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윤
1911.02.10 - ?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안암동 관련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경성공립중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인 해방투쟁동맹(일명 ‘CHT’)에 가입하여 활동하여,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거주지는 서울 안암정 200-13호이다.
안암동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종윤(1)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김종윤(2)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金鍾潤
  • 이명칭: 송포윤(宋浦潤)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 비고: 서울 안암정 200-13

근거자료 원문

  • 본적은 서울 숭인정 63번지 10호이고, 서울 안암정 200번지의 12호에 거주하였다. 1940년 경성공립중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인해방투쟁동맹(朝鮮人解放鬪爭同盟, 일명 ‘CHT’)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42년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 본적: 서울 숭인정 63-10 주소: 서울 안암정 200-12 계열과 단체: 朝鮮人解放鬪爭同盟(일명 ‘CHT’) <활동 내용> 서울 출신으로 昌新公立普通學校를 거쳐 1936년 4월 경성공립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김윤종은 同校 4학년 재학 당시 일본 수학여행을 가는 대신 그 비용을 돌려받아 그 일부를 일본군의 慰問袋로 송부하였다. 이 때문에 김윤종은 일본군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교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으나, 동료들로부터는 냉대를 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김윤종은 당시 일본의 ‘內鮮一體’ 주장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때마침 1940년 5월부터 朴贊五·金永俊과 교제하게 된 김종윤은 이들의 영향으로 민족주의 사상에 눈을 뜨고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게 되었다. 1940년 11월 경성공립중학교 학생이던 任元彬·宋澤永 등은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朝鮮人解放鬪爭同盟(일명 ‘CHT’)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임원빈 등은 同 동맹 내부에 書記局, 理論部, 實踐部를 설치하고, 1940년 11월부터 ‘CHT대회의 선언’이라는 선언문 작성, 기관지 ‘火線’의 발행, 연구단체 鴙林共進會을 결성과 기관지 ‘供進’의 발행 등에 대해서 협의하고 조직 확대와 동지 규합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김종윤도 同 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퇴학을 당하고, 1942년 12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참고문헌> 경성지방법원 판결문:1942. 12. 2, 1944. 3. 2
    국가기록원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에는 거주지가 "서울 안암정 200-13"으로 기록되어 있다. (수정일 2020.6.4) 활동내용에서 1) "경성공립중학교"는 "경기공립중학교", 2) "두번째와 세번째, 네번째 문장의 "김윤종"은 "김종윤", 3) "일본 수학여행을 가는 대신 그 비용을 돌려받아"는 "일본 수학여행에 참가하여 여비추가금을 반환받아" 4) "鴙林共進會"는 "鷄林共進會" 5) "供進"은 "共進"의 오기임을 확인하였다.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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