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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종암동청년회
- 성북구의 집수리 봉사단체이다. 1994년, 종암동에 살던 20대~30대가 만든 친목 모임으로 시작하였다. 이왕이면 좋은 일을 하자고 하여 집수리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관내 저소득계층을 대상으로 현재까지 200곳이 넘는 집을 수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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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북악산로
- 종로구 부암동에서 성북구 종암동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다. 북악산을 지나는 도로로 북악스카이웨이가 이 북악산로의 일부이다. 성북동, 정릉동, 미아리고개, 돈암동, 안암동5가, 종암동을 지나가고 있다. 연장은 9.7km, 큰 도로 폭은 20~35m정도이며 2~4차선으로 이뤄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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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회기로
- 6호선 고려대역에서 1호선 회기역까지 횡단으로 이어지는 4차선 도로이다. 도로는 종암동, 청량리동, 회기동을 관통하고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회기로라는 명칭은 이 길의 종점인 동대문구 회기동 동명에서 유래되었다. 도로는 성북구 성북구 종암동 30-114번지(종암동삼거리)에서 회기동을 거쳐 회기동 346-3번지(휘경동사거리)에 이르는 폭 20m, 길이 1,750m의 도로이다.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처음 이름 붙여졌다. 이 길은 천장산 남쪽 기슭에서 청량리제2동과 회기동을 동・서로 횡단하며, 종점에서 이문로와 교차한다. 회기로라는 명칭은 여전히 사용중이며, 성북구 관내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도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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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이육사 문화제
- 일제강점기 대표적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이육사는 1939년부터 3년간 성북구 종암동에 거주하며 「청포도」, 「절정」 등 대표작을 발표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15년부터 이육사 문화제를 매해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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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종암동 채석장
- 1960년대까지 개운산에 있었던 채석장이다. 종암1동에 거주하는 진씨(陳氏) 성을 가진 사람의 채석장이 있었기에 개운산을 ‘진석산(陳石山)’으로도 불렀다. 진석산은 양질의 석재 산출지로 예로부터 유명하여 일찍부터 채석업과 석재 가공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진석산의 돌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를 지을 때에도 사용되었으며, 현 종암중학교 자리에 있던 '중앙산업'은 대한민국 최초의 아파트인 종암아파트(1958) 등을 지을 때 종암동 채석장의 돌을 사용하였다. 또한 인근 고려대학교의 석조건물 건축 당시 종암동 채석장에서 돌(화강암)을 가져왔다고 한다. 지금도 개운초등학교와 종암중학교 주변에서 채석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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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종암동 북바위둘레길
- 종암동 전체를 둘러볼 수 있도록 만든 생활·생태마을 둘레길이다. 10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총 길이는 약 5.8㎞이다. 둘레길은 종암동 주민센터에서 시작하는데 각 구간의 이름은 1구간 종암동북바위마을길(230m), 2구간 북바위유래비길(300m), 3구간 이육사시인길(600m), 4구간 개운산산책길(600m), 5구간 개운산길(1,000m), 6구간 (옛)종암아파트길(250m). 7구간 북바위전답터길(350m), 8구간 은행나무바람길(850m), 9구간 종암동정릉천벽화길(1,000m) 10구간 소방서, 경찰서, 종암시장길(650m)이다. 둘레길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북바위유래비, 문화공간이육사, 개운산, 북바위전답터, 은행나무바람길 등 마을의 주요 명소들을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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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박은
- 조선 초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고 종암동에 거주했던 문신이다. 고려 말 학자 박상충(朴尙衷, 1332-1375)의 아들이자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의 사위이다. 제1, 2차 왕자의 난에서 태종을 도와 공을 세웠다. 우의정에 오른 후에도 조밥으로 식사하며 재물에 욕심내지 않는 박은의 청빈함에 감명을 받은 태종이 북바위 근처의 밭(지금의 종암중학교 부근)을 하사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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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종암동 주민자치회
- 주민자치회는 주민과 행정의 최접점인 동단위에서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의 기능과 권한을 확대한 대표적인 주민자치기구이다. 종암동은 2017년 성북구 동선동과 함께 서울형 주민자치회 시범 동으로 선정된 이래 종암동 소식지 '너나들이' 발행, 주민자치학교 및 주민해설사교육 운영, 골목갤러리 조성, 미니도서관 '꿀벌책단지' 설치, 공유우산 운영 등 주민 주도의 다양한 사업을 실행해왔다. 2018 행정안전부 주민자치회 우수동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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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서울시립 성북노인종합복지관
- 1999년 개관한 성북구 내 유일한 노인종합복지관이다. 지역 노인의 공동체의식을 조성하고 저소득 노인의 자립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만 60세 이상의 노인이라면 회원가입 후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셔틀버스와 경로식당을 운영하며, 미술·운동·외국어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2019년 8월부터 2022년 현재까지 사회복지법인 한기장복지재단이 위탁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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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유물
- 변영호
- 종암동에 거주했던 국가무형문화재이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 마을에서 하는 사자놀이를 보고 혼자 연습하다가 17세에 퉁소를 불면서 직접 북청사자놀이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북청사자놀음은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정월 대보름에 사자탈을 쓰고 놀던 민속놀이로, 사자에게는 사악한 것을 물리칠 힘이 있다고 믿어 잡귀를 쫓고 마을의 평안를 비는 행사로 널리 행해졌다. 놀음에는 사자, 양반, 꺾쇠, 꼽추, 사령, 무동, 사당, 중, 의원, 거사 등이 등장하며, 악기로는 퉁소, 북, 징, 장구 등이 쓰이는데, 퉁소가 많이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변영호는 1961년부터 1986년까지 총 21회에 걸쳐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1972년에 공로상, 1974년에 장려상을 수상했다. 1970년 7월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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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숭신방
- 조선시대 초기부터 성 밖에 있던 한성부 동부 12방 중의 하나로, 현재의 성북구 돈암·동선·삼선·성북·안암·정릉·종암동 일대가 이에 속하였다. 한성부의 영역은 도성과 성저십리(城底十里)로 이루어졌는데 그 범위가 매우 넓어 이에 해당하는 영역을 한성부가 단독으로 통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기에 1396년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누었는데 방은 공식적으로 조선 전기 한성부의 가장 하위 행정 조직이었으며, 이때부터 5부 중 동부(東部)에 숭신방(崇信坊)이 확인된다. 이 명칭은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숭신방이 숭신면(崇信面)으로 변경될 때까지 사용되었으며 숭신면은 3년 뒤인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崇仁面)에 편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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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성북04 마을버스
- 성북구 동선동, 안암동, 종암동 일대를 지나는 마을버스이다. 운수사는 안암교통이며, 노선은 성신여대입구역을 시작으로 삼선동주민센터, 성북구청, 용문중·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안암역, 종암초등학교 등을 거쳐 신설동역까지 도달한 후 회차한다. 배차시간은 6분 정도이며, 운행시간은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출발하는 첫차가 오전 5시 20분, 막차가 밤 12시이다. 6번 마을버스가 그 전신이며 2004년 7월 1일 서울시 버스 체계 개편 때 성북04번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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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1111 지선버스
- 성북구 일대에서 운행되는 지선버스이다. 성원여객과 한성운수에서 공동배차로 운영하며, 강북구 번동에 위치한 한성운수에서 시작하여 장위동, 월곡동, 종암동, 안암동, 보문동, 삼선동 등 성북구 일대를 지나 성북동에 위치한 심우장 부근까지 도달한 후 회차한다. 구 417번 지역순환버스가 그 전신이며, 2004년 7월 1일 서울시 버스 체계 개편 때 번호가 1111로 변경되었다. 배차간격은 8~12분, 운행시간은 첫차가 오전 4시 20분, 막차가 밤 11시 20분이다. 타 지역에서 성북동으로 이동 시 유용한 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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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종암 박스파크
- 성북구 화랑로 6(종암동 3-1288)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종암 박스파크는 2020년 12월 10일에 준공되고 2021년 개관된 복합문화공간이다. 대지면적 1455㎡(441평) 지상 1층, 연면적 692.5㎡(210평) 규모의 문화 예술공간으로, 고가 하부에 있는 남은 공간을 활용한 체육 등 다용도로 활용 가능한 문화공간으로 도심 속 주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이다. 2021년 7월부터 9월까지 예방접종 센터로 운영되었으며 10월부터는 체육 프로그램 위주의 시범운영이 시작되었고 2022년부터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다목적 체육공간으로서 성북구 주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제7회 한국문화공간상 작은문화공간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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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나희덕
- 시인이다.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어린 시절 일 년 남짓 숭례초등학교 부근에 살았던 나희덕은 1994년에 발표한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에 종암동 배경의 자전적 이야기인 「못 위의 잠」을 수록하였다. 시집으로는 『그곳이 멀지 않다』, 『사라진 손바닥』, 『파일명 서정시』 등이 있으며 『반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등의 수필집을 출간하였다.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학 부문,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거쳐 2019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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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이춘명
- 성북구에서 20년 이상 거주하며 시, 동화, 신문 칼럼을 쓰는 작가이다. '시산문(詩散門)' 회원들과 함께 펴낸 시집 『풀씨 하나가 피운 꽃』(2020)을 통해 석관동, 종암동, 장위동 등 자신이 거주했거나 거주 중인 성북구에서의 삶을 담은 시 여러 편을 발표하였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자 어린이 도서 연구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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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박준
- 시인이다.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 2008년 계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2012),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2018)로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이어가며 시의 부활을 이끈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 밖에도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2017), 시 그림책 『우리는 안녕』을 썼다. 제31회 신동엽문학상(2013),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17), 제7회 박재삼문학상(2019)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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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인물
- 정병호
-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칠장(漆匠) 중 남태칠 분야의 명예보유자이다. 칠장은 칠기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하며, 그중에서도 남태칠은 대나무의 표피를 벗겨내고 다듬어 칠기의 백골 및 재료로 만든 후 옻칠을 도장하는 전통공예 기법이다. 2009년 3월 5일 남태칠 기능 보유자 인정 이후 종목의 전승에 크게 기여해 왔으며 최근 건강 악화에 따른 전수교육이 불가하다고 판단함에 따라 2021년 1월 18일 명예보유자로 인정하였다. 주소지는 성북구 종암동이며, 서울공예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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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못 위의 잠
- 나희덕 시인의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작과비평사, 1994)에 수록되었다. 「못 위의 잠」은 열 살 무렵에 서울로 이사와 종암동에서 일 년 남짓 살았던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화자는 어미와 새끼 제비들이 자는 작은 둥지 옆에 박힌 대못 위에서 졸고 있는 아비 제비를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 시절 아버지의 힘겨웠던 삶에 공감과 연민을 보내며, 나아가 1970-80년대 산업화 시대를 살아간 고단한 가족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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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종암동
- 2018년에 출간된 박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 수록되었다. 작가는 어느날 자신의 집에 찾아온 아버지와의 일화를 소재로 시 「종암동」을 썼다. '울보 시인'으로 불릴 만큼 그의 작품에는 ‘울음’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눈물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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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종암동성당
- 성북구 종암로 82(종암동 10-28)에 위치한 종교 시설이다. 종암동성당은 2002년 3월 월곡동성당으로부터 약 1,700명의 신자가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처음 성당이 설립되었을 때에는 기존에 상가건물을 그대로 활용하였으나 꾸준한 환경 개선작업을 통해 같은해 12월 단장을 마치고 성탄미사를 진행하였다.
2017년 2월 부터 최재용 신부가 주임신부를 맡고 있다. 미사는 주 13회 이루어지고 있다. 봉성체, 성시간, 성모신심미사, 유아세례, 고해성사, 혼배면담, 예비자교리로 나뉘어 실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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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삼왕설비
- 성북구 종암로22길 14(종암동 3-1262)에 위치한 가게이다. 간판에서 오랜 세월을 읽을 수 있다. 서울시 시공업 지정업체이다. 가게 내부의 벽면은 각종 표창장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구청장과 서울시장, 건설교통부장관, 지식경제부장관 등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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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오거리감자탕홍어
- 성북구 종암로21길 95(종암동 81-104)에 위치한 식당이다. 2020년에 개업 43년이 되었고, 사장님 부부는 어느새 70대가 되었다. 식당 내부는 전부 좌식이었는데, 몇 년 전에 일부는 식탁을 놓는 리모델링을 하여 자리를 선택해서 앉을 수 있다. 감자탕과 홍어가 주메뉴인데 항상 사람들로 가득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요즘은 포장손님이 많다고 한다. 배달서비스는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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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원조손칼국수
- 성북구 종암로113(종암동 86-1)에 위치한 식당이다. 1979년에 문을 열었고, 처음엔 언니가 운영을 하다가 현재 사장님이 이어서 하고 있다. 현재(2020년) 사장님 연세는 82세로 고령이지만 여전히 정정하시다. 양지육수를 내서 하는 곳으로는 주변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벽면에 김인식 야구감독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사장님의 동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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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광영당
- 성북구 종암로104(종암동 83-28)에 위치한 귀금속 가게이다. 가게 유리창에는 3대가 60년째 운영하고 있다는 글이 붙어 있다. 현재는 3대인 30대 젊은 사장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1대인 할아버지는 전라남도 함평에서 귀금속 가게를 시작했고, 1960년대에 종암동으로 이사와서 정착을 했다고 한다. 옛 종암시장 입구에서 가게를 시작했다가 종암시장이 재건축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광영당은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고, 공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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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종암꽃화원
- 성북구 종암로22길 12(종암동 3-396)에 위치한 꽃화원이다. 1991년 7월 종암동에서 서예학원을 시작했던 사장님은 꽃을 워낙 좋아해서 화원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어느 날 화원 사장님이 리본을 들고 와 '축 발전'이라는 문구를 써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계속 글씨를 써주게 되었다. 그러다가 1992년 화원 사장님이 종암동을 떠나면서 화원을 자연스럽게 인수받은 것이다. 사장님은 서예학원을 계속 운영하면서 언니와 함께 화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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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고려상회
- 성북구 종암로56(종암동 8-116)의 고려상가 가동에 위치한 가게이다. 쌀과 소금, 건어물 등을 판매하다가 현재는 건축설비 일을 하고 있다. 사장님은 1948년 생으로 종암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6년이었다. 4년 간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미곡상에 일하다가 군대를 다녀온 후, 1974년에 결혼을 하고 1975년에 고려상회를 열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마이카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쌀장사가 하락세를 보였고, 소금도 수요가 차츰 줄어들었다. 2010년 고려상회가 문닫기 전까지 아내가 일을 맡아서 했고, 사장님은 건축설비를 틈틈이 했다고 한다. 지금도 고려상회 간판을 달고 있지만, 건축자재가 곳곳에 쌓여있다. 사장님은 종암동 제27통장을 무려 39년이나 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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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진흥양복점
- 성북구 종암로21길 3(종암동 70-1)에 위치한 양복점이다. 진흥양복점 홈페이지에는 "자유당 말기 전차가 다니던 시절 종로 3가 유일라사에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40여 년 동안 뒤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장인정신의 혼이 담긴 손바느질 명품양복만을 고집해 온 양복기능사 1급의 명장의로 성공한 손바느질 양복점입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먼저 서소문에서 가게를 열었다가 부도가 난 후 1976년 종암동에 들어왔다. 사장님은 한국맞춤양복기능경진대회, 소상공인기능대회, 한국섬유패션 등에 참가해서 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상의와 하의, 그리고 마무리를 하는 분업화 공정으로 네 분이 함께 일하고 있다. 한국맞춤양복협회 동북4구에 속해 있던 수많은 가게들이 모두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양복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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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고려상가
- 성북구 종암로56(종암동 8-116)에 위치한 상가 건물이다. 1970년에 8개 동, 2층 건물로 세워졌다. 1977년 서울시가 유통구조 개선책의 하나로 고려시장을 개설하여 창구를 일원화할 목적으로 건어물도매시장을 고려상가에 개장했다. 그러나 도매시장으로서의 역할이 중부시장에서 완전히 넘어오지 못한 탓에 1981년 6월 문을 닫았다. 이후 봉제와 자수, 직조 업체 등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섬유계통으로 이뤄진 공장지대가 되었다. 1989년 3층으로 증축을 했다. 섬유업계가 쇠퇴기에 들어서면서 2010년대에는 용두동과 왕십리 재개발로 인해 철공소 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는 직조 업체는 없고, 300여 개 업체 가운데 대부분 봉제와 컴퓨터자수 업체이고, 철공소는 10여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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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충남쌀기름
- 성북구 종암로19길 65(종암동 55-53)에 위치한 가게이다. 1974년에 문을 열었고, 다루는 품목은 살과 참기름, 들기름 등이다. 가을이면 고추를 빻는 방안간 일도 한다. 현재 쌀 소매는 하지 않고 있다. 1986년 가게 앞 도로가 정비되면서 규모가 반으로 줄었다. 도로와 하수정비가 되지 않은 초창기에는 비가 많이 내리면 가게가 물바다고 되어 곡식을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창업 초기부터 사용했던 쇠절구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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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고려상가 내 세탁소
- 성북구 종암로56(종암동 8-116) 고려상가 바동에 위치한 세탁소이다. 입간판조차 없고 샷시문 유리창에 빨갛게 '세탁'이란 단어만 표기되어 있다. 1984년 국민은행 종암동 지점 뒤편에 은행 직원들을 위한 숙소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세탁소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였다. 세탁소를 이용하는 고객 99%가 은행 직원들이라 굳이 간판이 필요 없었다고 했다. 세탁소 내부에는 와이셔츠와 양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세탁소 문을 연 연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건어물 시장이 나가면서 들어왔다는 설명으로 추측해 보면 1980년대 중반에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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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종암동 동아열쇠
- 종암동(월곡로5길 50)에 있는 상업시설이다. 종암시장과 연결된 안쪽 골목에 있는데, 식당이 많은 거리에 비해 유동인구가 적어 주변에는 세탁소, 부동산, 수리점과 같은 상점들이 있다. 가게는 직사각형 지면의 형태로 내부에 따로 창이 없고 외부와 연결되는 문이 2개 있다. 문과 연결되는 가게의 바로 옆은 외부에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공용 화장실이 있다. 가게 옆으로 난 문은 물품이나 짐들을 한 쪽으로 모아놓고 들이기 쉽게 하기 위한 문일 듯 하다. 가게가 위치한 건물의 외부는 콘크리트와 시멘트를 기반으로한 적벽돌을 쌓아 올렸고, 건물 입구 위와 기둥은 대리석으로 마감되어있다. 내부는 콘크리트에 바닥은 pvc장판, 벽과 천정은 페인트 마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게의 연면적은 약 10.8㎡(3평 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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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종암동 동경명품세탁소
- 종암동(월곡로5길 49)에 위치한 상업시설이다. 종암동 큰 번화가에서 살짝 외진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는 동경명품세탁소는 주변에 주택가가 형성되어있고, 대부분 1층은 상가로 이루어져 있다. 주택가 사이에 위치해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지만 주변 단골 손님들로인해 많은 작업물들이 걸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작업대,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정면을 바라보면 옷들을 걸어놓는 행거, 그 너머로 제봉틀과 세탁기, 건조기가 놓여있다. 건물은 시멘트와 벽돌로 지어졌으며 바닥은 테라조, 내부 벽체는 페인트로 마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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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종암동 풍년떡집
- 종암로 28길에 위치한 상업시설이다. 풍년떡집은 1984년부터 운영되어 왔다. 큰 도로에서 조금 들어오는 골목에 위치해 있으며 길에서 바로 진입이 가능하다. 1층짜리 단층건물에 7평 남짓한 작은 공간으로, 가게 외부에는 작은 제품들을 진열해 놓을 수 있는 매대가 있다. 가게 내부는 떡들을 진열해 놓을 수 있는 매대, 떡을 만들고 포장을 할 수 있는 공간, 떡을 찔 수 있는 찜기들과 조리기구들이 있는 조리공간과 재료들을 보관하는 창고 2개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은 벽돌로 마감되어 있고 지붕은 기와지붕이다. 내부는 바닥과 벽면 대부분 타일마감이다. 연면적은 약 29.28㎡(약 7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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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서울예술치유허브
- 성북구 회기로3길 17(종암동 28-358)에 있던 문화예술공간이다. 도심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울시가 조성하였으며, 2009년까지 이 자리에 위치해 있었던 성북구보건소를 리모델링했다. 2010년 7월 성북예술창작센터로 개관했으며, 2016년 서울예술치유허브로 개칭하였다. 연면적 1,997㎡에 지하 1층에서 지상 4층에 이르는 건물로, 예술가 스튜디오, 갤러리, 다목적홀, 주민창작실, 옥상공방 등이 구성되어 있었다. 2022년 9월 서울예술치유허브를 리모델링하여 성북여성취업교육센터를 개관하면서 현재는 운영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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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이육사 집터
- 종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집터이다. 이육사는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특히 종암동에서 거주하던 시기인 1939년부터는 「청포도」, 「절정」 등 그의 대표작을 발표하였다. 그는 지금의 종암동 62-1번지에 거주하였으며, 현재 빌라가 밀집되어 있는 주택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지역민들의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는 '문화공간 이육사'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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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이극로
- 국어학자이자 정치인이다. 경상남도 의령 출신으로 1920년 중국 상해 동제대학, 1927년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수학한 후 귀국하여 1929년 『조선어사전』(뒷날 조선어학회의 조선말큰사전)편찬 집행위원을 맡았다. 이후에도 한글맞춤법 제정위원, 조선어 표준어 사정위원, 조선어사전 편찬 전임위원 및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지내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힘썼다. 1942년 10월 1일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검거되어 징역 6년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아 풀려났으며 1948년에 월북하였다. 주요 저서로는「조선어 임자씨의 토」, 「조선어 단어성립의 분계선」, 「짓말에 대하여」 등이 있다. 1929년 결혼 후 약 10년 동안 숭례초등학교 부근인 종암동 40번지에서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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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서울성북소방서
- 성북구 종암로27길 3(종암동 3-72)에 있는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산하의 소방서이다. 1974년 서울북부소방서의 신설이 결정되었고, 1975년 2월 28일 개설되어 종암, 미아, 돈암, 창동 등 성북구와 도봉구 일대를 관할하였다. 1989년 5월 서울도봉소방서가 신설되면서 서울북부소방서는 서울성북소방서로 명칭이 변경되고 성북구 전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2007년 12월에는 신청사를 준공하였다. 현재 성북소방서는 다중이용업소 자율안전점검 및 안전교육, 화재피해 주민 지원 센터, 소방안전교육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삼선동, 길음동, 장위동에 119안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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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북바위 청포도 문화제
- 종암동에서 개최되는 마을 축제이다. 2012년 10월에 개최되었다. 종암동은 일제강점기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육사가 거주했던 곳이다. 종암동 북바위 청포도 문화제는 이육사의 정신을 기리고 마을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개최되었다. 문화제는 종암동 주민센터를 출발점으로 하여 사물놀이패와 주민 일행이 마을 이름의 유래가 적힌 ‘북바위 유래비’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행렬이 북바위 유래비에 도착하면 북바위 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염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이후 인근 학교 운동장에서 시상식, 이육사 시 낭독회, 축하공연이 진행되고, 체험 및 행사 부스가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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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종암동 주민센터
- 성북구 종암로 98-8(종암동 16-8)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고려대학교 뒷산에 북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를 한자로 종암(鐘岩)이라고 부른 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43년 6월 구제 실시 때 동대문구에 속하였다가 1949년 성북구의 신설로 성북구에 속하게 되었다. 1970년 5월 18일 시조례 제613호에 따라 종암제1동과 종암제2동으로 분동되었다. 2007년 12월 30일 구조례 제698호에 따라 종암동으로 합동되면서 종암동 주민센터는 종암동 전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1.46㎢, 인구수는 4만여 명, 세대수는 17,131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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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물
- 서울일신초등학교
- 성북구 월곡로 74(종암동 1-79)에 위치한 공립초등학교이다. 1996년 3월 1일 설립인가를 받고 2000년 10월 25일 개교식을 거행하였다. 꿈과 사랑으로 행복을 가꾸어 가는 학교를 만드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으며, 교훈은 ‘새롭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며 건강하게 생활하자’이다. 2017년 생활교육 우수학교 교육장 표창을 받았다. 2019년 2월 제18회 졸업식을 거행하였고, 누적 졸업생 2,569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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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물
- 서울숭례초등학교
- 성북구 종암로5길 14(종암동 22-1)에 위치한 공립초등학교이다. 1922년 6월 숭인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고 1936년 경성부로 편입되었다. 1937년 3월 경성종암공립보통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임시 휴교하였다. 1945년 11월 1일 초등학교로 신발족하고 개교하였다. ‘창의·인성·건강이 조화된 민주시민을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예절교육, 독서·토론·인문 소양교육, 맞춤식 진로교육 등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제8회 종암동 북바위 청포도 문화제, 제9회 책모꼬지 행사 등을 진행하였고, 같은 해 12월 진로교육 학교우수상 교육장 표창을 받았다. 2020년 2월 제73회 졸업식을 진행하고, 누적 졸업생 40,132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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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서울 종암경찰서
- 성북구 종암로 135(종암동 3-1260)에 위치한 서울지방경찰청 관할 경찰서이다. 1979년 10월 15일 대통령령 제9645호에 의거하여 성북 및 북부경찰서가 분할되면서 당시 성북구와 도봉구의 일부 관할 지역이 종암경찰서로 이전되었고, 같은 해 12월 29일 개서하였다. 현재 월곡동, 장위동, 석관동, 종암동, 길음2동 등 성북구의 동부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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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물
- 종암중학교
- 성북구 종암로5길 80-17(종암동 32-3)에 위치한 중학교이다. 1980년 4월 9일 설립인가를 받았다. 1987년 11월 21일 종암여자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가 2002년 03월 다시 종암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2003년에는 정보화관, 2013년에는 체육관을 개관하였다. 2017년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우수학교로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2019년 2월 제36회 졸업생을 진행하고 누적 졸업생 19,680명을 배출하였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으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고 교육 당국이 온라인개학이 검토하면서 2020년 3월 30일 원격수업을 시범 운영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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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물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 성북구 월곡로36(종암동 7-10)에 위치한 국립 중학교이다. 1945년 10월 1일 경성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46년 9월 경성사범학교 보통과와 경성여자사범학교 심상과를 합치면서 창립되었다. 1947년 10월 남자부가 을지로 교사에서 용두동 여자부 교사로 이전하여 남녀 공학을 실시하였다. 1968년 국립학교설치령이 개정됨에 따라 1969년 본교 여학생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로 분리하였다. 1975년 5월 12일 용두동 교사에서 현 종암동 교사로 이전하였고, 1993년 3월 신축 교사를 준공하였다. 201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로 교명을 개명하였다. 2020년 1월 8일 제70회 졸업식을 진행하였으며, 누적 졸업생 26,429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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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문화공간 이육사
- 성북구 종암로21가길 36-1에 위치한 문화공간이다. 종암동은 이육사가 1939년부터 거주했던 곳이자 대표작 ‘청포도’를 발표한 곳이다. '문화공간 이육사'는 이육사를 기리는 동시에 주민들의 소통 공간이다.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공간의 명칭이 결정되었으며, 시인의 유고작인 ‘광야’가 발표된 12월 17일에 맞춰 개관하였다. 각 층은 공간의 기능에 따라 이육사의 대표작에서 따왔는데 1층 '청포도'는 안내데스크와 이육사와 성북구의 역사문화 소개 등이 있는 라운지이다. 2층 '광야'는 상설전시실로 이육사 작품전시와 이육사 관련 영상 상영이 이루어지며, 3층 '교목'은 기획 전시실 및 커뮤니티 공간으로 시민강좌, 영화 상영회, 문화행사 등이 진행된다. 그리고 옥상정원 '절정'은 포토존과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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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종암동새날도서관
- 성북구 종암로 98-8(종암동 16-8)에 위치한 도서관이다. 2011년 2월 25일 개관하였으며, 종암동 주민센터 4, 5층을 사용하고 있다. 4층에는 영·유아도서 열람 및 대출자료실, 세미나실 등이 있으며, 5층에는 어린이·청소년·일반도서 열람 및 대출 자료실, 하늘정원 등이 마련되어 있다. 2019년 1월 기준으로 도서 4만여 권, 비도서 2천여 개, 연속간행물 23종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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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종암로
- 성북구 종암동과 하월곡동을 지나는 도로이다. 서울의 동북쪽에서 성북구로 들어오는 주요 간선도로가 2개 있는데, 하나가 미아로이고, 다른 하나가 종암로이다. 종암로는 동대문구 제기동 종암삼거리에서 성북구 월곡동 미아삼거리에 이르는 폭 30m, 길이 2,250m의 6차선 도로로 전구간이 성북구 관내 도로이다. 종암로는 주변의 재래식 건물이 무질서하게 얽혀 있는 전형적인 구도로였으나, 성북구청은 1997년부터 이를 탈바꿈시키는 공사를 단행하였다. ‘물의 거리’라는 테마를 정하고 종암로 주변의 보도블록과 가로수, 벽화, 그리고 쌈지공원 등을 새롭게 조성했으며, 특히 거리의 명칭에 걸맞게 아름다운 분수대도 만들었다. 또 근처 초등학교 담장은 물결무늬의 벽화로 단장하는 등 구민들이 친밀감을 느끼도록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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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종암동/인구
- 종암동의 인구변화와 관련된 설명이다. 종암동의 인구는 1930년 649명으로 한산한 농촌지역이었다. 1949년에는 6,400명으로 해방 이후 크게 늘었으나, 6·25전쟁으로 2,684명까지 줄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는 서울의 도시화로 인해 인구의 증가 폭이 커짐으로써 1970년에는 52,321명까지 증가하였다. 그러나 1974년의 52,585명을 고비로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여, 1980년에는 48,991명, 1990년에는 48,871명으로 감소추세에 접어들었다. 감소의 원인은 종암로 주변의 상가의 확장으로 주거기능의 상대적 감퇴때문으로 보인다. 2018년 기준으로 종암동의 인구는 42,876명 세대수는 17,104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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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종암동
- 성북구에 위치한 행정구역인 동의 하나이다. 종암동은 조선 초부터 한성부에 속했으며, 조선 말 고종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 종암동계였으며, 갑오개혁 때에는 한성부 동서 인창방 동문외계 대종암, 소종암이라 칭하였다. 일제강점기 1911년 4월, 일제에 의해 경성부 숭신면 대종암, 소종암으로 개편되었다가, 1914년 경기도 숭인면으로 개편되었고, 다시 1936년 4월 대종암리와 소종암리가 종암리로 통합되어 경성부로 편입되었으며, 일본식 동명에 따라 종암정이 되었다. 1943년 동대문구에 속하게 되었으나, 해방 후 1946년 일본식 이름인 종암정 대신 종암동으로 바뀌었고, 1949년 성북구의 신설로 성북구에 속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