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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지봉로
- 지봉로는 종로구 창신동에서 성북구 보문동을 잇는 도로이다. 도로명은 조선 중기의 학자 이수광의 집인 비우당이 도로가 지나는 창신동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호를 따서 제정되었다. 창신역부터 보문역까지는 원래 동망봉을 산 위로 넘어가는 구간이었으나, 2002년 12월부터 동망봉터널로 대체되었다. 1984년 첫 명명시에는 지봉길로 명명되었으나, 2010년 4월 다산로 청계7가부터 동묘앞역 구간을 편입하여 지봉로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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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안암교회
- 안암교회는 1948년 1월 22일에 교회설립을 목적으로 첫 예배를 드리고, 같은해 2월 1일 안암동5가 134에서 창립예배를 시작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6.25전쟁을 거치고 1954년 9월 1일에 안암동5가 134-2에 128평 규모의 대지를 구입하고 교회를 신축했다. 이후 1980년 8월 3일 보문동 신축부지에서 기공예배를 드리고, 다음해인 1981년 4월 2일 지금의 자리인 보문로98(보문동4가 4)로 이전하였다. 건물은 전체 4층으로 되어있고, 건물의 1층에는 NH농협은행 보문동지점과 안암교회 부설유치원 동선유아학교가 들어서 있다. 안암교회는 개신교 분파인 장로교로 그중에서도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소속된 교회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한국 개신교 분파 중 대한성공회와 함께 진보성향의 교단으로 평가받으며, 지금도 인원, 노동, 통일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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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신암교회
- 신암교회는 1935년 김영식 목사 사택을 기도소로 쓰면서 다수의 신도들과 함께 교회설립을 계획하였다. 1936년 현재(보문로 27길 15)의 교회 대지의 건물을 임시 예배처로 정하고 정식교회로 발족하였다. 6.25전쟁 동안 부산의 기독교서회 사무실을 임시 예배처로 삼았다가 1953년 돌아온 기간을 제외하면 줄곡 지금의 위치에서 종교활동을 해왔다. 또한 신암교회는 1954년 분립되어 보문동1가에 세워진 성암교회의 모체이기도 하다. 2017년에는 교회설립 8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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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보문제일교회
- 보문제일교회는 1916년 경기도 고양군 신설리150번지(현 종로구 숭인공 710)에서 첫모임을 시작하였다. 1919년에 기도처를 신설리150-3으로 이전하였는데 당시 신도는 40명 정도였다. 당시 동대문 지역에는 북감리회 동대문교회의 기도처 용두동교회와 왕십리교회가 있었고, 남감리회는 광희문교회의 기도처 신설리교회와 수철리교회가 있었다. 이중 보문제일교회는 신설리교회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67년 현 보문동6가 337번지에 132평을 매입하고 신축을 결의하였다. 이후 1968년 교회를 준공하고 이전하였다. 한때 감리회는 교회분열이 일어났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통합되어 '하나된 감리교회'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문제일교회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세워진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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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보문사 불화
- 보문사(普門寺)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보문사 석가불도>, <보문사 대웅전 신중도>, <보문사 지장보살도>를 소장하고 있다. 석가불도(釋迦佛圖)는 보문사 대웅전 내에 그려진 140×180㎝ 크기의 불화이다. 석가여래가 법화경(法華經)을 설파한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장면을 묘사했다. 중앙의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아래쪽 좌우에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다. 신중도(神衆圖)도 역시 대웅전 내에 200×140㎝의 크기로 그려진 것이다. 인도의 재래적인 토속신(土俗神)인 신중(神衆)을 그렸다. 신중은 불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수용된 불교의 호법신(護法神)들인데 별도로 그림을 그려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신중도에는 화기(畵記)가 남아있어 불화 조성과 관련된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상궁(尙宮)의 시주로 불화 조성 경비가 마련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는 묘승전 내에 지장보살을 그린 것으로 145×200㎝ 크기이다. 중앙에는 지장보살과 그 좌우에 가까이 모시는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者)를 그렸으며, 이들 삼존상(三尊像)의 뒷면에는 금색의 빛을 발하는 원형광배(圓形光背)를 표현하였다. 보문사의 대웅전이 고종 2년(1865)에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불화들은 이로부터 2년 후인 1867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모두 비단에 채색하였고, 1996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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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보문동 성당
- 보문동성당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소속되어있는 232개 성당 중 하나이다. 서울대교구는 중서울지역, 동서울지역, 서서울지역으로 구분되어있으며, 보문동성당은 중서울지역에 속해있다. 중서울지역은 다시 6개의 관할로 이루어져있고 여기에는 총 85개의 성당이 속해있다. 보문동성당은 제4 성북지구의 11개 성당중 하나이다. 성당은 보문로 17길 11(보문동5가 249)에 있으며, 가까운 거리에 천주교 노동사목회관도 위치하고 있다. 2010년 8월 5일 설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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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노동사목회관
- 노동사목회관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의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공간이다. 노동사목회관의 설립은 서울대교구가 1987년 6월 구로본동 성당 노동문제상담소를 개소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1971년 3월에 12명의 사제로 도시산업사목연구회 설립이 시초이며, 이후 노동문제 세미나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온 것이 회관 설립과 관련이 있다. 2001년 5월 종로에서 지금의 보문동 95(보문동5가 14)로 이전하였고, 전체 6층 건물로 이주노동자상담실, 다문화가족 지원센터 등 다양한 사무실이 있다. 현재 노동계와 노동관련 시민, 사회단체, 타 종교의 노동관련 부서들과 교류 및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노동자의 인간 존엄성과 노동의 신성함을 깨우쳐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고 카톨릭 정신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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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사단법인 한국고용복지센터
- 보문로 38(보문동7가 112-8)에 위치한 종합복지시설이다.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공급되지 못한 취약 계층의 사회 서비스를 확충하고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필요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사회 통합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노동부 인가 제458호로 2007년 6월 30일에 설립되었다. 일자리 창출 및 지원 사업, 노사정책에 관한 교육 사업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성북구 지역사회와의 연계 사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한 본사 외에도 서울, 경기 및 인천 지역에 지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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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1111 지선버스
- 성북구 일대에서 운행되는 지선버스이다. 성원여객과 한성운수에서 공동배차로 운영하며, 강북구 번동에 위치한 한성운수에서 시작하여 장위동, 월곡동, 종암동, 안암동, 보문동, 삼선동 등 성북구 일대를 지나 성북동에 위치한 심우장 부근까지 도달한 후 회차한다. 구 417번 지역순환버스가 그 전신이며, 2004년 7월 1일 서울시 버스 체계 개편 때 번호가 1111로 변경되었다. 배차간격은 8~12분, 운행시간은 첫차가 오전 4시 20분, 막차가 밤 11시 20분이다. 타 지역에서 성북동으로 이동 시 유용한 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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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고려대로
- 성북구 보문동과 안암동 일대의 도로이다. 고려대로는 성북구 보문동 166번지의 보문동사거리에서 성북구 안암동 42번지 고대앞사거리에 이르는 길로 길이는 1,150m, 폭은 15~25m이다. 원래 고려대학교 설립자 인촌 김성수의 호를 인용하여 ‘인촌로’라고 불렸으나 성북구는 친일반민족행위와 관련된 자와 관련된 도로명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여 2018년 12월 ‘고려대로’로 도로명을 변경하였다. 이 길은 지하철 6호선 안암역과 보문역을 지나는 보조간선도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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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보문동/근린생활시설
- 보문동의 근린생활시설에 관한 내용이다. 보문동은 지역 대부분이 주택가로 형성되어 있고, 현재까지도 주택재개발사업이 활발히 진행됨에 따라 아파트 및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현재 공공시설로는 보문동 주민센터, 보문치안센터, 동대문세무서 별관 등이 있으며, 사회복지 시설로는 대표적으로 성북구 육아종합지원센터 부모지원센터 보문점이 있다. 교육 시설로 초등학교는 대광초등학교와 동신초등학교로 2개교가 있으며, 체육시설로 보문동 주민센터 옆에 위치한 꿈나라어린이공원과 1980년에 개방된 도시공원인 숭인근린공원 등이 있다. 상업시설로는 2023년 기준 대형마트는 들어와 있지 않으며, 보문 시장이 비교적 규모가 적은 골목 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종교 시설로는 미타사, 보문사 등의 불교 사찰과 노동사목회관 등의 천주교 교회, 보문제일교회 등의 개신교 교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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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성북구 패션봉제지원센터
- 성북구 지봉로20길 80(보문동 6가 73)에 위치한 패션봉제 소공인 지원시설이다. 구민 일자리를 창출하고 봉제 소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성북구청에서 설립했으며,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 2018년 11월 29일에 봉제공장이 밀집해있는 보문동에서 개관하여, 지상 4층 연면적 331㎡ 규모로 지어졌다. 1층은 공동전시 및 판매장, 2층은 공동작업장, 3층은 교육장과 회의실, 4층은 청년 온라인 쇼핑몰 창업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봉제기능 인력 심화교육, 공동작업 공간 및 장비 지원, 공동판매 및 전시 공간 지원, 창업인큐베이팅 지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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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동망봉터널
- 성북구 보문동과 종로구 숭인동을 잇는 폭 20m, 길이 403m의 터널로, 2002년 12월 30일에 개통되었다. 성북구 보문동6가와 종로구 숭인동 사이에 걸쳐있는 산봉우리인 동망봉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동망봉터널이 개통되면서 숭인사거리에서 보문동로터리에 이르는 지봉길이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되었으며, 길이도 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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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손응성
- 화가이다. 강원도 평강 출생으로 배재고등보통학교(현 배재대학교) 재학 시절인 1934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정물화를 입상시키며 등단하였다. 일본 다이헤이요[太平洋]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귀국 후, 1943년 2월 친일미술단체인 단광회(丹光會)에 가입해, 조선징병제시행기념 집단 창작에 참여하였다. 1944년 9월에는 첫 개인전을 가지며 양화계의 신예작가로 부상하였다. 해방 이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전임강사를 지냈으며, 조선미술문화협회와 목우회에 참여했다. 손응성은 1948년부터 1979년 사망할 때까지 약 30여 년간 보문동 한옥에서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사망 후 위패는 보문사에 안치되었다. 1974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미술상을 받았고, 친일행적으로 인해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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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바하밥집
- 성북구 보문로17길 3(보문동5가 252-8)에 있는 비영리 단체로 정식 명칭은 “바나바하우스 밥집”이다. 바하밥집은 독거노인, 노숙인, 한부모 가정 등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도시빈민들의 자립을 돕는 직업자활시설이자 무료급식소이다. 2009년 노숙인들에게 컵라면 등의 음식을 제공한 것을 계기로 문을 열었다. 무료급식, 의료지원, 복지행정·법률 지원, 임시 및 고정주거 지원, 자활인문학/직업교육 등의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바하밥집을 중심으로 도시빈민과 고정봉사자 등 40여 가구가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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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보문동 주민센터
- 성북구 안암로3길 35(보문동7가 108-1)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보문사길 20에 있는 ‘보문사’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이 지역은 광복 후 동대문구 신설동에 속해 있었는데 1955년 4월 18일 동제 실시때 신설동에서 보문동을 분리하여 보문동 1~7가로 구분하였다. 1975년 10월 1일 구(區), 동(洞)의 담당 구역을 재편성할 때 신설동 일부를 보문동 6가에 편입시키고 보문동 1~7가를 성북구에 소속시켰다. 보문동 주민센터는 보문동 1~7가 전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관할 면적은 0.56㎢이며, 인구는 16,258명, 세대수는 7,931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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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물
- 서울동신초등학교
- 성북구 보문사길 50(보문동3가 228)에 위치한 공립초등학교이다. 1948년 11월 1일 개교하였다. 교육목표는 ‘협력적 교육활동을 통해 생각이 깊고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어린이’를 기르는 것이며, 교훈은 ‘슬기롭고 예절바르며 튼튼하게’이다. 2005년 8월 본관 교사를 전면 개축하였고, 같은 해 11월 개교 57주년 기념 타임캡슐을 안치하였다. 2018년 학교 경영 우수학교 교육장 표창을 받았다. 2019년 2월 15일 제66회 졸업식을 진행하고 누적 졸업생 23,771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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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물
- 대광초등학교
- 성북구 안암로 5(보문동7가 111)에 위치한 사립초등학교이다.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가 경천애인(敬天愛人)의 건학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한 초등학교로, ‘사랑을 실천하는 선생님, 미래를 준비하는 어린이’를 교육의 지표로 삼고 있다. 1965년 12월 1일 설립인가를 받고, 이듬해 3월 신입생을 받았다. 현재 수준별 단계형 영어교육, 인성교육, 음악교육, 특성화교육 등 대광초등학교만에 특색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2018년 2월 제49회 졸업식을 진행하고 누적 졸업생 6,685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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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보문동/인구
- 성북구 보문동의 인구변화와 관련된 내용이다. 보문동은 1936년 4월 1일 일제가 경성부 구역을 확장할 때 경성부로 편입되어 신설정이 되었는데, 1943년에는 동대문구의 관할로 속하였다. 1946년 신설동으로 불리다가 일부 지역이 지금의 ‘보문동’이 되었다고 한다. 1991년 보문동의 인구수는 20,861명, 세대수는 6,640세대였고, 2019년 발간된 『제34회 성북통계연보』의 기록 기준으로 현재 인구수는 17,067명, 세대수는 7,941세대이다. 인구수는 줄어든 반면, 세대수는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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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임화
- 시인이자 평론가, 문학운동가이다. 1926년부터 시와 평론을 발표했다. 다다이즘과 프로레타리아 사상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그는 프로시 「담-1927」(1927)을 발표하였고, 1928년에 카프(KAPF)에 가담하였다. 그는 1935년 탑골승방(미타사)에 머물기도 하고, 「정릉리의 계곡」(1936) 등을 발표하기도 하면서 성북구와 인연을 맺었다. 1947년 월북하였으나 1953년 8월 ‘미제간첩’ 혐의로 처형당하였다. 그는 1920-1930년대의 프로문학과 해방 직후의 좌익문학을 논할 때 필수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존재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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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임화 방문기
- 임화와 보성고보 동문인 기자가 임화의 학창시절부터 이후 활동에 대해서 추억한 뒤, 평양에서 서울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미타사에서 휴양 중인 임화를 찾아간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조선문단』 1935년 7월호에 「시인 임화의 부부는 그 뒤에 어찌 되었나」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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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작가 단편 자서전
- 『삼천리문학』 1938년 1월호에 실린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형식의 짧은 자서전이다. 작가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회고하고 있는 지 확인할 수 있다. 임화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고향으로 낙산을 언급하며, 고향에 대해 특별히 그리워하는 것은 없으나 외지를 돌아다닐 때 그것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깊이 박혀 있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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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푸른 골짝의 유혹
- 『조광』 1936년 5월호에 '내가 그리는 신록향‘ 특집 가운데 한편으로 실린 글이다. 작가가 카프에 가입하여 계급문예운동을 시작한 스무살 무렵(1928)에는 자연에 관심이 없었으나 이후 자연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카프 해산과 신병치료 속에서 임화는 자연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이와 관련된 글을 쓰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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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할미꽃 의젓이 피는 낙타산록의 춘색
- 『조광』 1936년 4월호에 '내 고향의 봄‘ 특집 중 한 편으로 실린 글이다. 임화는 서울을 둘러싼 다른 산들과 낙산을 비교하면서 으뜸으로 꼽고, 낙산의 봄 모습을 서술한다. 또 낙산의 풍경과 함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현재의 난개발과 신문화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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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우리 동네
- 1977년 평민사에서 출간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 수록된 산문이다. 이 글은 작가가 보문동에 살았던 때 동네가 변화하는 모습을 서술한 것으로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던 ‘우리 동네‘에 양옥과 연립 주택이 들어서면서 본래의 아름다움이 변화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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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어떤 야만
- 1976년 5월 『뿌리깊은나무』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소설 속 동네의 주거 형태가 근대 주거 양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1970년대 보문동 골목에서 살았던 작가의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추측된다. 철이 엄마는 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동네 사람들을 보고 야만이라 규정하지만 화자의 아내는 교포가 두고 간 강아지를 학대하는 철이 엄마를 야만적이라 말한다. 이처럼 ‘똥뒷간‘과 ‘화장실의 흰 사기의자‘, 동물학대와 동물애호는 야만과 근대의 기준이 되고 야만이 근대가 되기도, 근대가 다시 야만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철이 엄마로 대표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근대 주거 양식의 변화 속에서 보인 모습을 세밀한 관찰력으로 풀어내면서 실체가 없는 근대와 야만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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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닮은 방들
- 1974년 6월 『월간중앙』에서 발표한 단편소설로, 남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원해 남을 롤모델로 삼기 때문에 결국 닮은 삶을 거부하면서도 서로 닮을 수 밖에 없어지는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20여 년간 살던 보문동 한옥집을 떠나 잠실 아파트에 살게 되는 박완서의 삶의 궤적이 반영된 소설이다. 작품 속 주인공의 친정이 보문동이라는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 이웃과 격없이 지내며 음식을 나누어 먹고 대소사를 의논하는 모습에서 보문동에 살았던 작가의 경험이 반영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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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노인
- 1977년 출간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평민사)에 수록된 산문으로 박완서가 보문동 한옥단지에서 살았던 시기가 작품 속의 배경이다. 한옥에서 양옥으로 생활환경이 변하면서 개인 생활을 침해 받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던 이웃간의 정은 사라지고 서로 단절되기 시작한다. 심심하면 마을을 오가며 동네 소식을 모아오던 시어머니에게는 이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오면서 점점 대화의 양과 질이 협소해진다. 이 글은 주거환경이 변화하면서 시작된 이웃 간의 단절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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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양아록
- 성북구 보문동 개인소유자가 보유하고 있는 문헌이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이문건(李文楗, 1494-1567)이 1551년(명종 6)부터 1566년(명종 21)까지 16년간 손자 이수봉(李守封)[1551-1594]을 양육한 경험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일기 형식의 시로 기록한 일종의 육아일기이다. 시는 모두 37제 41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밖에 산문 4편과 가족과 관련한 기록이 함께 실려 있다. 조선 중기의 전통 육아, 교육적 의의, 아동에 대한 인식 등을 알 수 있으며, 사대부가 기록한 육아일기라는 점에서 매우 희귀한 자료이다. 따라서 생활사, 미시사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2015년 4월 2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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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보문사 석가불도
- 보문사 대웅전 내에 그려진 불화이다. 석가여래가 법화경(法華經)을 설파한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장면을 묘사했다. 보문사의 다른 불화와 마찬가지로 1867년(고종 4)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단에 채색하였고, 중앙의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아래쪽 좌우에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다. 석가여래의 머리 위쪽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왼쪽에, 그리고 10대 제자와 화불 2위를 오른쪽에 배열하였다. 화면 사방에는 4천왕상을 배열하였다. 서울·경기지역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이 유물은 1996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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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보문사 지장시왕도
- 보문사가 보유하고 있는 불화이다. 보문사 묘승전 내에 지장보살을 그린 것으로 보문사의 다른 불화와 마찬가지로 1867년(고종 4)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45㎝×200㎝ 크기의 이 불화는 비단에 채색하였다. 중앙에는 지장보살과 그 좌우에 가까이 모시는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者)를 표현하고 있으며, 이들 삼존상(三尊像)의 뒷면에는 금색의 빛을 발하는 원형광배(圓形光背)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1996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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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보문사 대웅전 신중도
- 보문사 대웅전 내에 있는 불화이다. 인도의 재래적인 토속신(土俗神)인 신중(神衆)을 그렸다. 신중은 불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수용된 불교의 호법신(護法神)들인데 별도로 그림을 그려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1867년(고종 4)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신중도에는 화기(畵記)가 남아있어 불화 조성과 관련된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이름은 파악하기 어려우나 상궁(尙宮)의 시주로 불화 조성 경비가 마련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사찰의 불사에는 상궁을 비롯한 궁중여인들의 시주가 눈에 띄는 경향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996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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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미타사 칠성도
- 미타사에 봉안되어 있는 불화이다. 칠성도는 북두칠성을 비롯한 여러 별들을 부처와 보살로 의인화하여 묘사한 그림을 말한다. 화면 중앙에 그려진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으며, 좌우로 칠불(七佛)과 칠원성군(七元星君), 28수(宿)의 크기를 달리하여, 그림으로서 위계를 지키고 있다. 19~20세기 서울, 경기지역의 대표화승 경선당 응석이 주도하여 조성된 불화로서 서울, 경기, 경상도지역의 칠성도 형식을 선도하고 있다. 당시 서울·경기 지역에서 유행하던 화풍을 띠고 있어 불교 미술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2014년 7월 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6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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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미타사 지장시왕도
- 미타사 대웅전에 봉안되어있는 불화이다. 이 지장시왕도는 시주자인 계유생 이씨 부인이 아버지 전주 이씨, 어머니 문의 이씨, 남편인 정축생 남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발원한 것이다. 신중도와 양식·화풍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신중도와 같은 해인 1873년 4월에 삼각산 미타사에서 함께 제작·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채색은 붉은색과 녹색이 주조색으로 사용되었으며, 전체적으로 필선이 매우 섬세하며 얼굴에 음영을 표현하여 입체감을 주고 있다. 서울·경기지역 지장시왕도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섬세한 필선과 탄탄한 구성 등 경선당 응석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2014년 7월 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5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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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미타사 아미타후불도
- 미타사에 봉안되어있는 불화로 1873년 신중도 및 지장시왕도와 동시에 한 조로 조성된 것이다. 아미타후불도는 극락보전, 아미타전, 무량수전에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불화는 대웅전에 후불도로 모셔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 불화는 아미타불좌상을 중심으로 8대 보살, 10대 제자, 사천왕, 금강역사 등이 배치된 아미타불의 법회모임을 표현하고 있다. 신중도, 지장보살도와 일습으로 상단탱화로 조성된 이 아미타후불도 중 평상에 앉은 사천왕상의 등장은 경상북도 예천군 서악사의 석가모니후불탱(1770)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그 예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2014년 7월 3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35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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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미타사 신중도
- 미타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화이다. 신중도는 부처의 정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그린 것으로, 미타사의 신중도는 1873년 4월 경선당 응석이 출초하였다. 가로로 긴 화면은 2단으로 나뉘어져 상단에는 범천과 제석천 및 천부중, 하단에는 위태천과 천룡팔부가 배치되었고, 하단의 중앙부에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창과 칼 등으로 무장한 천부 팔부중 무리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 경기지역에서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 이 초본을 바탕으로 한 신중도가 크게 유행하여 현재 여러 점의 작품이 남아있다. 섬세한 필치와 원만한 인물형태, 안정적인 색채 등에서 19세기 말 서울·경기지역 신중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2014년 7월 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6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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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미타사 산신도
- 미타사에 봉안되어있는 불화이다. 산신도는 산신을 그린 불화로 민간신앙의 대상인 산신이 불교에 편입되면서 제작되었다. 미타사의 산신도는 1915년 초암 세복과 금명 운제에 의해 조성되었는데 19~20세기의 전형적인 화면구성을 보여주며 패널 형식의 그림으로 손상 없이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19~20세기 산신도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경우 긴 꼬리를 위로 쳐들어 살랑거리고 있는 정감 있고 익살스러운 모습인데 비해, 이 그림의 호랑이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 경직된 머리에 꼬리를 감추고 있는 색다른 모습이다. 2014년 7월 3일 문화재자료 제6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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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미타사 백의관음도
- 미타사에 봉안되어있는 불화이다. 1906년(광무 10)에 삼각산 미타사 향로전 불화로 조성된 백의관음도로서, 석옹 철유가 단독으로 제작하였다. 현재 액자상태로 장황되었으며, 화면 아래 부분에 보채 및 수리의 흔적이 있다. 푸른 바다 위에 백의를 입은 관음보살이 파도 위 연잎에 서서 오른손에 버들가지, 왼손에 끈에 묶인 정병을 들고 오른쪽을 향해 서 있으며, 그 주위로 용왕과 천녀, 동자가 배치되어 있다. 채색은 청색과 백색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흰색 위에 갈색으로 윤곽선을 칠하여 음영을 표현하는 등 새로운 기법이 돋보인다. 2014년 7월 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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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미타사 독성도
- 미타사에 봉안되어있는 불화이다. 독성도는 부처님의 제자인 독성존자(獨聖尊者)를 그린 불화로 독성존자는 부처님 열반 후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존재이다. 이 독성도는 19~20세기의 전형적인 화면구성을 보여주는 독성도로서 당시 서울․경기지역에서 활약한 대표적 화승인 초암 세복과 금명 운제가 산신도와 함께 조성한 작품이다. 미타사 소장의 산신도와 유사하게 심산유곡을 뒤 배경으로 한 화면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패널 형식의 그림으로 손상 없이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다. 2014년 7월 3일 문화재자료 제6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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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미타사 감로도
- 미타사 대웅전에 봉안된 불화로 금어인 고산 축연, 초암 세복에 의해 제작되었다. 화면을 상·중·하단으로 구분하면 상단에는 칠여래 좌우로 관음보살, 인로왕보살, 지장보살이 있으며, 중단인 의식단이 강조되었고 하단의 아귀는 매우 작게 묘사되어있다. 행사를 기록화처럼 묘사하기 위해서 전대보다 더 많은 인물과 장면들로 화면을 채웠다. 이와 같은 유형은 19세기 서울·경기지역에서 성행하던 감로왕도의 도상을 계승한 것으로, 특히 서울지역의 감로도와 비교할 만하다. 재를 지내는 행사 장면 위주로, 한 쌍의 아귀 규모가 줄어든 것은 1918년 당시 감로도의 경향을 나타낸 것이다. 2014년 7월 3일 문화재자료 제6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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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묘법연화경 권3~4, 5~7
- 보문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불경이다. 묘법연화경은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이 한역한 불교경전으로 ‘법화경’이라고도 하며, 초기 대승경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불교경전이다.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화엄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을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묘법연화경은 조선 전기 왕실에서 주도하여 간행한 불경으로, 초인본은 아니고 성종연간(1470~1494)에 간행된 후인본으로 보인다. 동일한 판본으로는 보존상태가 온전하고, 서두에 남아있는 김수온(金守溫,1410-1481)의 발문에 간행시기와 연유가 분명하게 남아있다. 인쇄 상태와 지질도 뛰어나므로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2014년 1월 20일 보물 제1164-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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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유물
- 보문사
- 성북구 보문사길 20(보문동 3가 168)에 위치한 사찰이다. 보문사는 고려 때 승려 담진(혜조국사)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그 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옛 건물로는 영조 때 건축된 대웅전이 있다. 이 절은 원래 조계종 소속이었으나, 1972년 세계 유일의 비구니종단인 대한불교 보문종(普門宗)을 창시하여 그 본산이 되었다. 이 절의 대웅전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보문사 석가불도>, <보문사 대웅전 신중도>, <보문사 지장보살도> 등 문화재로 지정된 불화들이 있다. 한편 석굴암 앞 팔각 9층 석탑은 1978년에 오대산 월정사의 탑을 본떠 조성하고,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내부에 봉안했다. 보문사 스님의 범패(梵唄)는 잘 알려진 무형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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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유물
- 미타사
- 성북구 보문사길 6-16(보문동 3가 3-51)에 위치한 사찰이다. 미타사는 여승을 지칭하는 비구니의 수양 도량인데, 고려 초 혜거국사(惠居國師)가 창건하고 미타사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승된다. 이후 몇 차례의 중수 사실이 전해지지만 의미있는 것은 1457년(세조 3)에 단종비였던 정순왕후 송씨에 의해 중수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미타사 서쪽, 숭인동의 정업원·동망봉·자지동천(紫芝洞泉·자줏빛 물이 흘러나오던 샘) 등에 정순왕후와 관련된 사실이 있음으로 보아 이 절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곳 보문동 일대는 ‘탑골’이라 불리고, 이 절은 ‘탑골승방’이라 불리는데, 미타사 대웅전 뒤 단하각(丹霞閣) 왼쪽 언덕 위에 있는 석탑으로 인해 그렇게 불리게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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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안동반점
- 재개발되기 전 성북구 고려대로 1길 8에 위치한 음식점이었다. 안동반점은 1970년에 문을 연 중국음식점인데, 원래 종로에서 장씨 성을 가진 화교사장이 운영하다가 보문동으로 이전하였고, 사장의 사망으로 현재의 사장인 황의순·김기숙 부부가 이어받았다. 그 즈음 지하철 6호선 공사가 시작되면서 보문역 골목 안으로 이전하여 운영하였다. 사장님의 뛰어난 요리 솜씨로 입소문이 나고, 인터넷이나 방송으로 널리 알려져 찾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노부부 두 분이 감당하실 수 있는 만큼 소탈하게 운영하는 작은 식당이다. 가게가 위치한 일대에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겨 영업 중이다. 현재 위치는 고려대로1길 35-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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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보문동 한옥밀집지역
- 보문동 일대에 조성된 한옥밀집지역이다.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보문동 일대 한옥밀집지역’은 성북구 보문로13라길(보문동6가) 일대로 23,305㎡의 면적으로 한옥 비율은 전체 건물 중에 23.5%이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돈암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보문동 일대에 대량으로 도시형 한옥이 지어졌는데, 우리나라 근대기 주택유형 가운데 하나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전가치가 있다. 필지 합병을 통한 주택 건축 등으로 빠르게 한옥 멸실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특별시는 성북구는 주민의견 수렴 및 지정 요청에 따라 성북구의 한옥전수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전가치가 있는 지역을 설정하고 서울특별시 한옥위원회 자문을 거쳐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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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유물
- 동망봉 산신각
-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산신각이다. 동망봉은 보문동과 숭인동에 걸쳐 있는데, 조선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단종이 유배가서 죽은 동쪽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기 때문에 동망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신각은 산신을 제사하기 위해 지은 사당으로, 언제, 누가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15세기경 호랑이가 출몰하여 인명과 가축의 피해가 심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당을 짓고 산제(山祭)를 지내기 위해 건립했다고 전한다. 그 일대에 아파트를 신축하면서 숭인공원으로 이전·복원하였는데 소나무로 엮은 가로 2칸, 세로 1칸으로 구성되었으며, 안에는 동망봉 산신령과 정순왕후 송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지금도 매년 10월 산신제를 열고 이곳에서 마을의 재앙을 예방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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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경력(經歷) 박대용에 대한 만사
-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이정귀(李廷龜)[1564-1635]의 한시이다. 그는 문장에 능하여 한문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표일하면서도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아 미적인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하였으며, 장유도 그의 재능을 격찬함과 아울러 고문대책의 신속한 창작능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이 시에서 박대용에 대한 만사를 다루었다. 특히 시 첫구절에 낙산이 등장한다. 성북동에 위치한 낙산은 당시 성균관 남쪽에 있는 산으로, 낙타와 닮았다고 하여 본래는 타락산(駝駱山)이었는데, 낙타산(駱駝山), 또는 낙산(駱山)이라고도 불리었다. 또한 풍수지리학적으로는 우백호의 인왕산과 마주하여 좌청룡 역할을 하였다. 이 작품을 통해 당시 낙산 아래 사대부들이 많이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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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이 판결사[정] 의 죽음을 애도함
-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윤휴(尹鑴)[1617-1680]의 한시이다. 그는 이 시를 통해 장례원판결사였던 이정(李淀)[1589-1668]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데 특히 시 3절에 이정이 낙산 부근에 살았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북구와 종로구의 경계에 위치한 낙산은 낙타와 닮았다고 하여 본래는 타락산(駝駱山)이었는데, 낙타산 또는 낙산이라고도 불리었다. 이 시는 당시 낙산의 이명(異名)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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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아성다방
- 성북구 보문동에서 영업했던 상업시설이다. 방석공장을 오랫동안 운영해온 박신원씨가 인수한 다방이었다. 박신원씨 소유의 4층 건물, 1층에 위치하고 있었고, 6호선이 완공되면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당시 아성다방은 매일 아침마다 마을금고에 예금하러 갈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고 한다. 동네에서 컬러텔레비전을 가장 먼저 놓기도 했으며 레슬링 경기가 있을 때면 손님으로 꽉 찰 정도였다고 한다. 이같은 일화는 보문동의 근현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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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보문파크뷰자이아파트
- 성북구 보문사길 111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이다. 보문동의 서쪽으로 단종비인 정순왕후 송씨의 전설이 깃든 동망봉과 탑골승방의 배경이 되는 보문사와 미타사가 있다. 이 동망봉이 종로구 창신동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2002년 동망봉터널이 개통되며 두 지역이 바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주변의 산동네들에 대한 재개발이 본격화되고, 그 자리엔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섰다. 보문파크뷰자이아파트는 동망봉의 남쪽에 들어섰고 2017년에 준공되어 이 일대의 아파트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입주한 단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