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깃거리

성북구의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작품 등을 유형별, 시대별, 지역별로 검색하는 곳입니다.

검색정보 입력
8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필터

  • 이야기 분류
    • 펼쳐보기
    • 닫기
      • 닫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 펼쳐보기
    필터 닫기
  • 시대
    필터 닫기
  • 지역
    필터 닫기
  • 문화재 지정
    필터 닫기
보기: 정렬:
  • 유미숙
    인물
    유미숙
    서울시 성북구에서 출생하였다. 마들 주민회 부설 마들 여성학교에서 치유인문학 수업을 듣고 2016년 치유인문학 참가자들과 함께 시집 『잠자는 나를 꺼내다』를 발표하였으며, 2019년에는 치유인문학 참가자인 윤복녀, 이명옥, 김영숙과 함께 수필집 『늦깍이 시인, 날개를 달다』를 출간하였다.
  • 이미선
    인물
    이미선
    월곡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며 성매매여성들을 돕고 있는 마을주민이다. 1961년 하월곡동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고향인 미아리에 돌아와 약국 문을 열었다. 2005년 미아리 집창촌에서 발생한 화재로 안면이 있던 아기엄마가 죽자 이를 계기로 성매매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에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약국 안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무료 수공예 수업을 운영하며 후원금과 후원품을 모아 후원활동을 하고 있다. 약국을 운영하며 있었던 일을 정리하여 국민일보에 「미아리 서신」이라는 칼럼을 연재했고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2012년 동명의 수필집을 발간하였다.
  • 이덕훈
    인물
    이덕훈
    한국 최초의 여성 이발사이다. 이발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이발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1958년 이발사면허증을 취득한다. 시어머니가 덕수교회 옆 보덕사에 시주를 했던 인연으로 1967년 성북동에 이사왔다. 성북동에서 ‘명랑이발원’을 28년 동안 운영하다가 2003년 성북구 성북로 55(성북동 133-86)로 가게를 옮겨와 상호를 ‘새이용원’으로 바꾸고 운영하고 있다. 80이 넘은 나이지만 지금도 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고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양정석
    인물
    양정석
    정릉동 교수단지에 거주하는 대한역리학회의 회장이다. 미아리에 있던 협회 소유의 사당을 팔고 터가 좋은 정릉동 교수단지에 북악당을 건립하였다. 북악당을 조성할 때 마을 주민들에게 인사도 다니고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을 했으며, 독경제를 할 때는 북소리가 마을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문을 닫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 이도병
    인물
    이도병
    미아리 역학촌에 처음으로 문을 연 역학사이다. 이곳으로 오기전에는 남산 기슭 양동에서 영업을 시작했으나, 서울 도심이 개발되면서 변두리 지역인 미아리 고개로 옮겨왔는데, 종점과도 가까울 뿐 아니라 고개를 오르내리는 행인들도 많아 점집을 차리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였다고 한다.
  • 서완석
    인물
    서완석
    정릉의 마지막 능참봉인 서재국의 아들이다. 정릉 재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릴 적 살았던 정릉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정릉의 토박이로 마을의 역사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패션업계에 종사하고 있으며 2004년 양장(洋裝) 부분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됐다.
  • 박여병
    인물
    박여병
    정릉동 교수단지에 남은 유일한 서울대 교직원이다. 함경남도 출신으로 월남 후 서울대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였을 때, 서울대학교 주택조합이 설립되고 교수단지에 토지가 불하되자 실제로 주택을 지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그는 당시 조합원이 36명 정도였으나 불하받은 땅을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실제 마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10여 명에 불과하다고 기억했다. 현재 박여병 씨의 집은 34년이 되었으며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윤장섭 교수가 설계를 했다.
  • 박성도
    인물
    박성도
    정릉동 교수단지에 대를 이어 거주하는 마을 토박이이다. 그의 선친이 평안남도 지사를 지냈기 때문에 그의 집을 ‘지사댁’라고도 부른다. 당시에는 땅을 불하받은 서울대 교직원 중 실제 교수단지에 입주한 경우는 많지 않았으며, 그의 선친 역시 친척의 추천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선친이 처음 건축허가를 받아 집을 지은 곳이 아니라, 집이 좁아서 맞은편 땅이 매물로 나오자 대지를 사서 집을 다시 지은 곳이라고 한다. 현재 마을의 산증인이 되어 마을을 지키고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