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의 미아리고개
1956
작품 음악
미아리고개를 소재로 1956년 발표된 대중음악이다. 반야월이 작사, 이재호 작곡, 이해연 노래의 이 곡은 작사가 반야월이 피란을 가다가 목숨을 잃은 딸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로도 잘 알려져 있다. 6.25전쟁 당시 미아리고개는 북한군의 서울 침투 경로이자 후퇴 경로로 남·북한의 격전지이자 많은 사람이 강제로 납북되어 끌려가는 애환이 있는 장소였다. 곡의 1절에는 강제로 북송된 사람들의 사연이, 2절에는 반야월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이 곡은 전쟁의 아픔을 노래한 대표적인 노래로 사랑을 받았고, 1990년대에는 미아리고개공원 내부에 노래비가 건립되었다.
돈암동
  •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비(1)
  •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비(2)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斷腸의 미아리고개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반야월
  • 비고:
  • 유형: 작품 음악

시기

근거자료 원문

  • 반야월 작사 ‘단장의 미아리고개’ ‘단장의 미아리고개’ 작사가인 반야월씨(69·본명 박창오)는 6.25만 되면 남다른 악몽에 시달린다. <···화약냄새 앞을 가려 눈 못뜨고 헤매일때/당신은 철사줄로 두손 꼭꼭 묶인채로···> 6월에 들어 더욱 넓게 메아리지는 이 노래가 들리면 전란의 희생이 됐던 당시 5세의 귀염둥이 딸 수라양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들고···>로 이어지는 이 노래는 35년전 노도같이 밀어닥친 북괴군이 갖은 만행과 더불어 눈에 띄는대로 장정들을 끌고 고개를 넘은 것과 극도의 영양실조에 충격으로 숨진 딸을 주제로 해서 지은 6.25의 상징적인 가요. 동란이 터진 후 불과 3일만에 북괴군이 서울을 점령했던 당시, 미아리에 살았던 반씨는 가족들을 남겨둔 채 단신으로 경북 김천까지 피신했었다. 그해 긴긴 여름을 호박과 감자죽으로 이어온 수라양이 영양실조에 끝내 숨져버린 사실은 9.28수복 후에야 알았었다고. 그래서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마치 딸 수라와 바꾼 노래같은 생각이 들어 반씨는 더욱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56년 반야월 씨의 노랫말에 ‘산장의여인’ 작곡가인 이재호씨가곡을 붙였고 당시의 인기가수 이해연 씨가 부르면서 6.25를 상징하는 반공 성격의 노래로 애창되어오고 있다. 지난해 KBS가 조사한 6.25노래에 대한 가요팬들의 애창곡 통계는 ①단장의 미아리고개, ②굳세어라 금순아, ③전우야 잘자거라 순으로 나와 있다. 30여년 동안 유명가수들이 다투어 취입했으며 방송의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가 된 것은 애절한 멜로디와 함께 비극을 그린 노랫말이 절실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수많은 반공인사들이 끌려가면서 피눈물을 흘렸고 이 고개를 아군이 넘어왔느냐 적이 넘어갔느냐로 ‘수도의 포기’ ‘서울탈환’으로 표현됐던 미아리고개. 당시 달구지 2대가 비켜갈 만했던 바윗고개가 지금은 4차선으로 넓어져 마루턱에는 육교가 가로질러있고 정상 오른쪽 언덕배기엔 언제부터인가 ‘개나리고개’라고 새긴 대리석 입석이 놓여있다. 반야월씨는 ‘비극의 현장 미아리고개가 그 이름조차 바뀌어 마음이 더욱 어두워진다.’고 말한다. 24일 이곳을 찾은 반씨는 ‘자라는 세대들에게 반공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에 노래비라도 세웠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반씨는 현재 원로작사, 작곡가들의 모임인 작가동지회 회장직을 맡고있다. 경향신문 1985. 6. 25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094
  • 이 노래의 현장에 6.25 동란을 기리는 전적기념관과 위령탑이 전후 만 40년만인 올해 안으로 세워진다. 서울 성북구청은 6.25와 관련, 많은 사연을 담고있는 미아리 고개 주변에 전적기념관을 세우자는 지역주민들과 재향군인회성북지회등 국가 유공단체의 건의에 따라 미아리고개에 전적기념관과 함께 애국인 사위령탑을 세워 이곳을 관광 명소화 하기로 했다. (중략) 성북구는 미아리고개 부근인 돈암동 일대 사유지 3천여평을 매입, 기념관은 3층 규모로 짓고 위령탑에는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 가사를 새겨 넣기도 했다. 경향신문 1990. 2. 7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054
  •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떠난 이별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못뜨고 헤매일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손 꼭꼭 묶인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많은 미아리고개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때 당신은 감옥살이 그 얼마나 고생을 하오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고넘던 이 고개여 한많은 미아리고개 1956년 발표된 노래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발표되자 마자 큰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다. 전쟁의 비극과 가족을 잃어버린 슬픔을 절절히 묘사한 가사는 가수 이해연의 애절한 목소리와 함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왔다. 그런데 이 가사에는 작사가 반야월의 개인적인 사연이 반영되어 있다. 반야월은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6.25가 터지자 나는 곧 T셔츠 바람으로 혼자서 고향 마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출발이 좀 늦었던 탓으로 산길만을 골라 내려갔지요. 미아리고개 너머, 지금은 미아동 쯤 되는 곳에서 살았었는데 집에 아내와 1남 2녀, 3남매를 남겨둔 채였습니다. 아내는 그 뒤 1.4 후퇴 때 처가가 있는 김천을 거쳐 마산으로 나를 찾아왔어요. 그런데 둘째 딸 수라가 죽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때 다섯 살 먹은 어린애였는데 난리통에 식량이 없어 밀기울밥을 먹고 지내던 끝에 영양부족으로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반야월의 부인 윤경분은 수라의 시신을 미아리고개 근처 공동묘지에 묻고 피난을 나왔다. 1956년 10월, 반야월은 마산에서의 피난생활을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부인과 함께 둘째 딸 수라가 묻힌 곳을 찾았다. 하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딸에 대한 죄책감을 담아 노랫말을 지었고, 이렇듯 그가 말 그대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겪으며 만든 노래가 바로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였다. 노래는 1절과 2절로 나뉘어져 있는데, 반야월 자신의 사연은 2절에 담겨있다. 1절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하기 전 강제로 북송된 사람들의 사연이다. 그들이 손발이 꽁꽁 묶인 채 북으로 끌려가던 길이 바로 미아리고개였던 것이다.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63-65쪽
  • 정의 1957년에 발표된 대중가요. 구성 및 형식 사단조, 2/4박자, 27마디 가창부, 2절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이해연 노래로 녹음되어 1957년에 오아시스레코드에서 음반이 발매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어린 딸을 잃은 작사자의 경험이 창작 배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 중후반에 발표된 수많은 전쟁 관련 대중가요 가운데에서도 손꼽히는 대표작이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 들고/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당신은 감옥살이 그 얼마나 고생하고/십 년이 가도 백 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울고 넘던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가사 외에 초판 간주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도 있는데, 노래를 부른 이해연이 대사도 직접 녹음했다. 여보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세요/어린 용구는 오늘밤도 아빠를 그리다가 이제 막 잠이 들었어요/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에 얼마나 고생을 하세요/십 년이 가도 백 년이 가도 부디 살아만 돌아오세요/네 여보 여보 현황 전쟁 관련 가요의 대표작인 동시에 작사가 반야월의 대표작으로도 인정되어 1996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노래비가 건립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 단장의미아리고개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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