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1446
국보
유물 문헌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헌이다. 1446년(세종 28)에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으로 훈민정음을 설명한 한문 해설서이다. 훈민정음 해례(解例)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부른다. 총 33장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훈민정음의 본문을 4장 7면으로 하여 면마다 7행 11자씩, 제2부는 훈민정음해례를 26장 51면 3행으로 하여 면마다 8행 13자씩, 제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1자 내려 싣고 있다. 외국에서도 자국어를 위한 새 글자를 제정한 일은 있지만 『훈민정음』과 같은 서적을 펴낸 일은 없다. 따라서 이 책은 어문학뿐만 아니라 문화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다.
성북동
  • 훈민정음 세종대왕 서문
  • 훈민정음 예의편
  • 훈민정음 제자해
  • 훈민정음 종성해
  • 훈민정음 합자해
  • 훈민정음 용자례
  • 훈민정음 표지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訓民正音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유물 문헌

시기

주소

  • 주소: 02837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로 102-11)
  • 비고: 간송미술관

문화재 지정

  • 지정 유형: 국보
  • 지정일: 1962.12.20

근거자료 원문

  • ▫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訓民正音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전성우 소재지 : 간송미술관 / 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지정연월일 : 1962. 12. 20. 세종 28년(1446)에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으로 훈민정음을 설명한 한문 해설서이다. 훈민정음 해례(解例)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부른다. 이 내용은 서문과 새 글자의 음가(音價) 및 운용법을 밝힌 예의편(例義篇)이 본문처럼 되어 있고, 이를 해설한 해례편이 수록되어 있다. 33장 1책으로 된 이 목판본은 국내의 유일본으로 1940년경 경상북도 안동 어느 고옥에서 발견되었다. 이 해설서는 발견 당시에 완전한 것은 아니어서 처음 두 장이 빠져 있던 것을 나중에 붓글씨로 적어 넣었다. 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본문은 세종 어제(御製) 서문과 예의 편으로 되어 있는데 서문에서는 글자 표기를 할 수 없는 일반 백성들에게 표기 수단을 갖게 하기 위하여 세종이 친히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그 목적을 밝혀 놓았다. 이어서 중국 36 자모(字母) 표에 나오는 한자를 그대로 이용하지 않고, 외래어인 한자어의 전래자음(傳來字音)음을 이용하여 새로 만든 글자의 소리값[音價]을 설명하였다. 이 중에서 초성(初聲) 23 자모체계는 비록 전래자음을 가지고 음가를 설명하기는 했으나 중국 36 자모체계의 영향을 받은 체계였으며, 인위적인 개신(改新) 의도를 가지고 정리했던 ≪동국정운≫ 23 자모체계와도 일치하여, 15세기 중세 국어의 초성체계와 부합되지 않는 면도 약간 있다. 해례편은 새로 만든 글자의 제자원리를 주로 밝히고, 그 음가・운용법 및 음운 체계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제자해에서는 ≪태극도≫ ≪역학계몽≫ ≪황극경세서≫ 등 송학(宋學) 계통의 서적에서 이론을 받아들여 제자해의 첫머리부터 태극・음양・5행과 연관된 언어관을 제시하고, 훈민정음의 창제도 성음(聲音)에 따라 음양의 이치를 다한 것이라고 하였다. 정인지의 서문에서는, 훈민정음의 창제 이유, 창제자, 훈민정음의 우수성, 편찬한 사람, 편찬한 연월일을 밝혀 놓았다. 세종 때에는 모든 분야에 걸쳐서 우리 것을 존중하고 밝혀 보려는 기운이 충만했던 시대였으므로, 이러한 기운이 국어의 문자화(文子化)를 위한 훈민정음 창제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외국에서도 자국어를 위한 새 글자를 제정한 일은 있지만 ≪훈민정음≫과 같은 서적을 펴낸 일은 없다. 따라서 이 책은 문화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 참고자료 : 한국정신문화원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22, 1991.
    성북문화원, 1997, 성북의 문화재, 21-22쪽
  • 이 책은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왕의 명령으로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중심이 되어 세종 28년(1446)에 만든 한문해설서이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나, 앞 2장은 1940년경에 복원된 부분이다. 구성을 보면 총 33장 3부로 나누어, 제1부는 훈민정음의 본문을 4장 7면으로 하여 면마다 7행 11자씩, 제2부는 훈민정음해례를 26장 51면 3행으로 하여 면마다 8행 13자씩, 제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1자 내려싣고, 그 끝에 ‘정통 11년’(1446)이라 명시하고 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3)에 왕이 직접 만들었으며, 세종 28년(1446)에 반포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 책에서 서문과 함께 정인지가 근작(謹作)하였다는 해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한 한글의 제작원리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문화재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항목명: 훈민정음
  • 1. 성북동의 문화재 ○ 국보 종목 : 국보 제70호 명칭 : 훈민정음 소재지 : 서울 성북구 성북로 102-11 (성북동, 간송미술관) 지정일 : 62.12.20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0쪽
  • ④ 訓民正音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1446년(세종 28) 鄭麟趾 등이 세종의 명으로 설명한 전권 33장 1책의 한문해설서.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훈민정음’이란 책 이름을 解例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내용은 世宗御製 서문과 훈민정음(새 글자)의 音價 및 運用法을 밝힌 例義篇이 본문처럼 되어 있고, 이를 해설한 해례편이 制字解·終聲解·合字解·用字例의 순으로 나누어져 기술되고 있으며, 책 끝에 정인지의 서문이 실려 있다. 집필자들은 鄭麟趾·申叔舟·成三問·崔恒·朴彭年·姜希顔·李塏·李善老 등 집현전의 8학자이다. 현존본은 1940년경 경상북도 안동 어느 고가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현 간송미술관 소장본이며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인데, 아직까지는 국내 유일본으로서 匡郭은 가로 16.8㎝, 세로 23.3㎝ 이다. 예의 부분은 1면이 7행에 매행 11자, 해례 부분은 8행에 매행 13자이며, 정인지의 서문은 한 자씩 낮추어서 매행 12자로 되었다. 이 책도 발견 당시 완전한 것은 아니고, 처음 2장이 빠져 있던 것을 나중에 붓글씨로 적어 넣었던 것인데, 적을 때의 실수로 세종 어제서문의 끝 자 ‘耳’가 ‘矣’로 되는 등 오자가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본문은 세종어제서문과 예의편으로 되어 있는데, 세종어제서문에서는 표기수단을 가지지 못한 비지식층 백성들에게 표기수단을 가지게 하기 위하여 세종이 친히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고 창제목적이 밝혀져 있다. 이어 중국 36자모표에 나오는 한자를 그대로 이용하지 않고, 외래어인 한자어의 傳來字音을 이용하여 새로 만든 훈민정음(글자)의 음가를 설명하였다. 이 중에서 초성 23자모체계는, 비록 전래자음을 가지고 음가를 설명하기는 하였으나 중국 36자모체계의 영향을 받은 체계였으며, 인위적인 改新의도를 가지고 정리하였던 《東國正輯》 23자모체계와도 일치하여, 15세기 중세국어의 초성체계와 부합되지 않는 면도 조금 있다. 해례편은 새로 만든 글자의 제자원리를 주로 밝히고, 그 음가·운용법, 이 문자가 표시하는 음운체계 등을 자세히 설명한 부분이다. 제자해에서는 《太極圖》·《易學啓蒙》·《皇極經世書》 등 宋學계통의 서적에서 이론을 섭취하여, 제자해의 첫머리부터 태극·음양·오행과 결부된 언어관을 제시하고, 훈민정음의 창제도 聲音에 따라 음양의 이치를 다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훈민정음의 제자원리가 象形에 있음을 말하고, 子音字의 제자에 있어서는 먼저 調音位置別로 기본이 되는 初聲字를 정하고, 이 기본자들은 각각 그 조음방식 또는 조음위치를 상형하여 제자된 것임을 말하였다. 계속하여 오행설을 가지고 각 자음을 오행·계절·音階·方位 등과 결부시켜 설명하고, 오행과 결부된 오성의 音相을 발음기관 및 오행의 특질과 연관시켜서 설명한 다음, 중국의 전통적인 語頭字音분류 법인 36자모표의 분류방식에 따라 훈민정음의 자음자를 분류 설명하였다. 그리고 오행과 결부된 오성의 음상을 발음기관 및 오행의 특질과 연관시켜서 설명하였다. 초성해에서는, 초성이란 운서의 자모에 해당한다고 하고 한자음을 가지고 다시 설명하였다. 중성해에서도 중성이란 한자음의 介音+韻腹音임을 역시 한자음을 가지고 설명하였는데, 중국 음운학에서 음절말음(韻尾)으로 다루는 반모음〔j〕까지도 중성에 포함시켜, 제자해에서 설명한 11자 이외에도 여러 모음자가 합용되어 중모음으로 쓰일 수 있음을 말하였다. 종성해에서는 종성이란 자음으로 끝나는 음절말음임을 역시 한자음을 가지고 다시 설명하고, 중세국어의 성조를 우선 종성만 가지고 설명하였다. 합자해에서는, 초성·중성·종성 글자를 字素처럼 인식하여 이들 3요소를 좌로부터 우로, 위로부터 아래로 써서 음절단위로 쓸 것을 규정하였고, 合用並書·각자병서의 書法을 초성 ·중성·종성에 걸쳐 설명하였다. 이어 당시의 국어성조를 다시 설명하여, 입성은 중세국어의 성조단위가 아님을 말하였다. 용자례에서는 중세국어에서 90단어의 예를 들어, 그 표기법을 보였다. 정인지의 서문에서는 제 말의 소리는 있어도 글자가 없어서 한자를 빌려 씀이 아무래도 어거지라는 것, 한문으로는 의사소통이 힘들다는 것, 吏讀 사용이 불편하다는 것 등을 훈민정음 창제의 이유로 들었고, 이어 세종이 1443년(세종 25) 겨울에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는 것, 훈민정음은 간단하고 깨치기 쉬운 글자이면서 여러가지로 응용이 가능하여 대개의 음(음악·한자음·연음까지)을 표기할 수 있고 이 글자의 창제로 한문책의 해석도 쉬워졌으며 의사소통도 가능해졌다는 등의 우수성을 가졌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해례본의 저술자가 정인지·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선로 등 8명이라고 하였다. 이 서문을 쓴 날이 1446년 9월 상한이므로 이 책의 완성일을 아는데도 이 서문의 가치가 있다. 세종 때에는 모든 분야에 걸쳐서 우리 것을 존중하고 밝혀보려는 기운이 충만, 이러한 기운이 국어의 문자화를 위한 훈민정음 창제로 나아갔고 《훈민정음》 같은 서적을 펴내게 되었는 바, 이 책은 문화사적인 변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하겠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647-649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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