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불승佛僧이며 항일지사였던 만해를 지훈이 직접 찾아가 뵌 것은 20대에 접어들던 나이였다. 일제의 혹독한 식민지 정치가 날로 더해만 가는 때였고 믿었던 의인·열사들마저 하나 둘 변절해가는 때에 지훈은 마치 성지聖地를 순례하는 심정으로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을 찾았던 것이다. 이래 세상을 버리는 날까지 지훈은 만해의 고결한 정신과 대쪽같이 곧은 절개를 찬양하고 존경해 마지않았다. 해방되기 바로 한 해 전 초여름에 만해가 기세棄世하자 지훈은 고인이 살던 옛집 심우장에 달려가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고, 만해의 전집편찬사업이 출범할 때부터 그는 남다른 정성으로 모든 일을 기획·추진하는 열의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 장면은 평소 조지훈이 매천 황현과 만해 한용운을 동경했다는 것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한 것이다. 박노준이 서술하였듯이 조지훈은 종종 심우장을 찾아 만해를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한 듯하다. 조지훈은 1937년 일송 김동삼의 장례가 심우장에서 치뤄졌을 때, 그의 아버지 조헌영과 함께 심우장에 있었다. 이때부터 조지훈은 만해의 정신을 흠모했다. 만해가 세상을 떠나자 조지훈은 그 누구보다 슬퍼하였고, 전집편찬사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