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1977
작품 문학
1977년 출간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평민사)에 수록된 산문으로 박완서가 보문동 한옥단지에서 살았던 시기가 작품 속의 배경이다. 한옥에서 양옥으로 생활환경이 변하면서 개인 생활을 침해 받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던 이웃간의 정은 사라지고 서로 단절되기 시작한다. 심심하면 마을을 오가며 동네 소식을 모아오던 시어머니에게는 이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오면서 점점 대화의 양과 질이 협소해진다. 이 글은 주거환경이 변화하면서 시작된 이웃 간의 단절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보문동
  • 박완서_쑥스러운 고백 표지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박완서
  • 비고:
  • 유형: 작품 문학

시기

근거자료 원문

  • 벌써 10여 년 전쯤부터 아파트 생활에 일숙해진 한 친구는 늘 우리 동네를 부러워했었다. 아파트가 편하긴 다 편해서 좋은데 이웃끼리 통 사귀지를 않고 산다는 거였다. 그때만 해도 우리 동네는 한옥이 밀집한 고풍스러운 동네였고 이웃 간에 친목이 대단했었다.
    아파트 생활이 익숙한 친구는 이웃간에 친목이 좋은 우리 동네를 부러워 한다. 우리 동네는 이웃끼리 ‘좋은 일‘ 하기를 의무로 알아 서로 돕기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 내가 처음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꼭 시골 인심 비슷한 골목 안 인심에 흔연히 동화됐다기보다는 적이 당혹했었다는 쪽이 옳겠다. 개인생활을 침해받는 것 같아 불쾌한 느낌조차 들었다. 가을철 고추 같은 것도 미리 물어보지도 않고 뉘 집에서든지 1백 근, 2백 근짜리를 부대째로 사서 마당에 쏟아놓고는 집집이 다니며 사람을 불러모아서는 나누어 사자는 데 뾰지게 싫달 수도 없고, 당장 돈이 없다고 발뺌을 하면 돈을 꾸어주겠다는 사람까지 나서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서로 돕는 것을 당연한 예절로 여기던 우리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노인을 모시고 있어 노인네의 생신 때가 되면 골목 안 노인들을 모두 불러다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화자가 처음 이 동네로 왔을 때만 해도 골목 안 인심이 마치 시골 인심 같아서 개인 생활을 침해 받는 것 같아 적잖히 당황하기도 했다. 이런 오지랖 때문에 이웃 간의 정이 많아 좋겠다는 친구들 말에 ‘나‘는 오히려 아파트 사는 친구를 부러워한다.
  • 그러나 우리 동네도 이젠 많이 변했다. 골목 안에서 우리가 제일 고참이 되었고, 한옥 사이 드문드문 양옥이 들어서게 되었고, 이웃 간에 왕래가 끊긴 지 오래다. 이제 와서 문득 지난날의 인심에 그리움 같은 걸 느끼며 우리가 제일 고참인 점으로 미루어 우리 골목 안의 아름다운 전통이 우리로부터 끊긴 게 아닌가 하는 자책감조차 없지 않아 있다.
    박완서, 2015, (박완서 산문집 1 )쑥스러운 고백, 265-266쪽
    부담스러울 정도로 이웃 간의 정이 넘치던 우리 동네도 시간이 지나 한옥이 하나 둘 사라지고 양옥이 들어서면서 이웃 간에 왕래가 끊기기 시작한다. 지난날의 인심이 그리워지자 우리집에서 부터 골목에 아름다운 전통이 끊긴 게 아닌가 싶어 자책감도 들게 된다.
  • 그렇지만 우리 골목의 변모야말로 근래 10여 년 간의 우리 사회의 급속한 근대화가 가져온 수많은 변모의 한 전형일 따름일 것이다. 우선 집이 팔리면 새로 산 사람이 멀쩡한 한옥을 철거한다. 아직도 몇 십 년을 더 버틸 수 있는 굴도리에 재목이 좋은 한옥이 헐려서 시골로 내려간다. 시골 사람들은 이런 한옥을 사다가 그대로 조립하는 식으로 지으면 건축비가 훨씬 덜 든다는 거였다. 철거가 끝나면 철근에 벽돌에 시멘트가 쌓이고 땅을 판다. 양옥의 기초공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한옥이 헐리고 양옥이 들어서면서 이웃 간에 왕래가 끊어진지 오래다. 집이 팔리면 멀쩡한 한옥도 철거되고 양옥을 짓는다. 양옥의 기초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양옥 주인과 한옥 주인간의 싸움이 붙는다. 하지만 싸움의 결과는 으레 양옥집 주인의 승리로 끝나고 한옥집과는 상종하지 않으려 한다.
  • 한옥도 번들번들 타일이 빛나는 벽이 추녀 끝까지 나와 있고 담에 쇠꼬챙이가 솟고 보니 한옥인지 양옥인지 분간을 못하게 된다. 반양옥이라고나 할까. 한 골목 안에 한옥․양옥․반양옥이 번갈아가며 서 있고 서로 그것을 신분의 차이처럼 의식하고 있고, 서로 적의조차 품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한옥이 팔리게 되면 으레 양옥집이 지어진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양옥집 주인과 한옥 주인의 싸움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집을 다 지은 후에는 서로 상종하지 않는다. 한옥이 헐리지 않고 수리된다 하더라도 결과는 비슷하다. 한옥을 수리하면서 방을 추녀 밑으로 또는 집과 집 사이로 늘리니 자연히 이웃과 말싸움이 붙게 된다. 한 골목에 한옥, 양옥, 반양옥은 이를 마치 서로 신분 차이처럼 의식하고 있고, 서로 적의까지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웃 간의 소통은 사라지고 서로 단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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