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으로 귀양살이 떠나는 윤무구[윤규응]를 보내며
1797
작품 문학
조선 후기 관료이자 실학자였던 정약용[1762-1836]이 지은 한시이다. 이 시는 1795년(정조 19)혹은 1797년(정조 21)에 정약용이 철원으로 유배를 떠나는 무구(无咎) 윤규응(尹奎應)[1762-?]을 전송하며 지은 시이다. 윤규응은 정약용의 외가쪽 6촌 형제로 정약용, 윤지범 등과 함께 죽란시사라는 시단모임을 만들어 교류하였다. 윤규응이 1795년(정조 19) 6월 4일 전(前) 주서(注書)로서 견책을 받아 철원에 유배되었다가 6월 18일 풀려난 일이 있는데 이 일화오 관련된 한시로 추측된다. 이 작품을 통해 당대 혜화문의 운영 실태를 엿볼 수 있다.
성북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送尹无咎謫鐵原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정약용
  • 비고:
  • 유형: 작품 문학

시기

근거자료 원문

  • 철원으로 귀양살이 떠나는 윤무구를 보내며[送尹无咎謫鐵原] 첫 번째 쇠북소리에 혜화문이 열리더니 / 惠化門開第一鍾 산 넘고 물을 건너 북으로 가는 길 겹겹이로세 / 關河北去路重重 산이 대신 일산을 펴 외로운 말을 맞고 / 山張寶蓋迎孤馬 얼음발을 안개가 내려 구룡을 숨겨주리 / 霧鎖氷簾秘九龍 다행히도 잠시나마 청쇄달에서 놀았지만 / 試幸暫游靑瑣闥 우리 함께 백운봉을 오를 때만 같겠는가 / 何如同上白雲峯 듣자하니 신진 축에 뛰어난 인물 많아 / 傳聞新進多才俊 검은 머리 붉은 얼굴에 감정 자태 다 좋다네 / 玄鬢紅顔意態濃 — 정약용, 『다산시문집』 3권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61쪽
  • 첫 번째 쇠북소리에 혜화문이 열리더니 / 惠化門開第一鍾 산 넘고 물을 건너 북으로 가는 길 겹겹이로세 / 關河北去路重重 산이 대신 일산을 펴 외로운 말을 맞고 / 山張寶蓋迎孤馬 얼음발을 안개가 내려 구룡을 숨겨주리 / 霧鎖氷簾秘九龍 다행히도 잠시나마 청쇄달에서 놀았지만 / 試幸暫游靑瑣闥 우리 함께 백운봉을 오를 때만 같겠는가 / 何如同上白雲峯 듣자하니 신진 축에 뛰어난 인물 많아 / 傳聞新進多才俊 검은 머리 붉은 얼굴에 감정 자태 다 좋다네 혜화(惠化)는 서울의 동북편 문 이름. / 玄鬢紅顔意態濃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권3 「철원으로 귀양살이 떠나는 윤무구를 보내며[送尹无咎謫鐵原]」
    박수진 외 5인, 2014, 한양도성 이야기 자원 모음집, No.089
  • [요약정보] UCI G002+AKS-KHF_13C724ADDCC751B1762X0 이명(異名) 윤지눌(尹持訥) 자(字) 무구(无咎) 호(號) 소고(少皐) 생년 1762(영조 38) 졸년 ?(미상) 시대 조선후기 본관 해남(海南) 활동분야 관료 [상세정보] 윤규응(尹奎應) 1762년(영조 38)∼미상. 본관은 해남(海南). 다른 이름은 윤지눌(尹持訥). 자는 무구(无咎), 호는 소고(少皐). 증조부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조부는 윤덕훈(尹德熏), 아버지 윤운(尹惲)이며, 외조부는 신호(申皓)이다. 1790년(정조 14) 경술(庚戌) 춘당대시(春塘臺試) 병과(丙科) 1위로 급제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윤지범(尹持範)‧주신(舟臣)‧이유수(李儒修)‧한치응(韓致應) 등과 죽란시사(竹欄詩社)라는 시단 모임을 조직하여 평생을 시로 교류하였다. 초계문신제명록(抄啓文臣題名錄: 초계문신에 뽑힌 제명록)에 등재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항목명: 윤규응
    정약용이 쓴 「철원으로 귀양살이 떠나는 윤무구를 보내며」의 대상인 윤무구(윤규응)에 대한 정보이다. 윤규응은 정약용의 외척으로 1795년(정조 19) 6월 4일 전(前) 주서(注書)로서 견책을 받아 철원에 유배되었다가 6월 18일 풀려났다.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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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화문
    이야깃거리
    혜화문
    분류: 장소, 유물
    시기: 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