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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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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역사관
    장소, 유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역사관
    성북구 화랑로 14길 5에 소재한 전시관이다. 원래는 대통령이나 귀빈들이 묵는 영접실로 사용하였다. 2006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창립 40주년을 맞아 역사관으로 문을 열었고, 개장한 지 10년째가 되는 2016년 리모델링을 통해 2017년 초 재개관하였다. 한국 기초과학을 토대로 한 산업의 발전을 상징하는 건물로, 1970년대 만들어진 탁상용전자계산기, CFC(냉매 등에 사용되는 물질), 공업용다이아몬든 분말, PET필름 등 근현대 산업기술 분야를 대표하는 것들을 보유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규모의 건물로 1층에는 50년 역사관, 70년대 연구실, 2층은 최형섭 박사 기념홀, 연구업적관, 별관은 기획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2021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 돈암동성당
    장소
    돈암동성당
    성북구 고려대로7길 120(동선동2가 1-2)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돈암동 성당은 1955년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분가해 탄생했다. 설립 당시 돈암동 성당은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삼선동, 안암동, 보문동과 돈암동 일대를 관할구역으로 인계받았다. 예배당은 1950년대의 석조 성당을 대표하는 건물로, 6.25전쟁 이후 건축물의 견고성에 더욱 역점을 두어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화강암을 외벽에 붙였다. 건물의 디자인은 준고딕양식으로 석조건물에 성곽과 같은 높은 종탑을 세우고 아치형의 문이 안과 밖을 연결하게 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새로운 성당 건물은 2000년에 준공된 것이다. 2013년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되었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작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월간중앙』에서 1969년부터 1972년 사이에 발표한 연작소설로 1976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이 작품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제목이 같은데, 현실에 대한 항의 내지는 고발이라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1970년대 한국사회로 가져온 것이다. 총 15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제목과는 달리 시간이 모두 다르지만, 구보씨의 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일‘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박태원의 구보를 통해 현실의 억압적인 면모를 폭로하고, 나아가 자신의 문학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 성북동 비둘기
    작품
    성북동 비둘기
    1969년 범우사에서 간행한 김광섭의 제4시집 『성북동 비둘기』에 수록된 표제시이자 대표시이다. 문명 비판적 시선을 담은 이 시는 1960년대 성북동 일대의 택지 개발 사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성북동 비둘기는 파괴되어 가는 자연, 문명에 소외된 인간 등을 상징하고 있다. 성북동이 표제로 들어가는 문학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이다.
  • 달밤
    작품
    달밤
    1933년 11월에 『중앙』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동네의 못난이 황수건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그의 생활을 통해 시대의 모순과 인간의 허위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그가 살았던 1930년대 성북동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 장수마을
    장소
    장수마을
    성북구 삼선교로4라길 23-28(삼선동1가 300) 일대에 형성된 마을이다. 장수마을은 한국전쟁 후 서울로 모여든 서민들이 움막, 천막집, 무허가 판잣집 등을 짓고 삶의 터전으로 삼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마을 뒤쪽의 한양도성 성곽 아래 가파른 구릉길을 따라 작고 나지막한 가옥들이 옹기종기 서로 맞붙어 있다. 이 지역이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되자, 전면 철거와 획일적인 아파트 재개발이 아닌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2008년에 주민협의회를 만들고 마을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마을 내에 작은 카페도 열었고, 마을박물관을 만들어 전시회도 진행하고, 벽화거리도 조성하여 관광객의 발길도 늘고 있다. 2010년대부터 확산된 도시재생사업의 선구적 형태이며,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에 선정되었다.
  • 윤중식 가옥
    장소
    윤중식 가옥
    성북구 성북로14가길 13-14(성북동 145-23)에 위치한 주택이다. 윤중식(1913~2012년)이 50년 동안 거주하던 주택인데,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윤중식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우리나라 서양화 2세대로 분류되는 작가로, 초기에는 일본 유학의 영향으로 단순한 형태에 강렬한 색채, 굵은 윤곽선 등을 결합한 야수파적 경향이 강하였으나, 광복 후에는 분단 상황으로 인한 실향민의 향수와 비애를 표현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곳에는 현재 미술을 전공한 손녀 윤가현이 ‘소나무 아트스튜디오’를 열어 키즈아트 등 미술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 석은변종하미술관
    장소
    석은변종하미술관
    성북구 대사관로3길 41(성북동 330-484)에 위치한 주택이다. 서양화가 변종하(호는 석은)가 살던 가옥으로 현재는 (재)석은미술재단이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고,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변종하가 1980년대 초에 성북동 꼭대기를 선택해서 지은 집인데, 자연을 될 수 있는 대로 살리면서 집을 앉혀서 아직도 이곳에서는 북악의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정원에는 온갖 나무와 함께 석탑, 석등, 석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에도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돌거북이다. 최순우가 우리 석물들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자 변종하가 사 모은 것이라고 한다. 변종하는 생전에 큰 돌거북이 있는 집이자 성북동 구석에 있는 집이라고 해서 ‘구석당’이라고 불렀다.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서세옥 가옥 및 작업실
    장소, 유물
    서세옥 가옥 및 작업실
    성북구 성북로28가길 7(성북동 260-10)에 위치한 주택이다. 동양화가 서세옥(1929∼2020)이 주거와 작업실로 사용하였던 집으로 2014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73년 서세옥은 소나무 숲이었던 성북동 언덕에 창덕궁 연경당에서 본 떠 25평짜리 14칸 사랑채를 지었다. 뜰 앞에는 하늘로 치솟은 소나무들이 서 있다. 손으로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집이라는 의미의 '무송재'라는 이름에는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살고자 하는 바람이 깃들었다. 1929년에 태어난 서세옥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한 1세대 동양화가로서 수묵추상화를 개척하고 한국화와 서양적 추상화의 접점을 마련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 삼청각
    장소
    삼청각
    성북구 대사관로 3(성북동 330-115)에 위치한 전통문화예술복합공간이다. 삼청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72년이었고, 그 당시에는 유신시대를 대표하는 고급요정이었다. 남북적십자회담의 만찬장으로 시작하여,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이 은밀하게 만나는 접대 장소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시대가 바뀌면서 요정으로 대표되던 ‘방석문화’가 이른바 ‘룸살롱 문화’로 대체되었고, 재정난을 맞이한 요정들은 차츰 쇠락하게 된다. 삼청각도 이런 이유로 간판을 내리게 되었고, 1996년 일반음식점으로 전환해 ‘예향’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이어오다 1999년 폐업하였다. 2000년 서울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시설상 문화시설로 지정하고 리모델링을 거쳐 2001년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개장했다가 2009년부터 (재)세종문화회관으로 이관해 식문화와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하였고,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북정마을
    장소
    북정마을
    성북구 성북로 23길 일대의 마을 이름이다. 북정마을은 심우장 뒤편 한양도성 성곽이 보이는 언덕에 있다. ‘북적마을’로도 불렸는데, 조선시대 포백훈조 계가 여기 있던 시절, 인부들이 ‘북적북적’ 거리는 소리 또는 메주 쑬 때 ‘북적북적’ 끓는 소리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아름다운 경관과 맑은 공기 덕분에 한용운 등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살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무너진 한양도성 성곽 아래 판자촌을 이루어 살면서 마을이 커졌다. 마을을 한 바퀴 빙 두르는 도로는 1983년에 완공한 소방도로인데 이 도로 안팎에 500여 가구가 모여 산다. 마을버스 정류장 앞 너른 길은 크고 작은 마을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길상사
    장소
    길상사
    성북구 선잠로 5길 68(성북동 321-3)에 위치한 사찰이다. 길상사는 군사정권 시절 삼청각 등과 함께 최고급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졌다. 대원각의 소유주였던 김영한이 1987년 법정스님께 대원각을 불교 도량으로 만들어 주기를 청하였다. 1995년 법정스님이 그 뜻을 받아들여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을 하였다. 그 후 2년여 동안 예전 음식점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 단장하여 1997년 '맑고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등록하고 같은 해 창건법회를 열었다. 이듬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선방 ‘길상선원’을 개원하였고, 불도 체험, 수련회 등의 프로그램과 어린이 미술대회, 대중가수의 콘서트까지 개최하는 등 도심 속 문화공간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 장위동 봉제단지
    장소
    장위동 봉제단지
    장위동 일대에 형성된 의복제조업 밀집에 대한 설명이다. 장위동의 의복제조업은 1970년대 준공된 6개 동의 건어물상가에 봉제업체와 자수업체 등 의류봉제업체들이 들어서면서 1980년대에 형성되었다. 2000년대 월드컵 특수를 거치며 패스트패션의 수요가 증가하자 의류제조업체들을 중심으로 한때 활기를 띠기도 하였으나 원자재 가격 인상과 인력 부족, 수요 감소로 침체를 겪었다. 봉제단지는 동대문 패션산업의 배후 클러스터 역할을 수행해온 곳으로, 한때 대한민국 근간산업이었던 섬유의류업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서울미래유산의 후원을 받는 봉제양명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수익 모델의 발굴, 지역주민들과 봉제 장인들 간 소통의 장 마련 등이 이루어졌다.
  • 쌍다리 식당
    장소
    쌍다리 식당
    성북구 성북로23길 4(성북동 109-2)에 위치한 음식점이다. 쌍다리 식당은 1970년 기사식당으로 개업한 연탄불구이 돼지 불백 전문점인데, 창업자의 대를 이어 2대째 운영 중이다. 근처에 있던 쌍다리의 이름을 따서 식당 이름을 지었는데 ‘쌍다리 기사식당’, ‘쌍다리 돼지불백’으로 불리기도 한다. 1970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성북동은 외진 곳이어서 택시나 버스 기사가 아니고서는 찾아오기 힘든 장소였다. 직업 특성상 시간적 여유가 없는 기사들을 위해, 한쪽 구석에 화덕을 따로 마련해 두고 미리 구워진 돼지불백을 손님상에 바로 내놓았다. 그래서 서울을 대표하는 기사식당이 되었는데, 현재는 입소문과 인터넷,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져 기사 손님보다 일반 손님이 더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2016년 서울시 미래유산에 선정되었다.
  • 성북동 국시집
    장소
    성북동 국시집
    성북구 창경궁로 43길 9(성북동1가 9)에 위치한 음식점이다. 성북동 국시집은 1969년 개업하였는데,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져 같은 장소에서 2대째 운영하고 있는 칼국수 전문 식당이다. ‘국시’는 ‘국수’의 경상도 방언이고, 이 집의 조리법은 경상북도 안동이 뿌리이다. 칼국수 국물은 소고기를 4시간 정도 끓여서 만들고, 사골국물로 반죽한 면을 따로 끓여 넣어 완성하는데, 조미료를 넣지않은 담백함이 특징이다. 칼국수를 좋아했던 고(故) 김영삼 전대통령이 자주 드나들면서 정치인들 사이에서 먼저 유명세를 탔다. 최근에는 음식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들에 소개된 이후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고 있다. 2015년 서울시 미래유산에 선정되었다.
  • 보문동 한옥밀집지역
    장소
    보문동 한옥밀집지역
    보문동 일대에 조성된 한옥밀집지역이다.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보문동 일대 한옥밀집지역’은 성북구 보문로13라길(보문동6가) 일대로 23,305㎡의 면적으로 한옥 비율은 전체 건물 중에 23.5%이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돈암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보문동 일대에 대량으로 도시형 한옥이 지어졌는데, 우리나라 근대기 주택유형 가운데 하나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전가치가 있다. 필지 합병을 통한 주택 건축 등으로 빠르게 한옥 멸실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특별시는 성북구는 주민의견 수렴 및 지정 요청에 따라 성북구의 한옥전수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전가치가 있는 지역을 설정하고 서울특별시 한옥위원회 자문을 거쳐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하였다.
  • 미아리 역학촌/인터뷰
    장소
    미아리 역학촌/인터뷰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고개 일대의 점집 밀집 지역에서 오랫동안 역술업에 종사했던 역학사들의 인터뷰를 모은 것이다. 현대 역술업이 주로 맹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심남용(청산철학관)의 인터뷰를 비롯하여 8명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미아리 역학촌의 출발과 전성기, 쇠락의 시기와 사회분위기 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 미아리 역학촌/기사
    장소
    미아리 역학촌/기사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고개 일대의 점집 밀집 지역에 관한 신문기사의 모음이다. 기사에서 다룬 내용들을 보면, 점성촌이 활황을 누린 1970년대 기사부터 수록되었는데, 특히 80년대엔 점집들에 손님이 넘쳤고 선거, 입시, 당선, 합격 등에 관한 다양한 관심과 기원이 소개되었다. 1998년 IMF 직후에는 개인적인 관심 외에도 위기에 놓인 나라의 운세까지 점 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인터넷으로 점을 치고, 점집의 형태나 운영도 다양해지는 등 새로운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점시장’이 조용히 늙어가고 있다는 기사까지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 미아리 역학촌
    장소
    미아리 역학촌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고개 일대에 점집들이 밀집하면서 형성된 지역을 지칭한다. 1966년 미아리고개의 도로를 확장하면서 고개의 경사를 낮추었고 야트막한 고가도로도 놓였다. 고가도로 밑에는 도로 양쪽 동네를 연결하는 길이 생겼고 행인들이 오갔는데, 이곳에 노점 점집이 들어서고 장사가 잘 되면서 주변에 많은 점집이 모여 들었다. 이렇게 형성된 점성촌은 1970~80년대에 호황을 누렸는데, 1998년 IMF 사태 이후 손님이 줄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주변 재개발과 점을 보는 문화가 바뀌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현재는 일부만 남았는데, 이 역시 우리 현대사의 한 장면이었으므로 2014년 서울시의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 동소문동2가 한옥밀집지역
    장소
    동소문동2가 한옥밀집지역
    성북구 동소문동 2가 일대에 한옥이 밀집된 지역을 가리킨다. 성북구는 서울시 전체의 한옥의 약 11.8%가 위치하는 곳이며, 서울에서 2층 한옥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동소문동2가에 남아 있는 한옥 대부분은 1936년 돈암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도시형 한옥이다. 우리나라 근대기 주택 유형 가운데 하나로 보전가치가 있다.
  • 나폴레옹 과자점
    장소
    나폴레옹 과자점
    성북구 성북로 7(성북동1가 35-5)에 있는 제과점이다. 1968년 2월 삼선교 부근에 처음 문을 연 이 제과점은우리나라 14명의 제과 명장 중 5명을 배출한(2019년 기준) 한국제빵사들의 산실이다. 고 강인정 초대사장은 제과제빵 선진국인 일본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 창업했으므로 처음 ‘동경제과’란 상호로 업소 등록을 신청했지만 ‘왜색’이라는 이유로 당국의 불허 통보를 받았다. 빵집 이름을 다시 정해야 했었는데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이 즐겨 읽던 나폴레옹 위인전에서 힌트를 얻어 지금의 상호를 달았다고 한다. 2007년 성북천 복원공사로 삼선상가가 헐리면서 여기로 이전 확장했다. 2018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본관
    장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본관
    성북구 화랑로14길 5(하월곡동 39-1)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본관이다. 한국과학 기술원은 1966년 2월 10일 국가 미래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원천기술 개발과 기초·응용과학의 연구를 위해 설립되었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본관은 1969년 10월에 준공되었다. 이 건물은 한국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으로 건물의 외관이 노출콘크리트로 되어있으며, 건물의 뼈대인 기둥과 보과 겉으로 드러나 있어 미술작품처럼 조형미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건물의 3층 가운데에는 중정(中庭)이 있어 중정을 중심으로 방향성을 갖도록 배치된 사무공간이 거대한 톱니 바퀴를 연상시킨다. 이 건물은 준공당시의 모습을 양호하게 간직하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시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태조감자국
    장소
    태조감자국
    성북구 동소문로18길 5(동소문동5가 64-1)에 위치한 역사가 오래된 상업시설이다. 태조감자국은 감자탕 전문점으로 1958년 개업하여 3대째 식당을 이어가고 있다. 창업주 이두환이 감자탕이라는 용어가 없던 시절에는 국물이 많은 메뉴 특성상 ‘감자국’이라는 이름을 붙여 지금의 돈암시장 초입에 ‘부암집’을 개업한 데서 시작되었다. 처음 개업한 장소에서 건물 3개층까지 식당을 확장해 운영하였으나 건물주의 일방적인 약속불이행으로 부암집 영업을 포기하고 현 위치의 태조감자국만을 운영하게 되었다. 2019년 돈암시장에 있던 본점은 재개발로 인해 문을 닫았고, 2호점격이었던 성신여대가 사실상의 본점이 되었다. 태조감자국은 우리나라 감자탕 요리의 시초가 된 감자국 전문점으로 식문화사 측면에서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이다.
  • 장위동 230-49 주택
    장소
    장위동 230-49 주택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주택이다. 일명 ‘김중업 건축문화의 집’이라 한다. 1966년 동방생명보험회사의 택지조성사업 추진에 따라, 1970년 건축되었으나 노후화가 진행되자 1986년 한국의 근현대 건축의 토대인 김중업과 김수근이 리모델링한 주택이다. 주택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하얀 담벼락을 가진 단독주택으로, 주택 안팎에는 김중업의 건축세계가 그대로 담겨있다. 2016년 12월 성북구와 안양시가 ‘김중업 건축문화의 집’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김중업 건축문화자산을 위한 홍보 및 교육의 공동 추진과 지식정보를 교환하기로 하였다. 이 주택은 김중업의 건축세계를 확인할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한국의 중산층 주택이라는 건축사적 의의를 인정받아 2017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박경리 가옥
    장소
    박경리 가옥
    성북구 보국문로29가길 11(정릉동 768-2)에 위치한 가옥이다. 『토지』 『김약국의 딸들』 등의 소설로 유명한 소설가 박경리(1926~2008)가 1965년부터 1980년 원주로 이사갈 때까지 정릉골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실제 거주했던 기간은 1~2년이었다고 한다. 소설 『토지』 1~3권이 이곳에서 집필되었다. 한국 문학사에 있어 중요한 작품인 대하소설 ‘토지(土地)’를 쓴 소설가 박경리가 생전에 거주했던 곳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필요성 때문에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까끌레 뽀끌레
    장소
    까끌레 뽀끌레
    성북구 보문로 31길 50(삼선동5가 92-1)에 위치한 미용실이다. 창업주 유병영이 1964년 동소문동 6가에서 개업하였다가 1976년 돈암시장으로 이전했고, 2000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2012년에 건물을 신축하여 현재까지 미용실을 운영해 오고 있다. 창업주는 20세 때 을지로와 종로에 있는 미용실에서 일을 배웠으며 1960년부터 1963년까지는 미용학원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1990년대부터 창업주 혼자 커트, 파마, 염색 등을 서비스하는 작은 규모로 운영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고객이 단골이다.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
    사건, 유물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
    약 80여 년 전부터 시작한 정릉동의 동신제이다. 현재는 대덕사 뒷산에서 매년 10월 초하루, 오전 10시경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산신제는 종묘제를 본떠 지내고 있는데, 각기 다른 지역의 주민들이 다양한 제의절차를 절충하여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하나 된 마음을 담아 지내고 있다. 배밭골 산신제는 마을이 생활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오늘날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고유 제례 행사로서 민속적 보존가치와 보전의 필요성을 인지하여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선잠제
    사건, 유물
    선잠제
    고려시대부터 중국 황제의 비 서릉씨를 잠신으로 하여 매년 음력 3월 양잠농사의 풍요를 비는 제사이다. 고려 초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국가제사로 조선 태종 연간에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7에 선잠단을 세우고 국가의 주도하에 의식을 치르게 되었다. 선잠제는 의생활과 관련된 제사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제와 달리 여성이 제의 주체가 되는 점이 특징이다. 한일합방 직전이었던 융희 2년(1908) 신위를 사직으로 옮겨 모시면서 선잠제는 중단되었고, 선잠단 터는 1963년 1월 사적 제83호로 지정되었다. 성북동에서는 주민들이 선잠제보존위원회를 만들어 1993년부터 매년 5월 선잠단지에서 선잠제를 재현하면서 그 의미를 다시 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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