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초도 온실에 숨고 나뭇잎 모조리 떨어진 뒤, 온돌방 윗머리 나의 가난한 문갑 위에는 수선 봉오리 바야흐로 피어오르고, 창 밖에는 날이 날시금 삭풍(朔風)이 요란스레 불어와도 우리집 늙은 감나무에는 한두 개 물은 홍시(紅枾)란 놈이 까치의 식욕을 자아낸다. 앙상한 나무들과 까치 집과 싸리 울타리와 괴석과 흰 눈과 그리고 따스한 햇볕. 이것들이 노시사(老枾舍)의 겨울을 장식해주는 내 유일한 벗들이다.
인용된 문장은 이 작품의 전체를 수록한 것으로 그 분량은 매우 짧지만 김용준의 삶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노시산방에서의 겨울은 늙은 감나무와 까치 집, 울타리와 괴석, 흰 눈과 따스한 햇볕이 있어 푸근하기만하다. 이처럼 성북동은 한적하면서도 운치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