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야만
1976
작품 문학
1976년 5월 『뿌리깊은나무』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소설 속 동네의 주거 형태가 근대 주거 양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1970년대 보문동 골목에서 살았던 작가의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추측된다. 철이 엄마는 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동네 사람들을 보고 야만이라 규정하지만 화자의 아내는 교포가 두고 간 강아지를 학대하는 철이 엄마를 야만적이라 말한다. 이처럼 ‘똥뒷간‘과 ‘화장실의 흰 사기의자‘, 동물학대와 동물애호는 야만과 근대의 기준이 되고 야만이 근대가 되기도, 근대가 다시 야만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철이 엄마로 대표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근대 주거 양식의 변화 속에서 보인 모습을 세밀한 관찰력으로 풀어내면서 실체가 없는 근대와 야만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보문동
  • 박완서_배반의 여름 표지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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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브젝트 생산자: 박완서
  • 비고:
  • 유형: 작품 문학

시기

근거자료 원문

  • 내가 처음 집을 장만해온 이 골목 식구들은 남자들은 하나같이 내 또래의 착실한 월급쟁이로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 일곱 시에서 여덟 시 사이에 들어오고, 여자들은 또 하나같이 내 아내처럼 아이를 둘만 낳고, 기다란 홈웨어를 입고, 전자밥통 계니, 밍크담요 계니로 살림 장만하기를 좋아하는 모범 주부들이었다. 협동심이 강해서 똥차가 오면 일제히 똥을 치고, 똥 푸는 사람들에게 통 수표를 사기 당할까봐 집집마다 나와서 지키고 똥 푸는 사람들과 싸움도 했다. 똥냄새로 얼굴을 찡그리고 비위를 상해하는 같잖은 여편네는 한 사람도 없었다.
    박완서, 2006, 배반의 여름, 46쪽
    화자가 사는 동네는 똥차가 똥을 푸러 오는 곳으로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모범적이고 착실한 동네다. 화자는 우연히 어느 시인이 자기 동네를 똥차가 똥 푸러 오는 동네라고 밝힌 잡지 글을 본 뒤로 착실한 사람들이 사는 사진의 동네를 사랑하지만, 우리 골목에도 쓸데 없는 짓을 업으로 삼는 시인 한 명쯤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 실상 이 천격스럽고 인색하다는 건 똥차가 똥 푸러 오는 우리 골목에 사는 여인들의 공통의 표정이었고, 차이가 있다면 엷고 진함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철이 엄마는 그 표정이 남보다 적나라하고 남보다 진한 데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나는 골목색이 가장 진한 철이 엄마를 통해 우리 골목의 구질구질한 생리에 대한 내 혐오감을 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박완서, 2006, 배반의 여름, 48쪽
    철이 엄마는 똥차가 오는 날이면 가장 극성이었다. 주인공은 그런 철이 엄마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철이네가 수세식 변소로 바꾸면서 철이 엄마는 고상을 떨며 귀부인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주인공도 그 차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마을 사람들도 똥 푸는 날이면 철이네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기술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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