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도는 약과지요. 초등학교 삼사학년 시절 어른들이나 보는 야한 '성인만화'를 한두 권도 아니고 백 권도 더 넘게 탐독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미아리라는 곳은 가난한 산동네였거든요. 그래서 동네에는 약간 불량한 '끼'가 있는 형들(사람들을 그 형들을 양아치라고 불럿지만 나한테는 전혀 해롭지가 않았다)이 수두룩했고 그들과 어울리다보면 그런 만화를 얼마든지 몰래 숨어서 볼 자리가 있었습니다.
김소진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했던 장난을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주인공 제제의 장난만큼이나 ‘악마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것이 ‘타락‘이 아니라 악마성을 겉으로 드러내어 소독하는 과정이다. 김소진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주인공 제제를 통해 악마성을 꿰뚫어보고 치열한 승부에서 이기는 것으로 더 큰 성장을 얻을 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미아리‘는 길음역에서 길음초등학교, 삼각산동 방향으로 올라가는 언덕에 있었던 산동네를 말한다. 지금은 길음뉴타운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산동네 모습은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