불상이며, 20세기 초의 개금 원문 자료도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2007년 5월 1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 한양도성
    장소
    한양도성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이다. 조선 초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해 성곽을 쌓도록 하고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을 두었다. 조선시대 때 여러 번에 걸친 수리를 하였는데 쌓는 방법과 돌의 모양이 각기 달라 축조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근대도시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성벽과 성문을 무너뜨렸으나 1968년 숙정문 중건을 시작으로 복원이 시작되었고, 1975년 서울성곽 정화 사업을 통해 전 구간의 중건이 이루어졌다. 한양도성은 전체 구간의 70%, 총 13.7㎞(2020년 기준) 구간이 남아있거나 중건되었고, 숙정문·광희문·혜화문 등의 성문도 중건되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 장수마을
    장소
    장수마을
    성북구 삼선교로4라길 23-28(삼선동1가 300) 일대에 형성된 마을이다. 장수마을은 한국전쟁 후 서울로 모여든 서민들이 움막, 천막집, 무허가 판잣집 등을 짓고 삶의 터전으로 삼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마을 뒤쪽의 한양도성 성곽 아래 가파른 구릉길을 따라 작고 나지막한 가옥들이 옹기종기 서로 맞붙어 있다. 이 지역이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되자, 전면 철거와 획일적인 아파트 재개발이 아닌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2008년에 주민협의회를 만들고 마을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마을 내에 작은 카페도 열었고, 마을박물관을 만들어 전시회도 진행하고, 벽화거리도 조성하여 관광객의 발길도 늘고 있다. 2010년대부터 확산된 도시재생사업의 선구적 형태이며,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에 선정되었다.
  • 삼군부 총무당
    장소, 유물
    삼군부 총무당
    성북구 삼선교로4나길 19(삼선동 1가 산1-13)에 위치한 조선말 삼군부의 청사 건물이다. 삼군부는 비변사를 폐지하면서 설치한 군사업무를 총괄하던 정부기구이다. 총무당은 삼군부의 중심건물인데, 1868년 처음 건축되었을 때의 위치는 현재의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있었으나, 1930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총무당’이라는 현판은 당시 무신이자 외교가였던 신헌(申櫶)의 글씨이다. 삼군부의 기능약화와 함께 통리기무아문의 청사로 이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보병대가 주둔하기도 했다. 총무당은 공릉에 소재한 청헌당과 함께 조선시대 관아 건축의 배치와 건물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현존자료이다. 1978년 12월 18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되었다.
  • 장수마을 주민쉼터
    장소
    장수마을 주민쉼터
    성북구 삼선동1가 302-10에 위치한 주민쉼터이다. 한성대학교 공학관 뒤편 골목길에 위치한 이 곳은 원래 골목길이 교차하는 곳에 있는 공터였는데, 쓰레기장처럼 사용되자 2011년 성북구청과 동사무소가 쓰레기 무단폐기를 막고자 이곳을 주차장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곳은 야채차가 와서 머물렀다 가는 곳이기도 하고, 주민들이 쉬는 곳이기도 하기에 주민들은 주차장 대신 쉼터로 재조성하자는 의견을 냈고, 받아들여져 작은 정자가 있는 아담한 쉼터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7년 말부터 쉼터 주변에 폐지가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지속적인 관리가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2020년 12월 현재 쉼터가 있던 자리와 그 주변 건물이 모두 공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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