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업
1922 - 1988
인물 개인 건축가
1세대 건축가이다. 1941년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에서 공부하고, 파리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 건축사무소에서 ‘전통문화와 자연은 건축설계의 토대’라는 철학으로 건축을 배웠다. 1956년 귀국하여 홍익대학교에서 건축학를 가르쳤다. 한때 대외적인 활동을 접고 성북동에 칩거하며 작업에만 몰두하였다. 이 시기 시인 김광섭의 2층집을 설계해 주기도 했다. 1970년대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였다. 대표작으로 주한프랑스대사관, 제주대학 본관, 삼일로빌딩 등이 있다.
성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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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업 건축문화의 집에서 바라본 장위동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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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金重業
  • 이명칭: 오심(吾心), 여천(如泉)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건축가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근거자료 원문

  • 평남 평양 출생. 김수근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건축가이다. 평양중학교를 졸업한 뒤, 1941년 요코하마[橫濱]고등공업학교에서 공부하고, 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배웠다. 1952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회 세계예술가회의에 한국건축가 대표로 참석하고, 파리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 건축사무소에서 ‘전통문화와 자연을 건축설계의 토대’라는 철학으로 건축을 배운다. 1956년 귀국하여 홍익대학교 건축미술과 교수를 맡고, 김중업합동건축연구소를 설립한다. 한때 대외적인 활동을 접고 성북동에 칩거하며 작업에만 몰두하였다. 이 시기 시인 김광섭의 2층집을 설계해 주기도 했다. 1970년대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였다. 대표작으로 주한프랑스대사관, 제주대학 본관, 삼일로빌딩 등이 있다.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70쪽
  • 김수근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건축가로 호는 여천(如泉)이다. 군수를 지냈던 부친을 둔 김중업은 평양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1941년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에서 건축학과에서 파리미술대학 출신 나카무라 교수로부터 건축교육을 받고 마쓰다 히라다 건축사무소에서 3년간 실무를 익혔다. 1952년 9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UNESCO 주최 제1회 세계예술가회의에 한국건축가 대표로 참석했다. 이후 파리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건축사무소에서 1952년 10월부터 3년 6개월간 건축 및 도시계획을 배웠다. 1956년 귀국해 홍익대 건축미술과 교수를 맡고 김중업합동건축연구소를 설립한다. 서울이 당면한 도시계획·건축 등의 문제에 대한 정부시책을 과감하게 비판하였다가 1971년 11월 출국하여 프랑스에 거주하게 되었고, 1972년 3월 르 코르뷔지에 재단이사로 선임되었다. 한때 대외적 활동을 접고 성북동에 칩거하며 작업에만 물두했다. 이 시기에 시인 김광섭의 2층집을 설계해 주기도 했다. 1970년대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활동했다. 그의 건축물들은 한국 문화 속의 샤머니즘적인 체험과 내면에 분출된 원초적인 힘 등 보이지 않는 무한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대표작으로 주한프랑스대사관, 서강대 본관, 삼일로빌딩 등이 있다. 1962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1965년 주한프랑스대사관 설계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과 슈발리에(Chevalier) 칭호를 받았고, 1985년 산업포장(건설유공 부문)을 받았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220쪽
  • ·1세대 건축가 ·간송미술관 내 우송댁(1967), 미국 F.N.C.B. 한국지배인 저택(1968) 외 성북동 내의 자취를 추가로 찾아서 건축작품 투어 등의 활용 프로그램 시행. ·김중업 선생이 잠시 살았던 곳의 흔적과, 건축작품의 흔적을 안양김중업박물관과 유족을 통하여 멸실과 현존여부를 확인하는 추가 조사 사업이 필요함.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237쪽
  • 6. 성북동 문화예술인 주소지 이름 : 김중업 주소(현재) : 성북동 분야 : 건축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9쪽
  • 건축가 김중업 건축가 김중업은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1939년 요코하마고등공업학교横浜高等工業学校(현 요코하마 국립대학) 건축학과를 다녔다. 광복 이후 1947년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전임교수를 지내며, 1952년 제1회 세계예술가회의에 한국건축가 대표로 참석한 것을 계기로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 사무소에서 3년간 근무를 하게 된다. 1956년 파리에서 귀국하여 종로구 관훈동에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열고 본격적인 국내 건축활동을 시작한다. 1966년에는 성북동 95번지에 자택 겸 아틀리에를 운영하게 되는데, 건축작품전과 다양한 작품활동을 펼치면서 당대의 건축가로 입지를 다졌다. 88올림픽 평화의 문이 김중업의 공식적인 마지막 작품이며 1988년에 별세하였다. 서강대학교 본관(1958), 유유산업 안양공장(1959), 주한프랑스대사관(1960), UN묘지 채플(1963), 제주대학교 본관(1964), 서산부인과병원(1965), 국제화재해상보험 사옥(1968), 31빌딩(1969) 등이 1960년대까지의 주요한 작품이다. 종로구와 성북구에 머물던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주택 작품 중, 석관동 한씨 주택(1956-1964), 성북동 김광섭 주택(1961), 성북동 전성우 주택(1967), 동선동 윤주탁 주택(1967), 성북동 미국 F.N.C.B 지배인 주택(1967)이 성북구에 지어졌고, 1970년대 국외 추방 시기를 지나 귀국 후 성북동 이병목 주택(1982)을 설계하였다. 김중업은 성북구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때 자택도 위치해 있었던 만큼, 향후 건축가의 행적과 활동에 대해 추가적인 조사 연구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박수진 외 5인, 2019, 장위동∙석관동, 223-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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