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깃거리

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검색정보 입력
4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필터

  • 이야기 분류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필터 닫기
  • 시대
    필터 닫기
  • 지역
    필터 닫기
  • 문화재 지정
    필터 닫기
보기: 정렬:
  • 조정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삼각산을 바라보다
    작품
    조정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삼각산을 바라보다
    고려 말기의 문신 이존오(李存吾)[1341-1371]의 한시이다. 그는 1360년(공민왕 9)에 문과에 급제한 후 우정언, 장사감무 등을 역임했으며, 정몽주·박상충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그는 조정으로 돌아가는 길에 삼각산(북한산)을 바라보며 이 시를 지었다. 아득한 대기의 구름이 쌓인 모습, 산봉우리가 멀리 하늘까지 닿는 북한산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 청자 음각환문 병
    유물
    청자 음각환문 병
    간송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고려시대 도자기이다. 고려 12세기 경 제작된 것으로, 두개의 귀가 달린 의례용 금속제 기물의 형상을 청자로 만든 것이다. 구연부, 몸체, 굽다리를 각각 만들어 접합하였으며 휘어진 목 부분, 튀어나온 돌대, 두 개의 손잡이, 벌어진 굽다리, 동체 상부의 작은 음각원문 등은 금속기를 충실하게 재현했음을 보여준다. 제작상태는 매우 정교하며 비색을 띠는 유색도 매우 단아하다. 이 유물은 금속기의 조형을 청자로 번안한 고려전기 양식의 전형적인 청자라는 점에서 고려시대 도자사뿐 아니라 공예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지닌다. 2017년 12월 26일 보물 제1954호로 지정되었다.
  • 청자양각도철문정형향로
    유물
    청자양각도철문정형향로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 도자기이다. 12세기경에 제작된 청자로 전체적으로 비색에 가까운 녹청색의 유조와 섬세한 문양이 특징인 작품이다. 구연 일부에 작은 파손의 흔적이 있고, 산화 번조되어 일부 갈색을 띠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제작상태는 매우 정교하며 비색을 띠는 유색도 매우 단아하다. 이 같은 향로는 주로 강진지역의 가마터에서 발견되며 12-13세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향로는 유약과 태토 모두 절정기의 수작이라는 점에서 세발 달린 정형향로(鼎形香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2017년 12월 26일 보물 제1955호로 지정되었다.
  • 청자 오리모양 연적
    유물
    청자 오리모양 연적
    간송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고려시대 도자 공예품이다. 높이 8㎝, 너비 12.5㎝의 오리 모양 청자 연적(硯滴)으로, 물 위에 뜬 오리가 연꽃줄기를 물고 있으며 연잎과 봉오리는 오리의 등에 자연스럽게 붙어 있다. 오리는 거의 정확한 사실 기법으로 깃털까지 세밀하게 음각으로 표현되었으며, 연한 녹색의 맑은 유약이 전면에 고르게 칠해져 있다. 알맞은 크기와 세련된 조각기법, 비색(翡色)의 은은한 색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귀족사회에서 향유한 문방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유색(釉色)·복토(服土)의 질과 세련된 상형기법으로 보아 12세기 전반경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4호로 지정되었다.
  • 청자 상감포도동자문 매병
    유물
    청자 상감포도동자문 매병
    간송미술관이 소유하고 있는 고려시대 도자기이다. 양식적인 특징으로 보아 12세기 후반-13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41.5㎝, 입지름 7.5㎝, 밑지름 15.8㎝의 크기로, 백상감으로 문양을 표현하였다. 또한 열매만은 동그란 무늬 도장을 찍고 백상감과 그 안에 검은 점을 하나씩 상감하여 포도알을 표현하였다. 전체적으로 고려 매병의 전성기 형식에서 벗어나는 작품이지만, 포도잎의 도드라진 백상감법은 주목할 만하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86호로 지정되었다.
  •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유물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 도자기이다. 12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청자매병(靑磁梅甁)은 높이 42.1㎝, 입지름 6.2㎝, 밑지름 17㎝의 크기로, 매병의 구연부는 작고 낮으며 밖으로 살짝 벌어져 있다. 원 안의 학은 하늘을 향하여 날아가는 모습이고, 원 바깥의 학은 아래쪽을 향하여 내려가는 모습이다. 학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는 공예 의장화된 구름무늬로 장식하였다. 표현상의 변화추구와 함께 문양 처리의 능숙함 등에서 고려 청자매병 중에서 전형이라 할 만하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68호로 지정되었다.
  •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
    유물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
    간송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도자기이다. 고려시대의 청자 정병으로 높이 37.0㎝, 밑지름 8.9㎝의 크기이다. 원래 정병은 불교에서 모든 악을 씻어 버리는 의식에서 사용하던 용기의 하나로 중국을 거쳐 전해진 서방(西方) 양식이었으나, 고려에 와서 가장 세련되게 나타나게 되었다. 목과 어깨의 선이 부드럽고 병 입의 뚜껑은 결실된 상태이나 세련된 형태를 보이고, 문양(文樣)은 모두 백상감 기법을 사용하고 평화로운 연못가의 정경을 나타내었다. 이 정병은 청자상감 기법과 청동기의 은입사 기법의 관련이라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66호로 지정되었다.
  • 청자 상감국화모란당초문 모자합
    유물
    청자 상감국화모란당초문 모자합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도자 공예품이다. 고려시대 12세기경의 청자합으로, 큼직한 원형의 모합 안에 국화형 자합 하나를 중심으로 4개의 송엽형 자합을 배치한 모자합이다. 모합 높이는 8.4㎝, 지름 18.8㎝, 국형자합(菊形子盒)은 높이 3.1㎝, 지름 7.9㎝, 송엽형자합(松葉形子盒)은 높이 3.0㎝, 길이 7.8㎝이다. 정연한 구성 안에서 다양하고 변화있는 문양표현이 모색되어 있으며 부인 용기에 걸맞은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면모가 엿보인다. 이러한 모자합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청자가마터에서 나오는 파편에서 비슷한 작품을 볼 수 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49호로 지정되었다.
  •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유물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도자 공예품이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원숭이 모양의 청자 연적으로, 크기는 높이 9.8㎝, 몸통 지름 6.0㎝이다. 원숭이 어미 머리 위에는 직경 1cm 정도의 물을 넣는 구멍이 나 있고, 새끼의 머리 위에는 직경 0.3cm 크기의 물을 따르는 구멍이 각각 뚫려 있어서 연적임을 알 수 있다. 1146년에 제작된 청자과형화병, 청자합과 유약 색이 동일하여 12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청자 연적 중 원숭이 모양의 연적은 드물며 더욱이 모자(母子) 모양으로서는 유일한 예이다. 1992년 4월 20일 국보 제270호로 지정되었다.
  •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
    유물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도자 공예품이다. 12세기경의 고려 때의 청자 향로로, 높이 20cm로 향을 피우는 부분인 몸체와 상상속의 동물인 기린이 꿇어 앉아있는 모습을 한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청자 향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국보 제60호)와 거의 같은 양식의 기린 향로이다. 이 향로는 12세기 유행하였던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본뜬 상형청자의 전형으로, 비취색 특유의 은은한 광택이 향로 전체를 품위있게 감싸고 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65호로 지정되었다.
  • 중용주자혹문
    유물
    중용주자혹문
    고려대학교 도서관이 보유한 문헌이다. 이 책은 주희(朱熹)[1130-1200]가 『중용』에 대한 여러 문제점을 설문 해답한 식으로 서술한 것인데 원나라로부터 수입되어 공민왕 20년(1371) 다시 인쇄한 것이다. 1책 목판본 세로 29.8㎝, 가로 18.5㎝인 이 책의 권말에는 홍호(洪虎) 4년 7월, 진주목에서 개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홍호의 ‘호(虎)’는 고려 혜종의 휘인 ‘무(武)’의 글자 사용을 피하여 글자의 뜻이 같지만 다른 글자로 바꾸어 쓴 것이다. 원본의 특정이 잘 나타나 있으며, 새김이 비교적 정교하여 인쇄가 깨끗한 편이다. 고려시대의 지방관판본으로서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1981년 3월 18일 보물 제706호로 지정되었다.
  • 용감수경 권3~4
    유물
    용감수경 권3~4
    고려대학교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헌이다. 997년 요(遼)나라 승려 행균(行均)이 펴낸 한자(漢字) 자전(字典)의 원형으로 세계적으로 유일한 책이다. 이 책은 재래 중국의 자전과 달리 부수별로 먼저 배열하고, 또 같은 각수 안에서는 운(韻)별로 배열하여 여러 가지를 병용하는 방법을 취하였고, 정자 이외의 속자까지도 전부 망라하여 해설을 붙인 것이다. 이 책을 복각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권4의 끝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나주에서 권득령의 주관으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자(本字)가 26,430여 자이며 주(註)가 163,170자에 달하여 자전으로서 매우 귀중할 뿐만 아니라 요대의 음운을 연구하는 데 유일한 자료이다. 1997년 1월 1일 국보 제291호로 지정되었다.
  • 영취사 오층석탑
    유물
    영취사 오층석탑
    영취사(성북구 보국문로 261-222) 경내에 소재한 석탑이다. 영취사의 대웅전 계단 아래쪽 마당에 위치한 오층석탑으로 원래는 요사채 앞쪽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겨 놓은 것이다. 기단은 2층으로, 하층기단은 넓고 높은 편인데 여러 장의 장대석을 이어 결구하였으나 부분적으로 손상이 있으며, 사이사이에 잡석을 끼워 지탱하고 있다. 이 탑은 높고 넓은 기단부와 쌓아올리듯이 탑신을 올린 구성법, 소략화된 층급의 표현 등으로 볼 때 고려 말기~조선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형체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석탑 양식의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2007년 12월 27일 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되었다.
  • 석조팔각승탑
    유물
    석조팔각승탑
    간송미술관에 진열되어 있는 8각 사리탑이다. 건립연대는 통일 신라시대로 추정된다. 높이 1.6m이며, 화강암으로 제작되었다. 바닥돌 위로 기단(基壇)을 올리고, 탑신(塔身)을 얹은 후 머리장식으로 마무리한 모습이다. 지붕돌은 밑면에 2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여덟 귀퉁이마다 큼직한 꽃조각이 솟아 있다. 꼭대기에는 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둥근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1975년 5월 1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었다.
  •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유물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간송미술관이 소장중인 불상으로 제작 연대는 고려 중기 이후로 추정된다. 화강암으로 된 높이 1.5m의 좌상으로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옷주름선의 표현에서는 형식화된 모습이 보인다. 불상이 앉아있는 4각의 대좌(臺座)에는 겹으로 연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이러한 양식은 고려 중기 전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1975년 5월 1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되었다.
  • 석불입상
    유물
    석불입상
    간송미술관이 소장중인 불상으로 제작 연대는 고려 중기 이후로 추정된다. 화강암으로 된 높이 2.1m의 미륵불로서 머리에는 큰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있고 옷에는 주름이 사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두 손은 가슴에 올려 모으고 있으며, 몸은 긴 돌기둥 모양으로 되어 굴곡이 없는 편이다. 얼굴의 표현이라든지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유연하게 서 있는 모습은 마음속에 간직한 내적 성정(性情)이 아무 과장 없이 나타나고 있고, 조각 수법이 예스러운 점이 있어 토속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1975년 5월 1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다.
  • 서울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유물
    서울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흥천사 금동천수관음상은 현재 국내에 현전하는 매우 희귀한 42수 천수관음상으로, 1894년에 작성된판기록을 통해 적어도 19세기부터는 흥천사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작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양식적인 특징에서 고려에서 조선 초에 걸쳐 제작된 작품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에서의 천수관음 신앙은 통일신라 초에 관련 경전이 수용된 이후 널리 유행하였고, 이에 따른 천수관음보살상의 조성도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흥천사 천수관음상은 고려~조선 초에 제작된 천수관음보살상의 매우 드문 작례로서 천수관음 도상 및 관음신앙 연구에 조각사적 가치가 크다. 2016년 2월 22일 보물 제1891호로 지정되었다.
  • 삼층석탑
    유물
    삼층석탑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석탑이다. 탑신의 1층 몸돌이 2층과 3층에 비해 지나치게 커 보이고, 지붕돌받침이 3단인 점 등 양식상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아래층 기단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새기고, 위층 기단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탑신은 각 층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을 가지런히 새겼다. 이 탑은 보기 드문 소탑(小搭)으로 고려시대 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1975년 5월 1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다.
  •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유물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개운사(성북구 개운사길 60-46)의 암자(칠성암)인 보타사 대웅전 뒤쪽 화강암 암벽에 조각된 고려시대의 마애불상이다. 거대한 보살상 머리에는 좌우 옆으로 뿔이 있는 관이 있고, 뿔끝에는 다양하게 장식된 타원형 느리개가 있다. 보타사의 전각들이 비교적 규모가 작은 것에 비해 이 미륵불은 그 높이가 5m나 되는데 이는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이다. 큰 바위에 부조로 새겨진 이 마애불상은 몸 전체에 호분(胡粉)이 칠해져 있어서 흔히 백불(白佛)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초기 서울지역 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보살상으로,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7월 2일 보물 제1828호로 지정되었다.
  • 백자 박산형뚜껑 향로
    유물
    백자 박산형뚜껑 향로
    간송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백자향로이다. 몸체는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로 뚜껑 부분과 향을 피우는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휘어진 토끼 꼬리 모양의 다리 3개가 부착되어 있다. 산을 겹쳐 놓은 모양을 한 반구형 뚜껑의 정상에는 다각형의 큰 구멍이 있으며, 그 밑에 다시 돌아가면서 7개의 구멍을 배치하여 이를 통하여 연기가 발산되도록 하였다. 12세기 고려 백자와 중국 남송 전기의 청백자 성격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작품으로 보인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38호로 지정되었다.
  • 문경 오층석탑
    유물
    문경 오층석탑
    간송미술관에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원래는 경상북도 문경에 있었던 것이나,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려 하자, 전형필이 이를 수습하여 지금의 자리에 세워놓은 것이다. 2단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모습으로, 각 부분이 거의 완전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아래층 기단의 뚜렷한 안상조각, 지붕돌 받침이 4단, 3단 등으로 일정치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의 석탑임을 짐작할 수 있다. 드러난 상하의 비례가 매우 아름답고 작풍(作風)이 착실하며, 탑 앞에 배례석(拜禮石)이 놓여져 있어서 제대로 격식을 갖추고 있다. 1974년 10월 2일 보물 제580호로 지정되었다.
  • 동인지문사육 권7∼9
    유물
    동인지문사육 권7∼9
    고려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헌이다. 고려 말의 문신 최해(崔瀣)[1287-1340]가 신라와 고려 명현의 문집을 모은 『동인지문』에서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만 모아서 간행한 시문선집(詩文選集)으로 전 15권이다. 외형과 내용은 다른 보물과 같지만 진주판(晉州板)으로서는 유일한 간행본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마지막 권에는 발문(跋文)이나 상세한 간행기록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이 책 외에는 남아 있지 않으므로 자세히 살필 수 없다. 1981년 3월 18일 보물 제710-5호로 지정되었다.
  • 동인지문사육 권1∼6
    유물
    동인지문사육 권1∼6
    고려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헌이다. 고려 말의 문신 최해(崔瀣)[1287-1340]가 신라와 고려 명현의 문집을 모은 『동인지문』에서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만 모아서 간행한 시문선집(詩文選集)으로 전 15권이다. 1355년에 판각하고 조선 초기 후쇄한 것으로 보이는 목판본이다. 보물 제710호와 같지만 그보다는 책의 외형이 약간 작은 편이다. 1권의 서문 및 목차, 제1∼2장의 오른쪽 위끝 일부가 훼손되었다. 1981년 3월 18일 보물 제710-2호로 지정되었다.
  • 동인지문사육 권1~3, 4~6, 10~12, 13~15
    유물
    동인지문사육 권1~3, 4~6, 10~12, 13~15
    고려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헌이다. 고려 말의 문신 최해(崔瀣)[1287-1340]가 신라와 고려 명현의 문집을 모은 『동인지문』에서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만 모아서 간행한 시문선집(詩文選集)으로 전 15권이다. 크기는 34.5cm×21㎝이며, 1355년(공민왕 4)에 새긴 목판에서 조선초기에 찍어낸 후쇄본으로 보인다. 이 책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계선(界線)이 없다. 이 전래본은 글자에 완결(刓缺)이 있고 마손이 심하여 판독하기 어려운 것도 있음을 감안하면 판각이 이루어진 훨씬 뒤에 인출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이 간본에 고려 역대 왕의 휘(諱)는 피하여 결획(缺劃) 또는 대자(代字)가 나타나 있다. 이것은 고려본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의 하나이다. 1981년 3월 18일 보물 제710-1호로 지정되었다.
  • 동인지문 사육
    유물
    동인지문 사육
    고려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헌이다. 고려 말의 문신 최해(崔瀣)[1287-1340]가 신라와 고려 명현의 문집을 모은 『동인지문』에서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만 모아서 간행한 시문선집(詩文選集)으로 전 15권이다. 『동인지문』의 완성 시기는 1336년(충숙왕 복위 5)이며 전질 25권으로 신라 최치원(崔致遠)에서부터 충렬왕 때까지가 수록범위로 여겨진다. 간행은 복주(福州)와 진주(晉州)에서 간행이 이루어졌다. 『동인지문사륙』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문선집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동인지문사륙』 고려대학교 소장본은 1981년 3월 18일 보물 제710-1호(권1~3, 4~6, 10~12, 13~15), 보물 제710-2호(권1~6), 보물 제710-5호(권7~9)로 지정되었다.
  • 금동삼존불감
    유물
    금동삼존불감
    간송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불감(佛龕)이다.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으로,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 불감은 지금도 금색이 찬란하고 지붕에 녹청색이 남아 있는 등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본존불의 긴 허리,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옷주름, 그리고 보살이 쓰고 있는 구슬로 장식한 관 등 여러 양식으로 보아 만든 시기는 중국 북방 계통의 영향을 받은 11~12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고려시대 또는 그 이전의 목조건축 양식과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예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3호로 지정되었다.
  • 괴산 외사리 승탑
    유물
    괴산 외사리 승탑
    간송미술관이 보유한 고려시대의 승탑이다. 원래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삼성마을 절터 마을 산기슭에 있었던 이 부도는 일제 때 일본인에 의해 해외로 반출되기 직전에 간송 전형필(全鎣弼)이 이를 매입, 수습하여 간송미술관에 옮겨 세운 것이다. 한국전쟁 때 탑이 무너져 각 부분이 흩어졌으나, 1964년 다시 세워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된 것으로, 기단(基壇)과 탑신(塔身)의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모습이다. 안상(眼象) 및 연화문, 귀꽃의 조각 솜씨 그리고 탑진부와 옥개석 등의 수법과 각 부(部) 양식으로 보아 고려 중기 이전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석조 부도(浮屠)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1974년 10월 2일 보물 제579호로 지정되었다.
  •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발원문
    유물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발원문
    개운사가 보유하고 있는 불상과 복장 유물이다. 중수발원문에는 충청남도 아산 축봉사에 봉안되어 있던 사실과 고려 충렬왕이 즉위했던 1274년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제작된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 불상은 단엄한 상호, 세련되고 뛰어난 조각기법, 장중하면서도 균형감 있는 조형 감각, 긴장감 넘치는 선묘 등이 잘 어우러진 매우 완성도 높은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불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불상 내에서 발견된 다수의 발원문은 각기 작성한 연대가 표시되어 있어 구체적인 시기를 알 수 있고,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복장 유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2010년 4월 23일 보물 1649호로 지정되어 있다.
  • 보문사
    장소, 유물
    보문사
    성북구 보문사길 20(보문동 3가 168)에 위치한 사찰이다. 보문사는 고려 때 승려 담진(혜조국사)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그 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옛 건물로는 영조 때 건축된 대웅전이 있다. 이 절은 원래 조계종 소속이었으나, 1972년 세계 유일의 비구니종단인 대한불교 보문종(普門宗)을 창시하여 그 본산이 되었다. 이 절의 대웅전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보문사 석가불도>, <보문사 대웅전 신중도>, <보문사 지장보살도> 등 문화재로 지정된 불화들이 있다. 한편 석굴암 앞 팔각 9층 석탑은 1978년에 오대산 월정사의 탑을 본떠 조성하고,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내부에 봉안했다. 보문사 스님의 범패(梵唄)는 잘 알려진 무형자산이다.
  • 미타사
    장소, 유물
    미타사
    성북구 보문사길 6-16(보문동 3가 3-51)에 위치한 사찰이다. 미타사는 여승을 지칭하는 비구니의 수양 도량인데, 고려 초 혜거국사(惠居國師)가 창건하고 미타사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승된다. 이후 몇 차례의 중수 사실이 전해지지만 의미있는 것은 1457년(세조 3)에 단종비였던 정순왕후 송씨에 의해 중수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미타사 서쪽, 숭인동의 정업원·동망봉·자지동천(紫芝洞泉·자줏빛 물이 흘러나오던 샘) 등에 정순왕후와 관련된 사실이 있음으로 보아 이 절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곳 보문동 일대는 ‘탑골’이라 불리고, 이 절은 ‘탑골승방’이라 불리는데, 미타사 대웅전 뒤 단하각(丹霞閣) 왼쪽 언덕 위에 있는 석탑으로 인해 그렇게 불리게 된 듯하다.
  • 경국사
    장소
    경국사
    성북구 보국문로 113-10(정릉3동 753)에 자리한 사찰이다. 고려 충숙왕 12년(1325) 율사 정자(淨慈)가 청암사(靑巖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고, 공민왕 때에 지공(指空)선사가 머물면서 고승대덕의 수도처로 알려졌다. 17세기 초 조선 현종 때에 이름이 경국사로 바뀌고, 몇 차례의 보수와 증축을 거쳐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다(16세기 중반 문정왕후의 이름을 바꾸었다는 설도 있다). 1921년 승려 보경(寶鏡)이 주지로 부임하였는데, 현재의 봉안된 탱화, 벽화 등의 대부분이 이 보경의 작품이다. 한편 경국사 주변은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휴식처로서 예로부터 사대부들이 많이 찾던 곳이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자주 방문했었고, 1953년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닉슨이 방문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안암동 오층석탑
    유물
    안암동 오층석탑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고려 중기(추정)에 건조된 높이 5.55m의 오층석탑으로, 본래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면 원당국민학교에 소재했으나, 1986년 10월 27일 고려대학교 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기단부의 상대갑석은 4매의 판석으로 되어있으며, 탑신부(塔身部) 옥개석(屋蓋石)의 낙수면(落水面)이 얕고 옥신(屋身)이 높아 웅장한 감을 준다. 2층 옥신과 기단부 면석 3매와 상륜부(相輪部)는 후대에 복원한 것이다.
  • 안암동 삼층석탑(예산 소재)
    유물
    안암동 삼층석탑(예산 소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고려 중기(추정)에 건조된 높이 3.31m의 삼층석탑으로, 본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모사리에 소재했으나 1962년 1월 5일에 고려대학교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기단부에서 탑신부까지의 옥개석과 옥신은 일정한 비례로 축소되어 안정감을 준다. 2, 3층 옥개석 추녀 모서리의 각각 세 부분은 후대에 복원한 것이다.
  • 안암동 삼층석탑(봉화 소재)
    유물
    안암동 삼층석탑(봉화 소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고려 중기(추정)에 건조된 높이 3.7m의 삼층석탑으로, 본래 경상북도 봉화군에 소재했으나 1987년 3월 13일에 고려대학교 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기단부의 하대갑석은 1매의 큰 방형으로 되어 있고, 옥개석(屋蓋石)의 낙수면(落水面)은 두터우며 추녀 모서리는 반전이 얕아 전체적으로 단아한 감을 준다.
  •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전적
    유물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전적
    개운사 미타전에 봉안된 목조 아미타여래좌상과 함께 발견된 복장유물이다. 충청남도 아산 축봉사에서 13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에서 나온 복장유물은 발원문 3점, 신라 하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간행된 불서 22점, 조선시대 목판본 불서 6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다라니 8점, 탁본 1점, 족자 1점이다. 고려시대의 전적류와 함께 중수기에 등장하는 시기 외에 조선 후기에 들어서 재차 중수 및 이에 따른 복장 납입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납입된 경전을 통해 당시의 신앙과 아미타불상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불상을 포함한 개금기 3건과 대방광불화엄경 사경 7건, 대방광불화엄경 인본 15건 등 총 25건은 2010년 4월 23일 보물 제1650호로 지정되었다. 이 복장전적은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 보타사
    장소
    보타사
    성북구 개운사길 60-46(안암동 5가 7)에 위치한 사찰이다. 보타사는 개운사의 암자인데, 이 절의 전각들이 비교적 규모가 작은 데 비해 높이가 5m나 되는 마애불이 눈에 띈다. 마애불은 대웅전 뒤에 있는데, 좌상의 형태이고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큰 바위에 부조로 새겨진 이 마애불상은 몸 전체에 호분(胡粉)이 칠해져 있어서 ‘백불(白佛)’이라고도 부른다. 보타사 마애좌상은 현재 보물 제1820호로 지정되어 있다.
  • 혜거
    인물
    혜거
    고려 초기의 승려이다. 초명은 지회(智回)이며, 16세에 출가하였다. 태조가 그의 법문 듣기를 청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968년에 국사가 되었다. 혜거는 광종 원년(950)에 미타사를 창건하였다. 그 후 문종 원년(1047)에 석탑을 조성 봉안하였고 이로 인하여 「탑골승방」이라고도 불리어졌다. 미타사는 충숙왕대에 중건되었고, 조선 단종 및 순조, 헌종 대에도 중수하였다. 1969년 6차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자초
    인물
    자초
    승려이다. 호는 무학, 당호는 계월헌이다. 1344년에 출가하여 승려 소지의 제자가 되었으며, 혜명국사에게 불법을 배웠다. 1353년에 원의 연경에 유학하여 당시 연경에 있던 나옹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조선 개국 후 태조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태조의 왕사로 책봉되었으며, 한양 천도에도 관여하였다. 개운사는 1396년에 자초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처음에는 영도사(永導寺)라 하였다. 이후 정조 3년(1779년) 정조의 후궁인 홍빈(洪嬪)의 묘 명인원(明仁園)이 절 옆에 들어서자 인파(仁波)가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개운사로 개명하였다.
  • 만항
    인물
    만항
    고려 말의 승려이다. 승과시험인 구산선(九山選)에 응시하여 장원에 뽑혔으나 명리(名利)를 버리고 금강산·지리산으로 다니면서 수도에 전념하였다. 이후 충숙왕으로부터 ‘별전종주중속조등묘명존자(別傳宗主重續祖燈妙明尊者)’라는 법호를 하사받았다. 충숙왕 6년(1319) 7월 병을 얻어 8월 18일 입적하였다. 이때 나이는 71세, 법랍 58세였다. 왕이 그의 부음을 듣고 혜감국사(慧鑑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호(搭號)를 광조(廣照)라 하였다. 성북구 보문동 3-51에 위치한 미타사는 고려 문종 원년(1047) 혜거국사(惠居國師)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충숙왕 원년(1314)에 혜감국사(慧鑑國師)가 2차로 중수하였다. 이 절은 현재 비구니들의 수련도장이다.
  • 담진
    인물
    담진
    고려시대의 승려이다. 경기도 이천 출생으로 출가하여 난원(爛圓)의 제자가 되었다. 고려 선종 2년(1085) 왕명으로 의천을 수행하여 송(宋)에 가 고승들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귀국후 의천이 속장경(續藏經)을 판각할 때 그 교정을 맡아보았다. 예종 2년(1107)에 예종의 왕사(王師)가 되었다. 화엄학의 대가로서 일승법(一乘法)을 선양하여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였다. 성북구 보문동 3-168번지에 있는 보문사는 예종 10년(1115)에 담진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비구니의 수련도장인 소규모의 암자였다. 비구니 사찰로 꾸준히 발전한 보문사는 1972년 대한불교 보문종을 창립,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문사를 창건하였다.
  • 나옹
    인물
    나옹
    고려 말의 승려이다. 혜근이라고도 한다. 21세 때 공덕산 묘적암에 있는 요연선사를 찾아가 출가하였다. 그는 참선과 교학을 같이 닦음으로써 성불의 가능성을 보여준 고승으로, 고려 말의 선풍을 새롭게 선양하였다. 또한 “염불은 곧 참선”이라고 한 것은 이후의 우리나라 선종에서 계속 전승되었다. 우왕 2년(1376) 왕명으로 밀양 영원사(瑩源寺)로 옮기던 중 나이 56세 법랍 37세로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정릉 2동에 있는 봉국사는 원래 고려 공민왕 3년(1354)에 나옹대사에 의해 창건된 약사사(藥師寺)였는데 조선 현종 10년(1669)에 현재의 명칭인 봉국사로 고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