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 해를 따라
몇 천리나 와서
오늘은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라나와
산골짜기에서 겨울 산 뼈를 씻으며
졸졸 흐르고 시냇가로 간다.
1965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이어진 투병 생활은 김광섭의 창작 활동에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의 관념적인 시가 아닌 일상적인 언어로 삶과 자연의 고귀함을 표현한 것이다. 성북동 168-34번지에 자리한 자신의 집에서 복개 이전 맑은 물이 흐르는 성북천을 바라보면서 봄의 기운을 발견하고 삶의 의지를 다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