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무정운역훈 권3~16
1455
보물
유물 문헌
고려대학교가 소유하고 있는 조선 초기 간행된 문헌이다. 한자의 중국음을 정확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편찬한 중국음에 대한 한글 주음운서이다. 총 16권 8책, 낙질 1, 2권 1책, 현전 14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글과 한자 큰 글자는 목활자를 사용하고, 작은 글자는 갑인자(甲寅字)로 간행되었으며 이것이 현존 유일판본이다. 이 책은 당초의 목적과 달리 표준음으로서의 가치보다 오히려 자료로서의 큰 가치를 가진다. 한자음의 전통적인 표시방법은 반절이나 운도(韻圖) 등에 의지하는데, 이들은 한글 표기의 정확성에 미치지 못하는 까닭에 그런 측면에서 더욱 한글 표기상의 훌륭한 자료가 된다. 1965년 4월 1일 보물 제417호로 지정되었다.
안암동
  • 홍무정운역훈 권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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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洪武正韻譯訓 卷三~十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유물 문헌

시기

주소

  • 주소: 02841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5가 1-2 (안암로 145)
  • 비고: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문화재 지정

  • 지정 유형: 보물
  • 지정일: 1965.04.01

근거자료 원문

  • ⑩ 洪武正韻譯訓 한자의 중국음을 정확히 나타내기 위하여 편찬한 중국음에 대한 한글주음운서. 원래 16권 8책인데 2卷(권 1, 2) 1冊이 낙질되어 현재 전하는 것은 14권 7책, 보물 제4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다음 이것을 가지고 한국의 漢字音을 바로잡고자 세종 29년 『동국정운』을 완성했다. 다시 한자의 中國音을 정확히 나타내기 위해 당시 明朝에서 새로이 엮은 『홍무정운』의 음을 한글로 나타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였는데, 端宗 때에 비로소 출판되었다. 한글과 한자 큰 글자는 목활자를 사용하고 작은 글자는 갑인자로 간행되었으며,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 현전 유일판본이다. 이 책은 그 서문만이 申叔舟의 『保閑齋集』 권 15와 『동문선』 등에 전하여 오다가, 1959년 『진단학보』 제20호에 발표된 李崇寧의 〈洪武正題譯訓의 연구〉에 의하여 처음으로 그 전래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각권 表題·韻目·字母·譯音·字輯 등은 大字로 표시되어 있고, 反切·俗音·발음설명·釋義 등은 소자로 표시되어 있다. 편찬목적은, 첫째 정확한 중국발음을 쉽게 습득하고, 둘째 속음의 현실성을 불가부지한 것으로 보고 이를 표시하였으며, 셋째 『홍무정운』을 중국표준음으로 정하고자 한 것이며, 넷째 世宗의 어문정책 전반에 관한 소망성취 등이다. 참여한 인물은 監掌者로 首陽大君·桂陽君이며, 편찬자는 申叔舟·成三問·曺變安·金曾·孫壽山이며, 讎校者는 魯參·權引·任元濬이다. 간행시기는 신숙주의 서문에 ‘景泰六年仲春旣望’이라 하여 端宗 3년(1455) 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이를 간행시기로 볼 수 있고, 서문 중간에 ‘凡謄十餘藁 辛動反復 竟八載之久’라 하였으므로 세종 30년(1448) 경에 착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본시, 『홍무정운』은 明太祖 때에 中華雅音을 밝히기 위하여 편찬된 것이라 하나 재래부터 써내려온 『禮部韻略』이 韻書를 대표하였기 때문에 『홍무정운』은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였고 그러므로 세종이 시도한 譯訓도 初刊本 이외에는 重刊을 하지 않아서 재판이 없는 세종의 큰 엽적이며 유일한 珍本이다. 이 책은 보존상태가 매우 좋아서 장정·표지 모두가 최초의 모습 그대로 간직 되었고, 卷首에는 「雪筠」, 「仲信」, 「張有誠」등의 印記가 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669쪽
  • ▫ 보물 제 417 호 홍무정운역훈 洪武正韻譯訓 시대 : 조선전기(세종 30년, 1448) 소유자 : 고려대학교 소재지 : 고려대학교박물관 / 서울 성북구 안암동 1가 1번지 지정연월일 : 1965. 4. 1. 한자의 중국음을 정확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편찬한 중국음에 대한 한글 주음운서이다. 16권 8책, 낙질 1, 2권 1책, 현전 14권 7책으로 한글과 한자 큰 글자는 목활자를 사용하고, 작은 글자는 갑인자(甲寅字)로 간행되었다. 고려대학교 소장본이 남아 있는 유일판본이다. 이 책은 그 서문만이 신숙주(申叔舟)의 ≪보한재집(保閑齋集)≫ 권15와 ≪동문선≫ 등에 전하여 오다가 1959년에 ≪진단학보≫ 제20호에 발표된 이숭녕(李崇寧)의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의 연구>에 의하여, 처음으로 그 전래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각 권의 표제(表題)・운목(韻目)・자모(字母)・역음(譯音)・자운(字韻) 등은 큰 글자로 표시되어 있고, 반절(反切)・속음(俗音)・발음・설명・석의(釋義) 등은 작은 글자로 표시되어 있다. 편찬 목적은 첫째 정확한 중국발음을 쉽게 습득하고, 둘째 속음의 현실성을 불가부지한 것으로 보고 이를 표시하였으며, 셋째 ≪홍무정운≫을 중국 표준음으로 정하고자 한 것이며, 넷째 세종의 어문정책 전반에 관한 소망 성취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참여한 인물은 감장자(監掌者)로 수양대군(首陽大君)・계양군(桂陽君)이며, 편찬자는 신숙주・성삼문・조변안(曺變安)・김증(金曾)・손수산(孫壽山)이며, 수교자(讎校者)는 노삼(魯參)・권인(權引)・임원준(任元濬)이다. 간행한 시기는 신숙주의 서문에 ‘경태육년중춘기망(景泰六年仲春旣望)’이라 하여 단종 3년(1455)으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이를 간행시기로 볼 수 있고, 서문 중간에 ‘범등십여고 신근반복 경팔재지구(凡騰十餘藁 辛勤反復 竟八載之久)’라 하였으므로 세종 30년(1448)경에 착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당초의 목적과 달리 표준음으로서의 가치보다 오히려 자료로서의 큰 가치를 가진다. 한자음의 전통적인 표시방법은 반절이나 운도(韻圖) 등에 의지하는데, 이들은 한글 표기의 정확성에 미치지 못하는 까닭에 그런 측면에서 더욱 한글 표기상의 훌륭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 참고자료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25, 1991 / 성북구, ≪성북구지≫, 1993.
    성북문화원, 1997, 성북의 문화재, 57-58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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