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적: 충남 연기군 동면 내판리 280
주소: 경성부 돈암정 458-349
계열과 단체: 학생운동, 조선학생동지회
<활동 내용>
연희전문학교 재학중인 1939년 12월에 동교생 김상흠(金相欽)・서영원(徐泳源)・김영하(金永河)・이동원(李東元)・민영로(閔泳魯)등과 함께 시내 사직동 소재 윤주연(尹柱淵)의 집에 모여 항일결사 조선학생동지회(朝鮮學生同志會)를 조직하였다고 한다.
동 회는 독립투쟁을 3・1운동과 같은 방법으로 거행하기로 하고 1942년 3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그 동안에 이들은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기로 하였으며, 동경유학생 등 해외유학생과도 연락을 맺어 거국적 거사를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동지들과 함께 1940년 2월부터 1941년 7월까지 남한산성・냉천동약수터・연희전문학교 뒷산・벽제관 등 각지에서 모임을 갖고 독립의식을 길렀으며, 동지규합과 조직 확대에 힘을 쏟아 전국 도청소재지 및 주요도시에 하부조직을 설치하였다.
그런데 1941년 7월에 동회의 하부조직인 원산상업학교의 조직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동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동년 9월에 일경에 피체되었고, 연희전문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피체 후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3년 3월에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6월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다.
<특이사항>
1990년 애족장 추서
<참고문헌>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 6, 282-2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