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는 어느새 눈보라가 흩날리고 있었다. 다행히 거세지는 않았다. 마후라를 머리끝에서 턱끝까지 뒤집어쓴 엄마는 내가 미취학 아동이라고 우기며 빵모자를 쓴 버스 차장과 싸워 어른 한 사람 차비만 내고는 내처 백삼십팔번 버스의 종점인 마포 근처의 서강으로 달려갔다. 내가 한강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물이라곤 백운대에서 흘러내리는 정릉천만 구경한게 고작인 나는 그게 진짜 바다인 줄 알았다.
대학 선배와의 대화 중 「황톳길」이라는 시를 보고 운 ‘나‘는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갔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추운 겨울 화톳불을 쬐며 땅콩을 팔고 있던 아버지를 만난 ‘나‘는 화톳불에서 난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이 장면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갔던 서강, 즉 한강을 처음 본 ‘나‘의 심경을 묘사한 것으로, 정릉천만 보았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기에 등장한 정릉천은 화자가 어린 시절에 구경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화자가 살던 공간적 배경이 정릉천 일대로 설정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소설 속 내용에서 어린 시절 화자가 살았던 곳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으며, 백삼십팔번 버스가 다니는 곳 정도로만 설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