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북산협(城北山峽)에 자리 잡았을 때는, 그곳에 서너 채의 굵은 별장과 띄엄띄엄 몇 채의 초가집이 있었을 뿐으로 우리는 서울에 살고 있되 완전히 산에 사는 것 같았다.
맑은 공기와 수묵의 향기와 흐르는 물소리와 지저귀는 새의 노랫소리는 우리의 젊음에 배가되는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혜화동 입구에서 보성중학 고개를 넘어 산협에 이르는 2, 30분의 거리를, 또는 삼선교에서 골짜기까지 올라오는 3, 40분의 거리를 항용 날마다 도보로 내왕하고도 피로한 줄을 몰랐다.
1944년 김환기와의 결혼 이후 성북동에 처음 자리를 잡은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김향안이 성북동의 자연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았고, 성북동에서의 생활에 매우 만족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