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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북악산로
- 종로구 부암동에서 성북구 종암동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다. 북악산을 지나는 도로로 북악스카이웨이가 이 북악산로의 일부이다. 성북동, 정릉동, 미아리고개, 돈암동, 안암동5가, 종암동을 지나가고 있다. 연장은 9.7km, 큰 도로 폭은 20~35m정도이며 2~4차선으로 이뤄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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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솔샘로
- 성북구 정릉IC를 기점으로 하여 강북구 삼양동 입구 사거리를 종점으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성북구와 강북구의 경계를 그린다. 과거에는 미아동을 분할하는 도로였으며, 도로명은 미아동의 옛 지명인 '솔샘'을 인용하여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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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아리랑로
- 동선동, 돈암동, 정릉동을 잇는 성북구의 도로이다. 아리랑로는 지도상 남으로는 보문로와 동소문로, 북으로는 정릉로와 북악산로 등의 도로들과 인접해있다. 넓은 도로의 폭은 30~35m이고, 좁은 곳의 폭은 5~10m정도이다.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정릉역을 잇는 가장 큰 도로로 아리랑고개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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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서경로
- 성북구 정릉동을 지나는 도로이다. 서경대학교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정릉동 173번지 정릉길에서 정릉동 226-125번지 서경대학교 입구에 이르는 폭 10m, 길이 940m의 보조간선급 소로로 전구간이 성북구 관내 도로이다. 정릉역 부근에 위치한 숭덕초등학교에서 대일외국어고등학교를 거쳐 서경대학교로 이어지는 언덕길인 서경로 주변으로는 원룸텔과 다세대주택, 단독 주택, 소규모 상가 등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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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김란기
- 홍익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도쿄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문화재보존을 연구하였다. 문화유산보존을 위한 연구와 운동을 위하여 단체를 조직하여 <문화유산연대>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전국 도시의 골목을 답사하며 전통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골목의 가치와 의미를 짚어내고 <살맛나는 골목세상>이라는 임의 참가자로 이루어진 비조직적 탐사단과 함께 120회에 육박하는 도시골목의 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서울 정릉동에 인문학 사랑방을 운영하며 골목탐사단과 인문학연구자들의 모임을 갖고 있다. 저술로 <조선대목 고택영의 조선집짓기 한평생 얘기>, <전라북도 전주의 민족생활어>, <춘곡 고희동>, <근대건축문화재 보존수리복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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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사건
- 국민대 꽃갈피 프로젝트
- 꽃갈피 프로젝트는 성북구 어르신 책친구만들기 프로젝트로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꽃갈피팀'이 주최했다. 이 프로젝트는 2022년 5월 4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되었고, 청년층과 노년층이 세대 구분없이 함께 책친구가 되어 시니어 그림책을 감상하고, 이를 토대로 창작활동을 진행하였다. 어르신들은 책 내용을 떠올리며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편지, 시, 일기 등 다양한 형태로 문학작품을 생산하였다. 제작한 작품은 책자로 제작하거나, 오디오 및 영상으로 만들어 성북구 소재 도서관홈페이지, 정릉3동 주민센터 등에 게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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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숭신방
- 조선시대 초기부터 성 밖에 있던 한성부 동부 12방 중의 하나로, 현재의 성북구 돈암·동선·삼선·성북·안암·정릉·종암동 일대가 이에 속하였다. 한성부의 영역은 도성과 성저십리(城底十里)로 이루어졌는데 그 범위가 매우 넓어 이에 해당하는 영역을 한성부가 단독으로 통치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기에 1396년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누었는데 방은 공식적으로 조선 전기 한성부의 가장 하위 행정 조직이었으며, 이때부터 5부 중 동부(東部)에 숭신방(崇信坊)이 확인된다. 이 명칭은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숭신방이 숭신면(崇信面)으로 변경될 때까지 사용되었으며 숭신면은 3년 뒤인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崇仁面)에 편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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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팡팡미디어
- 성북구 내 마을미디어 단체이다. 교육을 통해 배운 창작물을 다수의 사람과 소통하며 즐겁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힘쓰고 있다. 프리미어 자체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문 강사를 초빙하여 영화 만들기, 리포터 양성 교육, 영상 실무 교육 등을 진행한다. 유튜브 채널 빛사모TV를 통해 '파이팅 시니어', '성북은 즐거워', '음악이 있는 정원' 등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홈페이지 내 단체 소개 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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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능말이야기
- 성북구 내 마을미디어 단체이다. 2012년부터 매년 마을잡지인 능말이야기를 발행하였으며 2022년 3월, 현재까지 7권의 작은 잡지를 만들었다. 오랫동안 북한산 자락 아랫 동네 정릉동에 살며 지역과 주민에 애착을 가지고 마을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홈페이지 내 단체 소개 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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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태희 전주환 선생 공적비
- 정릉3동 취락지구개발을 위해 노력한 태희 전주환 선생의 공적비이다.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95년 3월 26일, 주민들이 함께 건립하였다. 그는 주민들의 뜻을 모아 1984년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추진위원회장으로 추대되어 정부로부터 정릉3동 취락지구 지정을 받아 7년 여간 역임하였다. 1985년 지역 주민들의 오랜 숙원인 무허가건물 양성화와 1989년 토지불하 등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전주환 선생은 1928년 7월 16일 경북 달성군 구지면 내리171에서 출생하여 경북대학교를 중퇴하고 경북 달성군 구지면에서 면의원을 역임하였으며 정릉3동에서 청수가구 공장을 운영하였다. [공적비 내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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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성모의 집 공부방 지역아동센터
- 보국문로29가길 24에 위치한 지역아동센터이다.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1990년 12월부터 지역사회 아동들에게 공부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시작되었다. 공부방의 위치는 북한산 자락 밑, 정릉골로 정릉3동과 4동 지역의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학습능력의 증진, 올바른 청소년기 성장, 아이들 생활환경의 자발적 개선에 이바지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처음에는 60여명의 아동들이 함께 하였으나 2006년, 지역아동센터로 정식 등록이 되면서 정원 19명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한부모가정, 조손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다자녀가정, 맞벌이가정 등 돌봄이 필요한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자원봉사자와 외부강사들이 학습지도 및 문화체험을 지원한다. [성모의 집 공부방 지역아동센터 홈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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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성북06번 마을버스
- 성북구 정릉3동에 위치한 정릉골(보국문로29길 일대)과 정릉시장, 길음역 사이를 운행하는 마을버스이다. 운수사는 대진여객이며 노선은 산림초소, 넓은마당, 도광사 등 정릉골 일대를 지나 정릉3, 4동을 거쳐 길음역까지 도달한 후 회차한다. 배차간격은 약 15분 정도이며, 운행시간은 첫차 오전 5시 40분, 막차 오후 11시 40분이다. 정릉시장 및 길음역 방면으로 향하는 정릉골 주민들의 주요 대중교통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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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유물
- 김용우
- 국가무형문화재 단청장(丹靑匠) 명예보유자이다. 단청장이란 목조건물에 광물성 안료인 진채(眞彩)로 채색을 올리는 장인을 의미한다. 단청문양보존연구회 설립자이자 초대 기능보유자인 흥천사 월주 원덕문스님을 사사하였다. 1988년 8월 1일 단청장 전수교육조교로, 2020년 7월 27일 명예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단청문양보존연구회(정릉동 소재) 이사장을 지내며, 불교미술의 맥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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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손영환
- 시인이자 서예가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다. 미주문학을 통해 2018년에 등단하였고 현재 미주문학협회 회원이자 미주 서예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시조 「정릉마을」 등 한국을 향한 그리움과 추억을 담아 2020년 시문집 『달아 쉬어가자』를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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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황인숙
- 시인이자 서예가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조선문학』 신인작품 시 부문에 입선하여 등단하였다. 「정릉천」 등이 수록된 시집 『자귀 꽃 위에 나비가 되어』(조선문학사, 2010)에서 소박한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였다. (사)대한민국미술협회 서예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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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박순녀
- 소설가이다. 1928년 함흥에서 태어나 해방 후 월남하였다.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 중앙방송국(현재 KBS의 전신)에서 드라마 작가로, 동명여고에서 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196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케이스 워커」가 당선되고 1964년 《사상계》에 「외인촌 입구」로 신인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어떤 파리」, 「아이 러브 유」, 「기쁜 우리 젊은 날」 등의 소설에서 역사적, 사회적 주제를 다룸으로써 작품 세계를 확장하였다. 1958년 소설가 김이석(1914-1964)과 결혼하였고, 그에게 들은 화가 이중섭 이야기를 토대로 사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이중섭을 찾아서」를 썼다. 이 소설이 실린 동명의 소설집으로 제51회 한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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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나기철
- 시인이다.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12살때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이사했다. 1987년 신성여고 교사 생활 중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작은詩앗 채송화> 동인에 소속되어 있으며, 신성여고 교사를 명예퇴직했다. 『섬들의 오랜 꿈』(둥지, 1992), 『남양여인숙』(한국문연, 1999), 『뭉게구름을 뭉개고』(문학의전당, 2004), 『올레 끝』(서정시학, 2010), 『젤라의 꽃』(서정시학, 2014), 『지금도 낭낭히』(서정시학, 2018) 등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그중 시집 『지금도 낭낭히』에는 마을버스를 타고 돌아본 성북구에 대한 감상을 담은 작품 「북정마을에서 길음시장까지」가 수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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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이금이
- 소설가이다. 1962년 충북 청원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1984년 단편동화 「영구랑 흑구랑」으로 새벗문학상에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끊임없는 작품 활동을 통해 1990년대와 2000년대 어린이·청소년문학의 성장기를 이끌었다. 현재까지 약 50여권의 책을 발간하며 휴머니즘이 담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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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북정마을에서 길음시장까지
- 시집 『지금도 낭낭히』(서정시학, 2018) 제4부에 수록되었다. 『지금도 낭낭히』는 나기철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으로, 시집이 출간된 해인 2018년 제5회 풀꽃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북정마을에서 길음시장까지」는 마을버스를 타고 북정마을에서 정릉4동 골짜기, 동방주택단지를 거쳐 길음시장으로 향하는 여정에 관한 감상을 간결하고 서정적인 문체로 표현한 작품이다. 신경림 시인의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2014)에 대한 오마주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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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예현연
- 시인이다. 1978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유적」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경남 거창의 어느 박물관에 전시된 토기 조각을 보고 썼다는 당선작에 대해 당시 신경림, 정호승 등 심사위원들은 '시간의 겹침을 무리 없이 소화한' 시라고 평하였다. 같은 해 『현대문학』에 발표한 「사자死者의 도시」에서는 조선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을 비롯해 유적지를 위협하는 도시 개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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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박영준
- 평안남도 강서 출생으로 호는 만우(晩牛)이며 박영준(朴映逡)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소설가, 교육자이다.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들어가 1934년 졸업하였다. 같은 해에 장편 「1년(一年)」이 『신동아』 현상모집에 당선되고, 단편 「모범경작생(模範耕作生)」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와 콩트 「새우젓」이 『신동아』에 동시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다. 1938년 만주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여 1962년부터 연세대학교 교수로 근속하였다. 광복 전까지 주로 농촌의 가난을 소재로 하는 농촌소설을 많이 썼다. 이후 소설의 무대를 도시로 옮겨 소시민의 생활을 중심으로 인간고독과 윤리문제를 추구하였다. 동연출판사에서 2006년에 단편집 전6권, 중장편집 전7권의 <박영준 전집>을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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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유미숙
- 서울시 성북구에서 출생하였다. 마들 주민회 부설 마들 여성학교에서 치유인문학 수업을 듣고 2016년 치유인문학 참가자들과 함께 시집 『잠자는 나를 꺼내다』를 발표하였으며, 2019년에는 치유인문학 참가자인 윤복녀, 이명옥, 김영숙과 함께 수필집 『늦깍이 시인, 날개를 달다』를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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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정릉 4동 꼭대기
- 수필집 『늦깎이 시인, 날개를 달다』(채문사, 2019)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2015년 마들 주민회 부설 마들 여성학교에서 진행한 치유인문학이 인연이 되어 시인 박미산의 지도 하에 참가자 윤복녀, 이명옥, 김영숙, 유미숙이 2016년부터 작성한 수필을 모아 출간한 것이다. 정릉 4동 꼭대기는 유미숙이 과거 정릉 4동에 살았던 시기를 회상하면서 작성한 것이다. 작가는 정릉 4동 꼭대기에 거주했을 때,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작가는 과거와 비교해서 더욱 나은 상황에서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은 과거에 비해 편하지 않다는 짧은 감상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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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형관
- 형관(荊冠)은 만우(晩牛) 박영준(朴榮濬, 1911-1976)이 『동아일보』에 1955년 10월 26일부터 1956년 3월 26일까지 연재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박영준 전집 9권(동연출판사, 2006)에 포함되어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남자 주인공 '현주'가 우연히 알게 된 3명의 여성인 '종아', '혜련', '경옥'과 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현주는 돈암동에 거주하며, 사건은 성북구 내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다. 박영준은 광복 전까지 주로 농촌소설을 많이 썼지만, 이후 도시 소시민의 생활을 중심으로 인간고독과 윤리문제를 추구하였다. 그의 문학적 특성을 살펴보면, 인간적인 성실성과 정직을 통한 '선량한 인간상의 추구'로 일관하는데, 형관의 주인공 현주를 통해서 그 같은 주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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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마흔 살의, 여덟 살
- 2015년 3월에 출간된 소설로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마흔 살이 된 저자가 여덟 살의 자신을 회상하며 쓴 자전적 소설이다. 배경은 성북구 길음동과 하월곡동 그리고 강북구 미아동 일대를 포함하는 '미아리'이며, '길중국'이라는 화자를 중심으로 그의 가족, 학교, 친구 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화자의 가족은 미아리 안에서 다섯 번의 이사를 하며, 다섯 번의 구멍가게를 운영하였는데, 이를 통해 1980년대 초반 미아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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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정릉천
- 황인숙 시인의 시집 『자귀 꽃 위에 나비가 되어』(조선문학사, 2010)에 수록되었다. 시인이 소박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에 옮겨 담았다. 「정릉천」은 과거 정릉천에서 빨래하고 물놀이하던 추억을 회상하는 전반부와 복개 및 복원 공사를 거쳐 현재 정릉천의 변화된 모습을 묘사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과거만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릉천도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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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정릉마을
- 미주문학을 통해 2018년에 등단한 시인 손영환의 시문집 『달아 쉬어가자』(2020, 대종출판)에 수록된 현대시조이다. 시문집은 1987년부터 미국에서 이민생활 중인 시인의 한국을 향한 그리움과 회상이 담긴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릉마을」의 형식을 보면, 초ㆍ중ㆍ종장으로 이루어진 3장 6구 45자 이내의 평시조 3수를 엮은 연시조이다. 내용상으로는 손가정 마을, 아리랑고개 등 정릉동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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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김성환, <6.25 스케치>
- 만화가이자 화가인 김성환 화백이 한국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105점의 연작이다. 1949년 18세의 나이에 만화가로 데뷔한 김성환은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크로키, 동양화, 만화풍 등 다양한 기법으로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작품은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말부터 그 해 9월 말 서울 수복까지와 그 이후 군에 복무하면서 종군화가로서 남긴 그림, 이렇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전자는 그가 살던 정릉동을 비롯하여 돈암동, 월곡동, 미아리고개 등을 그림으로써 전쟁 초기 성북구 일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시각적 자료이다. 스케치의 모서리에 적어놓은 날짜와 장소는 이 작품의 기록성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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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장위고개
- 1983년 발행된 소설집 『장위고개』에 수록된 소설이다. 염인수는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으로 대전의 문학운동을 주도했으나 한국전쟁 발발이후 사상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대전형무소에 체포되었다. 그 이후 염인수는 대전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며, 도시의 임금노동자로 살게 된다. 이 작품은 작가 염인수가 장위동 공사현장에서 노동을 했던 5년여의 기간 중 1968년 한 해를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날씨, 기온, 수입, 집안 대소사 등 당시 작가가 겪은 일상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당시 가난한 도시 노동자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일기 중간중간에 장위 공사장을 가기위해 장위고개를 오가며 느끼는 감정을 시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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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 정릉동에 거주하는 시인 신경림의 시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는 신경림 시인은 자신의 수많은 작품들 중 이 시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2014년에 펴낸 시집 『사진관집 이층』 앞머리에 실린 이 시의 주인공은 정릉동에서 30여년을 살았던 시인의 어머니이자, 동시대를 살아온 한국의 보편적인 어머니들이기도 하다. 시인은 어머니의 소박한 일상을 담담하게 들려주며 그 속에서 깨달은 삶의 이치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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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사자死者의 도시
- 2004년 『현대문학』 4월호에 실린 시이다. 왕(비)릉 주변마저도 개발 대상이 되버린 도시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담겨 있다. 시인은 특히 지하철 건설을 위협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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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이중섭을 찾아서
- 2013년 『현대문학』 12월 호에 발표된 소설로, 2014년 동서문화사에서 펴낸 박순녀의 소설집에도 표제작으로 수록되었다. 실존 인물이자 소설의 주인공인 화가 이중섭(1916-1956)과 소설가 김이석(1914-1964)은 평양 종로보통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교우관계를 맺었다. 1958년 김이석과 결혼한 박순녀는 생전 남편에게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고, 사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본 소설을 창작하였다. 불세출의 천재 화가로 알려진 이중섭의 인간적인 모습과 김이석을 비롯 황염수, 박연희, 한묵, 박고석 등 예술가 벗들과의 우정이 진솔하게 그려진 글이다. 덧붙여, 이중섭이 친구들과 함께 생애 마지막 시기를 보낸 곳인 정릉동이 소설 곳곳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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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정릉 석상
- 봉문 앞에 상모양으로 놓인 육면체 석물을 석상(石床) 혹은 혼유석(魂遊石)이라고 한다. 이를 받치고 있는 받침돌은 고석(鼓石) 혹은 족석(足石)으로 부른다. 조선 초기에는 석상에 고석을 5개씩 놓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4개씩 받치고 있다. 현재 정릉의 고석은 2개뿐이다. 이 고석은 장명등과 함께 초장지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상의 크기는 205×134cm, 두께는 37cm이며, 고석의 크기는 너비 74cm, 높이 55cm이다. 고석은 사방에 귀면을 닮은 어두문(魚頭文)과 상하로 대칭되게 가장자리를 따라 연주문을 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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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정릉 망주석
- 정릉의 능 앞 좌우에 배치되어 있는 망주석의 원수(圓首)는 연봉형으로 끝이 오므라들면서 뾰족하게 처리되었다. 운두에는 연판문이 아닌 여의두문을 2단으로 배치했다. 양각된 여의두문은 평면적이나, 모서리와 여의두문의 중앙 부분을 맞추어 각을 살려 입체감을 더했다. 귀는 초문(草文)으로 정교하게 조각했다. 대석의 상·중·하단은 모두 팔각을 이루며, 각각의 면(面)에는 방형의 창을 내었다. 상대석의 방형 창에는 별도의 문양을 새기지 않았으며, 중대석의 상하에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을 새겼다. 하대석의 방형 창에도 별도의 문양은 없으나 그 아래에 안상을 고부조(高浮彫)로 새겨서 목가구 다리처럼 보이는 효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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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정릉 석마
- 봉분을 수호하며 사악한 귀신과 기운을 물리치고 죽은 이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석수(石獸) 봉분 주변에 배치했다. 석마는 넓이136cm, 높이87cm, 꼬리의 길이는85cm이다. 목과 등이 수평을 이루고 안면과 꼬리가 아래로 거의 일직선으로 향하고 있다. 몸통의 길이에 비해 다리는 짧고 굵게 표현했다. 가르마를 탄 앞머리는 두 갈래로 나뉘었고 목 부위를 덮고 있는 갈기 역시 양쪽 아래로 떨어진다. 얼굴, 다리, 몸통 등 각 부위 표현은 이전에 비해 더욱 사실적으로 변모되는 양상을 보인다. 몸통은 풍만함이 느껴지며, 다리는 짧아 비례는 맞지 않지만, 앞·뒷다리의 튀어나온 관절, 가운데에서 갈라진 말발굽을 명확하게 처리했다. 네 다리는 석재로 막혀있고 사방으로 풀꽃을 부조(浮彫)로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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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정릉 석호
- 석호는 현종 대에 가설된 것이며, 대개 두 쌍씩 배치하나 정릉의 석호는 한 쌍씩 배치했다. 높이는 74cm, 좌우 길이 142cm이며, 화강암으로 제작되었다. 측면에서 보면, 얼굴은 약간 숙인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두발은 앞으로 내밀고 땅에 앉아있는 자세이다. 긴 꼬리는 둔부에서 틀어 뒷다리를 감싸고 끝은 동그랗게 말려 땅에 밀착되었다. 두 석호의 꼬리는 좌우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얼굴은 가슴선과 거의 구분되지 않으며, 앞다리는 짧고 배는 불룩하다. 다리 사이는 석재로 막혀있으며 사이마다 풀을 조각했다. 안면은 둥글넓적한 형상에 입은 다물고 있고 중요 부위를 과감하게 부각시켜 조각했다. 이마는 눈 주위와 머리 부분을 구분 짓는 듯 얕은 선으로 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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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정릉 석양
- 석양의 넓이는 49cm, 좌우 넓이는 100cm, 높이는 72cm로 석호와 유사한 크기이다. 얼굴은 아래로 약간 길게 표현했고 큰 뿔은 양쪽으로 말려있으며, 몸체는 통통하고 엉덩이는 약간 솟아있다. 배는 불룩하며, 꼬리는 짧게 올라가 있고 두 다리는 짧게 배치하여 양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네 다리 사이는 석재로 막아 몸체를 떠받드는 구실을 하고 있으며 사방으로 풀꽃을 조각하여 장식성을 더하였다. 두 뿔은 목주위에서 한번 휘감았는데, 뿔 모양은 초기 왕릉의 석양 조각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다. 네다리의 중간 관절은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발굽의 가운데 골이 뚜렷하게 표현된 것은 초기 석물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사례로, 후대로 갈수록 동물신체의 세부표현이 사실적으로 조각된 양상이 반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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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정릉 장명등
- 장명등은 축성 당시 제작된 몇 안 되는 석조물 중 하나로 옛 정릉의 것을 옮겨다 놓은 것이다. 높이는 250cm이며, 하대석의 지대석은 확인되지 않았다. 지면에 묻힌 기대석 외곽도 당초문을 음·양각면으로 나타내어 입체적으로 장식했다. 간주석은 높이보다 폭이 약간 더 넓은 방형이며 위로 갈수록 좁아드는 형태의 상·하 끝을 모죽임 한 듯 둥글게 치석하여 마감한 사면체이다. 이들 사면의 입면에는 안상을 새기고 그 내부에 화염에 감싸인 삼주문(三珠文)을 두고 있다. 상대석은 간주석의 접합면에 받침을 1단 낮게 두었고 앙련(仰蓮)을 하대석과 같이 8엽을 장식했다. 옥개석은 지붕사모가 중앙에 모여드는 모임 지붕형태로 내림마루가 선명하며 장식이 없다. 옥개석과 화사석 내부는 관통되어 통하도록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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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정릉 문석인
- 문석인은 공복(公服) 차림에 머리에 복두(幞頭)를 쓰고 손에는 홀(笏)을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는 224-239cm, 너비 85-87cm, 두께 64-69cm로서 왼쪽보다 오른쪽이 조금 크고 두껍다. 외곽선은 단순하게 정돈되었고, 신체의 곡선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5등신이고 상하의 비례감이 좋다. 복두는 앞이 낮고 위는 높으며, 이마 위 테두리를 깔끔하게 한줄 돌려 마감처리 했다. 공복은 단령(團領)이고 목 뒤로 속옷의 목판깃이 높게 올라가 있다. 조선 전기와 마찬가지로 소매 폭은 넓고 길어서 바닥까지 닿아있다. 신체와 복식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도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면을 단순하게 정리했다. 홀과 나란히 배치한 허리띠는 내부에 아무런 장식무늬도 새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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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허구의 삶
- 2019년 10월에 발간된 소설이다. 평행세계로의 여행이라는 판타지 요소를 접목시켜 주인공 ‘지상만’과 ‘허구’의 삶을 그렸다. 『허구의 삶』은 간헐적으로 지속되어 온 두 소년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그들의 일대기를 긴장감 있는 플롯을 이용하여 상세히 묘사한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 ‘지상만’과 ‘허구’의 20대 후반은 성북동과 정릉에서 전개되는데, 성북동의 단독주택을 개조한 초등학생용 학습지 회사와 정릉에 위치한 ‘허구’의 집에 대한 묘사에서 90년대 말 성북구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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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정릉 석물
- 정릉은 조선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 강씨(?~1396)의 능이다. 태조는 신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중구 정동에 조성하였으나,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1409년(태종9) 도성 밖 현재의 자리에 옮겼고 남아있던 목재와 석물을 태평관과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다. 이후 1669년(현종10)에 정릉이 복구되었고 1899년(광무3) 묘호가 신덕고황후로 추존되었다. 능침은 추존된 왕비의 능제에 맞게 조성하였고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만 옛 정릉에서 옮겨온 석물이고 나머지 석물들은 현종대에 다시 조성하였다. 다른 왕릉과 비교해보면 무석인, 병풍석, 난간석 등이 설치되지 않았고, 문석인, 혼유석, 망주석, 장명등, 석양, 석호, 석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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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모닝베이커리
- 성북구 보국문로157(정릉동 771-46)에 위치한 베이커리이다. 정릉에서 39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처음에는 '영국빵집'이라는 상호를 사용하였으나, 유럽빵집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모닝베이커리'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되었다. 주인 아저씨는 빵공장에 재직하시다가 독립해서 가게를 차리게 되었다. 구청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고, KBS1 뉴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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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대원서점
- 성북구 정릉로241(정릉동 416-14)에 위치한 서점이다. 현재 사장님 부부는 서점을 인수받아 33년째 운영하고 있고, 그 전에도 같은 상호의 서점이 운영되었다고 한다. 대원서점에서는 소규모 공연이나 지역 도서관과 연계한 문학콘서트를 통해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릉의 유일한 지역서점이다. 보국문로72에 있다가 2018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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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기차순대국
- 성북구 보국문로11길 18-6(정릉동 398-9)에 위치한 음식점이다. 자매 두 명이 운영하고 있는 50년 된 순대국집이다. 원래는 정릉천 다리건너 자리에서 순대국집을 운영하다가 10년 전 무렵 도시 정비가 시작되면서 가게를 넓혀 이곳으로 옮겼다. 언니의 시어머님이 주인이었고, 6년 전부터 며느리가 대를 이어 음식점을 하고 있다. '기차순대국'이라는 상호명은 본래의 가게 위치에 길게 연결되어 있던 음식점의 모양새가 기차같다고 해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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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대성이발관
- 성북구 솔샘로6길 24-17(정릉동 685-83)에 위치한 이발관이다. 정릉시장의 끄트머리에 있고, 30여년 동안 운영되고 있다. 대성이발관은 오래된 이발관의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55년의 경력을 가진 주인아저씨는 주인아주머니와 함께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다. 2003년 MBC 베스트극장 '이발사의 첫사랑'에서 극중 배경 장소가 되었고, 주인아저씨가 카메오 출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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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전주상회
- 성북구 솔샘로6길 28-16(정릉동 685-76)에 위치한 가게이다. 원래는 정릉시장 안의 다른 곳에서 장사를 시작하셨다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전주상회를 운영한 지는 20년 정도 되었고, 취급 품목은 고춧가루, 엿기름, 국수, 부침가루, 소금, 고사리, 건어물, 기름 등 공급이 가능한 물건들을 조금씩 늘려가며 장사를 했다고 한다. 기름 짜는 기계는 장사를 시작할 무렵부터 계속 가지고 있던 것이라 오래된 시간의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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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충남상회
- 성북구 아리랑로19길 25(정릉동 584)에 위치한 가게이다. 아리랑시장 골목에서 20년 넘게 운영중인 '충남상회'는 과일과 야채를 파는 가게이다. 충남 아산이 고향인 주인 아저씨가 고향이름을 따서 가게 이름을 지었다. 70이 가까운 연세에도 새벽 5시만 되면 어김없이 물건을 떼러 다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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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봉화묵집
- 성북구 아리랑로19길 46-2(정릉동 488-1)에 위치한 식당이다. 1대 주인 서순필씨가 39년째 운영하고 있고, 현재 아들 신인식씨가 대를 이어 2대째 운영하고 있다. 주인 할머니는 음식점을 시작하여 정릉 아리랑고개 인근에서만 5군데를 떠돌다가 19년 전 쯤에 지금의 자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음식장사 경력은 39년이 넘었다. 며느리 한의순씨는 19년 동안 묵묵히 일을 돕고 있다. 가게 이름은 처음에는 '만나식당'이었는데 손님들에 의해 '봉화묵집'으로 고쳐졌다고 한다. 작고하신 주인 할아버지의 고향이 경북 봉화군이었다. 대표 메뉴인 건진국수는 안동지방의 전통음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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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강원정육점
- 성북구 아리랑로19길 8(정릉동 966-46)에 위치한 정육점이다. 정릉 아리랑시장 골목의 초입에 있어 금방 눈에 띈다. 가게는 2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정육점을 운영한 지는 42년 이상 되었다고 한다. 주인 아저씨의 아버님이 강원도 화천 출신이라 가게 이름을 '강원정육점'으로 지었다고 한다. 소고기는 주로 경남 창녕에서, 돼지고기는 주로 충남 홍성에서 공급받고 있는데 고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주인 아저씨는 현재 상인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주민들과의 화합을 위해 애쓰고 있고, 상인들과 함께 골목을 청소하고 소독까지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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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소현화장품 선물의집
- 성북구 아리랑로19길 18(정릉동 106-2)에 위치한 가게이다. 고향이 동소문동인 주인 아저씨는 계속해서 성북구에 거주하였고, 이 가게를 운영한지는 30년이 넘었다. 건축 일을 하다가 주인 아저시의 여동생 친구가 하던 화장품 가게를 옛 간판까지 그대로 인수받아 시작하였다. 그래서 가게 이름도 여동생 친구의 딸 이름 그대로 '소현이네 화장품가게'로 시작하였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화장품사업이 잘 되지 않아 품목을 여성의류, 잡화, 그릇으로 확대하였다. 주인 아저씨는 상인회 회자을 5년 정도 맡고 있고, 2013년 전통시장으로 등록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