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둔에 복숭아꽃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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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문학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윤정현(尹定鉉)[1793-1874]의 한시이다. 그는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여 덕망이 널리 알려졌고, 경사(經史)에 박식하고 문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특히 비문에 능하였다. 이 작품은 윤정현이 성북둔(현 성북동 일대)의 복숭아꽃을 소재로 지은 작품으로, 꽃 필 시기가 되어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는 장면을 시적으로 표현하였다.
성북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城北屯放桃花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윤정현
  • 비고:
  • 유형: 작품 문학

시기

근거자료 원문

  • 城北桃花初發時。待人春色故遲遲。 易知蹊在不言處。正欲唫成前度詩。 丈室偶緣來問疾。漁舟仍作後爲期。 今朝風雨應無恙。好對緋英一展眉。 - 윤정현(1793~1874), 침계선생유고 권1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이야기 자원 모음집, No.1-44
  • 정의 조선후기 홍문관제학, 황해도관찰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계우(季愚), 호는 침계(梣溪). 이조판서를 지낸 윤행임(尹行恁)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41년(헌종 7) 성균관에서 행한 특별시험 황감응제(黃柑應製)에 뽑혀, 1843년 식년문과 전시에 직부, 급제하였다. 51세의 나이로 늦게 출사하였으나 이듬해 규장각대교에 뽑혀 들어간 뒤 학문·문장의 조예와 가문적 배경으로 인하여 급속히 승진하였다. 2년 뒤인 1846년 성균관대사성을 거쳐 이듬해 정월 재신(宰臣)의 반열에 올라 홍문관제학을 역임하고, 1848년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년 만인 1849년 2월 병조판서가 되었다. 과거급제 후 6년만에 판서에 오른 것이다. 이후 이조·예조·형조의 판서를 두루 거치고, 1856년(철종 7) 9월 판의금부사를 겸직하였으며, 11월에는 규장각제학이 되었다. 판서가 된 뒤 줄곧 비변사당상관을 겸임하였는데, 특히 호남구관당상을 오래 지냈다. 1858년 이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판돈녕부사 등의 명예직에 임명되었다가 82세의 나이로 죽었다.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여 그 덕망이 널리 알려졌고, 경사(經史)에 박식하고 문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특히 비문에 능하였다. 문집으로 『침계유고』가 있다. 시호는 효문(孝文)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명: 윤정현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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