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징 필 산수화조도첩’은 조선 중기 소경산수(小景山水)와 화조영모(花鳥翎毛)로 명성이 높았던 허주(虛舟) 이징(李澄, 1581~?)의 그림 18점과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 백주(白洲) 이명한(李明漢, 1595~1645) 등 당시 유명 문인들의 제시 37점을 수록한 시서화(詩書畵) 합벽첩(合壁帖)이다. 이들이 그림에 대해 쓴 제발문(題跋文)을 통해 이징의 62세 무렵인 1652년(인조 20)경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는 이징이 조선 최고의 회가로 인조의 총애를 받아 화원(畵員)들을 지도하기 위해 도화서(圖畫署) 교수(敎授)로 임용된 시기로서, 그의 예술적 기량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때이다.
이 서화첩은 이징이 화조․영모 분야를 비롯해 산수에 있어서도 17세기 회화를 선도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기준작으로서 의의가 있다. 기년작(紀年作)이 많지 않은 조선 중기 산수화조화 중 드물게 작가와 제작시기를 알 수 있는 작품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서화 합벽첩으로 한국회화사 연구에 있어 가치가 높다.
원문에 '이징의 62세 무렵인 1652년(인조 20)경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되어 있으나 1652년은 효종 3년이므로 오기이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1642년(인조20)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