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찾아가자 지훈은 한복차림으로 안방에서 나왔다.
"어서 오게."
딱 이 한마디뿐이었다. 성북동 개울 근처에 조그만 한식 가옥이었는데, 대문에서부터 한눈에 쇠락해 있는 모습이 보일 만큼 그 분의 집은 춥고 쓸쓸했다. 지훈은 우리를 안방 건너편에 있는 당신의 서재로 안내했다. 방 윗목에는 몇 개의 화분과 조그만 연탄난로가 있었지만, 불은 꺼진 채여서 화분의 잎사귀도 얼어죽은 듯이 보였고, 우리도 무릎이 시렸다. 잠시 후에 간단한 술상이 들어왔다. 우리가 사간 싸구려 독주를 선생께 올리고 우리도 받아 마셨다. 선생은 기침을 계속하시면서도 차츰 술이 오르자 그 도도한 말씀이 시작되었다.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등단한 나는 함께 등단한 후배와 성북동 조지훈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골목에서 사온 술을 조지훈에게 대접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 장면은 저자가 조지훈과 그의 집을 본 첫 인상을 묘사한 것이다. 조지훈의 집은 성북천변에 있던 한식 가옥이었으며, 그는 이곳을 ‘방우산장‘이라고 불렀다. 현재 조지훈의 집터에는 ‘방우산장‘이라는 표석과 함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인용된 부분은 그의 집안 모습을 조금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