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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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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석태
    인물
    함석태
    치과의사이자 고미술품 수장가이다. 1889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나 1912년 일본 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14년 2월,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하였고 같은 해 6월 서울 삼각동에 개원하여 한국인 최초의 치과의사이자 한국인 최초의 치과 개업의로 기록된다. 한편, 뛰어난 심미안으로 도자기와 공예품을 많이 수집하여 1930~40년대 당시 대표적인 고미술품 수장가로 꼽힌다. 소설가 이태준이 편집인으로 있던 『문장文章』(1939. 09)에 기고한 「공예미工藝美」를 보면 함석태의 조선 도자기와 민속품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이듬해 발표한 수필 「청복반일淸福半日」에서는 이태준, 김용준, 손재형 등 당시 성북동을 중심으로 활동한 예술인들과의 교유를 확인할 수 있다.
  • 전형필
    인물
    전형필
    간송미술관(당시 명칭 보화각)을 설립한 문화재 수집가이다. 간송은 그의 호이다. 1906년 종로의 거상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시절 민족문화에 관심을 가졌고, 귀국하여 오세창의 도움을 받아 문화재의 수집과 보호에 심혈을 기울였다. 1934년 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하고 연구할 장소를 물색하다 현재 성북구 간송미술관 자리에 대지를 마련하였고, 오세창은 그곳에 ‘북단장’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1938년에는 북단장 내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완공하였다. 그가 수집한 주요 문화재에는 김정희, 정선, 김홍도, 장승업 등의 서화 뿐만 아니라 국보와 보물급의 문화재도 다수 포함되었다. 1962년 사망하였는데, 문화재 수호 행적을 기려 1964년 대한민국문화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
  • 이홍근
    인물
    이홍근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이다. 개성박물관장으로 있던 고유섭에게 일본으로의 문화재 반출을 막아야한다는 얘기를 듣고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1971년 성북동에 석조 건물 두 채를 짓고 동원미술관을 건립하였다. 문화재 수집과 보존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 미술관 시설에도 공을 들였다. 작고 후 5천여 점이 그의 유언에 따라 국가에 기증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작품에는 겸재 정선, 오원 장승업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그림과 공예품, 도자기 등 다양한 문화재가 포함되어 있다.
  • 박병래
    인물
    박병래
    의사이자 문화재 수집가이다. 1924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 내과를 전공하였으며, 1935년 성모병원(현 가톨릭대학 의학부속병원)을 세워 초대원장으로 취임하였다. 경성대학부속병원의 전신인 조선총독부병원에서 일할 때 사기그릇에 감탄하는 일본인 교수를 보고 도자기에 관심을 가진 이후 위창 오세창, 간송 전형필, 도상봉 등과 교류하며 안목을 키우고 백자를 수집하였다. 이후 40여 년간 수집하였던 소장품 360여 점을 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 1974년 발간한 『도자여적』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 시기의 골동상과 수집가들 사이에 벌어진 일화들을 수록한 것으로 문화재 수집을 향한 각별한 마음과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수필집이다. 성북구 돈암동 산 40-15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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