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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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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대학교 4.18 기념탑
    장소, 유물
    고려대학교 4.18 기념탑
    1961년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민주정신을 기리며 세운 기념비이다. 탑이 세워지기 1년 전인 1960년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3천여 명은 자유당 독재에 항거하여 학생대표의 선언문 낭독 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농성하였다. 시위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던 학생들을 정치깡패가 습격하여 일부 학생들은 중상을 입었다. 이른바 4.18의거는 대규모의 대학생 시위이자 4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기념비 오른쪽 하단에는 고려대학교 교수였던 조지훈 시인이 쓴 ‘자유! 너 영원한 활화산이여!’라는 제목의 비문이 있고, 왼쪽 상단에는 4.18 의거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모습을 기린 부조가 있다.
  • 4·19 혁명 부상자 명단(고려대학교 4·18 학생 의거)
    유물
    4·19 혁명 부상자 명단(고려대학교 4·18 학생 의거)
    4.19 혁명 하루 전에 일어난 4.18 고려대학교 학생 의거와 관련된 유물이다. 4.18 시위에 참가한 고려대학교 학생 부상자 명단 초안 2종과 이를 정리한 정서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안(1)에는 부상자 명단에 학과, 학년, 번호, 이름 장소, 맞은 정도 등이 함께 적혀있다. 초안(2)는 ‘4월 18일 부상자 명단’이라고 쓰여 있는데 초안(1)과 달리 한 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서본은 ‘4.19 의거 시 부상한 학생’이라는 제목으로 초안 내용을 수정 또는 보완해 재정리한 것이다. 이 사료는 4.19혁명을 이해하는 역사적 가치가 큰 자료로 인정 받아 2020년 8월 12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조선요리제법
    유물
    조선요리제법
    고려대학교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헌이다. 『조선요리제법』은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 교수인 방신영이 우리 음식을 집대성하여 근대식 음식 조리법 기술 형태로 쓴 책이다. 이 책은 재료의 분량을 계량화하여 소개하는 등 조리과학의 발전과 대중화에 이바지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판본이기 때문에 조선을 지나서 근대기 조리법의 변화를 알게 해주는 사료적 가치도 충분하다. 2017년 5월 29일 등록문화재 제686호로 지정되었다.
  • 유길준 단령
    유물
    유길준 단령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의복유물이다. 이 의복은 개화기 사상가였던 유길준(兪吉濬)[1856-1914]이 착용하였던 소례복 단령이다. 개화기의 중요한 사상가이자 갑오경장을 이끌었던 유길준은 1883년 보빙사(報聘使)의 일원으로 미국에 갔다가 이를 계기로 미국 유학을 했으며 미국 유학 중인 1884년에 자발적으로 상투를 자르고 양복을 입었다. 귀국 후에는 단발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양복의 보급화에도 앞장섰다. 이 유물은 유길준이 입었던 것이 유물로 착용시기가 분명하며, 전통복식과 서양복식이 결합된 절충적 요소보인다는 점, 당시 시행된 소례복 제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14년 10월 29일에 등록문화재 제606호에 지정되었다.
  • 신록
    유물
    신록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화가 노수현[1899-1978]의 산수화이다. 화면의 좌측 하단에 묵서로 ‘심산(心汕)’ 서명이 되어 있으며, 낙관이 찍혀 있고, 뒷면에 보성학교 교인(交印)이 찍혀있어 노수현의 모교인 보성학교의 의뢰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작연도는 크기, 주제, 구도, 화법으로 미루어 보아 1925년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1924년 작인 「산촌귀목(山村歸牧)」과 전체적인 분위기와 유사하며, 산, 나무, 집, 들판, 나무꾼, 물 등의 묘사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산수화에서 근대적 사경산수화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노수현의 1920년대 대표적인 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크다. 2013년 2월 21일 등록문화재 제531호로 지정되었다.
  • 서울 흥천사 대방
    유물
    서울 흥천사 대방
    돈암동 흥천사에 있는 건축물로 염불과 수행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흥천사 대방은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의 지원으로 절을 중창할 당시 중수된 것으로, 대원군이 직접 쓴 편액이 걸려있다. 조선 후기에는 정토 염불 사상이 크게 성행하여 접대를 위한 공간이 필요해지면서 누각 형태의 건축물이 큰 절과 왕실 원찰을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흥천사의 대방은 수행, 공양, 법회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구성된 복합건물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어 건축사적·불교사적 의의를 가진다. 2013년 12월 20일 등록문화재 제583호로 지정되었다.
  • 동덕여자의숙 태극기
    유물
    동덕여자의숙 태극기
    동덕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태극기이다. 1908년 동덕여자의숙 개교와 함께 교정에 게양되었던 태극기로 3.1운동 때는 장독대 밑에 숨겨져 보관됐고,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당시 교장이었던 조동식이 옷 속에 꿰매 피난했다고 한다. 흰색 바탕에 검정·청·홍색 옷감을 4괘와 태극문양으로 잘라 덧대어 만들었는데 4괘의 배치가 현재의 태극기와 다르다. 옷감재료나 바느질법 등에서 시대성을 볼 수 있고 100년 동안 학교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한 상징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2008년 8월 12일 등록문화재 제384호로 지정되었다.
  • 국문연구안
    유물
    국문연구안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소장 중인 문헌이다. 1907년 9월 16일 국문연구소의 제1회 회의 이후 1909년 3월 3일까지 연구소의 문제 토의 과정에서 위원들이 제출한 원고를 등사하여 다시 연구 위원들에게 배포한 것을 7책으로 묶은 것이다. 마지막 보고서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문서가 수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위원의 의견과 그와 관련된 이론도 전개되어 있어, 당시 연구소의 활동을 보여 주는 산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국어 정책론사의 기본 자료로서, 또한 영성한 개화기 국어학사의 자료로서 매우 귀중하다. 2012년 12월 24일 등록문화재 제527호로 지정되었다.
  • 과학조선
    유물
    과학조선
    고려대학교에서 소장중인 문헌이다. 1930년대 김용관, 박길룡 등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의 주도자들에 의해 두 기관의 기관지로 간행되었던 잡지이다. 창간 초기에는 발명가들에게 발명 활동을 돕기 위한 실용적 정보를 제공하고 사회 전반에 발명 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내용이 기사의 주를 이루었지만, 1934년 발명학회를 주도로 한 과학 대중화 사업이 대규모 대중운동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과학조선』의 성격도 점차 대중적 과학잡지로 변모하였다. 『과학조선』은 한국 지식 사회에 과학기술 지식을 널리 보급했으며, 독립된 국가를 세우려는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2013년 8월 27일 등록문화재 제566-2호로 지정되었다.
  • 12명 순교성상
    유물
    12명 순교성상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피정의 집(성북구 성북로 143) 외벽에서 발견된 조각상이다. 1956년 이 건물이 세워질 때부터 들어서 있던 성상들은 3층 외벽과 2층의 베란다 기둥에 좌우대칭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아치 모양의 틀에 흑시멘트로 조각되었다. ‘79위 복자'로 받들어지는 한국 성인·성녀들 중 김대건 신부, 조신철 가롤로 등 총 열두 명을 조각하였다. 조각가는 미상이지만, 조각작품들이 명동성당 안에 있는 장발[1901-2001]의 「십사 사도」 그림의 동작과 유사한 점이 많은 걸 볼 때 서울대 조소과 출신의 장기은 등 두 사람 이상이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 한국 순교 성인들을 조각한 작품들이 한국의 조각가들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점, 최초로 건축물에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2006년 건물 리모델링을 하면서 성상은 건물 외벽에서 내려와 수도회에 수장되었다. 현재 건물에 부착되어 있는 성상은 본을 떠 새로 제작한 것이며 옆에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면서 유대철 성인과 샤스탕 신부의 조각은 새로 설치되지 않아, 현재 총 10개의 복제본 조각상만을 건물 외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최순우 옛집
    장소, 유물
    최순우 옛집
    성북로15길 9에 위치한 고택이다. 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1916-1984]가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살았던 집으로 성북동 한옥이 점차 사라지던 때, 2002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이곳을 매입하여 '시민문화유산 1호’가 되었다. 1930년대 초 지어진 근대한옥이다. ‘ㅁ’자 평면의 전형적인 경기지방 한옥양식 주택이다.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보존·운영하고 있으며, 혜곡최순우기념관으로 시민들을 위한 전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06년 9월 19일 국가등록문화재 제268호로 지정되었다.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
    장소, 유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
    성북로24길 3(성북동 89)에 위치한 수도회 건물이다. 한국 가톨릭 최초의 내국인 수도자를 위한 남자 수도회인 ‘한국 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본원 건물로, 1955년 방유룡 신부의 설계로 건립되었다. 제단 상부 돔 역시 반원형이 아닌 타원형 반구로 조성되는 등 다른 성당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2015년 12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에서 눈여겨봐야 할 곳은 건물 외벽의 순교자상이다. 한국의 순교복자 김대건 신부, 정하상(바오로), 조신철(가롤로), 유진길(아우구스티노) 등 12명의 순교자상이 외벽에 설치되었다가 지금은 보존을 위해 수도회에서 별도로 수장하고 있다. 본을 떠 새로 제작한 성상 10개가 대신 설치되어 있다. ‘최초로 조각된 한국 순교자상’으로 알려진 이 조각상들의 종교적, 문화재적 가치 또한 상당하다.
  • 서울 보화각
    장소, 유물
    서울 보화각
    성북구 성북로 102-11(성북동 97-1)에 있는 간송미술관의 중심 건물이다. 보화각은 건물의 이름이자 그 자체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간송미술관의 옛 이름)을 의미한다. 1934년 전형필(호는 간송)이 부지를 매입하고, 1938년 건물을 준공하였다. 모더니즘 양식의 2층 콘크리트 건물로 건축가 박길용이 설계하였으며, 당시 최고급 자재로 튼튼하고 우아하게 지었다. ‘보화각’이라는 이름은 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는 집이라는 뜻으로 오세창이 짓고 현판을 썼다. 이 건물은 간송이 수집한 문화재를 보관하고 전시하며, 민족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박물관의 역할을 하였고, 1966년 전형필의 호를 따서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간송미술관은 1971년부터 해마다 봄, 가을 정기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 돈암장
    장소, 유물
    돈암장
    성북구 동소문로3길 84(동소문동4가 103-3)에 위치한 주택의 옛 이름이다. 원래 조선시대 의료기관인 동활인서가 있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송성진의 의뢰로 대목장(大木匠) 배희한이 돈암장을 지었다. 쇠못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를 짜서 지었으며 3채의 건물과 700평에 이르는 정원이 조화를 이룬 빼어난 주택이다. 해방 후에는 조선타이어주식회사 사장이었던 장진영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에게 2채를 빌려주어 2년간 거주하게 하였기 때문에 이승만의 거처로 널리 알려졌다. 돈암장은 주인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증축과 개축으로 원형을 잃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정부 수립의 역사적 현장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목조 팔작지붕의 한옥 본채 한 동은 2004년 등록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다.
  • 권진규 아뜰리에
    장소, 유물
    권진규 아뜰리에
    성북구 동소문로 26마길 2-15에 위치한 건축물이다. 1959년 조각가 권진규가 일본에서 귀국하여 1973년 사망하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한 장소로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있다. 가마, 우물, 흙 저장 공간 등과 작품을 전시하던 진열대, 다락방 등으로 꾸며져 있으며 천장이 높고 단순한 형태이다. 벽과 바닥에는 작업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앞쪽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살림채가 있다. 권진규가 이곳에서 만든 주요 작품으로는 〈자소상(自塑像)〉, 〈영희〉, 〈스카프를 맨 여인〉, 〈잉태한 비너스〉 등이 있다. 2004년 등록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이곳에는 권진규가 사용했던 여러 가지 작업 도구들과 유품, 미완성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건물과 유품을 보호하기 위해 사전 예약을 통해 개방하고 있다.
  • 구 중앙정보부 강당
    장소, 유물
    구 중앙정보부 강당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석관동 409)에 위치한 건물이다. 이 일대는 조선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인 의릉 능역으로, 본 건물은 능역 안에 있다. 1962년 신축된 강당 부분과 1972년 지어진 회의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1961년 설치된 중앙정보부가 의릉에 들어가면서 건물을 만들고 사용했다. 1972년 7월 4일 이곳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이 남북 간의 합의를 통하여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의릉 복원사업을 진행하면서 철거가 예정되기도 하였지만, 냉전시대의 화해와 단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놓은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남긴 현장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9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김선희 혼례복
    유물
    김선희 혼례복
    간송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1930년대 혼례복이다. 근대시인 김광균의 부인 김선희(1919-2007)가 1935년 혼례식에서 착용한 의복이다. 정확한 제작시기나 제작자는 알 수 없으나, 신랑인 김광균 집안에서 제작하였다고 전한다. 녹색 모본단에 빨강 모본단으로 둘레에 선을 두르고 소매에는 색동이 달려있어, 1930년대 개성지방의 혼례복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다. 보존상태가 좋으며, 착용자와 착용자가 착용했던 사진도 남아있어 근현대 복식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2013년 8월 27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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