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깃거리

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검색정보 입력
32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필터

  • 이야기 분류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닫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필터 닫기
  • 시대
    필터 닫기
  • 지역
    필터 닫기
  • 문화재 지정
    필터 닫기
보기: 정렬:
  • 한국국토정보공사 서울중부지사
    장소
    한국국토정보공사 서울중부지사
    고려대로7다길 8(안암동1가 227-1)에 위치한 한국국토정보공사의 지사이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경지정리 토지구획정리 · 시가지계획 등과 기타 도로개설·하천보수 등의 사업 및 국민의 토지관리에 따른 지적공부(地籍公簿)를 정리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지적 관리에 효율성을 기하고 있는 기관이다. 1977년 7월 1일 재단법인 대한지적공사가 설립되었고 2013년 11월 25일에 본사 사옥을 전주·완주 혁신도시로 이전하였다. 안암동에 위치한 서울중부지사는 종로구와 중구, 성북구 일대의 지적 측량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 성북구의회
    장소
    성북구의회
    성북구 북악산로 949-60(종암동 54-182)에 위치한 공공시설이다. 성북구의회는 개운산에 위치한 곳으로, 지상 2층의 규모로 1991년 4월 15일에 개관하였다. 청사의 1층은 본회의장, 의장실, 부의장실, 사무국장실, 운영위원장실, 의회사무국, 전문위원실, 제4회의실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제1회의실, 제2회의실, 제3회의실, 보건복지위원장실, 행정기획위원장실, 도시건설 위원장실, 의원연구실, 민원상담실로 구성되어있다. 의회는 주민이 선출한 의원으로 구성되며, 주민을 대표하여 예산 · 결산안 승인과 청원 · 진정 등을 처리화고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 개정, 폐지하며 집행기관에 대하여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 등 의회 절차와 과정을 통해 집행을 감시하는 등 주민대표기능, 자치 입법기능, 행정감시기능 등 크게 3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정릉아동보건지소
    장소
    정릉아동보건지소
    성북구 보국문로4길 8(정릉동 164-62)에 위치한 성북구보건소 산하의 공공 보건 의료 기관이다. 전국 최초의 임산부 및 0~6세 아동 전용 보건지소로 2017년 3월 6일 운영을 시작했다. 274.39㎡(약 83평)의 규모로 조성된 정릉아동보건지소는 교육실, 유희실, 검진실, 상담실, 수유실 등의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성장단계별 맞춤형 건강교실, 주 양육자 건강관리 등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과 모성 및 아동을 위한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길음119안전센터
    장소
    길음119안전센터
    성북구 정릉로 321(길음동 1286-13)에 위치한 성북소방서 산하의 소방 행정기관이다. 오래된 청사를 벗어나 도시 미관을 개선하고 성북지역의 119시스템 현대화를 통한 안전서비스 제공을 위해 2011년 2월 17일 이전 준공하였다. 길음·정릉 6개동(면적 약10㎢)의 소방과 구급, 구조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신설 센터는 일반 업무가 이루어지는 지상 1층과, 응급처치 교실이 운영되고 체력단련장, 주민자치회의장과 휴게소가 지역주민들을 위하여 개방되어 있는 2층과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 돈암119안전센터
    장소
    돈암119안전센터
    성북구 보문로 192(삼선동4가 349-1)에 위치한 성북소방서 산하의 소방 행정기관이다. 시민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소방행정 서비스 제공을 위해 2008년 1월 준공됐다. 관할 구역은 돈암2동·삼선동·성북동·보문동·동선동·동소문동으로 이 지역의 화재 예방·진압·구급 등 소방 업무를 일차적으로 처리한다.
  • 동선보건지소
    장소
    동선보건지소
    성북구 아리랑로3길 8(동소문동6가 146)에 위치한 성북구보건소 산하의 지역 공공 보건 의료 기관이다. 2009년 11월에 개소한 동선보건분소를 2010년 9월에 동선보건지소로 확대하였다. 지하1층, 지상3층, 연면적 909.06㎡의 규모인 본 기관은 대사증후군관리센터와 재활·물리치료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금연·스트레스·영양상담 및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숭인면사무소
    장소
    숭인면사무소
    일제강점기 성북 지역을 관할 하였던 행정기관이다. 1914년 조선총독부가 지방제도를 개혁할 때 숭신면과 인창면이 통합되어 숭인면이 되었고, 성북지역은 고양군 숭인면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총독부 관보에 따르면 숭인면사무소는 1915년 1월 창신동에서 제기리로 이전되었고, 같은 해 10월 제기리에서 원리(현 안암동)로 이전하였다. 1936년 경성부의 구역이 확장되면서 성북리·돈암리·신설리 등은 경성부에 편입되고, 정릉리·미아리·장위리·석관리 등은 숭인면으로 남게 되었다. 이때 신설리 87번지에 있던 숭인면사무소 자리에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49년 8월 성북구가 신설된 당시 미아리에 숭인출장소가 설치된 것으로 보아 1936년 이후 숭인면사무소는 미아리로 이전한 것으로 추측된다.
  • 서울성북소방서
    장소
    서울성북소방서
    성북구 종암로27길 3(종암동 3-72)에 있는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산하의 소방서이다. 1974년 서울북부소방서의 신설이 결정되었고, 1975년 2월 28일 개설되어 종암, 미아, 돈암, 창동 등 성북구와 도봉구 일대를 관할하였다. 1989년 5월 서울도봉소방서가 신설되면서 서울북부소방서는 서울성북소방서로 명칭이 변경되고 성북구 전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2007년 12월에는 신청사를 준공하였다. 현재 성북소방서는 다중이용업소 자율안전점검 및 안전교육, 화재피해 주민 지원 센터, 소방안전교육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삼선동, 길음동, 장위동에 119안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 석관동 주민센터
    장소
    석관동 주민센터
    성북구 석관동 384-3(화랑로 296)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이 지역은 마을 동쪽에 있는 천장산의 한 맥에 검정 돌을 꽂아 놓은 것 같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돌곶이 마을로 불렸으며, 이를 한문으로 표기한 데서 석관(石串)이라는 동명이 유래되었다. 1949년 성북구가 신설되면서 석관리가 성북구로 편입되었고, 1950년 동제의 실기로 석관동으로 개칭되었다. 1975년 구(區), 동(洞)의 담당구역이 재편성될 때 이문동 북쪽의 석관동 일부 지역이 동대문구 이문동에 편입되었고, 석관동은 석관제1·2동으로 분동되었다. 2007년 12월 석관동으로 통합되었으며, 현재 석관동 전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1.73㎢, 인구수는 3만 5천여 명, 세대수는 16,235세대이다.
  • 장위3동 주민센터
    장소
    장위3동 주민센터
    성북구 한천로 657(장위동 117-5)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동명의 유래에 관해서 마을 뒤에 있는 장위산(獐位山)에서 유래했다는 설, 고려시대 명신이 살았기 때문에 장위(長位)라고 부른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1949년 성북구가 신설될 때 편입되었다. 1970년 장위동에서 장위제1동과 장위제2동으로 분동되었고, 1977년 장위제1, 2동의 인구수가 2만 5천 명 이상이 되면서 분동하여 장위제3동이 신설되었다. 현재 장위동 중 장위제1, 2동의 담당구역을 제외한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0.65㎢, 인구수는 1만 7천여 명, 세대수는 7,224세대이다.
  • 장위2동 주민센터
    장소
    장위2동 주민센터
    성북구 돌곶이로27길 12(장위동 69-54)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동명의 유래에 관해서 마을 뒤에 있는 장위산(獐位山)에서 유래했다는 설, 고려시대 명신이 살았기 때문에 장위(長位)라고 부른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1949년 성북구가 신설될 때 편입되었다. 1970년 장위동에서 장위제1동과 장위제2동으로 분동되었고, 1977년 장위제1, 2동의 인구수가 2만 5천 명 이상이 되면서 분동하여 장위제3동을 신설하였다. 1978년 상월곡동 일부가 장위동에 편입되었고, 1985년 장위동 일부가 석관동에 편입되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장위제2동의 담당 면적은 0.67㎢, 인구수는 1만 3천여 명, 세대수는 6,287세대이다.
  • 장위1동 주민센터
    장소
    장위1동 주민센터
    성북구 장위로 61(장위동 225-100)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동명의 유래에 관해서 마을 뒤에 있는 장위산(獐位山)에서 유래했다는 설, 고려시대 명신이 살았기 때문에 장위(長位)라고 부른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1949년 성북구가 신설될 때 편입되었다. 1970년 장위동에서 장위제1동과 장위제2동으로 분동되었고, 1977년 장위제1, 2동의 인구수가 2만 5천 명 이상이 되면서 분동하여 장위제3동을 신설하였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장위제1동의 담당 면적은 0.70㎢, 인구수는 2만여 명, 세대수는 8,961세대이다.
  • 월곡2동 주민센터
    장소
    월곡2동 주민센터
    성북구 오패산로 96(하월곡동 225-7)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동명의 유래로 천장산 지형이 반달처럼 생긴 데서 동명이 유래했다는 설, 조선 후기 지방의 소장사들이 미아삼거리의 주막거리에 달밤에 도착하여 잔월(殘月) 아침에 흥정했기 때문에 월곡이라는 동명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월곡동은 1949년 성북구가 신설되면서 편입되었다. 1970년 하월곡1·2동과 상월곡동으로 분동했고, 1973년 월곡3동, 1975년 월곡4동이 신설되었다. 2007년 12월 월곡2동과 상월곡동은 월곡2동으로 통폐합되었다. 월곡제2동은 상월곡동 전역과 하월곡동 중 길음제2동, 월곡제1동장의 담당 구역을 제외한 전역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1.36㎢, 인구수는 2만여 명, 세대수는 9,287세대이다.
  • 월곡1동 주민센터
    장소
    월곡1동 주민센터
    성북구 오패산로 96(하월곡동 225-7)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동명의 유래로 천장산 지형이 반달처럼 생긴 데서 동명이 유래했다는 설, 조선 후기 지방의 소장사들이 미아삼거리의 주막거리에 달밤에 도착하여 잔월(殘月) 아침에 흥정했기 때문에 월곡이라는 동명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1949년 성북구가 신설되면서 편입되었고, 1970년 하월곡1·2동과 상월곡동으로 분동했다. 1973년 월곡3동이 신설되고, 1975년 월곡3동에서 4동이 분동되었다. 2007년 12월 월곡1·3·4동이 월곡1동으로 통합되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0.81㎢, 인구수는 2만 7천여 명, 세대수는 10,817세대이다.
  • 종암동 주민센터
    장소
    종암동 주민센터
    성북구 종암로 98-8(종암동 16-8)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고려대학교 뒷산에 북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를 한자로 종암(鐘岩)이라고 부른 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43년 6월 구제 실시 때 동대문구에 속하였다가 1949년 성북구의 신설로 성북구에 속하게 되었다. 1970년 5월 18일 시조례 제613호에 따라 종암제1동과 종암제2동으로 분동되었다. 2007년 12월 30일 구조례 제698호에 따라 종암동으로 합동되면서 종암동 주민센터는 종암동 전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1.46㎢, 인구수는 4만여 명, 세대수는 17,131세대이다.
  • 길음2동 주민센터
    장소
    길음2동 주민센터
    성북구 삼양로2길 70(길음동 1064-1)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이 지역은 골짜기가 길게 놓여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기리묵골 또는 기레미골이라 불렸고, 길음동은 이를 한자음으로 고쳐 쓴 것이다. 1973년 도봉구가 분리 신설될 때 도봉구에 속했다가 1975년 도봉구 미아동 일부가 성북구로 편입되면서 행·법정동을 분리하여 길음동으로 정해졌으며, 행정동 길음동, 인수동, 송천동이 설치되었다. 1977년 9월 길음동을 길음제1동, 인수동을 길음제2동, 송천동을 길음제3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7년 12월 길음2동과 길음3동이 합동하고, 하월곡동 일부가 길음2동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0.58㎢, 인구수는 1만 6천여 명, 세대수는 6,899세대이다.
  • 길음1동 주민센터
    장소
    길음1동 주민센터
    성북구 길음로 92(길음동 1281-7)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이 지역은 골짜기가 길게 놓여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기리묵골 또는 기레미골이라 불렸고, 길음동은 이를 한자음으로 고쳐 쓴 것이다. 1949년 성북구가 신설된 당시 성북구 미아리로 불리다가 1950년 3월 미아동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분리 신설되어 도봉구에 속했으며, 1975년 도봉구 미아동 일부가 성북구로 편입되면서 길음동이 되었다. 길음제1동은 길음동 중 삼양로 서쪽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0.79㎢, 인구수는 3만 6천여 명, 세대수는 12,796세대이다.
  • 정릉4동 주민센터
    장소
    정릉4동 주민센터
    성북구 보국문로 106-1(정릉동 293-6)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조선 태조의 둘째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49년 8월 13일 서울시에 편입되어 성북구 정릉리로 칭하다가 이듬해 3월 정릉동으로 고쳐졌다. 1970년 5월 정릉동 중 정릉제1·2·3동을 제외한 지역을 정릉제4동으로 분동하였다. 1973년 숭인출장소 및 노해출장소 폐지, 숭인출장소 폐지로 정릉동이 성북구 직할이 되었고, 1988년 5월 서울특별시 성북구 조례 제12, 13호를 통해 동사무소, 동명칭 및 구역이 획정되었다. 현재 정릉제4동은 정릉제1·2·3동장 담당구역을 제외한 전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3.18㎢, 인구수는 2만 6천여 명, 세대수는 10,982세대이다.
  • 정릉3동 주민센터
    장소
    정릉3동 주민센터
    성북구 솔샘로1길 6-3(정릉동 673-3)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조선 태조의 둘째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49년 8월 13일 서울시에 편입되어 성북구 정릉리로 칭하다가 이듬해 3월 정릉동으로 고쳐졌다. 1970년 5월 정릉제1·2동에서 분동되어 설치되었다. 정릉제3동은 정릉동 중 정릉천 서쪽지역으로, 동남은 정릉2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손씨 집성촌인 손가정, 동 입구에 문설주를 닮은 문바위에서 이름이 유래된 문바위골, 배같이 생긴 바위가 있는 마을 이름이 유래된 배바윗골 등의 마을이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3.71㎢, 인구수는 1만 5천여 명, 세대수는 7,726세대이다.
  • 정릉2동 주민센터
    장소
    정릉2동 주민센터
    성북구 정릉로26길 1(정릉동 966-125)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조선 태조의 둘째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49년 8월 13일 서울시에 편입되어 성북구 정릉리로 칭하다가 이듬해 3월 정릉동으로 고쳐졌다. 1955년 서울특별시 조례 제66호를 통해 정릉제2동으로 명명되었다. 정릉제2동은 현재 정릉동 중 숭덕초등학교 동쪽 길 북상 227번지를 경유 410번지 지적선을 따라 성저오리정계표 및 404번지 앞 도로를 경유 정릉천을 남하, 정릉로를 따라 650번지 앞 구거(溝渠)에서 산 87-3 지적선과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지역과 아리랑 고개길 서쪽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1.17㎢, 인구수는 2만 3천여 명, 세대수는 9,643세대이다.
  • 정릉1동 주민센터
    장소
    정릉1동 주민센터
    성북구 정릉로38마길 33(정릉동 1020)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조선 태조의 둘째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49년 8월 13일 서울시 확장으로 편입되어 성북구 정릉리로 칭하다가 이듬해 3월 정릉동으로 고쳐졌다. 1975년 10월 1일 정릉동 236-482, 235번지 동북쪽지역은 도봉구 미아동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성북구 조례 제12, 13호를 통해 동명칭 및 구역이 획정되었다. 정릉제1동은 현재 정릉동의 동쪽편 즉 정릉동 중 아리랑 고개길 동쪽 지역과 숭덕초등학교 동쪽 일대를 담당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 면적은 0.44㎢, 인구수는 1만 8천여 명, 세대수는 7,445세대이다.
  • 보문동 주민센터
    장소
    보문동 주민센터
    성북구 안암로3길 35(보문동7가 108-1)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보문사길 20에 있는 ‘보문사’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이 지역은 광복 후 동대문구 신설동에 속해 있었는데 1955년 4월 18일 동제 실시때 신설동에서 보문동을 분리하여 보문동 1~7가로 구분하였다. 1975년 10월 1일 구(區), 동(洞)의 담당 구역을 재편성할 때 신설동 일부를 보문동 6가에 편입시키고 보문동 1~7가를 성북구에 소속시켰다. 보문동 주민센터는 보문동 1~7가 전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관할 면적은 0.56㎢이며, 인구는 16,258명, 세대수는 7,931세대이다.
  • 안암동 주민센터
    장소
    안암동 주민센터
    성북구 고려대로(안암동2가 140-4)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안암동은 대광아파트 단지 내에 있었던 큰 바위의 이름인 ‘앉일바위’를 한자로 옮겨 쓴 것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49년 8월 15일 성북구의 신설로 이에 속가에 되었으며, 안암동은 1~5가로 구분되었다. 1975년 안암교에서 고려대학교 이공대 앞에 이르는 안암동 동남지역 일대의 4, 5가의 일부가 동대문구의 용두동과 제기동으로 개편되었다. 현재 안암동 주민센터는 안암동 1~5가 전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담당면적은 1.33㎢이고, 인구수는 1만 5천여 명, 세대수는 9,174세대이다.
  • 돈암2동 주민센터
    장소
    돈암2동 주민센터
    성북구 흥천사길 7(돈암동 600)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돈암동이라는 동명은 되너미고개, 즉 돈암현이란 고개이름에서 유래되었다. 1949년 8월 15일 성북구에 속하면서 그 지역이 넓었으므로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으로 분동되었고, 현재 아리랑고개와 미아리고개에 걸친 산록의 대부분 지역만 돈암동이 되었다. 이 지역은 원래 정화동사무소의 담당구역이었으나 1970년 법정동과 동사무소의 명칭을 일치시키면서 돈암제2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현재 돈암동 중 동선동장, 돈암제1동장 관할 구역을 제외한 전역을 관할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관할 구역의 면적은 0.48㎢이고, 인구는 2만 4천여 명, 세대수는 8,619세대이다.
  • 돈암1동 주민센터
    장소
    돈암1동 주민센터
    성북구 정릉로 394(돈암동 1-1)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돈암동이라는 동명은 되너미고개, 즉 돈암현이란 고개이름에서 유래되었다. 1949년 8월 15일 성북구에 속하면서 그 지역이 넓었으므로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으로 분동되었고, 현재 아리랑고개와 미아리고개에 걸친 산록의 대부분 지역만 돈암동이 되었다. 돈암1동은 1955년 동제를 실시할 때 북선동사무소의 담당구역이었으나 1970년 법정동과 동사무소 명칭을 일치시키면서 북선동사무소 돈암제1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돈암1동 주민센터는 돈암동 중 개운산길 이북지역을 따라서 서쪽으로 매원초등학교를 포함하고 북으로는 정릉천 이남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관할 면적은 0.49㎢이고 인구는 1만 5천여 명, 세대수는 6,259세대이다.
  • 동선동 주민센터
    장소
    동선동 주민센터
    성북구 동소문로26길 27(동선동3가 130-7)에 위치한 행정기관이다. 1949년 돈암동에서 분리될 때, 동소문동과 삼선동에서 각각 첫 글자를 따서 동명이 제정되었다. 1949년 8월 15일 성북구가 신설 될 때 돈암동의 지역이 넓은 관계로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동으로 분할하면서 동선동이 되었다. 1955년 동제를 실시할 때 동선동 지역은 동선동, 남선동, 서선동, 북선동 등 4개 행정동이 설치되었으나 현재는 통폐합되어 동선동만이 남았다. 동선동은 현재 동선동 1~5가와 동소문동 6가, 7가를 관할하고 있으며, 돈암동 중 개운산길 이남지역도 관할하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관할 지역의 면적은 0.73㎢이고, 인구는 1만 5천여 명, 세대수는 9,088세대이다.
  • 삼선동 주민센터
    장소
    삼선동 주민센터
    성북구 보문로 190(삼선동4가 349-1)에 있는 행정기관이다. 조선시대 혜화문 밖의 동소문동, 동선동 일대의 평평한 들판을 삼선평이라고 칭한데서 동이름이 유래되었다. 1949년 5월 13일 삼선동 1~5가로 신설 분리되었다. 삼선동 1, 2가는 삼선1동의 담당이었고, 삼선2동은 1동의 경계도로 서쪽, 산54, 467-11, 산48의 동쪽지역을 담당했고, 삼선3동은 돈암동 산 54에서 산 48에 이르는 도로 서쪽, 동소문 성벽 이동, 삼선교 아래 성북천 이남 지역을 담당하였다. 이후 1980년 삼선2동과 3동이 통폐합되었고, 2007년 12월 삼선동으로 통합되었다. 현재 삼선동 1~5가와 동소문동 2가, 3가, 5가를 담당하고 있으며, 담당 지역의 면적은 0.92㎢이고 1만 2천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 성북동 주민센터
    장소
    성북동 주민센터
    성북구 성북로37(성북동 188-18)에 있는 행정기관이다. 성북동은 1765년(영조41) 도성 수비를 담당했던 어영청의 북둔(北屯)이 설치되면서 동명이 붙여졌다. 성북동은 1949년 8월 성북구가 새로 설치됨으로 성북구 성북동으로 분리신설 되었고, 성북 1가와 2가로 구분되었다. 성북동 주민센터는 1955년 4월 19일 동제실시로 성북동 1가지역을 성북1동 행정동으로 담당하였고, 2007년부터 성북동 전 지역과 동소문동1가, 동소문동4가를 통합하여 담당하고 있다. 현재 담당 지역의 면적은 2.86㎢이고, 8천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 서울 종암경찰서
    장소
    서울 종암경찰서
    성북구 종암로 135(종암동 3-1260)에 위치한 서울지방경찰청 관할 경찰서이다. 1979년 10월 15일 대통령령 제9645호에 의거하여 성북 및 북부경찰서가 분할되면서 당시 성북구와 도봉구의 일부 관할 지역이 종암경찰서로 이전되었고, 같은 해 12월 29일 개서하였다. 현재 월곡동, 장위동, 석관동, 종암동, 길음2동 등 성북구의 동부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 성북정경찰관파출소
    장소
    성북정경찰관파출소
    일제강점기 성북동에 있었던 공공기관이다. 성북정은 일제강점기 성북동, 성북리로 칭해지다가 1936년 4월 경성부 관할구역의 확장에 따라 바뀐 명칭이다. 광복 이후 1946년 10월, 성북정은 성북동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성북정 경찰관파출소는 1939년 9월 동대문경찰서 산하로 준공하였으며 성북정 주민들의 자발적 기부에 의하여 토지와 건물을 마련하였다.
  • 성북구청
    장소
    성북구청
    성북구 보문로 168(삼선동5가 411)에 위치한 관청이다. 성북구의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성북구청은 1965년 현재 위치에 3층 건물로 자리잡았고, 1977년 5층 건물로 신축한 후 몇 차례 증축과 별관을 두면서 유지하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건물 안전 문제와 공간 부족 문제가 대두되어 신축을 결정하였고, 2009년에 새로운 청사가 완공되었다. 제27회 서울특별시 건축상 공공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신청사는 성북구의 역사성과 지리적 여건을 특화하여 좌측면은 서울성곽을, 우측면은 북한산을 선과 면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며, 빼어난 디자인 및 주민에 대한 개방성, 이용 편의성, 친환경 구조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서울 성북경찰서
    장소
    서울 성북경찰서
    성북동 보문로 170(삼선동5가 301)에 위치한 서울지방경찰청 관할 경찰서이다. 1945년 10월 21일 국립경찰 발족과 함께 개서하였다. 1979년 10월 종암경찰서 개서로 5개 동의 관할이 이전되면서 현재는 돈암동·동선동·동소문동·보문동·삼선동·성북동·안암동 등 성북구 서부를 관할하고 있다. 2008년 신청사가 건립되었고, 2010년 3개 지구대(돈암, 안암, 길음지구대), 3개 파출소(정릉, 정릉2, 성북파출소)로 관할이 조정되었다. 소설가 박완서는 결혼하기 전 이 부근에서 살았는데, 이 때문에 성북경찰서는 그의 소설 속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