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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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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랑로
    장소
    아리랑로
    동선동, 돈암동, 정릉동을 잇는 성북구의 도로이다. 아리랑로는 지도상 남으로는 보문로와 동소문로, 북으로는 정릉로와 북악산로 등의 도로들과 인접해있다. 넓은 도로의 폭은 30~35m이고, 좁은 곳의 폭은 5~10m정도이다.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정릉역을 잇는 가장 큰 도로로 아리랑고개를 지나고 있다.
  •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장소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성북구 보문로34다길 2 성신여자대학교 돈암수정캠퍼스 내에 있는 대학교 박물관이다. 1966년 생활과학박물관으로 설립된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은 1981년 종합박물관으로 격상되어 현재의 명칭으로 개칭하였다. 고서화, 지도, 도자기, 목가구 및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약 2,7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보물로 지정된 대동여지도와 앙부일구를 비롯한 다양한 천문·지리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숭신방
    장소
    숭신방
    조선시대 초기부터 성 밖에 있던 한성부 동부 12방 중의 하나로, 현재의 성북구 돈암·동선·삼선·성북·안암·정릉·종암동 일대가 이에 속하였다. 한성부의 영역은 도성과 성저십리(城底十里)로 이루어졌는데 그 범위가 매우 넓어 이에 해당하는 영역을 한성부가 단독으로 통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기에 1396년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누었는데 방은 공식적으로 조선 전기 한성부의 가장 하위 행정 조직이었으며, 이때부터 5부 중 동부(東部)에 숭신방(崇信坊)이 확인된다. 이 명칭은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숭신방이 숭신면(崇信面)으로 변경될 때까지 사용되었으며 숭신면은 3년 뒤인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崇仁面)에 편입된다.
  • 성북04 마을버스
    장소
    성북04 마을버스
    성북구 동선동, 안암동, 종암동 일대를 지나는 마을버스이다. 운수사는 안암교통이며, 노선은 성신여대입구역을 시작으로 삼선동주민센터, 성북구청, 용문중·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안암역, 종암초등학교 등을 거쳐 신설동역까지 도달한 후 회차한다. 배차시간은 6분 정도이며, 운행시간은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출발하는 첫차가 오전 5시 20분, 막차가 밤 12시이다. 6번 마을버스가 그 전신이며 2004년 7월 1일 서울시 버스 체계 개편 때 성북04번으로 바뀌었다.
  • 앙부일구(2022-3)
    유물
    앙부일구(2022-3)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유하고 있는 조선시대 해시계이다.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앙부일영(仰釜日影)'이라고도 하며, 솥이 하늘을 바라보는 듯 한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앙부일구는 약 10점이 알려져 있으며 성신여대 박물관 소장 앙부일구는 그 중 1점이다. 이는 1970년 구입한 것으로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본과 재질, 규격, 형태 등이 거의 유사해 동일인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앙부일구 시반에는 남북[午子] 방향으로 북극으로 향한 영침(影針)이 달려 있고,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세로 눈금인 시각선이 15분 간격으로, 계절을 알려주는 24절기의 가로 눈금으로 13개의 절기선이 은상감으로 새겨져 있다. 받침대는 네 개의 다리와 열십자[十]의 다리받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네 개의 다리에는 각기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모습을 새겼으며 용 좌우에 구름 문양을 표현하였다. 열십자[十]의 다리받침은 단을 둔 형태로 끝부분에는 거북이 머리를 새겼으며 정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있다.
  • 황동규
    인물
    황동규
    시인이다. 1938년 평안남도 숙천에서 소설가 황순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세 때 쓴 「즐거운 편지」 등이 1958년 『현대문학』에 추천되며 등단하였다. 사랑을 향한 서정적 감수성부터 인간 삶의 근원적 문제,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까지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혔다. 특히 대표작으로 꼽히는 연작시 『풍장』을 비롯하여 「점박이 눈」, 「권진규의 테라코타」 등은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시적 탐구를 보여준다. 한국 시단의 거장으로 불리며, 미당문학상(2002), 홍조근정훈장(2003), 만해대상(2006), 호암상 예술상(2016) 등을 수상하였다.
  • 성일교회
    장소
    성일교회
    성북구 동소문로 24가길 9-8(동선동1가 85-9)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이며 성일교회는 1958년 창립예배를 드리고 경기노회(제71회)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았다. 현대식 새 건물은 1970년 8월 준공하여 입당하였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며 추가적인 교회 부지 확보를 위해 건물들을 구입(동선동1가 85-7, 85-8, 85-42, 85-43, 85-116)하여 2013년에 새 건물을 준공하였다.
  • 광성교회
    장소
    광성교회
    성북구 동소문로 15길 54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으로 1956년 3월 성북구 돈암2동 산 606에 있는 '광옥'이라는 자의 집에서 4인이 모여 첫 예배를 드린 것이 교회의 시작이었다. 같은 해 5월, 당시 국유지였던 돈암2동 616-79에 천막교회를 세웠다. 1960년 9월 20평 규모의 교회당을 건축하고, 1968년에 2차로 30평 규모의 교회 건물을 건축하였다. 이후 1979년 동소문동 6가 216 소재의 건물로 23년 만에 교회당을 이전하였다. 교회 인접대지 추가 매입을 통해 2008년 새 건물을 준공하였다.
  • 동선2구역
    장소
    동선2구역
    성신여대 인근 성북구 동선동4가 304-2번지 일대의 재개발 구역이다. 2021년 현재 도시형 한옥과 1960년대에 준공된 건축물이 다수 남아있는 지역이며, 재개발 사업 진행으로 인해 2022년 상반기 주민 이주가 진행될 예정이다. 2011년 3월 재개발 정비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12년 5월 12일 조합설립인가를 받아 본격적인 재개발 사업을 시작하였다. 2013년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2019년 관리처분 인가를 받으며 사업 지행을 가속화하고 있다. 2018년 최초 시공사를 제일건설로 선정하였지만 계약 해지를 거쳐 2019년 계룡건설을 최종 시공사로 확정하였다. 총 326세대 규모로 구역이 정비될 예정이며, 2024년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 동수현
    인물
    동수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였으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산업정보시스템공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기술경영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한산업공학회지』, 『경영과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하였다.
  • PM 11:56 돈암, 혹은 성신여대
    작품
    PM 11:56 돈암, 혹은 성신여대
    동수현의 단편소설 『눈동자에 비친 외로운 존재의 그림자』(비즈프레스, 2016)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작가의 일인칭 시점을 취하고 있으며, 넓은 의미에서 소설의 형태로 구성하고 있음을 작가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성북구와 연관이 있는 제6장은 영등포역에서 수유역까지 서울 지하철 4호선을 통해 집으로 오는 길에 각 철도역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적은 것이다. 작가는 성신여대입구역 부근의 번화한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에 대한 단상을 서술하고 있다.
  • 삼선불학승가대학원
    장소
    삼선불학승가대학원
    성북구 동소문로26마길 40에 있는 종교시설이자 교육기관이다. 승려 지광이 서울에서 통학하던 학인을 위해 의정부에 있던 강원을 서울 삼선교 사거리로 옮겨 1979년 3월 1일 강원(삼선승가대학)과 함께 삼선포교원을 함께 개원하였다.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고, 매년 1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94년에는 종단개혁 당시 비구니 개혁모임인 ‘정혜도량’이 삼선포교원에서 출범하였다. 삼선승가대학은 여승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였으나 2014년 졸업생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이 과정에서 졸업 동문들이 삼선승가대학의 학맥을 잇고 도심 속 교육도량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힘썼고, 같은 해 3월 조계종교육원으로 인가받아 개방형 전문교육기관인 삼선불학승가대학원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 권진규의 테라코타
    작품
    권진규의 테라코타
    황동규 시인의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문학과 지성사, 2003)에 수록된 시로, 근현대 조각의 거장 권진규(1922~1973)의 예술혼과 비극적 운명을 다루고 있다. 그는 점토를 빚어 굽는 테라코타 기법으로 한국적 리얼리즘 조각을 정립하였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스스로 삶을 마감하였다. 특히 두상과 흉상 작업에 주력하며 인물의 내적 세계를 작품에 투영하고 대상과의 정신적 합일을 추구하였다. 생전에 그가 마지막으로 전시한 <가사를 걸친 자소상>도 고개를 들고 먼 곳을 응시하는 시선, 길게 내민 목 등으로 자신의 내면을 조형화했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은 이러한 권진규의 예술세계를 문학적으로 풀어냈다. 이 시는 현재 시민들에게 개방된 동선동 권진규아틀리에에서도 볼 수 있다.
  • 돈암한우직판장·식당
    장소
    돈암한우직판장·식당
    성북구 동소문로23길 21(동선동4가 76)에 위치한 가게이다. 2012년에 문을 연 이곳은 직판장에서 손님들이 직접 고기를 고르고 바로 옆에 위치한 홀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기 외에 식사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세가 비교적 저렴하면서 규모가 큰 공간을 찾아 대로변이 아닌 골목에 자리 잡게 되었다.
  • 이모네빈대떡
    장소
    이모네빈대떡
    성북구 동소문로23길 20(동선동4가 178)에 위치한 음식점이다. 빈대떡과 각종 전을 메인 메뉴로 하는 이곳은 2011년 동선동에 자리를 잡고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연령층은 대부분 40~50대이며, 계절에 맞게 겨울철에는 따뜻한 국물요리도 메뉴로 준비한다.
  • 무중력지대 성북
    장소
    무중력지대 성북
    성북구 아리랑로 50(동선동5가 147-10)에 위치한 청년 공간이다. 서울시 청년기본조례에 근거해 조성된 공간으로, 청년들의 활동을 지원한다. '무중력지대'라는 이름은 여러 사회적 중력(취업, 결혼, 학업 등)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활동을 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8년 6월에 개관하여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공간은 운영사무실, 무지랑거실, 아고식탁, 모임방, 일층방, 이층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전 예약을 통해 공간 대관도 가능하다.
  • 돈암119안전센터
    장소
    돈암119안전센터
    성북구 보문로 192(삼선동4가 349-1)에 위치한 성북소방서 산하의 소방 행정기관이다. 시민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소방행정 서비스 제공을 위해 2008년 1월 준공됐다. 관할 구역은 돈암2동·삼선동·성북동·보문동·동선동·동소문동으로 이 지역의 화재 예방·진압·구급 등 소방 업무를 일차적으로 처리한다.
  • 동선보건지소
    장소
    동선보건지소
    성북구 아리랑로3길 8(동소문동6가 146)에 위치한 성북구보건소 산하의 지역 공공 보건 의료 기관이다. 2009년 11월에 개소한 동선보건분소를 2010년 9월에 동선보건지소로 확대하였다. 지하1층, 지상3층, 연면적 909.06㎡의 규모인 본 기관은 대사증후군관리센터와 재활·물리치료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금연·스트레스·영양상담 및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동네마당 뜰안
    장소
    동네마당 뜰안
    동소문로23길 16-27(동선동4가 190)에 위치한 주민들의 생활 문화 배움터이자 지역 공동체 공간이다. 성북구가 부지를 확보하고 2017년 12월에 문을 연 동네마당 뜰안은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신거울과 방음부스가 설치된 지하 1층에서는 춤과 음악을 배우고 연습할 수 있으며, 1층에는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초록마당, 은빛마당, 어울마당, 공유부엌이 있다. 2층은 다양한 생활문화강좌를 진행하는 배움 공간으로 활용 중이며, 옥상에는 정원이 조성되어 자연친화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주민 누구나 생활문화를 즐기고 소통할 수 있는 동네 사랑방으로 거듭나고 있다.
  • 박승호 집터
    장소
    박승호 집터
    동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박승호의 집터이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박승호의 거주지는 '서울 성북 동선 84의 41'이었다. 성신여자고등학교 바로 뒤편에 위치해 있다.
  • 김의한·정정화 집터
    장소
    김의한·정정화 집터
    돈암동(현 동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김의한과 정정화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김의한과 그의 아내 정정화, 아들 김자동은 해방 이후 돈암동의 한옥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집 주소는 돈암동 178-1번지(현 동소문로26길 27)였고, 성신여자고등학교 앞쪽에 위치해 있었다. 사진은 성신여자고등학교 아래 동선동 주민센터 부근이다.
  • 조병옥 집터
    장소
    조병옥 집터
    돈암동(현 동선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조병옥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 경무부장으로 있던 조병옥은 돈암동 한옥에서 거주했다. 1950년 5.30총선 때 성북구에서 출마하였는데, 당시 조병옥의 주소는 돈암동89-7번지였다. 해당 주소지는 지도에서 찾을 수 없었으나, 돈암동 전차 종점 근처 태극당제과 옆의 골목에 조병옥 가옥이 있었다는 증언을 토대로 장소를 추정하였다.
  • 신낙현 집터
    장소
    신낙현 집터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 신낙현의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1942년 배재중학교 재학 중에 김영헌과 함께 자유주의사상과 독립사상을 가졌다. 당시 동대문구 돈암정 69-27번지(현 동소문로 111)에 거주하였으며 넓은 길에 위치한 곳이다. 지금은 성신여대입구역 7번 출구 앞 8차선 도로변에 들어선 미술학원 및 카페건물로 추정된다.
  • 박승호
    인물
    박승호
    동선동(현 동선동 84-41)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선천군의 원동교회 목사로 재직 중 3·1운동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체포되었다. 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관전현의 광복군총영에서는 일제의 주요기관을 폭파하고, 요인을 암살하고자 결사대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국경 경비가 강화되어 무기의 반입의 늦어져, 미국 의원단이 선천을 통과하는 시기에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이후 대원들은 창고 및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유인물을 살포하고 피신했다. 박승호는 세칭 '선천서투탄사건'의 범인 16인 중 한 사람으로 활약하다 잡혀 징역 5년을 언도받았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3월 23일 경기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100-200명 규모의 만세시위
    사건
    3월 23일 경기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 100-200명 규모의 만세시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현 성북구 돈암동, 동선동, 삼선동 일대)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이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8시경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를 비롯한, 동묘리, 청량리, 왕십리 등 경성시외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모두 다음날 24일 오전 1시에는 진정되었다고 한다. 돈암리 시위의 규모는 기록물에 따라 100-200명이 참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시위의 주체는 보통사람들이었으며,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병한 군대는 없었고, 18명이 검거되었다고 한다.
  • 보현사
    장소
    보현사
    성북구 동소문로15길 49(동소문동6가 28-1)에 위치한 사찰이다. 1950년에 승려 자현이 청신녀 보명행으로부터 초막을 인수해 창건하였으며, 1959년 극락전과 요사를 건립하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1979년 3월부터 12월까지 보현사에서 현대적 승려교육이 진행된 것을 계기로 승려전문교육기관인 중앙승가대학교가 세워졌다. 중앙승가대학교는 1981년 3월 개운사로 이전했다가 2001년에 김포시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보현사에는 미륵당을 지으며 봉안한 미륵존상과 승려 자현의 사리가 담긴 석종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 동선동 주민센터
    장소
    동선동 주민센터
    성북구 동소문로26길 27(동선동3가 130-7)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1949년 돈암동에서 분리될 때, 동소문동과 삼선동에서 각각 첫 글자를 따서 동명이 제정되었다. 1949년 8월 15일 성북구가 신설 될 때 돈암동의 지역이 넓은 관계로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동으로 분할하면서 동선동이 되었다. 1955년 동제를 실시할 때 동선동 지역은 동선동, 남선동, 서선동, 북선동 등 4개 행정동이 설치되었으나 현재는 통폐합되어 동선동만이 남았다. 동선동은 현재 동선동 1~5가와 동소문동 6가, 7가를 관할하고 있으며, 돈암동 중 개운산길 이남지역도 관할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관할 지역의 면적은 0.73㎢이고, 인구는 1만 5천여 명, 세대수는 9,088세대이다.
  • 동선동/인구
    장소
    동선동/인구
    성북구 동선동 인구변화와 관련된 내용이다. 1949년 성북구가 신설되면서 돈암동의 관할이 성북구로 넘어왔는데, 지역이 넓고 인구가 많아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동으로 분리되었다. 동선동의 이름은 동소문동(東小門洞)의 ‘동’자와 삼선동(三仙洞)의 ‘선’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1947년 말까지 동선남부동과 동선배부동은 6,140세대 36,019명의 인구가 거주하였다. 인구의 추이를 살펴보면 2000년대 1만 5천여 명이 거주하였고, 거주 인구가 점차 증가하여 2019년 현재 8,856세대, 16,386명이 거주하고 있다.
  • 성북마을극장
    장소
    성북마을극장
    성북구 동소문로20다길 10 4층(동선동1가 4-7 4층)에 위치한 소극장이다. 2015년 9월에 개관한 성북마을극장은 장애인이 관객으로서 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곳으로, 접근이 용이하게 설계되었다. 공연과 더불어 정기적으로 상영회를 실시하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미인도
    장소
    미인도
    미아리고개 고가도로 하부에 마련된 문화예술 공간이다. 공간의 선정과 기획부터 운영과 관리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직접 참여하였다. 2015년 공간이 조성된 이후 마을장터, 아이들의 놀이터, 예술가들의 무대, 마을 사람들의 쉼터 등 다양한 의미가 부여되며 마을의 활력을 불어 넣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 신동엽 집터
    장소
    신동엽 집터
    성북구 아리랑로4가길 13(동선동5가 45)에 위치한 신동엽의 집터이다. 신동엽 시인은 이 집에서 1962년부터 196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족들과 생활하였다. 1956년에 인병선과 결혼하고 1959년에 상경하면서 돈암동에 전세방을 얻었으며 1962년에 인병선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한옥을 마련하였다. 이 집에서 첫 시집 『아사녀(阿斯女)』(1963)를 발표하였다. 현재 한옥 건물은 남아있지 않으며 2006년에 지어진 4층짜리 빌라가 들어서있다.
  • 돈암동 시장
    작품
    돈암동 시장
    2009년에 서정시학에서 발간한 시집 『불꽃 비단벌레』에 수록된 작품이다. 시인이 관여한 출판사 서정시학이 동선동에 2000년부터 약 15년간 있었을 때, 사무실을 오가던 길에 있던 돈암시장의 모습을 보고 쓴 시이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 생선가게 앞 시장 골목에서 묻어나는 고단함을 생생한 감각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 돈암동 파 할머니
    작품
    돈암동 파 할머니
    2009년에 서정시학에서 발간한 시집 『불꽃 비단벌레』에 수록된 작품이다. 시인이 관여한 출판사 서정시학이 동선동에 2000년부터 약 15년간 있었을 때, 사무실을 오가던 길에 있던 돈암시장 입구의 노점상 할머니를 보고 쓴 시이다. 파를 다듬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강인함을 포착하였다.
  • 옛 돈암동
    장소
    옛 돈암동
    현재의 성북구 돈암동, 동선동, 삼선동 일대를 말한다. 혜화문부터 미아리고개에 이르는 지역은 1894년 갑오개혁 때 '한성부 동서 숭신방 동문외계 돈암리'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숭신면 돈암리가 되었다가 고양군 숭인면에 속한 '돈암정'이 되기도 했다. 해방과 함께 동대문구 '돈암동'이 되었다가, 1949년에 동대문구에서 분리하여 성북구를 신설하면서 성북구 돈암동으로 될 때 돈암동의 지역이 넓은 관계로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동으로 분리하였다. 옛 돈암동 지역은 성북구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 돈암동 전차종점
    장소
    돈암동 전차종점
    돈암동 노선 전차의 종점으로, 성북구 동소문로 118(동선동1가 114-1)에 전차승무원사무소가 있었다. 흔히 경전전차 돈암동종점 사무소로 불렸다. 서울에 처음 전차가 개통된 것은 대한제국기인 1899년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서울 도심을 중심으로 여러 노선의 전차가 운행되었다. 그 중 성북구 지역의 전차는 도심의 확장에 따라 돈암동지역의 시가지 개발이 이루어지던 1941년에 개통되었다. 돈암동 노선의 출발지는 을지로4가이다. 돈암동 전차종점은 박경리, 박완서, 정한숙 등 한국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속 배경으로 등장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전차는 주요 교통수단을 기능하였으나 도시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어 1968년에 철거되었다.
  •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장소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성북구 동선동4가 1번지의 지하에 있는 지하철역이다. 성신여대입구역은 인근에 성신여자대학교가 있어 역의 이름으로 채택되었고, 인근의 동명인 ‘돈암’도 병기하고 있다. 지하철 4호선과 우이신설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으로, 4호선은 1985년, 우이신설선은 2017년에 개통되었다. 돈암시장이 인접해 있고 미아리고개와 아리랑고개의 입구여서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고, 먹거리 중심의 상권이 발달하였다.
  • 신안탕
    장소
    신안탕
    안감내 근처에 있었던 목욕탕이다. 박완서의 소설 속 주요배경으로 등장하였다. 2008년까지 목욕탕 건물이 있었음을 로드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블루모텔 자리에 신안장이라는 여관이 있었고 그 바로 앞 지금 아리랑교통주식회사 마을버스 차고지 자리에 신안탕이 있었다. 붉은 벽돌로 된 목욕탕 굴뚝에 흰 글씨로 신안탕이라고 적힌 모습이 로드뷰 사진으로 남아있다.
  • 목마른 계절
    작품
    목마른 계절
    1972년 『여성동아』에 ‘한발기(旱魃期)‘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장편소설로, 1978년 수문서관(修文書館)에서 ‘목마른 계절‘로 제목을 바꿔 출판하면서 4월 부분이 수정되고 연재 당시에는 없었던 5월 부분이 첨가되었다. 1950년 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의 서울을 무대로 평범한 개인이 온몸으로 경험한 6.25전쟁을 시간 순으로 서술하였다.
  • 성북천 하늘다리
    장소
    성북천 하늘다리
    성북천에 놓인 다리이다. 박완서 소설에는 양회다리가 자주 등장하는데 성북천이 복개되면서 사라졌다. 성북천 하늘다리는 성북천이 복원되면서 양회다리가 있던 비슷한 위치에 새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양회다리는 석회로 만든 다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박완서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집에서 성북경찰서까지는 골목을 나가서 신안탕 앞에서 꺾여서 천변을 끼고 2백 미터쯤 가다가 널찍한 양회다리만 건너면 곧이었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양회다리는 돈암동에 사는 주인공의 집 위치를 알려주는 지표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신안탕이 있던 자리인 마을버스차고지에서 하늘다리까지 실제 거리는 약 150m이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삼선동과 동선동의 경계에 위치한다.
  • 돈암동성당
    장소
    돈암동성당
    성북구 고려대로7길 120(동선동2가 1-2)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돈암동 성당은 1955년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분가해 탄생했다. 설립 당시 돈암동 성당은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삼선동, 안암동, 보문동과 돈암동 일대를 관할구역으로 인계받았다. 예배당은 1950년대의 석조 성당을 대표하는 건물로, 6.25전쟁 이후 건축물의 견고성에 더욱 역점을 두어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화강암을 외벽에 붙였다. 건물의 디자인은 준고딕양식으로 석조건물에 성곽과 같은 높은 종탑을 세우고 아치형의 문이 안과 밖을 연결하게 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새로운 성당 건물은 2000년에 준공된 것이다. 2013년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되었다.
  • 노을진 들녘
    작품
    노을진 들녘
    1961년 10월 23일부터 1962년 7월 1일까지 총 250회에 걸쳐 『경향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이다. 1960년대 박경리 작품의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며, 연재 후 곧바로 단행본이 나오고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박경리가 『노을진 들녘』 연재 전에 이미 24회를 집필해놓았으며, 5년전부터 구상해왔다는 당시 신문기사를 통해 이 작품에 대한 박경리의 애정을 알 수 있다. 박경리 작품의 전반적인 특징인 불륜, 절손, 억지결혼이 골고루 드러나며, "박경리의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과 핵심 모티프와 작가의식이 담긴 소설"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작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자전적 소설로 1992년 웅진출판에서 출간되었다. 화자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개풍군 박적골에서의 이야기부터 1950년대에 화자의 가족들이 자리를 잡은 서울 성북구에서의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이 소설에는 화자의 어린시절부터 20대까지의 시간이 담겨 있으며, 특히 소설을 통해 6.25전쟁 당시 성북구 돈암동의 모습과 상황들을 알 수 있다.
  • 대동여지도
    유물
    대동여지도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이 보유한 지도이다. 1861년(철종 12)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 우리나라 전국지도이다. 축척은 약 16만분의 1로 남북 22층으로 되어 있고, 각 층은 세로 30.2㎝, 가로 20.1㎝ 크기의 8폭으로 접을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목판본이다. 보존상태도 좋고 채색도 훌륭하다. 내용은 기존의 『청구도』와 큰 차이가 없으나 지형의 표시와 하천과 교통로 등이 자세하고 정밀하다. 특히, 산맥의 표시 방법은 이전의 지도들과 많은 차이가 있다. 조선시대의 지도 가운데 가장 정밀한 세밀도로서, 전체적으로는 이전의 지도보다 발전하여 현재의 지도와 근사할 정도로 정확하다. 1985년 8월 9일 보물 제850-1호로 지정되었다.
  • 권진규 아뜰리에
    장소, 유물
    권진규 아뜰리에
    성북구 동소문로 26마길 2-15에 위치한 건축물이다. 1959년 조각가 권진규가 일본에서 귀국하여 1973년 사망하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한 장소로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있다. 가마, 우물, 흙 저장 공간 등과 작품을 전시하던 진열대, 다락방 등으로 꾸며져 있으며 천장이 높고 단순한 형태이다. 벽과 바닥에는 작업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앞쪽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살림채가 있다. 권진규가 이곳에서 만든 주요 작품으로는 〈자소상(自塑像)〉, 〈영희〉, 〈스카프를 맨 여인〉, 〈잉태한 비너스〉 등이 있다. 2004년 등록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이곳에는 권진규가 사용했던 여러 가지 작업 도구들과 유품, 미완성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건물과 유품을 보호하기 위해 사전 예약을 통해 개방하고 있다.
  • 미아리고개
    장소
    미아리고개
    성북구 돈암동에서 길음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이다. 미아리고개는 조선시대 이후 수도로 들어가는 중요한 진입로였기 때문에 시기별로 많은 역사상이 녹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함경도 쪽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중요 도로였기 때문에 여진인들이 이 길로 왕래하였고, 그래서 오랑캐가 넘어오는 고개라는 의미에서 ‘되너미고개’, 한자로는 적유현(狄踰峴)이라고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미아리고개 너머 현 길음2동 일대에 총독부에 의해 공동묘지가 조성되었다. 한국전쟁 때에는 북한군이 서울로 침투했던 길이자 후퇴했던 길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북한군에 의해 납치되었던 곳으로 이산의 아픔과 고통이 서린 곳이기도 하였다. 1970~80년대에는 역학촌이 성행하였는데, 도로의 확장과 주변 재개발로 옛 모습은 찾기 힘들다.
  • 미아리 역학촌/인터뷰
    장소
    미아리 역학촌/인터뷰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고개 일대의 점집 밀집 지역에서 오랫동안 역술업에 종사했던 역학사들의 인터뷰를 모은 것이다. 현대 역술업이 주로 맹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심남용(청산철학관)의 인터뷰를 비롯하여 8명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미아리 역학촌의 출발과 전성기, 쇠락의 시기와 사회분위기 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 미아리 역학촌/기사
    장소
    미아리 역학촌/기사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고개 일대의 점집 밀집 지역에 관한 신문기사의 모음이다. 기사에서 다룬 내용들을 보면, 점성촌이 활황을 누린 1970년대 기사부터 수록되었는데, 특히 80년대엔 점집들에 손님이 넘쳤고 선거, 입시, 당선, 합격 등에 관한 다양한 관심과 기원이 소개되었다. 1998년 IMF 직후에는 개인적인 관심 외에도 위기에 놓인 나라의 운세까지 점 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인터넷으로 점을 치고, 점집의 형태나 운영도 다양해지는 등 새로운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점시장’이 조용히 늙어가고 있다는 기사까지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 미아리 역학촌
    장소
    미아리 역학촌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고개 일대에 점집들이 밀집하면서 형성된 지역을 지칭한다. 1966년 미아리고개의 도로를 확장하면서 고개의 경사를 낮추었고 야트막한 고가도로도 놓였다. 고가도로 밑에는 도로 양쪽 동네를 연결하는 길이 생겼고 행인들이 오갔는데, 이곳에 노점 점집이 들어서고 장사가 잘 되면서 주변에 많은 점집이 모여 들었다. 이렇게 형성된 점성촌은 1970~80년대에 호황을 누렸는데, 1998년 IMF 사태 이후 손님이 줄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주변 재개발과 점을 보는 문화가 바뀌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현재는 일부만 남았는데, 이 역시 우리 현대사의 한 장면이었으므로 2014년 서울시의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 홍수성 작명소
    장소
    홍수성 작명소
    성북구 아리랑로4길 76(동선동4가 275-1)에 있는 역술집이다. 이곳의 역술가는 22세부터 청량리에서 점집을 운영하다 1990년도에 미아리 역학촌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 하나로거리
    장소
    하나로거리
    성북구 동선동에 위치한 거리이다. 동소문로 22길이 시작되는 성신여대입구역 1번 출구 부근부터 동소문로 22길과 보문로 34길이 교차하는 구간이다. 2001년 젊은이들이 운집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젊은이거리’라 불렀으나, 남녀노소 모두 하나가 되자는 의미에서 ‘하나로거리’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하나로거리는 성신여대, 성신중고등학교 등 학교가 밀집되어 있어 여성 및 청소년의 유동인구가 많아 상권이 발달하였다. 2004년에는 이 거리를 중심으로 금연 홍보 거리로 조성하였고, 매년 금연과 관련한 행사와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하나로거리는 ‘담배연기 없는 성북’을 지향하고 있는 성북구가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금연메시지를 전해 범국민적인 금연운동을 펼치는 주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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