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복
1907.08.23 - ?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28년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아나키즘단체인 일성단을 조직하였다. 1929년 평남 용강군의 한 씨름대회에서 총독정치의 억압과 착취를 폭로하고 농민들을 단결하여 일제타도에 앞장설 것을 호소하는 무정부주의 선전문을 살포하였다. 1929년 7월 평양에서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거주지는 서울 안암정 205번지 11호이다.
안암동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 비고: 서울 안암정 205-11번지

근거자료 원문

  • ○ 항일단체조직과 노동쟁의로 일본에 대항한 성북인들 ­ 흔히 ‘아나키즘운동’이라고도 표현되는 무정부성격의 항일단체 중에는 김양복이 동지들과 규합해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조직한 일성단이 있습니다. 안암동에서 거주한 바 있는 김양복은 단원들과 일본 천황을 암살하고 중요기관을 파괴할 것을 목표로 하고 중국에서 무기를 입수하는 대로 무장투쟁을 전개키로 합니다. 그러나 평남 용강군 씨름대회에서 농민 단결과 일제타도를 내용으로 하는 무정부주의 선전문을 살포했다가 일본에 적발돼 옥고를 치렀습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62쪽
  • 황해도 봉산 출신으로 서울 안암정 205번지 11호에 거주하였다. 1928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아나키즘단체 일성단(一聲團)을 조직. 1929년 음력 단오절인 6월 11일 龍岡郡 多美面 五花里 씨름대회에서 총독정치의 억압과 착취를 폭로하고 농민들을 단결하여 일제타도에 앞장설 것을 호소한 ‘농민에게 고함’이라는 무정부주의 선전문을 살포하였다. 1929년 7월 평양에서 체포되어 1930년 평양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 본적: 황해도 봉산군 토성면 마산리 57번지 주소: 서울 안암정 205-11번지 계열과 단체: 일성단 <활동 내용> 황해도 봉산 출신으로 1928년 3월 하순 김호구·정찬진·吳秉鉉·張命學·宋柱軾 등과 함께 明治大學 운동장에서 모임을 갖고 무정부주의 비밀결사 一聲團을 조직하였다. 동단은 일본 천황을 암살하고 중요기관을 파괴할 것을 투쟁목표로 기밀엄수, 이탈불허, 변절자 처단 등을 행동강령으로 하였다. 동단은 중국 상해나 만주에서 무기를 입수하는 대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그 후 이들은 동지 규합을 위하여 5회에 걸쳐 『黑戰』이란 선전책자를 만들어 국내외에 우송하였다. 고향 평남 龍岡郡으로 돌아온 동지 김호구와 오병현은 1929년 음력 단오절인 6월 11일 龍岡郡 多美面 五花里 씨름대회에서 총독정치의 억압과 착취를 폭로하고 농민들을 단결하여 일제타도에 앞장설 것을 호소한 ‘농민에게 고함’이라는 무정부주의 선전문을 살포하였다. 이를 계기로 동단의 조직이 노출되어 김양복은 1929년 7월 평양에서 체포되어 1930년 평양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특이사항> 1943년 4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朝鮮阿片取締令違反으로 징역 4년을 받음 <참고문헌> 『매일신보』, 1930.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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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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