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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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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만린
    인물
    최만린
    조각가이다.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경기중학교 시절부터 조각 공부를 시작하여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였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는 모교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살 곳을 선택할 때에도 반포지구의 아파트 분양 혜택을 거부하고, “생명을 찾고 예술로 표현하는 사람은 땅을 밟고 흙을 만지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연이 가까운 곳을 선택, 정릉동에 손수 집을 짓고 살았다. 대표작으로는 「이브」, 「O」 시리즈가 있는데, 생명의 본질을 더욱 단순화된 형태로 승화시키면서 자신만의 방법과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다. 자택은 성북구 솔샘로 7길 23(정릉동 716-16)에 위치한다.
  • 송영수
    인물
    송영수
    조각가이다. 석고와 돌, 나무를 조각 재료로 쓰는 다른 조각가들과 달리 철과 생활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새로운 추상조각을 선보여 ‘철 조각의 선구자’라고도 불린다. 성북고등학교(현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와 모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1965년 동숭동에 있던 학교와 가까운 성북동으로 이사를 했다. 느티나무 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주변에 나무가 많은 곳이었다. 1970년 서울, 추풍령, 부산 세 군데에 추상조각을 세워 달라는 건설부의 주문을 받아 작품을 만들던 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다. 주요작품으로 「이준열사상」(1963), 「가족」(1964), 「대립」(1967), 「원효대사상」(1969) 등이 있다.
  • 김철주
    인물, 유물
    김철주
    국가무형문화재 제35호 조각장 기능보유자이다. 조각장이란 금속기의 표면에 평각(平刻)·투각(透刻)·고각(高刻)·육각(肉刻)·상감(象嵌) 등의 기법으로 문양을 새기는 장인으로 조이장(彫伊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각장 분야의 첫 기능보유자였던 김정섭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47년 백하금속조각사라는 공방을 열고 기술을 연마하였다. 이후 1970년대 초반부터 아버지의 전통 조각 기능을 배우고 익혀 1989년 12월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성북구 종암동 35번지에 거주하였다.
  • 김종영
    인물
    김종영
    우리나라 1세대 조각가이다. 1932년 동아일보사에서 주최한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람회에서 일등상을 받아 재능을 인정받았다. 일본 도쿄미술학교에서 유학한 후 서울대 조소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48년 돈암동(현 삼선동)에 30평쯤 되는 집을 구해 살다가 6.25전쟁 이후 서울대 공동관사로 옮겼다가 다시 삼선동에 집을 구해 이사했다. 1953년 런던에서 개최된 국제조각전에 「무명 정치수인을 위한 모뉴멘트」를 출품해 우리나라 최초로 해외공모전에 입상했다. 작품의 재료인 나무, 돌의 본연의 물성을 드러내는 추상조각을 남겼다. 주요작품으로는 「전설」(1958), 「3.1운동 기념상」(1963), 「가족」(1965) 등이 있다.
  • 김복진
    인물
    김복진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자 우리나라 근대조각의 개척자이다. 1920년 도쿄미술학교에 유학하여 조각을 전공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구식 조소 기법을 도입하였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과 ML당에 가담했다가 투옥되었는데, 신건설사 사건으로 검거될 당시 동생인 평론가 김기진과 함께 성북리 175번지(현 성북로8가길 18-9)에 거주하고 있었다. 「백화」, 「소년」, 「다산선생상」 등의 작품이 있으나, 6.25전쟁 당시 모두 불타 없어졌다. 다만, 금산사 미륵전의 「미륵대불」과 법주사 팔상전의 「미륵대불」이 현존한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 권진규
    인물
    권진규
    조각가이다. 1943년 춘천공립중학교 졸업 후 미술연구소에 들어가지만 곧 비행기 부품공장에 징용된다. 다음 해 공장을 도망쳐 귀국하였다. 1947년 성북회화연구소에서 회화 수업을 받았다. 1949년 9월, 무사시노미술학교(武藏野美術學校)에 입학하여 부르델의 계보를 잇는 시미즈 다카시를 사사하였다. 1959년 귀국 후 성북구 동선동에 작업실을 짓고 1973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였다. 삼국시대 토우에 뿌리를 둔 테라코타와 건칠(乾漆) 기법을 새롭게 연구·발굴한 그는 한국적 리얼리즘 조각의 세계를 정립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익대 조각과와 서울대 건축과, 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주요작품으로는 「자각상」, 「지원의 얼굴」, 「애자」, 「땋은 머리」 등 테라코타 흉상 작품이 있다.
  • 최종태
    인물
    최종태
    조각가이다. 1932년 대전에서 태어나 1958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60여 년째 조각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미술사조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하여 모델을 쓰지 않고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명동성당, 연희동성당, 돈암동성당과 바오로 수녀원 등 20여 곳에 성모마리아상 등 성상조각을 제작하였다. 그의 작품세계에는 종교의 벽이 없어 법정스님의 요청을 받고 길상사의 관세음보살상을 만들었다.
  • 오윤
    인물
    오윤
    판화가이다. 소설가 오영수의 장남으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현대문학』의 초대 편집장을 맡은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 1957년 돈암동으로 이사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 다니면서 김윤수, 김지하, 오경환 등과 사회 비판과 민중 운동에 대한 생각을 키웠다. 1976년 수유동에 작업실을 열고 민중 문화나 암울한 세태를 향한 저항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만들었으며, 현실과 발언 동인전에 작품을 꾸준히 출품하며 민중미술 운동에 참여하였다. 1983년까지는 거의 흑백 목판화로 일관하였으나 1984년부터는 간결한 장식적 색상을 도입한 작업으로 표현 이미지를 새롭게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1985년에는 대형 걸개그림인 「통일대원도」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지병인 간경화가 악화되어 요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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