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옥 :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
2017.10.30
작품 문학
1950년대에 <미망인>이라는 한 작품을 남긴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에 대한 이야기이다. 촬영을 나갈 때, 박남옥의 등에 업혀 있던 딸이 어른이 되어 생전 어머니가 써놓은 원고를 정리하여 그녀의 일생을 전해주고 있다. 박남옥이 영화계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성북구 돈암동에서 생활을 하였는데, 당시 여러 영화인들이 돈암동에 거주했음을 알 수 있고, 1940~50년대 성북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성북구
  • 박남옥_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 표지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박남옥
  • 비고:
  • 유형: 작품 문학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2017.10.30
  • 비고: 1999-2002년까지 박남옥이 쓴 원고를 딸이 정리하여 2017년 출판함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근거자료 원문

  • 그다음부터는 <자유만세> 녹음이 있는 날마다 돈암동에서 사이드카(물건을 싣는 운반차가 달린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했다. 촬영기사 한형모가 모는 이 사이드카는 극중 일본 형사(독은기 분)가 타는 차다. 차 안에는 최인규 감독, 황려희, 나, 이렇게 타고 있었다.
    1946년 3월까지 대구일일신문에서 일하고 있던 박남옥은 이후 광희동 촬영소에서 다시 일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박남옥이 돈암동에서 출근을 했으며, 어떻게 출근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여러 영화인들이 돈암동에서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 영화계는 차츰 활발해졌다. <민족의 새벽> 녹음 작업에는 나도 처음부터 참여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웠다. 1946년 12월, 눈이 많이 내린 세모(歲暮)였다. <자유만세>의 완성이 가까워지자 최인규 감독의 돈암동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었다. 작가 박계주, 최영수, 최정근, 음악 평론가 박용구, 홍은원, 황려희, 전창근, 유계선, 나, 한형모 내외, 이른바 호화 멤버가 모인 파티였고 밤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당시 돈암동 근처에는 많은 영화인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밤 파티가 열린 최인규 감독의 집 앞에서 누나 박남옥이 걱정되었던 박영기는 보초를 섰다고 한다.
  • 나는 그 후 김신재를 짝사랑만 한 것이 아니고 돈암동 그가 사는 곳 가까운 곳에 하숙을 들어갔다. 아담한 한옥이었는데 주인은 경상도 아주머니 산파였다. 그때의 보초병 남동생 영기는 안암동 이화장 맞은편 큰 한옥에 하숙하고 있었는데 그 집은 훗날 동생의 처갓집이 되었다.
    박남옥은 어린시절부터 영화배우 김신재의 팬이었는데, 대구에 살던 박남옥이 서울에 올라와서 김신재 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영화계 예술가들이 살고 있던 돈암동에서 생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박남옥의 동생 박영기는 안암동에서 하숙하며 학교를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 버스 종점에는 빵집이 있었고 거기서 몇 집 지나면 후생주택같이 똑같은 모양의 넓은 집들이 많이 있었다. 첫 번째 집 문이 열려 있었다.
    6.25전쟁 중 박남옥이 돈암동에 살고 있던 영화배우 김신재를 만나러 갈 때의 상황으로, 내용 중 언급된 후생주택은 재건주택이라고도 하며, 1953년 12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안암동에 건립되었다. 이 후생주택은 정부가 유엔한국재건단의 원조를 받아 전국에 건설하기로 계획한 5,500호 일반 후생주택의 표본 건물로 지은 것이었다. 서양식 삼각형 지붕에 건평 9평으로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 부엌 한 칸의 구조였고, 이후 성북구에는 정릉동에 325호, 돈암동에 73호의 후생주택이 건설되어 입주를 시작했다. 박남옥이 김신재를 찾아갔을 때에는 돈암동에 후생주택이 건설되기 전으로 보이는데, 박남옥이 기억 그와 비슷하게 생긴 주택들이 들어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신재 씨의 집을 방문한 후, 내가 하숙했던 집에도 들러보았다. 돈암동에 아담한 한옥이 몇 채 있던 곳이었다. 유난히 깨끗하고 햇빛이 잘 들던 그 하숙집을 찾아가니 집은 파손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데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내가 쓰던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 방은 이집에서도 햇빛이 제일 잘 들던 곳이었는데 깨끗한 것은 옛날 그대로였다.
    1950년 10월 2일, 6.25전쟁 중 박남옥이 돈암동에 살고 있던 영화배우 김신재를 만난 후 자신이 하숙했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 신재 씨에게 또 만나자며 약속하고 그 집에서 나와 옛 하숙집을 둘러본 후 빵집 맞은편에 있던 돈암동 주차장에서 차를 기다리면서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슬펐다. 전쟁이 나기 전인 불과 몇 년 전에 나는 영화에 미쳐 바로 이 돈암동 거리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쫓아 다녔다. 그 활기차던 거리가 이제는 슬프고 처량해 보였다.
    1950년 10월 2일, 박남옥이 영화배우 김신재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돈암동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내용 중 언급된 돈암동 주차장은 돈암동에 있었던 버스 종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술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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