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들의 집
2016.02.25
작품 문학
가족 및 타인과의 유대가 붕괴되면서 삶의 기반을 상실한 도시 난민을 소재로 쓴 장편 소설이다.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온 인물들은 '마마'라고 불리는 노파의 집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살게 되는데, 윤대녕 작가는 이들을 통해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성북동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여 독자가 이 일대를 함께 산책하는 느낌을 준다. 장소의 디테일을 중요시하는 작가는 성북동을 몇 차례 취재한 다음 이야기 구조에 맞게 공간을 재구성했다. 성북동을 주 무대로 삼은 이유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명우’를 전직 연극배우이자 연출가로 설정했기에 대학로와 가까운 지점이 필요했다고 한다.
성북동 정릉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윤대녕
  • 비고:
  • 유형: 작품 문학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2016.02.25
  • 비고: (주)문학동네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근거자료 원문

  • 이사를 마치고 나니 금세 저녁이었다. 시장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오자 싸락눈이 날리고 있었다. 성북동의 밤은 등화관제를 하는 마을처럼 사방이 어둡고 드문드문 가로등 주위만 겨우 환했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가로등 밑에 웅크리고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윤대녕, 2016, 피에로들의 집, 7쪽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화자인 '김명우'가 성북동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입주한 첫 날, 눈 내리는 1월의 성북동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그에게 입주를 제안한 집주인 '마마'도, 그녀의 조카인 김현주도 집을 비우고 동네는 마냥 고요하기만 하다. 참고로,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주택의 이름은 고흐의 작품 <꽃 핀 아몬드나무>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 택시에 올라타기 전 그녀가 말했다. "태도가 썩 나쁜 것만은 아니로군." "얼마 전까지는 그랬죠." "담배꽁초는 아무데나 버리면 안 되는 거야. 기억해두길 바라는데, 조만간 나를 다시 만나게 될걸세. 자네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오늘 꽤나 즐거웠거든. 참고로 나는 성북동에 살고 있네. 혹시 성북동에 와본 적 있나?" "선잠단 앞에 홍어애탕을 잘하는 집이 있어 가끔 갔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의 일이긴 하지만요." "또 술 얘기로군.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인 것 같은데, 가는 길에 거기까지 데려다줄까?" "아뇨, 할머니와는 지금 즉시 헤어지고 싶습니다." 그제야 그녀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윤대녕, 2016, 피에로들의 집, 23-24쪽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려는 화자에게 낯선 할머니가 다가와서 말을 건네며 저녁 식사를 제안한다. 화자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노파와의 식사 자리였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는 화자를 꽤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몇년 전 화자가 만들었던 '누드 연극' 이야기를 노파가 끄집어내자, 가뜩이나 그 작품을 아킬레스건으로 여겼던 화자는 발끈해 대화를 멈추고 할머니를 택시에 태워 보낸다. 헤어지기 전 노파가 남긴 말은 훗날 화자가 그녀의 성북동 집에서 머무르게 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 삼십대 초반으로 잠작되는 그녀는 시종일관 쾌활한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더 이상 물으면 일에 방해가 되겠기에 나는 그 집의 위치와 상호를 알려주었다. 선잠단 맞은편에 있는 작고 오래된 술집. 통화를 마치고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해놓았다.
    윤대녕, 2016, 피에로들의 집, 25-26쪽
    며칠 후 화자는 지난번에 만난 노파에게 '하명'을 받아서 연락했다는 '김현주'라는 여자의 전화를 받는다. 화자와 김현주는 홍어애탕을 잘한다는 성북동 술집에서 만나게 된다. 선잠단 앞에 있는 이 술집은 배우, 연출가, 극작가 등 연극인들이 즐겨찾는 곳이라고 화자는 말한다.
  • 사층으로 올라가다 보니 옥상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나가보았다. 옥상엔 유리로 만든 온실이 있었고 갖가지 화분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안에는 희미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누가 날마다 손을 보는지 식물들의 상태는 좋아 보였다. 김현주가 난간 모서리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발소리가 나자 이쪽을 돌아보았다. 반사적으로 경계하는 모습이었으나, 나라는 걸 확인하고 원래의 표정을 되찾았다. 나는 그녀 옆에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내가 아침마다 길상사로 올라갔다 전철역까지 왕복하는 선잠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윤대녕, 2016, 피에로들의 집, 60쪽
    마마와 김현주, 화자를 비롯한 입주자들이 함께한 저녁시간, 화자는 자신만 모르는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마지막 문장에서 말하는 '전철역'은 4호선 한성대입구역일 것이다.
  • 홀린 듯 나는 우산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가 유치원 여교사가 성폭행을 당했다던 현장을 찾아가보았다. 아몬드나무 하우스에서 불과 십오 분밖에 안 되는 거리였다. 한성대입구역 방향으로 내려가다 재래시장 조금 못미처 왼쪽 골목으로 십 미터쯤 들어간 지점이라고 했다. 서해에 다녀오던 날 소래포구에서 김현주에게서 전해들은 얘기였다. 골목 입구에는 슈퍼마켓과 생맥줏집이 좌우로 마주하고 있었다.
    윤대녕, 2016, 피에로들의 집, 97-98쪽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거주하는 대학생 윤태의 연인이자 유치원 교사인 상희는 몇 달 전 한성대입구역 근처의 공사장에서 집단강간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충격을 받은 윤태는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이 사연을 알게 된 화자는 밤에 악몽을 꾼 뒤 상희가 성폭행을 당한 현장을 찾아간다.
  • 파출소는 성북초등학교 건너편에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며 습관적으로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열한시가 막 지난 시각. 주변은 평화롭다고 할 만큼 고요했다. 봄밤에 가로수들이 부드럽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으며 파출소 건너편에 있는 커피숍 안으로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가로운 자세로 마주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파출소 입구에는 순찰차가 서 있었다. 나는 사이드미러에 얼굴을 비춰본 다음 호흡을 가다듬고 파출소 안으로 들어갔다.
    윤대녕, 2016, 피에로들의 집, 123-124쪽
    윤태가 고등학생들을 폭행해서 조사를 받고있다는 마마의 전화를 받고 화자는 성북파출소로 향한다.
  • "(생략) 아버지는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죠. 엄마가 죽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동두천으로 부대를 옮겨갔어요. 언니와 나는 서울 정릉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에게 맡겨졌고요." 정릉이라면 나도 가본 적이 있었다. 지금도 대학로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가 한때 건강이 악화돼 청수장 옆에 있는 절에서 요양을 하며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 몇 번 찾아간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새 십 년 전쯤의 일이었다. "외할머니는 정릉시장에서 떡집을 했어요. 한옥촌에서 가까운 곳이었는데, '쑥떡쑥떡'이라는 이름의 조그만 가게였죠. 그 시절에 우리 자매는 갈 데가 없어 늘 정릉시장을 떠돌아다니며 지냈어요. 시장 사람들은 우리를 떡집 손녀들이라고 불렀죠.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는 아이가 하나 딸린 여자와 재혼을 했고, 이듬해 외할머니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돌아가셨어요. 그후 우리 자매를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우리한테 남겨진 거라곤 외할머니가 세들어 살던 단칸방과 떡집 전세금뿐이었어요. 학교 문제로 아버지가 가끔 찾아왔지만 단지 그뿐이었어요. 아무튼 그때부터 언니와 둘이 살아야만 했죠. (후략)"
    윤대녕, 2016, 피에로들의 집, 169-170쪽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거주하며 화자와 이성적으로도 가까워진 박윤정이 어린시절에 겪었던 비극을 화자에게 털어놓고 있다. 여기에서 정릉과 정릉시장은 엄마의 죽음 이후 박윤정 자매가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곳으로 나온다.
  • 정민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대꾸가 없었다. 나는 먼저 걸음을 옮겨 골목을 벗어났다. 뒤를 돌아보니 정민은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느린 걸음으로 길상사 쪽으로 올라갔다. 얼마 후 그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길상사 입구까지 왔을 땐 어느덧 정민과 나는 나란히 걷고 있었다. 경내로 들어갈까 하다가 나는 내처 가구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어쩐지 정민과 계속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에 팽팽하게 감겨 있던 태엽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는 뜻밖의 느낌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정민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가구박물관을 끼고 돌아 삼청각까지 길게 이어지는 성북동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윤대녕, 2016, 피에로들의 집, 203-204쪽
    아몬드나무 하우스 3층에 살고 있는 정민은 어린 시절 가정폭력과 모친의 자살 이후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며 살아온 고등학생이다.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둘만 남았던 어느 여름 날, 화자는 정민이 보낸 소통의 신호를 눈치채고 입주 이래 처음으로 함께 걷기를 제안한다. 그들은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삼청각까지 약 1km 이상 이어지는 대사관로를 걸으며 마음을 나눈다.
  • 삼청공원 안으로 들어가 정민과 나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나눠 피웠다. 여기서 성북동 집까지 우리는 또 걸어가야만 할 터였다. 담배를 다 피워갈 즈음 옆에서 정민이 숨을 사린 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광화문으로 나와 안국동 사거리를 지나 비원 앞과 원남동 사거리를 지나 성균관대학교 입구를 지나 성북동 방향으로 쉬지 않고 걸어갔다.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그렇게. 혜화동 로터리를 거쳐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돌아오자 이슥한 밤이었다. 그때까지 집으로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윤정은 아마도 병원에 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북카페에서 정민에게 저녁을 해먹인 다음 그를 삼층으로 올려보냈다.
    윤대녕, 2016, 피에로들의 집, 205쪽
    화자와 정민은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성북동과 종로구 일대를 같이 걷는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분명 교감과 위로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 윤정과 다시 얘기를 나누게 된 것은, 길상사로 정민을 데리고 산책을 나간 일요일 오후였다. 며칠 습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그날은 하늘이 더없이 맑고 푸르렀다. 경내엔 하오의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휴일이었으므로 길상사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정민이 경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사이 그녀와 나는 느티나무 아래 앉아 냉커피를 마셨다. 그녀는 금빛 연꽃 무늬가 박힌 하얀 티셔츠에 빈티지풍의 간편한 청바지 차림이었다. 나도 많이 생각을 해봤는데요, 라며 윤정이 입을 열었다.
    윤대녕, 2016, 피에로들의 집, 218쪽
    이 소설에서 길상사는 윤정이 고민 끝에 마마의 비밀, 즉 현주의 생부에 대해 알고있는 사실을 화자에게 털어놓는 장소이다.

기술통제

  • 작성자: 염현주
  • 작성일: 202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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