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와의 결혼
작품 문학
이 글이 수록된 『월하의 마음』은 김향안 여사의 산문, 일기들과 사진기록을 함께 엮은 수필집으로, '월하의 마음'이라는 책 제목은 1952년 부산 피난지에서 쓰인 김향안 여사의 수필 제목을 따서 지은 것이다. 김향안, 김환기 부부는 결혼 후 김용준 선생의 노시산방을 물려 받아 수향산방이라 이름을 짓고 성북동에 자리를 잡았다. 성북동의 자연을 사랑했던 김향안의 마음을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북동
  • 김향안_월하의 마음 표지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金煥基와의 결혼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김향안
  • 비고:
  • 유형: 작품 문학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근거자료 원문

  • 1944년 5월 1일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고희동 선생 주례로 정지용, 길진섭의 사회로. 성북동 274-1. 근원 선생이 손수 지으신 노시산방을 물려받아 보금자리를 꾸미다. 섬에 내려가서 가족을 데려오다. 홀어머님과 아이들을. 1945년 B29가 성북 산협에 번쩍이던 날, 수화는 캔버스를 뜯어서 룩색을 만들었다. 우리도 소개 가자면서. 이웃이 거의 소개가고 몇 집 안 남았는데. 그런데 곧 소위 해방이 왔다.
    김향안, 2005, 월하(月下)의 마음, 16쪽
    김향안이 김환기와 결혼하고 난 후, 해방 전까지 성북동에서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노시산방은 문인이자 화가였던 근원 김용준이 1934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성북동의 한옥이다. 김용준은 노시산방을 수화에게 넘겨주면서 그 이름을 수화의 수(樹) 자와 김향안의 향(鄕) 자를 따서 ‘수향산방’이라 부르고 〈수향산방 전경〉이란 그림으로 남겼다.
  • 미술계는 처음으로 서울대학에 미술학부를 창설하다. 장발씨, 근원 선생, 김환기 등등이 ―그때만 해도 성북동은 맑은 개울이 흐르는 산협. 드문드문 인가 있는 별장지대였다. 아침에 파삭파삭한 모시옷을 입고 나갔다가 저녁에 계곡을 걸어 들어오려면 그냥 옷이 후줄근 젖어버렸다. 집안에 들어 앉으면 깊은 산중에 묻힌듯 적요(寂寥)했다.
    김향안, 2005, 월하(月下)의 마음, 16쪽
    해방 이후 성북동의 모습과 김향안이 성북동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점들이 나타나있다. 당시 성북동의 고요한 분위기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기술통제

  • 작성자:
  • 작성일:

이 자료의 상위 자료 보기

관련 마을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