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
1916.01.16 - ?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전라북도 고창 출신으로 1934년 고창농민조합에서 독서회를 조직하여 농민들에게 신사상을 선전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36년에는 서울 낙원정 허신병원에서 홍종식과 신사상 운동의 필요성과 그 실천의 불가피성에 대하여 협의하였던 사실이 발각되어 치안유지법위반 및 군형법위반으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검사국으로 보내졌다. 거주지는 서울 안암정 157번지이다.
안암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金容泰
  • 이명칭:
  • 성별: 기타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 비고: 서울 안암정 157번지

근거자료 원문

  • ○ 조용했지만 뜨거웠던 저항의 근거지 성북 - 두 단체 외에 사회주의자로 활동했던 이들로는 성북동에 거주했던 김하경, 안복산과 돈암동에 거주했던 홍석표, 안암동에 거주했던 김용태 등이 있습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102쪽
  • 본적: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212번지 주소: 서울 안암정 157번지 계열과 단체: 고창농민조합 <활동 내용> 전북 고창 출신으로 1934년 1월부터 전북 고창의 고창농민조합에서 독서회를 조직하여 농민들에게 신사상을 선전하였다. 그러나 金明桓·姜宅洙·李殷植·金容浩·金容荏 등과 함께 체포되어 1936년 4월 18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30년부터 김용태는 고창군에서 수재의연금을 내거나 高敞高普 後援會員으로 후원금을 지원한 것으로 보아 지역 유지에 속한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1933년에는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이리경찰서에 검속 당하였다. 고창농민조합 사건 이후에도 김용태는 1936년 11월 중순경 서울 樂圓町 許信病院에서 洪鍾寔과 신사상 운동의 필요성과 그 실천의 불가피성에 대하여 협의하였던 사실이 발각되었다. 이 때문에 1938년 4월 30일에 다시 체포되어 치안유지법위반 및 군형법위반으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검사국으로 송국되었다. 이후에도 1937년 12월과 1938년 9월에 검속을 당하는 등 김용태는 일제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았다. <참고문헌> 『동아일보』, 1936. 4. 2. 『매일신보』, 1930. 4. 1.
    국가기록원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확인 결과 판결일자는 "1936년 4월 18일이 아니라 "1936년 4월 8일"이다.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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