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적: 평안남도 진남포부 비석정 191번지
주소: 서울 동대문구 안암정 168번지
계열과 단체: 보성전문학교, 경성콤그룹 재건
<활동 내용>
평남 진남 출신으로 진남포의 得信學校, 崇實高等普通學校를 거쳐 1938년 3월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하였다. 부친 金聖燁은 개신교 목사로 민족의식이 강하였으며, 안창호가 그의 외숙이다. 實兄 金順哲도 숭실고등보통학교 재당 당시 ‘좌익독서회’ 사건으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이러한 주변의 영향으로 김순원은 숭실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부터 민족주의 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김순원은 보성전문학교 2학년부터 孫錫泰의 영향으로 신사상에 찬성하여 신사회 건설을 위한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40년 2월 2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으로 기소유예를 받았다.
김순원은 1940년부터 다시 조선 독립을 위한 조선공산당 경성콤그룹 재건 활동을 하였다. 동년 11월부터 李鍾甲의 권유로 사회과학을 학습을 하고 조직의 확대, 동지 획득에 대한 협의, 신사상의 이론 학습을 하는 한편, 동교 상과 2학년을 담당하여 동지 획득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1941년 4월 이관술과 김태준의 체포 사실을 이종갑에게 알리고 체포 방지를 위하여 동지들 사이의 연락을 비밀로 할 것을 협의하였다. 김순원은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치안유지법으로 기소되었으며, 재판 도중 옥사하였다고 한다.
<특이사항>
재판 도중 옥사하였다고 하나 사망사실 확인되지 않음
<참고문헌>
경성지방법원 판결문 (1943. 10. 25)
『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평남 진남"은 "평남 진남포"의 오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