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복반일
1939.11.10
작품 문학
1940년 『문장』 1월 호에 게재된 함석태의 수필이다. 제목 청복반일(淸福半日)의 '청복(淸福)'은 '맑고 한가로움을 누리는 복'을 말하는 것으로 제목을 풀이하면 '청복을 누리는 한나절'이다. 글의 앞 부분에서는 가을의 정취를 찬미하고 있으며, 중반부터는 1939년 10월 말 함석태와 손재형이 성북동에 있는 김용준과 이태준의 집을 방문한 일화를 다루고 있다. 성북동의 풍경과 이태준의 수연산방, 김용준의 노시산방 등에 대해 자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이들의 교유를 확인할 수 있다.
성북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淸福半日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함석태
  • 비고:
  • 유형: 작품 문학

시기

  • 시대: 일제강점기
  • 시기: 1939.11.10
  • 비고: 1940년 『문장』 1월호에 게재됨/수필 말미에 '기묘년 11월 10일'쓰여 있음

근거자료 원문

  • 바로 지난 十月 二十九日은 大空一碧한 日曜日이었다. 이 날의 好晴을 타서 素荃 孫在馨氏와 같이 옛날은 高陽郡 城北里 上城北屯이오, 지금은 京城府 城北町에 新精舍를 落成한 尙虛 李泰俊氏의 幽居를 叩하였다. 尙虛는 所幹이 있어서 外出할 터이니 午後 五時에 찾아달라는 前날의 約束이었으나 景趣에 바쁜 두 사람의 일이라 두 時間 前에 城北洞 재를 넘어 개울을 끼고 물풀 길을 찾았다. 稀罕한 旱災에 溪流가 涸渴된 것은 無怪한 일이나 없던 高層建物이 點出하는 것만은 舊時容이 아니다. 물 없는 내는 秋景에 加하여 郊外情趣로 볼 수 있으나 벌건 벽돌 풀은 페인트와 鐵條網을 얽어 막은 것은 風致를 돋는 所爲가 아니다. 그러므로 建物이 늘어 갈수록 自然이란 破壞되는 것을 알겠다. 前 날은 上城北屯於口로부터 淸流를 거슬러 半淸門을 올라 三淸洞으로 넘는 길에 兩三茅屋의 村家風情과 아울러 蒼石老苔에 笻履의 痕迹을 찼던 것이 이곳을 가는 風致이었다던 말은 素荃보고 다시금 뇌이며 三人台 옛 터에 怡然이 걸음을 멈추었다.
    함석태, 1940, 청복반일(淸福半日), 158-159쪽
    함석태는 소전 손재형(1903-1981)과 같이 상허 이태준의 집을 찾아간다. 그 전날 이태준이 오후 5시에 찾아와 달라고 하였으나 두 사람은 두 시간 전에 성북동 재를 넘어 김용준의 노시산방을 찾아간다. 필자는 교외 성북동에 고층건물이 들어서면서 자연이 파괴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 대후일우台後一隅, 대의 뒤편 한 귀퉁이에 주실朱實이 방농方濃한 수주노시數株老柿 사이로 양장석요羊腸石遙이 알맞게 굽어진 곳에 한적閑寂히 닫혀있는 일각문一閣門이 보였다. 주인主人 우산牛山 김용준씨金瑢俊氏의 산장山莊이다. 고졸古拙한 문門만 보아도 누구든지 지나던 사람은 문찰門札이라도 한번 보고 가려 할 것이어늘 더욱 황엽주실黃葉朱實에 맑은 산음山陰에 만타화홍萬朶花紅을 이룬 풍상風霜한 맛은 아무리 보아도 홍시산장紅柿山莊이라고 불러보고 싶었다. 물론勿論 우산牛山은 풍류화가風流畵家임을 모른바 아니로되 보고나니 과연果然 백문百聞이 일견一見을 적敵할수 없다. 문門을 들어서니 흔연欣然이 맞어주는 주인主人의 풍모風貌와 함께 정면正面에 걸려있는 완당고액阮堂古額인 풍사실豊士室을 대對할 때에 스사로 지금 드러온 문門이 단속문斷俗門이 아닌가를 의심疑心하겠다. 인도引導하는대로 풍사실豊士室에 손이 되여 정금서회正襟叙懷하고 요담일각후要談一刻後에 선객先客의 인사소개人事紹介를 받고 보니 이분은 동경유학시대東京留學時代부터 영명令名을 포문飽聞하던 화가畵家 길진섭씨吉鎭燮氏로 일면一面이 여구如舊하다. 그리하야 두 화가畫家와 한 화가書家의 서화담書畫談을 배불리 듣다가 오후오시午后五時가 초과稍過하여 주인主人 우산牛山의 지로指路로 사인四人이 가치 상허저尙虛邸로 가는 도중途中에 최근最近 반이搬移하여온 동호同好 배정국씨裵正國氏의 문전門前을 지나게 되어 옥방屋訪의 경의敬意를 표表하였더니 주인主人은 부재중不在中이나 복택卜宅의 정취情趣만 보아도 대對한 듯 싶었다.
    함석태, 1940, 청복반일(淸福半日), 159-160쪽
    성북동에 도착한 두 사람은 우선 김용준의 집인 노시산방(老枾山房)에서 먼저온 손님 길진섭(1907∼1975)을 만난다. 함석태, 손재형, 김용준, 길진섭 네 사람을 글과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태준을 만나기로 약속했던 오후 5시가 지나자 이태준의 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태준의 집으로 가면서 최근 이사한 배정국의 집을 지나칠 때는 주인은 부재중이지만 옥방에 경의를 표하고 지나간다.
  • 더욱 우산牛山이 가리키는 곧은 내가 수십년전數十年前부터 나의 친우親友이던 성북포도원주城北葡萄園主 학남鶴南과 같이 사랑하야 마지않았던 상성북둥초입上城北洞初入에 유일惟一한 기암초절奇巖峭絶의 단애하斷崖下에 평탄平坦한 광장廣場이었다. 지금只今 다시 보아도 이 동촌중洞村中의 경치景致로는 왕좌王座라 하겠다.
    함석태, 1940, 청복반일(淸福半日), 160쪽
    함석태는 많은 문인들이 모여사는 성북동에 가파른 산비탈 아래 평탄한 광장을 성북동의 경치 중 최고로 꼽으며, 찬미한다. 함석태가 성북동 경치의 왕좌로 뽑은 광장은 성북동 인근의 평야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삼선평으로 추측된다.
  • 장단長垣을 앞으로 남서정南西庭을 널리 티이고 남향대청南向大廳을 동東으로 꺾은 누각樓閣의 「ㄱ」자형字型 윤환미輪奐美는 틀림없이 아담雅淡한 이조사기李朝砂器 연적硯滴을 확대擴大한 감感이다. 신축新築한 건물建物이지만 새材木의 나무내는 나지않고 새흙내만 향기롭다. 건축建築의 고심담苦心談을 들으니 고재목古材木을 낯낯이 골라 되깎이하야 지었다한다. 경치景致뿐아니라 건물建物로도 수위首位갈 것이다. 평소平素 겸묵가謙默家인 상허尙虛로도 재료구집材料鳩集과 공장사용工匠使用의 고심담苦心談을 미미불권娓娓不倦하는 것을 보아 알겠다.
    함석태, 1940, 청복반일(淸福半日), 160쪽
    함석태가 이태준의 집 수연산방을 묘사한 대목이다. 신축한 건물이지만 향기로운 새흙내가 나는 크고 아름다운 집에 대해 마치 조선시대 사기연적을 확대한 느낌이라고 평하고 있다, 경치뿐 아니라 건물 자체도 수준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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