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02.20
작품 문학
『길』은 주요섭이 1953년 2월 20일부터 동년 8월 7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장편 소설이다. 삼성출판사에서 1972년에 문고본을 발행하였다. 이 작품은 6.25전쟁 초기 서울에서 거주했던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전쟁의 참상과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간적 배경은 1950년 6월 25일부터 9월 26일까지로, 기간은 매우 짧으나 서울 함락과 수복 사이에 있었던 일들과 인물의 심리 묘사가 치밀하게 되어 있어 당시의 참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작품의 주된 배경 중 한 곳으로 돈암동과 안암동이 등장하며, 미아리고개를 넘어 오는 피난민들에 대한 묘사가 있어 6.25전쟁 당시 성북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돈암동 안암동
  • 길 10
  • 길 11
  • 길 20
  • 길 54
  • 길 57
  • 주요섭_길 표지
  • 주요섭_길 표지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주요섭
  • 비고:
  • 유형: 작품 문학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1953.02.20
  • 비고: 1953.02.20~1953.08.07 169회 연재

근거자료 원문

  • 주요섭의 장편소설. 귀국 후 주요섭의 가족은 돈암동 254-1번지에 자리 잡았다. 부인의 손길이 닿은 2백분 가량의 화초들이 올망졸망 작은 마당을 메웠다. 아내가 심은 꽃에 물을 주며 아이들을 키우며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1953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길」에서 주인공 최응석의 손자 정헌의 집을 돈암동으로 설정하여 한국전쟁 전후의 돈암동 모습을 그리기도 하였다.
  • 창경원 앞을 지나 혜화동 삼선교로 가면서 보니 시퍼런 나뭇가지로 위장한 차량 왕래는 연락부절이고, 대포알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동소문 밖으로 줄을 지어 달리고 있었다. 미아리 고개턱까지 거의 다 가서 정헌이의 집으로 정학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어갔다.
    주요섭, 1972, , 25쪽
    38선에서의 전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정학은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의정부에 살고계신 조부모님과 백부님이 걱정이 되어 가게 문을 일찍 닫고 미아리에 살고 있는 정헌의 집으로 간다. 이 장면은 혜화동에서 미아리 고개로 향하는 병력과 군수물자의 행렬이 이어지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창동, 미아리에 방어선을 구축했던 국군의 상황을 짐작하게 해준다.
  • 남부여대 글자 그대로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피난민이 꾸역꾸역 미아리 고개를 넘어오고 있지 아니한가! "어디서들 오십니까?" 하고 정학이는 마주 오는 사람보고 물어 보았으나 그 사람은 귀머거리인 양 묵묵히 피곤한 눈으로 잠시 쳐다보고는 다리를 질질 끌며 지나가고 말았다.
    주요섭, 1972, , 38-39쪽
    의정부 집이 불타 자기 집으로 피난 온 정국을 본 정학은 집을 나서 미아리 고개로 향한다. 피난민의 행렬에 놀란 정학은 정신없이 걷다가 우이동 입구까지 오게 된다. 이 장면은 미아리 고개를 넘어오는 피난민 행렬을 마주친 정학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향하는 피난민들은 서울로 들어오기 전 미아리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그 모습을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 정학이가 미아리 고개에 다다랐다. 그렇게도 줄지어 달리던 트럭들과 지프차들이 자취를 감추고 그 넓은 길은 피난민으로 가득차 있었다. 늙은이·젊은이·어린 아이들, 손목 잡고 걷는 아이들, 등에 업은 아기들, 품에 안긴 아기들, 킹킹거리며 그 짧은 다리로 어른들의 걸음걸이를 따르느라고 허덕거리는 아이들, 엉엉 울며 뒤따르는 아이들,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는 할머니, 제 등보다 더 큰 짐짝을 지고 그 위에 아기를 태우고 오는 사내들, 보따리를 이고 지고 들고 한 여인네들이 모두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서울 시내는 피난처인가? 미아리 고개는 불가침의 요새인가?
    주요섭, 1972, , 42쪽
    모든 직원들이 서울을 빠져나간 사실을 모른 채 사무실로 나간 정학은 자신만이 남겨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망연자실하며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는 미아리 고개에 가득 차 있는 피난민 행렬을 보게 된다. 이 장면은 정학의 눈으로 바라본 피난민들의 행렬을 묘사한 것이다. 피난을 위해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절박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 그러나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넘어오는 피난민들은 확성기야 떠들건말건 들은 체 만 체하고 말없이 삼선교 쪽으로 신설동 쪽으로 자꾸 걸어가고 있었다.
    주요섭, 1972, , 43쪽
    정헌의 집에 도착한 정학은 가족회의를 마친 후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나서다 미아리고개를 넘어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을 마주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과는 달리 여전히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방송만이 흘러나온다. 이 장면은 피난민들이 삼선교와 신설동 쪽으로 가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당시 미아리고개를 넘어온 피난민들은 삼선교를 넘어 혜화동 쪽으로 가거나, 신설동을 거쳐 동대문 아래로 향하여 한강을 건너려 했었음을 알 수 있다.
  • 안암동 정애 가족은 아마 한강을 건넜으리라는 이야기를 정호와 창덕이에게서 듣기는 했으나 그 집이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발길을 동대문쪽으로 돌렸다. 경마장까지 다 가서 신설동 입구에 이르러 보니 모퉁이 이층집 이마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고 담장은 곰보가 되어 있었다. 안암동 계준식의 집 근처까지 갔다. 마침 그 근처에 살고 있는 정애의 친우이면서 애국부인회 부회장으로 있는 부인을 만났다. 이 부인은 정학이를 보자 깜짝 놀라면서 골목 안으로 들어서라고 손짓을 하였다.
    주요섭, 1972, , 116-117쪽
    자신의 가게를 확인한 정학은 안암동 정애 가족이 궁금하여 발걸음을 안암동으로 돌린다. 그리고 거기서 애국부인회 부회장을 만나 그간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 장면은 안암동으로 향하는 정학의 눈에 비친 신설동 부근을 묘사한 것으로, 당시 포격에 의해 가옥이 파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의 신설동 부근은 현재의 보문동과 신설동이 만나는 곳으로, 2층 한옥집이 많이 있었으며 현재도 몇몇 집들이 남아있다.
  • 여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지 얼마 있다가 짐 몇 짝과 노할머니를 실은 손 구루마는 돈암동 전차 종점 있는 곳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 뒤로 욱만이, 정학이, 정국이가 따르고.
    주요섭, 1972, , 122쪽
    정학의 가족은 회의를 통해 안암동에서 세검정 친척집으로 피신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한꺼번에 이동할 수 없어 인원과 짐을 나누어 이동하기로 한다. 이 장면은 부인과 아이들을 먼저 보낸 후, 짐과 노할머니를 실은 정학의 일행이 돈암동 전차 종점으로 가고 있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시내로 가기 위해 타야 했던 전차가 돈암동 일대 주민들에게 있어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 정말이야요. 확실해요. 꼭 도망해 나오셔요. 네, 집에 들르지 말구 삼선교 한증막 집으로 가셔요. 거기 가면 숨겨 준다고 약속이 돼 있어요. 그 한증막 아시지요?
    주요섭, 1972, , 318쪽
    후송병들을 인솔하던 정헌은 전차 안에서 아내를 만난다. 아내는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을 알리면서 도망칠 계획을 일러준다. 이 장면은 정헌과 그의 아내가 도주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계획에 따르면 삼선교 한증막 집에서 몸을 숨기는 것이었는데, 당시 삼선교에 한증막 영업을 하던 곳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술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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