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 조지훈의 면모
1978
작품 문학
저자는 조지훈이 지니고 있던 선비정신을 떠올리며 논객으로서의 조지훈의 면모가 어떠했는지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자각과 저항정신으로 가득차 있던 조지훈을 묘사한 이 글은 그의 정신 기저에 매천 황현과 만해 한용운이 있었음을 지적하며, 매서웠던 조지훈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성북동
  • 조지훈_돌의 미학 표지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박노준
  • 비고:
  • 유형: 작품 문학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근거자료 원문

  • 시인이자 불승佛僧이며 항일지사였던 만해를 지훈이 직접 찾아가 뵌 것은 20대에 접어들던 나이였다. 일제의 혹독한 식민지 정치가 날로 더해만 가는 때였고 믿었던 의인·열사들마저 하나 둘 변절해가는 때에 지훈은 마치 성지聖地를 순례하는 심정으로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을 찾았던 것이다. 이래 세상을 버리는 날까지 지훈은 만해의 고결한 정신과 대쪽같이 곧은 절개를 찬양하고 존경해 마지않았다. 해방되기 바로 한 해 전 초여름에 만해가 기세棄世하자 지훈은 고인이 살던 옛집 심우장에 달려가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고, 만해의 전집편찬사업이 출범할 때부터 그는 남다른 정성으로 모든 일을 기획·추진하는 열의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조지훈, 2010, 돌의 미학, 193쪽
    이 장면은 평소 조지훈이 매천 황현과 만해 한용운을 동경했다는 것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한 것이다. 박노준이 서술하였듯이 조지훈은 종종 심우장을 찾아 만해를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한 듯하다. 조지훈은 1937년 일송 김동삼의 장례가 심우장에서 치뤄졌을 때, 그의 아버지 조헌영과 함께 심우장에 있었다. 이때부터 조지훈은 만해의 정신을 흠모했다. 만해가 세상을 떠나자 조지훈은 그 누구보다 슬퍼하였고, 전집편찬사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기술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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