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문학
1956.06 - 1963.08
개인/단체 발간물 문학
1956년 창간되었던 월간문예잡지이다. 1956년 6월 자유문학자협회의 기관지로 창간되었으며, 기관지이면서도 범문단적인 문예지 구실을 하였다. 4.19혁명을 계기로 자유문협이 자체해체를 결의하면서 김광섭이 『자유문학』의 판권을 인계받고 주간이 되었다. 1963년 8월 71권을 마지막으로 종간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광섭은 자신의 자서전 『시와 인생에 대하여』에서 1964년 통권 76호를 마지막으로 휴간하였고, 경영난으로 인해 폐간하게 된 셈이라고 기술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알려진 『자유문학』의 폐간 시점과 차이가 있다.
성북동
  • 자유문학 제3권 제5호 표지(삼성출판박물관)

기본정보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1956.06 - 1963.08
  • 비고: 김광섭의 자서전에는 1964년 여름, 통권 76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음

주소

  • 주소: 06579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
  • 비고: 국립중앙도서관

근거자료 원문

  • ○ 『자유문학』 관련 「회원소식」, 『자유문학』, 1957. 7. 「회원동정」, 『자유문학』, 1957. 9. 「문단75인의 지상발언」, 『자유문학』, 1959. 1.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84쪽
  • 1965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김광섭의 투병 생활은 그의 시작詩作 활동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김광섭이 1956년 6월에 동료 문인들과 힘을 모아 창간한 월간 문학잡지 『자유문학』이 1964년 여름,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76호를 끝으로 폐간되고 말았다. 부족한 재정 때문에 매 호 동분서주, 피눈물을 흘려가며 발간해 온 잡지였다. 그의 50대 정열을 이 잡지에 다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대문학』, 『사상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후배 문인들에게 활동할 공간을 주고, 전후 황폐한 문화 풍토 속에서 우리 문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자유문학』. 김광섭에게 ‘한국 현대문학의 건설자’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안겨주기까지 했던 이 잡지의 폐간으로 한동안 그는 실의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든 재간해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250-251쪽
    원문은 김광섭의 자서전 『시와 인생에 대하여』에 나온 내용을 근거로 작성한 것으로 현재 일반적으로 알려진 『자유문학』의 폐간 시점과 차이가 있다.
  • 정의 1956년에 창간되었던 월간문예잡지. 개설 A5판, 242면. 1956년 6월 자유문학자협회(自由文學者協會)의 기관지로 창간되었으며, 1963년 8월 71권으로 종간되었다. 편집 겸 발행인에 김기진(金基鎭), 주간 송지영(宋志英), 편집장은 김이석(金利錫)이었다. 내용 기관지이면서도 범문단적인 문예지 구실을 하였으며, 4·19를 계기로 자유문협의 기관지를 벗어나 김광섭(金珖燮)이 판권을 인계받고 주간이 되었다. 1962년 3월호부터 편집위원제를 두고 김종문(金宗文)이 주간이 되었으며, 이헌구(李軒求), 모윤숙(毛允淑), 안수길(安壽吉), 이인석(李仁石), 이철범(李哲範) 등 5명이 편집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운영난으로 종간되었다. 여 유승규(柳承畦), 김해성(金海星), 이원경(李源庚), 권용태(權龍太) 등 40명의 신인과 신인작품 당선제를 두어 43명의 문인을 등단시켰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자유문학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27

관련 마을아카이브

  • 김광섭
    이야깃거리
    김광섭
    분류: 인물
    시기: 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