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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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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역사관
    장소, 유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역사관
    성북구 화랑로 14길 5에 소재한 전시관이다. 원래는 대통령이나 귀빈들이 묵는 영접실로 사용하였다. 2006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창립 40주년을 맞아 역사관으로 문을 열었고, 개장한 지 10년째가 되는 2016년 리모델링을 통해 2017년 초 재개관하였다. 한국 기초과학을 토대로 한 산업의 발전을 상징하는 건물로, 1970년대 만들어진 탁상용전자계산기, CFC(냉매 등에 사용되는 물질), 공업용다이아몬든 분말, PET필름 등 근현대 산업기술 분야를 대표하는 것들을 보유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규모의 건물로 1층에는 50년 역사관, 70년대 연구실, 2층은 최형섭 박사 기념홀, 연구업적관, 별관은 기획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2021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 흥천사 명부전
    유물
    흥천사 명부전
    흥천사 주불전 앞 왼쪽에 위치한 건물로 1855년(철종 6)에 순기(舜麒)가 건립하였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목조의 맞배기와집으로 좌우에 풍판을 달았다. 명부전이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해 주는 지장보살을 명부(冥府), 즉 저승의 주존(主尊)으로 모신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아미타신앙과 함께 유행하여 널리 퍼진 민간신앙이었고, 따라서 이 시기 사찰에는 명주부전을 건립하기 시작하였다. 이 건물은 옛 목조 건물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불사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85년 12월 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었다.
  • 흥천사 극락보전
    유물
    흥천사 극락보전
    흥천사 경내의 건축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 목조 와가로, 1853년(철종 4) 중수한 것이다. 돌층계를 정면에 두고 기둥은 창방과 평방으로 결구하고 기둥 사이에도 전, 후면에서는 각 2구, 측면에서는 각 1구의 공간포를 둔 다포식 건물이다. 이러한 구조와 형태는 조선말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시대 건축의 모범이 될 만하다. 이 건물은 19세기 사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화려한 목조 건축으로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 주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희귀한 사찰 건축이므로 매우 귀중하게 평가받고 있다. 1985년 12월 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되었다.
  • 서울 흥천사 대방
    유물
    서울 흥천사 대방
    돈암동 흥천사에 있는 건축물로 염불과 수행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흥천사 대방은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의 지원으로 절을 중창할 당시 중수된 것으로, 대원군이 직접 쓴 편액이 걸려있다. 조선 후기에는 정토 염불 사상이 크게 성행하여 접대를 위한 공간이 필요해지면서 누각 형태의 건축물이 큰 절과 왕실 원찰을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흥천사의 대방은 수행, 공양, 법회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구성된 복합건물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어 건축사적·불교사적 의의를 가진다. 2013년 12월 20일 등록문화재 제583호로 지정되었다.
  • 혜화문
    장소, 유물
    혜화문
    성북구 성북동과 종로구 혜화동의 경계에 뒤치한 한양도성의 사소문 중 하나이다.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불렸으며, 사소문 중의 하나이지만 사대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북쪽의 숙정문이 항상 닫혀 있으므로 함경도 등 북방으로 통하는 경원가도(京元街道)의 관문 역할을 했다. 도성 동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소문으로 불렀는데 1483년(성종 14)에 창경궁을 새로 건립하면서 동문(東門)을 홍화문이라고 명명하자 동소문과 혼동되므로 1511년(중종 6)에 동소문을 혜화문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일제강점기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에 전찻길을 내며 헐렸으나, 1994년 10월 18일 지금과 같이 복원되었다
  • 최순우 옛집
    장소, 유물
    최순우 옛집
    성북로15길 9에 위치한 고택이다. 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1916-1984]가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살았던 집으로 성북동 한옥이 점차 사라지던 때, 2002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이곳을 매입하여 '시민문화유산 1호’가 되었다. 1930년대 초 지어진 근대한옥이다. ‘ㅁ’자 평면의 전형적인 경기지방 한옥양식 주택이다.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보존·운영하고 있으며, 혜곡최순우기념관으로 시민들을 위한 전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06년 9월 19일 국가등록문화재 제268호로 지정되었다.
  • 장위동 김진흥 가옥
    장소, 유물
    장위동 김진흥 가옥
    성북구 돌곶이로34길 4-11(장위동76-59)에 위치한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의 남편 남녕위 윤의선의 집이다. 오늘날에는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김진흥가라고 부르고 있지만, 예전에는 부마의 이름을 따서 남녕궁이라고 불렸고, 사랑채에는 남녕궁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한다. 상량문에 을축(乙丑)년에 상량했다는 기록이 전하기 때문에, 이 한옥이 1865년(고종 2)에 건축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건물은 ㄱ자 2개가 합쳐진 모양이며 사랑채 뒤에 있는 집은 나중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977년 9월 5일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다. 1998년 12월 가옥의 소유주였던 김진흥의 부인 권옥경이 이곳을 불교재단에 기증하면서 현재는 ‘진흥선원’이라는 이름의 절로 바뀌었다.
  • 장교동 한규설 가옥
    장소, 유물
    장교동 한규설 가옥
    성북구 정릉로 9길 64에 위치한 조선말 한성판윤을 지낸 한규설이 살던 저택이다. 원래 위치인 중구 장교동에서 국민대학교로 옮겨와 1980년 12월 20일 완공했다. 이 가옥은 1890년대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장교동에 있을 때에는 솟을대문, 사랑채, 안채, 사당, 광채가 넓은 대지 위에 있었다. 현 위치로 옮겨 오면서 없어졌던 솟을대문, 좌우 행랑채를 복원했고, 본래는 있었으나 철거된 중문간(間) 사잇담도 복원했다. 행랑마당-사랑마당-안마당-사당마당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사대부가의 이상적이며 논리적인 공간구성이고, 조선후기 세도가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1977년 3월 17일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 이종석 별장
    장소, 유물
    이종석 별장
    성북구 성북로 131에 위치한 근대 건축물이다. 조선 말기의 상인 이종석이 1900년경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종석이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사랑채 비슷한 별채와 안채,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동북쪽에 있으며 행랑채는 북쪽에 있다. 누마루에는 ‘일관정’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살림집이라기보다 별장 건축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 별장은 당시 규모가 큰 상인들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어 우리나라 건축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60년 기업가 이재준이 매입하였고, 1977년 3월 17일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
  • 만해 한용운 심우장
    장소, 유물
    만해 한용운 심우장
    성북구 성북로29길 24에 있는 유적이다. 독립운동가이자 「님의 침묵」을 지은 시인이며, 불교개혁가였던 만해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 6월 29일 입적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심우장은 벽산 스님이 땅을 제공하였고, 수학교사인 최수동이 설계하였으며, 방응모와 박광, 그리고 아내 유숙원 등이 자금을 보태어 만들어졌다.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어 북향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한용운은 이곳에 거처하며 그의 또 다른 본거지인 선학원을 출입, 불교 개혁운동과 독립운동을 이어갔으며, 『흑풍』을 집필하는 등 문학 활동도 이어갔다. 현재 심우장 입구에 만해 산책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매년 6월 29일 선생의 기일에 성북문화원 주관으로 추모 다례가 열린다. 2019년 4월 8일 사적 제550호로 등록되었다.
  • 숙정문
    장소, 유물
    숙정문
    삼청로11길 40(삼청동 산 2-49)에 위치한 한양도성의 사대문 중 하나이다. 속칭 북문(北門)으로 불렸던 숙정문은 서울 성곽의 다른 문과 같이 1396년(태조 5)에 건설되었다. 숙정문은 풍수지리상 북쪽이 음(陰)과 물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평소에는 ‘음란한 풍조’를 방지하기 위해 폐쇄하였다 가뭄이 들면 문을 열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1976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도성의 성곽을 복원할 때 이 문의 문루를 건축하고 「숙정문」이란 편액을 걸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10호로 지정되었다. 1968년 1.21 사건으로 일반의 출입이 차단되었다가 2006년 4월 다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 수연산방
    장소, 유물
    수연산방
    상허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면서 많은 문학작품을 집필한 곳이다. 1933년에 건물을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933년 8월 구인회 결성 후 구인회의 주요 활동무대가 되었다. 이 집은 건물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에 건넌방, ‘공(工)자’형의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4칸으로 구성된 보통의 ‘ㄱ자’형 집과 비슷하나, 부엌이 뒤쪽으로 붙어 있어 앞쪽에 누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이태준은 이곳의 당호를 '수연산방 「달밤」, 「돌다리」, 「코스모스피는 정원」, 「황진이」, 「왕자 호동」 등 문학작품 집필에 전념하였다. 전체적으로 원형이 잘 보존된 집으로, 현재 수연산방이란 상호를 달고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1977년에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 서울 성북동 별서
    장소, 유물
    서울 성북동 별서
    성북구 선잠로 2길 47(성북동 2-22)에 위치한 조선시대 별장이다. 한국식 정원의 특징을 반영해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 배치하였다. 물이 흐르는 경치에 따라 크게 전원, 내원, 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종의 호종내관을 지냈던 황윤명(황수연)이 조정에서 물러난 후 이 별장에 머무르며 한시를 지었다. 또한, 의친왕 이강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하였으며, 독립운동가 이관구에게 이 별장에 거주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이관구는 여기서 사학연구회를 조직하여 학술활동을 하고, 항일투쟁 인물의 행적을 기록한 『의용실기』를 저술하였다. 1992년 사적 제37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명승 제35호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2019년 별장의 원주인으로 알려진 ‘심상응’이 허구의 인물이라는 점, ‘성락원’이라는 명칭의 유래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두고 문화재 지정 해제 논쟁이 불거졌다. 2020년 황윤명(황수연)이 조성하여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가 머물었다는 점, 서울시에 몇 남지 않은 조선시대 민가정원으로서의 가치 등을 인정받아 ‘서울 성북동 별서’라는 이름의 명승으로 재지정 되었다.
  • 서세옥 가옥 및 작업실
    장소, 유물
    서세옥 가옥 및 작업실
    성북구 성북로28가길 7(성북동 260-10)에 위치한 주택이다. 동양화가 서세옥(1929∼2020)이 주거와 작업실로 사용하였던 집으로 2014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73년 서세옥은 소나무 숲이었던 성북동 언덕에 창덕궁 연경당에서 본 떠 25평짜리 14칸 사랑채를 지었다. 뜰 앞에는 하늘로 치솟은 소나무들이 서 있다. 손으로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집이라는 의미의 '무송재'라는 이름에는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살고자 하는 바람이 깃들었다. 1929년에 태어난 서세옥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한 1세대 동양화가로서 수묵추상화를 개척하고 한국화와 서양적 추상화의 접점을 마련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 삼군부 총무당
    장소, 유물
    삼군부 총무당
    성북구 삼선교로4나길 19(삼선동 1가 산1-13)에 위치한 조선말 삼군부의 청사 건물이다. 삼군부는 비변사를 폐지하면서 설치한 군사업무를 총괄하던 정부기구이다. 총무당은 삼군부의 중심건물인데, 1868년 처음 건축되었을 때의 위치는 현재의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있었으나, 1930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총무당’이라는 현판은 당시 무신이자 외교가였던 신헌(申櫶)의 글씨이다. 삼군부의 기능약화와 함께 통리기무아문의 청사로 이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보병대가 주둔하기도 했다. 총무당은 공릉에 소재한 청헌당과 함께 조선시대 관아 건축의 배치와 건물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현존자료이다. 1978년 12월 18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되었다.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
    장소, 유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
    성북로24길 3(성북동 89)에 위치한 수도회 건물이다. 한국 가톨릭 최초의 내국인 수도자를 위한 남자 수도회인 ‘한국 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본원 건물로, 1955년 방유룡 신부의 설계로 건립되었다. 제단 상부 돔 역시 반원형이 아닌 타원형 반구로 조성되는 등 다른 성당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2015년 12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에서 눈여겨봐야 할 곳은 건물 외벽의 순교자상이다. 한국의 순교복자 김대건 신부, 정하상(바오로), 조신철(가롤로), 유진길(아우구스티노) 등 12명의 순교자상이 외벽에 설치되었다가 지금은 보존을 위해 수도회에서 별도로 수장하고 있다. 본을 떠 새로 제작한 성상 10개가 대신 설치되어 있다. ‘최초로 조각된 한국 순교자상’으로 알려진 이 조각상들의 종교적, 문화재적 가치 또한 상당하다.
  • 서울 보화각
    장소, 유물
    서울 보화각
    성북구 성북로 102-11(성북동 97-1)에 있는 간송미술관의 중심 건물이다. 보화각은 건물의 이름이자 그 자체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간송미술관의 옛 이름)을 의미한다. 1934년 전형필(호는 간송)이 부지를 매입하고, 1938년 건물을 준공하였다. 모더니즘 양식의 2층 콘크리트 건물로 건축가 박길용이 설계하였으며, 당시 최고급 자재로 튼튼하고 우아하게 지었다. ‘보화각’이라는 이름은 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는 집이라는 뜻으로 오세창이 짓고 현판을 썼다. 이 건물은 간송이 수집한 문화재를 보관하고 전시하며, 민족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박물관의 역할을 하였고, 1966년 전형필의 호를 따서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간송미술관은 1971년부터 해마다 봄, 가을 정기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 보문사
    장소, 유물
    보문사
    성북구 보문사길 20(보문동 3가 168)에 위치한 사찰이다. 보문사는 고려 때 승려 담진(혜조국사)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그 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옛 건물로는 영조 때 건축된 대웅전이 있다. 이 절은 원래 조계종 소속이었으나, 1972년 세계 유일의 비구니종단인 대한불교 보문종(普門宗)을 창시하여 그 본산이 되었다. 이 절의 대웅전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보문사 석가불도>, <보문사 대웅전 신중도>, <보문사 지장보살도> 등 문화재로 지정된 불화들이 있다. 한편 석굴암 앞 팔각 9층 석탑은 1978년에 오대산 월정사의 탑을 본떠 조성하고,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내부에 봉안했다. 보문사 스님의 범패(梵唄)는 잘 알려진 무형자산이다.
  • 미타사
    장소, 유물
    미타사
    성북구 보문사길 6-16(보문동 3가 3-51)에 위치한 사찰이다. 미타사는 여승을 지칭하는 비구니의 수양 도량인데, 고려 초 혜거국사(惠居國師)가 창건하고 미타사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승된다. 이후 몇 차례의 중수 사실이 전해지지만 의미있는 것은 1457년(세조 3)에 단종비였던 정순왕후 송씨에 의해 중수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미타사 서쪽, 숭인동의 정업원·동망봉·자지동천(紫芝洞泉·자줏빛 물이 흘러나오던 샘) 등에 정순왕후와 관련된 사실이 있음으로 보아 이 절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곳 보문동 일대는 ‘탑골’이라 불리고, 이 절은 ‘탑골승방’이라 불리는데, 미타사 대웅전 뒤 단하각(丹霞閣) 왼쪽 언덕 위에 있는 석탑으로 인해 그렇게 불리게 된 듯하다.
  • 마포 최사영 고택
    장소, 유물
    마포 최사영 고택
    성북구 선잠로 68-20(성북동 9-21)에 위치한 건축물이다. 이 고택은 대한제국 시기의 관료로서 광업ㆍ금융업ㆍ창고업 등에 종사하며 부를 축적해 재력가로도 널리 알려진 최사영이 1906년 마포동 236에 건립했던 집의 안채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최사영은 이 집에서 1929년까지 거주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여러 차례 소유권이 이전되면서 문화재 지정이 검토되던 2001년에는 1동만 남아 멸실 위기에 있었다. 그에 따라 서울시 민속자료로 가지정(假指定)하여 보존한 후 2002년 문화재위원회의 현상변경 허가를 얻어, 2003-2007년 한국가구박물관에 의해 현 부지 안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고, 2007년 서울시 문화재자료 37호로 지정되었다.
  • 돈암장
    장소, 유물
    돈암장
    성북구 동소문로3길 84(동소문동4가 103-3)에 위치한 주택의 옛 이름이다. 원래 조선시대 의료기관인 동활인서가 있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송성진의 의뢰로 대목장(大木匠) 배희한이 돈암장을 지었다. 쇠못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를 짜서 지었으며 3채의 건물과 700평에 이르는 정원이 조화를 이룬 빼어난 주택이다. 해방 후에는 조선타이어주식회사 사장이었던 장진영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에게 2채를 빌려주어 2년간 거주하게 하였기 때문에 이승만의 거처로 널리 알려졌다. 돈암장은 주인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증축과 개축으로 원형을 잃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정부 수립의 역사적 현장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목조 팔작지붕의 한옥 본채 한 동은 2004년 등록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다.
  • 권진규 아뜰리에
    장소, 유물
    권진규 아뜰리에
    성북구 동소문로 26마길 2-15에 위치한 건축물이다. 1959년 조각가 권진규가 일본에서 귀국하여 1973년 사망하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한 장소로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있다. 가마, 우물, 흙 저장 공간 등과 작품을 전시하던 진열대, 다락방 등으로 꾸며져 있으며 천장이 높고 단순한 형태이다. 벽과 바닥에는 작업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앞쪽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살림채가 있다. 권진규가 이곳에서 만든 주요 작품으로는 〈자소상(自塑像)〉, 〈영희〉, 〈스카프를 맨 여인〉, 〈잉태한 비너스〉 등이 있다. 2004년 등록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이곳에는 권진규가 사용했던 여러 가지 작업 도구들과 유품, 미완성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건물과 유품을 보호하기 위해 사전 예약을 통해 개방하고 있다.
  • 구 중앙정보부 강당
    장소, 유물
    구 중앙정보부 강당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석관동 409)에 위치한 건물이다. 이 일대는 조선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인 의릉 능역으로, 본 건물은 능역 안에 있다. 1962년 신축된 강당 부분과 1972년 지어진 회의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1961년 설치된 중앙정보부가 의릉에 들어가면서 건물을 만들고 사용했다. 1972년 7월 4일 이곳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이 남북 간의 합의를 통하여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의릉 복원사업을 진행하면서 철거가 예정되기도 하였지만, 냉전시대의 화해와 단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놓은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남긴 현장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9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장소, 유물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성북구 안암로 145(안암동 5가 1-2) 고려대학교 내에 있는 건축물이다. 1934년 고려대학교 본관 건물을 짓고, 곧이어 1937년에 본 건물을 완공했다. 설계는 본관과 마찬가지로 박동진이 하였는데, 시공자는 미상이다. 건물의 구조는 화강석을 주재료로 한 L자 모양의 고딕 양식으로, 남서쪽 모서리에 탑 모양의 구조를 세우고 이 곳에 주출입구를 두었다. 특히 동남측 끝단 돌출부에는 네 모서리에 고딕식 튜렛(turret)을 세우고, 남측 창들 사이에는 부축벽(flat buttress)을 세워 기품 있는 고딕양식의 풍취를 더해주고 있다. 오랫동안 도서관으로 사용하다, 중앙도서관을 신축한 후 현재는 대학원동과 교수연구실로 사용하고 있다.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6호로 지정되었다.
  • 고려대학교 본관
    장소, 유물
    고려대학교 본관
    성북구 안암로 145(안암동 5가 1-2)에 위치한 근대식 학교 건축물이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완공된 건물로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본관으로 사용하였다. 건물의 주재료는 화강석이며, 중앙부의 탑 모양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고딕양식으로 건물을 배치하여 대체로 평면 H자형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중앙에는 넓은 홀이 있고, 앞면 현관의 돌기둥에는 호랑이상이 조각되어 있고, 뒷면의 돌기둥에는 무궁화가 조각되어 있다. 한편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건축가인 박동진[1899-1981]이 설계하였고, 일본인 후지타 고지로[藤田幸二郎]가 시공하였는데, 당시로서는 최신식 내부시설은 물론 외관도 유례없이 화려하고 웅장하다고 알려졌다.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5호로 지정되었다.
  • 개운사
    장소, 유물
    개운사
    성북구 개운사길 73(안암동 5가 157)에 자리한 사찰이다. 1396년(태조 5)에 무학대사가 현재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부근에 절을 짓고 영도사(永導寺)라고 이름 지었다. 그 후 정조의 후궁 원빈 홍씨의 묘인 인명원(仁明園)이 절 옆에 세워지자, 영도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절의 이름을 개운사(開運寺)로 바꾼 시기는 절을 옮긴 시점일 가능성이 크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절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불교 교육의 중심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1926년부터 근대 불교의 대표적인 석학이었던 승려 박한영이 이 곳에서 많은 제자를 키워냈고, 선사 탄허가 개운사의 암자인 대원암에서 불경 번역에 힘썼다. 현재 개운사에는 국가에서 지정한 보물 1점과 서울특별시에서 지정한 유형문화재 5점이 보관되어 있다.
  • 흥천사
    장소, 유물
    흥천사
    성북구 흥천사길29(돈암동595)에 있는 사찰이다. 1397년(태조 6) 신덕왕후 강씨의 능침사찰로서 중구 정동에 창건되었다. 1409년(태종 9) 정릉이 이전되고, 조선왕조의 억불정책과 몇 번의 화재 등을 겪으면서 폐사되었다. 1669년(현종 10) 함취정(含翠亭) 자리에 이건하여 중창하고 신흥사(新興寺)로 이름을 고쳤다. 1794년(정조 18) 현재 자리에 중창하였고,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의 지원을 받아 다시 흥천사라고 불리면서 왕실원당의 기능을 담당했다. 흥천사는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6.25전쟁 때 피난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의 첫 번째 왕후였던 신덕왕후의 원찰(願刹)에서 조선(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의 피난생활까지 조선왕실의 역사와 함께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 적조사
    장소, 유물
    적조사
    성북구 흥천사길 49-23번에 위치하는 정릉의 원찰인 흥천사의 사내 암자이다. 특히 근대 한국현대불교의 정신적 지주였던 경산스님의 수행처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후기 헌종 때에 지어진 흥천사의 부속암자로 혜암 성혜스님이 창건하였다. 초기에 독립된 사찰로 세워진 것이 아니어서 규모는 크지 않으며 전통적인 암자의 틀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관음전, 동국선원, 법당 등의 건물이 있으며, 한국 불교사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경산스님(조계종 총무원장, 동국대학교 재단 이사장 역임)의 마지막 수행 장소로서 사리탑과 비석이 세워져 있다. 2019년 2월 14일 적조사 신중도가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동망봉 산신각
    장소, 유물
    동망봉 산신각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산신각이다. 동망봉은 보문동과 숭인동에 걸쳐 있는데, 조선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단종이 유배가서 죽은 동쪽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기 때문에 동망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신각은 산신을 제사하기 위해 지은 사당으로, 언제, 누가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15세기경 호랑이가 출몰하여 인명과 가축의 피해가 심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당을 짓고 산제(山祭)를 지내기 위해 건립했다고 전한다. 그 일대에 아파트를 신축하면서 숭인공원으로 이전·복원하였는데 소나무로 엮은 가로 2칸, 세로 1칸으로 구성되었으며, 안에는 동망봉 산신령과 정순왕후 송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지금도 매년 10월 산신제를 열고 이곳에서 마을의 재앙을 예방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고 있다.
  • 대원암
    장소, 유물
    대원암
    성북구 개운사길 60-46(안암동 5가 8)에 위치한 사찰이다. 대원암은 개운사에 딸린 암자인데, 1845년(헌종 11)에 우기(祐祈, 호는 지봉)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는 근대 불교계의 석학인 박한영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불교전문강원을 개설하여 많은 석학을 배출하였다. 당시에는 출가 제자 뿐만 아니라 신석정, 서정주, 홍명희, 이광수, 최남선, 정인보 등 당대 대표적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다. 1970년대에는 탄허스님이 이곳에서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의 역경사업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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