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천의 및 혼천시계
1669
국보
유물 천문지리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천문지리기구이다. 1669년(현종 10)에 천문학 교수 송이영(宋以穎)이 제작한 천문시계이다. 이 시계는 가로 나무상자 속에 오른쪽 절반은 중력식 진자시계가 장치되어 있고, 왼쪽에는 혼천의가 설치되어 있다. 이는 종래의 물레바퀴를 돌려 동력으로 삼은 장치가 아니고, 서양식 자명종의 원리를 이용한 천문시계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혼천시계 중 남아있는 유일한 유물로, 동아시아의 수격식 시계장치의 전통을 계승하고 서양식 기계시계와 조화시켜 전혀 새로운 천문시계모델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세계 시계제작 기술사에서 독특한 천문시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85년 8월 9일 국보 제230호로 지정되었다.
안암동
  • 혼천의 및 혼천시계(1)
  • 혼천의 및 혼천시계(2)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渾天儀 및 渾天時計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송이영
  • 비고:
  • 유형: 유물 천문지리

시기

주소

  • 주소: 02841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5가 1-2 (안암로 145)
  • 비고: 고려대학교 박물관

문화재 지정

  • 지정 유형: 국보
  • 지정일: 1985.08.09

근거자료 원문

  • ⑪ 渾天時計 길이 120㎝, 높이 98㎝, 폭 52.3㎝짜리 천문시계 1基가 국보 제230호로 지정되어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 재료는 놋쇠 시계장치와 혼천의 및 나무궤로 되어 있으며, 제작년대는 朝鮮 顯宗 10년(1669) 이다. 渾天儀는 크게 천체 관측용 측각기와 天文時計로서의 기능을 갖는 2가지가 만들어졌다. 혼천의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세종실록》 15년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세종 19년(1437) 에 일련의 天文儀象제작이 완성되었음을 말하는 기사에도 나타난다. 이 혼천의가 天文時計, 즉 渾天時計를 만든 것이다. 이런 천문의상을 만들기 위해 세종은 蔣英實을 중국에 연구차 보내기도 했었다. 渾天時計 제작의 전통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한동안 끊어졌다가, 효종 때 歷法을 時憲歷으로 바꾸게 되면서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崔攸之에게 제작케 하여 효종 8년(1657) 에 완성한 水激式 동력장치의 혼천시계, 璇璣玉衝이라 부른 그것이었다. 최유지의 모델은 觀象監에서 그대로 본떠 만들어 그후 조선조 혼천시계의 전통을 이어나간 것이 되었다. 高麗大소장의 혼천시계는 최유지의 모텔을 李敏哲과 宋以穎이 수리 개조할 때 떠오른 것으로, 1666년(현종 10) 아주 새로운 모델로 제작했다. 이는 종래의 水激式, 즉 물레바퀴를 돌려 동력으로 삼은 장치가 아니고, 이른바 西洋式 自鳴鐘의 원리를 이용한 천문시계를 만들어낸 것으로, 《증보문헌비고》에 비교적 자세히 그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金錫胃가 上言하기를, “이민철이 만든 渾天儀에 있어서, 물의 힘으로 돌아가게 하는 법과 六合儀·三辰儀·黑雙環·黃道·赤道·白道 등의 環의 제도는 그 대략이 모두 《書傳》의 璇璣玉衡章의 蔡沈의 註에서 인용한 澤天儀說을 모방하여 차례를 만든 것입니다 혼천의의 옛 제도는 三辰嚴의 속에다 또 四游嚴를 두고서, 거기에 玉衝을 만들어, 이것을 좌우상하로 돌려가며 七政(日月과 五星)을 窺測하는데 쓰이도록 되었습니다. 이렇게 옛사람들은 이미 窺衝의 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높은 臺 위에 설치해야지 밀실속에 설치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새로 만든 혼천의에다 사유 옥형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는 그 옥형이 重儀의 속에 있기 때문에 실제관측에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삼신의 속에 白單環의 장치가 있습니다.… 이제이 새기계는 소위 白單環으로 인하여 약간 變通시켜서 달이 운행하던 軌道를 만들어 삼신의 제도를 갖추게 한 것인데 이는 물항아리(水壺)를 널빤지의 뚜껑 위에다 안전하게 설치하고 물이 구멍을 통해 흘러내려 통 안에 있는 작은 항아리에 흘러 들어가 번갈아 채워져 바퀴를 쳐서 돌리게 됩니다. 여러 날에 걸쳐 물을 채워서 법식에 따라 시험하여 보면 삼신의의 환이 아울러 일제히 움직이며, 또 각각 그 기본 운행의 길을 따라 느리고 빠른 도수가 조금도 차질이 없습니다. 또 그 옆에 톱니바퀴를 설치하고, 겸하여 방울이 굴러내리는 길을 만들어서 아울러 시간을 알리고 종을 치는 機關이 되게 하였습니다.… 또 송이영이 만든 혼천의도 모양이 역시 같으나 물항아리를 쓰지 않고 서양의 自鳴鐘의 톱니바퀴가 서로 물고 돌아가는 제도를 가지고 그 격식대로 확대한 것으로서 해와 달의 운행과 시간이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하였다. 송이영의 혼천시계는 길이 120㎝, 주요 부분의 높이 96㎝, 폭 52.3㎝ 크기의 나무궤 속에 들어 있으며, 혼천의의 직경은 약 40㎝ 이고 그 중심에 위치한 지구의의 직경은 약 8.9㎝ 이다. 이 천문시계는 시계장치와 혼천의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계장치는 2개의 鍾의 운동에 의하여 움직인다. 하나는 시각을 위한 바퀴와 톱니바퀴들을 회전시킨다. 그것은 단순 탈진장치(Simple escapement)가 붙어 있는 흔들이에 의하여 조절케 했고, 시각은 원반(disc) 에 붙은 수직축의 바퀴가 회전하는 것을 시제의 창문을 통해서 볼 수 있게 했다. 바퀴에는 12時牌가 붙어 있어서 이 시이 시패가 시각마다 창문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 다른 하나의 추는 종을 치는 장치를 위한 것으로, 여러개의 쇠공(金鈴)이 홈통안을 굴러 내려감으로써 종 치는 망치가 걸리면서 종을 치도록 되어 있는데, 이 작동은 회전 바퀴 살에 붙은 주걱들에 의하여 쇠공들이 들어올려지게 됨으로써 반복하게 된다. 시계장치의 톱니바퀴들은 모두 놋죄로 정교하게 깎았는데 주물로 부어내서 물레와 줄칼을 써서 다듬었다. 이 시계장치와 여러개의 톱니바퀴에 의해서 연결된 혼천의는 六合儀·三辰儀 그리고 地球儀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六合儀는 24向의 글자가 새겨진 地平環의 수직으로 周天度(360의 눈금)가 새겨져 있는 天經黑雙環과 地平環을 위로 36度點의 북극(北極出地 36도)과 아래로 36도점인 남극(南極入地 36도)에 걸쳐 周天度가 새겨진 天繹未單環으로 되어 있어 6방위의 基點 즉 수평면의 동서남북·天頂·天底를 정하는 것이 다. 六合儀안에 있는 三辰儀는 三辰儀黑雙環·赤道單環·黃道單環, 그 안에 白道單環, 제일 안에 양극의 축에 걸쳐 있는 黑單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黃道單環에는 12宮 24氣와 28宿가 양변에 각각 새겨지고 360으로 분할되었으며 白道單環에는 27개의 못으로 분할하여 28宿를 나타냈다. 지구의는 남북극을 축으로 하여 시계장치에 연결되어 1일 1회전하게 하였다. 이 천문시계는 弘文館에 설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渾天天時計중 남아있는 유일한 유물이다. 그것이 동아시아의 독특한 水激式 시계장치의 전통을 계승하고 서양식 기계시계와 조화시켜 전혀 새로운 천문시계모델을 만들어 냈다는 데서 세계 시계제작 기술사에서 독특한 천문시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657-659쪽
  • ▫ 국보 제 230 호 혼천시계 渾天時計 시대 : 조선시대 현종 10년(1669) 소유자 : 고려대학교 소재지 : 고려대학교 박물관 / 서울 성북구 안암동 5가 1-2 지정연월일 : 1985. 3. 3. 조선 중기 현종 10년(1669)에 천문학 교수 송이영(宋以穎)이 제작한 천문시계이다. 두 개의 추를 동력으로 하여 여러 가지 톱니바퀴가 움직이는 시계장치와 지구의(地球儀)가 설치된 혼천의(渾天儀)의 두 부분이 연결되어 있어 시간과 천체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시계는 가로 118.5cm, 두께 52.5cm, 높이 99cm의 나무상자 속에 오른쪽 절반은 중력식 진자시계(振子時計)가 장치되어 있고, 왼쪽에는 혼천의가 설치되어 있어 종래의 물레바퀴를 돌려 동력으로 삼은 장치가 아니고, 서양식 자명종(自鳴鐘)의 원리를 이용한 천문시계이다. 혼천의의 지름은 약 40cm이며, 그 중심에 위치한 지구의의 지름은 약 8.9cm이다. 시계장치는 두 개의 추(錘)의 강하운동에 의하여 움직인다. 그 하나는 시각을 알려주고 바퀴 테와 톱니바퀴들을 회전시키는데, 이것들은 탈진기(脫進機)가 연결된 진자에 의하여 속도를 조절하게 하였다. 그리고 바퀴 테가 수직축 주위를 수평면 내에서 회전함으로써 바퀴 테에 붙어 있는 12시패(時牌)가 시계의 창문 앞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 다른 하나의 추는 종을 치는 장치를 위하여 만든 것으로 여러 개의 쇠공[金鈴]이 홈통 안을 굴러 내려감으로써 종치는 망치가 걸리면서 종을 치도록 되어 있는데, 이 작동은 회전 바퀴 살에 붙은 주걱들에 의하여 쇠공들이 들어 올림으로써 반복하게 된다. 시계장치의 톱니바퀴들은 모두 놋쇠로 정교하게 깎았는데 주물로 부어 내서 물레와 줄칼을 써서 다듬었다. 물론 혼천의와 시계와의 사이에는 톱니바퀴로 연결되어 있는데, 육합의(六合儀)・삼진의(三辰儀) 지구의(地球儀)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혼천시계가 서양식 원리를 따랐다는 것은 동력을 물에서 추로 바꾸었다는 점과 탄성진자(彈性振子) 또는 추진자(錘振子) 운동으로 주기를 정한 것이다. 관측을 주목적으로 삼았던 중국식 천문시계와 달리 실내에 두어서 정확한 시각을 측정하고 천체운동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제작된 것이 큰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천문시계는 홍문관(弘文館)에 설치하여 시간 측정과 천문학 교습용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혼천시계 중 남아 있는 유일한 유물이다. 이와 같은 서양식 자명종 원리를 이용한 추동식(錘動式) 시계장치가 남아 있는 것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상 특기할 만한 자료이고, 세계 시계 제작사상 훌륭한 기술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참고자료 : 한국정신문화원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25, 1991 / 성북구, ≪성북구지≫, 1993.
    성북문화원, 1997, 성북의 문화재, 34-35쪽
  • 조선 현종 10년(1669) 천문학 교수였던 송이영이 만든 천문(天文)시계로, 홍문관에 설치하여 시간 측정과 천문학 교습을 위해 쓰였던 것이다. 시계의 지름은 40㎝이고, 그 중심에 위치한 지구의(地球儀)의 지름은 약 8.9㎝이다. 2개의 추 운동에 의하여 움직이는데, 하나는 시각을 위한 바퀴와 톱니바퀴들을 회전시키고, 다른 하나는 종을 치는 장치를 위한 것으로, 여러 개의 쇠구슬이 홈통 안을 굴러 내려감으로써 종을 치는 망치가 걸려 곧 종이 울리고, 회전바퀴 살에 붙은 주걱들에 의하여 쇠구슬이 들리면서 이 작동이 반복된다. 즉, 2개의 축을 동력으로 하여 여러 가지 톱니바퀴를 움직이는 시계 장치와 지구의가 설치된 혼천의 두 부분이 연결되어 있어 시간과 천체의 위치를 동시에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만든 천문시계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물로,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모델이었던 물레바퀴의 원리를 동력으로 삼은 시계장치와 서양식 기계 시계인 자명종의 원리를 조화시켜 전혀 새로운 천문시계의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세계 시계 제작기술의 역사상 독창적인 천문시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항목명: 혼천의 및 혼천시계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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