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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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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장소, 인물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성북구 성북로 102-11(성북동 81-2)에 위치한 연구 단체이다. 1965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의 부인과 자제, 고고미술동인들이 발기인이 되어 북단장(北壇莊)에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전형필은 성북동에 토지를 구입해 1934년 북단장을 지었다. 이 자리에 문화재를 보존하는 공간으로 1938년 보화각을 세웠고, 보화각을 간송미술관으로 개칭하여 연구소의 부속박물관으로 하였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에서는 1968년 6월 『간송문고 한적목록』을 출간하고 1971년 10월부터는 매년 1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전시회를 개최하고 『간송문화(澗松文華)』를 펴내고 있다.
  • 진단학회
    인물
    진단학회
    한국학 연구단체이다. 진단학회는 1934년 창립되었다. 일본인 학자들이 주도하는 관변적 연구풍토에서 벗어나 한국학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풍토를 구축하기 위해서, 이병도를 비롯한 한국학을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만들었다. 진단학회에서 발간한 학술지인 『진단학보』는 국문으로 작성된 최초의 학술지였는데, 주소지는 성북동의 이병도 자택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문화와 역사를 지키려는 젊은 지식인들의 활동이었지만, 조선어학회 사건에 회원들이 연루되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활동이 중단되기도 하였고, 학회를 주도한 이병도가 식민사관을 전파하는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하여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 조선어학회
    인물
    조선어학회
    우리말과 글 연구를 목적으로 창립된 학술단체이다. 1908년 8월 주시경과 김정진 등이 ‘국어연구학회’를 창립하여 활동하였으나 1917년 활동이 중단되었다. 1921년 12월 임경재, 최두선, 이승규 등이 모여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학회를 재건하고, 1931년 1월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고쳤다. 조선어학회는 학문 연구뿐 아니라, 말과 글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일을 실천하였다. 1942년 일제에 의해 학회의 중요 인사가 모두 검거되거나 기소되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인해 학회활동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광복과 함께 활동을 재개하였고, 1949년 9월 5일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한 인사 중 성북구에 거주했던 인물로는 안재홍, 최두선, 이극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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