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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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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암동 채석장
    장소
    종암동 채석장
    1960년대까지 개운산에 있었던 채석장이다. 종암1동에 거주하는 진씨(陳氏) 성을 가진 사람의 채석장이 있었기에 개운산을 ‘진석산(陳石山)’으로도 불렀다. 진석산은 양질의 석재 산출지로 예로부터 유명하여 일찍부터 채석업과 석재 가공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진석산의 돌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를 지을 때에도 사용되었으며, 현 종암중학교 자리에 있던 '중앙산업'은 대한민국 최초의 아파트인 종암아파트(1958) 등을 지을 때 종암동 채석장의 돌을 사용하였다. 또한 인근 고려대학교의 석조건물 건축 당시 종암동 채석장에서 돌(화강암)을 가져왔다고 한다. 지금도 개운초등학교와 종암중학교 주변에서 채석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 종암동 북바위둘레길
    장소
    종암동 북바위둘레길
    종암동 전체를 둘러볼 수 있도록 만든 생활·생태마을 둘레길이다. 10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총 길이는 약 5.8㎞이다. 둘레길은 종암동 주민센터에서 시작하는데 각 구간의 이름은 1구간 종암동북바위마을길(230m), 2구간 북바위유래비길(300m), 3구간 이육사시인길(600m), 4구간 개운산산책길(600m), 5구간 개운산길(1,000m), 6구간 (옛)종암아파트길(250m). 7구간 북바위전답터길(350m), 8구간 은행나무바람길(850m), 9구간 종암동정릉천벽화길(1,000m) 10구간 소방서, 경찰서, 종암시장길(650m)이다. 둘레길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북바위유래비, 문화공간이육사, 개운산, 북바위전답터, 은행나무바람길 등 마을의 주요 명소들을 방문할 수 있다.
  • 월곡산
    장소
    월곡산
    성북구 장월로3길 93-27(상월곡동 산 1-1) 일대에 있는 오패산 지맥의 남쪽 끝 봉우리이다. 월곡동에 위치하여 월곡산이라고 한다. 고종의 장남 완화군의 묘(애기릉)와 고종의 귀인들의 묘가 위치해 있었으나 지금은 고양시 서오릉 경내로 이전되었다. 월곡산 일대는 오동근린공원으로도 불리는데, 1966년 2월 5일 건설부고시 제2181호로 처음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5년 2월 1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72호로 최종 고시되었다.
  • 중랑천
    장소
    중랑천
    경기도 양주시에서 발원하여 의정부시, 서울특별시 노원구 성북구 등을 지나 한강으로 유입하는 하천이다. 유역면적 299.6㎢, 유로연장 34.8㎞로 우이천·청계천 등 모두 13개의 지류를 거느리고 있다. 과거 중랑천은 도봉동 부근에서는 ‘서원천(書院川)’, 상계동 부근에서는 한강의 새끼 강이라는 뜻으로 ‘샛강’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한강의 위쪽에 흐르는 냇물이라는 뜻으로 한천(漢川), 한내라고도 불렀는데 현재 석관동의 동쪽 중랑천과 접한 도로가 한천로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중랑천 주변은 과거 농경지였으나 1970년대 초 택지로 조성되어 아파트·단독주택·다세대주택 등이 혼재해 있다. 중랑천변의 하천부지는 주민들의 체육공간과 휴식장소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 우이천
    장소
    우이천
    북한산 우이봉 아래에서 발원하여 장위동과 석관동의 동북쪽을 거쳐 석계역 부근에서 중랑천으로 합류하는 개천이다. 성북구 장위동과 노원구 월계동을 가르는 자연적 경계를 이루는 우이천은 예전에는 소근내라고도 불리었다. 중랑천 지류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길이는 8,330m이다. 상류에 우이구곡이라 불리는 명승지가 있다. 우이천과 중랑천이 합류하는 지점 일대에 자리한 장위동은 충적 평야가 발달하여 일찍이 농촌 마을들이 형성되었는데 현재는 그 이름만이 전해지는 명덕동, 웃대, 간대, 아랫대, 활량리가 바로 그 마을들이다. 현재는 많은 주민들이 휴식과 운동을 목적으로 우이천을 찾고 있다.
  • 성북천(성북동 구간)
    장소
    성북천(성북동 구간)
    성북천의 상류 구간으로 성북천이 성북동을 지나는 구간을 말한다. 성북천은 북악산에서 발원하여 성북동과 안암동을 지나 청계천으로 합류한다. 성북천의 상류 구간은 조선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생업의 수단인 마전터, 아낙네들의 빨래터, 아이들의 놀이터 등으로 이용된 성북동 사람들의 중심 생활공간이었다. 또한, 이태준, 조지훈 등 근현대 예술인들이 성북동 개천 주변에 거주하였다. 1970-1980년대 성북천 복개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성북천 상류 구간의 물길 대부분은 성북로로 이용되고 있다.
  • 길음동 돌산
    장소
    길음동 돌산
    채석장이 있던 길음동의 돌산이다. 길음동의 돌산은 큰 돌산과 작은 돌산으로 나뉘는데, 큰 돌산은 신안아파트 자리에 위치했던 것으로 신안아파트 뒤편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돌산은 70년대 후반까지 채석장으로 이용되었다. 길음동 산동네에 살았던 김소진의 소설에는 이 돌산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 안감내
    장소
    안감내
    보문동 대광초등학교부터 성북구청, 돈암동성당 쪽까지 안암동을 지나가는 성북천의 일부를 부르는 이름이다. 안암천이라고도 불렸다. 안감천변을 따라오는 지선도로는 안감내길이라고 불렀다. 한편 ‘안감내’라는 이름과 관련한 설화가 전한다. 조선시대 안암동에 살던 채소장수 안감이란 사람이 도성 안에 살던 대감에게 선행을 베풀었고, 감동한 대감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였는데, 안감이 안암천을 건널 수 있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하여 소원대로 다리를 놓고 그 이름을 ‘안감내다리’라고 부르고 하천을 ‘안감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 인수천
    장소
    인수천
    북한산 줄기에서 발원하여 성북구 길음동을 거쳐 정릉천과 합류되는 개천이다. 지금은 복개되어 도로(인수로)로 사용되고 있다. 인수로는 동소문로에서 길음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1,370m의 보조간선급 소로이다.
  • 칼바위 능선
    장소
    칼바위 능선
    북한산의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진 능선 중의 하나이다. 칼바위 능선은 북한산 주능선에 오르는 대표적인 코스로, 대동문과 보국문 사이로 뻗은 짧고 날카롭게 생긴 능선을 말한다. 칼바위코스의 특징은 능선이 약 3㎞에 이를 정도로 길게 뻗어 있어 산길에 변화가 많고, 조망권이 뛰어난 것을 꼽을 수 있다.
  • 천장산
    장소
    천장산
    성북구 석관동, 동대문구 회기동, 청량리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해발 140m로 낮은 산이지만 꽤나 넓은 편으로, ‘하늘이 숨겨놓은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명당터이다. 천장산 주변으로는 한예종, 외대, 경희대, 카이스트 서울캠퍼스 등의 대학캠퍼스가 둘러싸며 자리하고 있고, 과학기술연구원, 국방연구원, 산림과학원, 산업경제연구소, 농촌경제연구소가 모두 이 산에 기대어 있다. 조선왕조의 무덤인 의릉, 영휘원, 숭인원 등이 주변에 자리잡았고, 명성황후의 능 자리였던 홍릉 역시 이곳에 위치하였다. 조선 왕가의 쉼자리, 현대 교육의 산실인 대학, 연구의 중심인 연구소들이 산 주변에 둘러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천장산이 좋은 기운을 가진 공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정릉천
    장소
    정릉천
    정릉동, 월곡동, 종암동을 흐르는 하천이다. 북한산 기슭 정릉 계곡에서 시작해 하월곡동에서 월곡천을 만나 동대문구 신설동과 용두동 사이를 통과하여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 다시 중랑천과 한강으로 합류한다. 총 길이는 11.94㎞인데 현재 하천 대부분이 복개되었고 1999년에 하천 위로 내부순환로가 개통되었다. 현재 정릉시장에서 북한산까지 약 2㎞ 정도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계절마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정릉 주민들은 정릉천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 ‘정릉천 별똥대’라는 주민모임을 만들어 환경보호와 기록, 문화프로그램 활동을 하고 있다. 정릉 버들잎축제가 진행되는 개울장도 정릉천에서 열린다.
  • 정릉계곡
    장소
    정릉계곡
    성북구 보국문로 215(정릉동 829)에 소재한 계곡으로 북한산 내 위치하고 있다. 정릉계곡은 오래전부터 청수동의 계류를 따라 형성된 계곡으로 여름철이면 피서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정릉 유원지 깊은 곳에 위치한 청수장은 장안의 부호들이 즐겨찾는 장소였고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주변으로 별장을 짓기도 하였다. 청수장은 삼각산 깊은 계곡의 맑은 물과 인근의 산수가 조화를 이룬 곳에 위치하여 불린 이름이다. 북한산 청수장 지역은 계곡 생태계 보호와 수질보전을 위해 2006년 1월 1일부터 2015년 12월 31일까지 10년간 자연휴식년제 계곡으로 지정, 출입을 금지하였고, 10년의 휴식을 취하고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현재 청수장 자리는 북한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로 이용되고 있다.
  • 장위고개
    장소
    장위고개
    성북구 상월곡동에서 장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장위고개는 우장현(雨藏峴)이라고도 하며, 장위현, 다릿굴이라고도 하였다. 현(峴)은 고개라는 의미이다. 우장현은 옛날에 기우제를 지낼 때 쓰는 물품을 보관하던 곳이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위현은 장위고개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장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데서 붙여졌으며, 다릿굴은 월곡을 다릿굴이라고 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응봉
    장소
    응봉
    종로구 와룡동·삼청동과 성북구 성북동 경계에 있는 봉우리이다. 성균관대학교 후문에서 올라가면 와룡공원에 이른다. 와룡공원은 1984년에 조성되었으며, 이 공원이 속한 산은 응봉(鷹峰) 또는 매봉이라고 한다. 응봉은 창덕궁·창경궁의 주산(主山)이다.
  • 월곡천
    장소
    월곡천
    성북구 월곡동에 있던 하천이다. 월곡천은 성북동 삼각산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미아동, 하월곡동을 거쳐 정릉천으로 흘러가는 하천으로 ‘다릿굴내‧다릿골내’라고도 하였다. 길이 2,730m이다. 월곡천의 개수기록은 1958년부터 1977년까지 등장하며, 이후에는 개수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때 개수가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완전히 복개되어 도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하천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상실되었다.
  • 성북천
    장소
    성북천
    북한산 서쪽 구준봉에서 발원하여 성북동·안암동을 지나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개천이다. 안암동을 지나는 구간은 안암천, 안감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부터 마전터로 이용되었으며, 물이 맑아 아이들의 놀이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뿐 아니라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500여명의 사람들이 만세 시위를 벌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1960년대 말 삼선교~성북경찰서 뒤편 총 1,300m를 복개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대 청계천 합류지역에서부터 보문동 1가 성암교회까지의 구간을 제외한 상류지역이 모두 복개하였다. 2002년 성북천 복원·정비공사에 착공하여 2019년 현재 성북동 성북아파트~한성대입구역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원되었다.
  • 붓산
    장소
    붓산
    성북구 장위동에 있었던 산이다. 붓산은 산의 이름으로, 생긴 모양이 붓과 같다고 하여 붓산이라 불렸는데, 현재는 장위동 지역에 특별한 산모양의 지형은 없고 해발고도가 높은 지형만 남아있을 뿐이다. 한편 장위동이 개발되기 전에 나지막한 돌산이 있어 독산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 북한산 계곡
    장소
    북한산 계곡
    성북구 정릉동에서 오르는 북한산의 계곡이다. 서울에 우뚝 솟아있는 북한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노적봉, 영봉, 비봉 등 이름난 봉우리만 40개가 넘는다. 여기에 정릉, 우이동, 세검정 등의 계곡이 북한산을 더욱 빛내주고 있다. 성북구에 있는 정릉 계곡은 도심과 가깝고 경치와 물이 좋아 조선시대부터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 계곡 입구에 있었던 청수장은 서울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았고, 현재 그 자리는 북한산 정릉탐방안내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생태문화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 북한산
    장소
    북한산
    서울시 성북구·종로구·서대문구·은평구·도봉구 경기도 고양시·의정부시에 걸쳐있는 산이다. 백운대, 인수봉, 국망봉 등 세 봉우리가 삼각의 모양을 하고 있어 삼각산이라고도 불린다. 높은 봉우리들이 모두 발밑에 펼쳐지고 도봉산, 관악산, 남산 등 멀고 가까운 산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또 서쪽으로는 바다건너 강화도, 영종도 등서해상의 섬들도 볼수 있다.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비봉을 중심으로 많은 사찰이 있고 북한산 기슭에는 세검정과 성북동, 정릉, 우이동 등 여러 계곡들이 있다.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북악산
    장소
    북악산
    종로구와 성북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청와대 뒤편 주봉에서 동쪽 방면으로 뻗어내린 산자락이 성북동의 서~북~동쪽을 둘러싸고 있다. 서울의 주산(主山)으로 ‘북악’이란 이름은 한양도성의 북쪽 산인 데서 유래했으며 공극산·면악·백악이라고도 하며 높이는 342m이다. 뛰어난 자연 경관은 물론 조선시대 체계적인 도성 조형원리, 풍수로 상징되는 사상적 체계를 구체화한 역사적 유적으로서의 가치 등을 인정받아 2009년 ‘서울 백악산 일원’이라는 명칭으로 명승 제67호로 지정되었다.
  • 보토현
    장소
    보토현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북악산과 북한산을 잇는 고개이다. 북악산 구준봉(혹은 구진봉) 뒤쪽으로 북한산을 향하다 보면 나오는 잘록한 고개를 ‘보토현(補土峴)’, 즉 ‘보토고개’라고 하는데, 이는 서울로 들어오는 입구가 되어 잘록하므로 풍수지리설에 따라 그 약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매년 흙을 메우고 떼를 입혔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이 전해 온다.
  • 동망봉
    장소
    동망봉
    성북구 보문동과 종로구 숭인동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조선 6대 왕인 단종이 어린 나이로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멀리 강원도 영월로 귀양 가 있을 때,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정업원(淨業院, 현재의 청룡사로 추정)에 머물며 매일 봉우리에 올라 단종이 머물던 영월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유래되어 영월이 있던 동쪽(東)을 바라보던(望) 봉우리(峯), 즉 동망봉(東望峯)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낙산
    장소
    낙산
    성북구 삼선동, 종로구 이화동, 창신동, 숭인동과 맞닿는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한양도성의 내사산(內四山) 가운데 동쪽에 해당하며, 남쪽 끝자락에 흥인지문(동대문)이, 북쪽 끝에는 혜화문(동소문)이 위치한다. 조선시대 낙산은 풍광이 좋아 이름난 별장 단지를 형성한 곳 중 하나였다. 낙산이 주거지로 개발된 것은 일제강점기이다. 일제의 소위 ‘근대화’ 정책으로 토지를 상실한 지방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이들은 옛 한양의 외곽 지역에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낙산 자락도 그중 하나였다. 낙산 자락에 살던 대다수가 ‘토막’이라는 기초적인 주거 시설을 짓고 살았는데, 이들을 흔히 ‘토막민’이라고 불렀다. 현재 낙산은 낙산공원과 성곽 주변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주거지로 개발되었다.
  • 구준봉
    장소
    구준봉
    성북구 성북동 북쪽의 산봉우리 이름이다. 구준봉(狗蹲峰)은 성북동의 북쪽을 이루고 있는 봉우리인데, 마치 개가 걸터앉은 모양이라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또한 도읍터의 지형을 모두 갖추었다는 뜻으로 구진봉(俱盡峰)이라고도 한다. 봉우리의 높이는 해발 337m이다.
  • 개운산
    장소
    개운산
    성북구 돈암동, 안암동, 종암동을 접하고 있는 산이다. 개운산이란 이름은 ‘나라의 운(運)을 연다(開)’라는 뜻의 사찰인 개운사에서 유래했다. 개운산은 해발 134m의 낮고 넓은 산인데, 크고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산이라서 그 주변의 동네은 모두 바위 암(巖)자 붙은 돈암동, 안암동, 종암동의 이름을 갖고 있다. 산 기슭에는 성북구의회를 비롯해 각급 학교와 산책로, 쉼터, 체험장이 있어, 주민들의 든든한 안식처이자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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